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52)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51화
사락.
서재에서 조용하게 책장을 넘기는 남자를 보며 플레어의 비서, 프림은 생각했다.
‘뭔가 참 신기한 분이야.’
2미터를 넘는 키에 다갈색 피부, 그리고 요툰하임 특유의 전통복장.
팔 곳곳에는 위엄 있는 문신이 가득하여 야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외양과 달리 그는 무척이나 지적인 남자였다.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분석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 리발이 써놓은 기록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서적 이외에도 허공에는 시스템 창을 잔뜩 띄워 놓았고, 눈알은 정신없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탐색하고 분석하는 일에서는 가히 클랜 최고일 거다.
실제로 그는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얼마 전에 십존의 반열에 들어섰다.
발할라.
요툰하임의 거대 거인이라고 불리는 이가 바로 이 남자였다.
타악.
분석을 끝마친 발할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리발 녀석. 아무래도 사고를 친 것 같군.”
“무슨 일이십니까?”
프림의 질문에 발할라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두루뭉실하게 써놓기는 했지만. 그 녀석이 가지고 있던 룰개정권 하나를 튜토리얼 중에 플레이어에게 양도한 일이 있었더군.”
“저층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에게 룰개정권이 있어 봤자, 한 번 살아남을 수 있는 소모성 티켓으로 소모되고 끝날 텐데요.”
“만약, 리발이 룰개정권을 넘겨준 상대가 교란자라면…….”
“……?!”
그 말에 상황의 중대함을 인식한 프림은 눈을 부릅떴다.
발할라는 냉철한 표정으로 말문을 이어 갔다.
“그리고 교란자는 룰개정권을 이용해서 필리프 4세를 주살하는데 성공했다. 뭐 교란자가 빼앗은 랭킹은 내가 도로 회수했으니 문제는 없다만. 당시 리발 녀석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겠지.”
“저라도 많은 회한과 고민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죽기 무섭다는 말을 어렵게 하는군.”
“…….”
클랜 ‘똬리를 트는 뱀’은 간악한 플레이어들이 집결한 클랜이었다.
소속 플레이어들은 클랜에서 정한 룰을 엄격히 지켜야만 했는데.
그중에는 실수로라도 뱀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에게는 형벌이 주어졌다.
아마 리발은 자신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당연히 교란자를 죽이려 했을 거다.
거기까지 추측을 한 발할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순 바보구먼. 감히 맹수의 콧털을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일단 어떤 상황인지 인식은 했습니다. 말씀해 주셨던 부분은 정리하여 플레어님에게 전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발할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프림은 슬쩍 눈치를 보다 입을 뗐다.
“향후 계획도 혹시 있으면 들어도 되겠습니까?”
“절대자라고 해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난 녀석에게 그것을 몸소 깨닫게 만들어 줄 거야.”
거짓 없는 진실.
다른 클랜원들과 달리 발할라는 절대 상대를 얕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뱉은 말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남자였다.
꿀꺽!
미미하게 끌어오르는 발할라의 투쟁심을 자각한 프림은 고인 침을 삼키다…….
“알겠습니다.”
라고 답하며 조용히 물러났다.
스윽.
홀로 서재에 남아 있던 발할라는 책상에 있는 건우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 밑에는 리발이 그를 향한 증오를 빼곡히 새겨 넣은 흔적이 가득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교란자라고 써놓진 않았지만, 교활하면서도 웬만해서는 후환을 안 남기는 리발이 이 정도로 흥분한 걸 보니 필시 무언가 있었다.
“리발은 죽었을지라도 리발의 집요한 의지는 널 끝끝내 고난에 처하게 만드는군.”
타악.
분석을 마친 발할라는 그대로 책장을 덮었다.
***
마왕을 퇴치한 다음 날.
라페아를 간호하다 지친 건우는 인근에 있던 나무를 등받이 삼아 곤히 단잠을 취하고 있었다.
“나 참 로드란 작자가 이런 곳에서 누구한테 기습이라도 받으려면 어쩌려고.”
그리고 때마침 가장 먼저 체력을 회복한 니파가 그 모습을 발견했다.
새근새근.
경계심이란 게 없는 건지, 니파가 지근거리까지 왔는데도 건우는 깨지 않고 자고 있었다.
‘나한테만 경계심이 없는 건가.’
은연중 기쁜 마음이 들었던 니파는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슬그머니 거리를 좁혔다.
이대로 깜작 놀래주려는 심보가 한가득이었지만.
새근새근.
곤히 자고 있는 건우의 얼굴을 보니 그럴 마음이 싹 가셨다.
발그레.
오히려 건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 그녀만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됐다.
“으음, 이거 뭔가 굉장히 치사한 것 같아.”
콕!
억울한 심정에 그녀는 건우의 코끝을 살짝 눌렀다.
스윽.
그에 건우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움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부비적, 부비적.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잠에 깬 것은 아니고, 그저 자세를 편하게 하기 위해 몸을 기우뚱 움직인 것뿐이었다.
피식.
그 모습에 니파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건우는 그야말로 영웅 그 자체였다.
고향인 엘더리아를 키메라의 왕, 라폰에게서 지켜 주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아버지, 니제르를 만나게 해 주었다.
그런 영웅이 지금은 아이처럼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다. 그게 참 인간적이었고, 자신만 볼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눈매를 좁히며 잠시 고심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은혜를 갚자는 생각을 먼저 했지.
가장 중요한 고맙다는 말은 별로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녀는 힘없이 지면에 떨어진 건우의 손을 무의식적으로 잡아 깍지를 꼈다.
오랜 시간 동안 검을 연마한 건지,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혀있었지만.
손을 잡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두근.
심장이 제멋대로 박동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시간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됐으면 싶었다.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건우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넌 진짜 날 당황만 하게 만들어.”
“…….”
정말 깊은 잠에 취했는지, 건우는 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건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니파는 곧 결의를 다졌는지 슬며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번뜩!
그와 동시에 건우가 눈을 부릅떴다.
스팟!
당황한 니파는 즉각 떨어지며 대신 건우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워 버렸다.
건우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하는 거야?”
“자, 자, 자려고.”
귀까지 빨갛게 물든 그녀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두근두근.
심장박동이 멈추지 않았다.
‘깜짝 놀라서 그런 거야.’
그것이 왠지 묘하게 억울했던 그녀는 어떻게든 자기 세뇌를 했다..
이 상황이 건우도 상당히 부끄러웠는지, 자신의 손을 꼭 잡은 니파에게 물었다.
“손 이렇게 잡고 자면 불편할 것 같은데.”
“내버려 둬. 내 마음이야.”
“……내 손인데, 어떻게 내버려 둬?”
“흥!”
분한 마음에 니파는 그대로 눈을 꼭 감았다.
그 고집스런 모습에 건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깍지를 푼 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이럴 때 보면, 어린애 같네.”
“……나 이대로 잘 거야.”
“마음대로 해.”
이미 포기한 듯 건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놓였는지, 니파는 그대로 잠을 취했다.
한편.
멀찍이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네 명의 정령왕들은 서로 속삭이고 있었다.
“바람둥이”
“바람둥이”
“바람둥이”
“바람둥이”
머잖아 이 소식은 라페아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다.
***
시간은 저녁 오후.
홀짝.
식탁에서는 세피아가 렌이 구해 온 과일음료를 한 입 마시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울컥!
렌은 억울한 심정에 세피아에게 항의했다.
“여기 오면서 벌써 다섯 번이나 무르신 거 알기는 하세요. 대체 콜라란 게 뭔데, 그러는 거예요?”
척.
세피아는 엄지를 추켜세워 보였다.
콜라는 위대하다는 걸 어필하려 했으나.
렌은 골치가 더욱더 아파졌다.
“빌어먹을 콜라!”
푸푸푸푸푹!
그리고 잘못된 언어선택에 대한 응징으로 빙괴가 아슬아슬하게 몸 곳곳을 스쳐 지나갔다.
척.
안색이 새파래진 렌이 엎드려 절하며 사죄했다.
“다시 한번 콜라에 준하는 걸 어떻게든 구해 오겠습니다.”
“…….”
그 광경을 보고 있떤 건우의 눈 밑에 그늘이 졌다.
슬쩍.
건우는 세피아에게 살짝 눈초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 깡패냐?”
까닥.
세피아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숭 부리지마!”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던 건우는 곧 인벤토리에서 캔 콜라를 꺼내 세피아에게 던져 줬다.
“옜다. 네가 좋아하는 콜라.”
반짝!
세피아는 크리스탈 같은 눈을 반짝이며 건우에 대한 존경을 표했고.
“있었으면 진작 고생도 안 했잖아!!”
격분에 찬 렌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최근에 구한 거야.”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콜라가 없었다는 걸 알고 있던 세이비어는 의구심 섞인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구한 거냐?
“그냥 쉬는 동안, 조금 시스템 창을 만지작거리니까 재밌는 걸 찾았어요. 정말 되나 싶었는데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건데?
“안 알랴줌.”
빠직!
-이 자식이! 한 번 붙어 볼까? 싸펑피펑?
“나중에 알려 줄게요.”
모처럼 회심의 카운터를 날린 건우는 만족스레 웃다가 곧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라페아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을씨년스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슬쩍.
‘왜, 왜 그러는 거지?’
그녀가 이렇게까지 감정을 분출하는 건 무척 보기 드문 일이었다.
왜냐하면 라페아 정도의 강자가 살기를 발산한다는 것 주변 사물이나 사람에게 미미하게나마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어후, 왜 갑자기 추운 것 같지.”
실제로 렌은 오한이 들는지 꼬리를 바짝 세우기까지 했다.
그 옆에 있던 케이론도 라페아의 분노를 알아챈 건지 미미하게 몸을 떨었고.
그것은 남아 있는 층계보스들도 몸을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쪼륵.
그녀의 분노를 유일하게 무시할 수 있는 세피아는 빨대로 콜라를 흡입하며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되겠구나.
세이비어도 불안해하며 건우에게 충고를 했다.
그 말에 공감하는지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이야기하죠.”
-지금 얘기해! 지금! 딱 봐도 너 들어올 때까지 절대 살기를 꺼뜨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하잖아!
“…….”
애써 외면하고 싶었건만.
세이비어가 날린 팩폭에 건우는 착잡한 표정으로 방문을 두들겼다.
“나야. 들어가도 돼?”
“……들어 오거라.”
끼익.
의외로 침착한 말투에 안도한 건우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에서는 라페아가 뚱한 표정으로 건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에 장식 등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머리가 다 풀어헤쳐져 있었다.
보기 드물게 드레스 계열의 잠옷을 입은 모습을 보니 뭔가 신선하면서도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몸은 괜찮아?”
“몸이야 말끔히 나았고 기력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마음이 심히 불편하구나.”
“왜?”
진심이 담긴 건우의 반문에 울컥한 건지, 라페아는 그 자리에 일어나 건우를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그녀는 원망스레 건우의 얼굴을 쳐다보다 곧 노기가 꺼졌는지, 그대로 건우의 가슴에 꼭 안기며 한마디 내뱉었다.
“어떻게 내 거라고 표시를 할지 고민이 들어서 말이지.”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