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77)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76화
회백색의 지대.
그곳에는 공허한 잿더미만 가득할 뿐.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곳은 한때, 남자의 추억이 애잔히 담긴 고향이었다.
그러나 한 침략자에 의해 모든 것이 무가치한 것으로 변모했다.
절망에 사로잡힌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죽어간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세월이 흘러 남자는 다른 세계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저 자연히 흘러들어갔다.
이대로 자결을 할까 싶었지만, 그것만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오직 자신만이 그 세계가 존재했다는 흔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탑의 1층, 시드플랜.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처음에는 모처럼 사람이 만나 반가웠지만.
곧 자신은 여기서 섞일 수 없는 사람인 것을 깨닫고 다시금 감정을 죽였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목적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체력에 한계가 온 나머지 남자는 의식을 잃었다.
깜빡.
눈을 떴을 때, 일어난 장소는 안락한 침대 위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한 남자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머리에 천을 두른 여인을 발견했다.
여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바보에요. 왜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말을 못 해요.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남자는 그녀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알고 보니 며칠 전에 여관에서 봤던 여인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왜 혼나고 있는 걸까?
당황스러워 쩔쩔맬 때, 그녀와 같이 여관을 운영하던 노파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해하게나. 젊은 친구. 며칠 전부터 자네가 잘생겼다고 빤히 쳐다보고 있었거든. 기회다 싶어 길거리에서 낑낑거리며 주워 오더라고.
-어머니!!
얼굴을 발끈 붉힌 여인은 저도 모르게 소리치다 곧 검지로 머리를 꼬며 새침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시야라고 해요.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이름.
맞아. 나에게 분명 이름이란 게 있었어.
누구도 불러주지 못하는 세상에 있었기에 잊을 뻔한 이름.
-……볼프강.
이름을 들은 시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 놀러 와요. 볼프강.
-…….
가슴에 미미한 감정이 스며들어왔다.
모처럼 받은 상냥함에 어떻게 보답을 하면 될까?
고심을 하는 찰나, 길거리 화원에서 보는 제비꽃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잿빛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색깔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때쯤 자각한 듯 보였다.
스윽.
손에 쥐어진 제비꽃다발을 건네주자, 시야는 기쁘면서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짓궂은 남자 손님들이 휘유, 휘파람을 불며 놀리기 시작했다.
-사귀는 거냐? 사귀는 거면 뽀뽀해.
-조용히 안 하면, 맥주잔으로 머리통 후려갈겨 버릴 거예요.
시야는 눈 꼬리를 삐죽 세우며 으름장을 놓자, 그들은 히끅 딸꾹질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흑, 흑 시야가! 저 시야가!
반대편에서는 줄곧 그녀를 흠모하던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동안 구애를 하면, 맨날 바쁘다며 이리저리 회피하던 그녀가 저렇게 기쁜 표정으로 꽃다발을 들고 있으니 실로 마음이 아팠다.
-나도 저렇게 과감하게 나갔어야 됐거늘.
-어차피 얼굴이 안 되잖아.
-뭐 이 새꺄.
사소한 시비는 곧 투덕거리는 말싸움을 번져나갔다.
-선물 고마워요.
……두근.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에 볼프강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꽤나 시간이 흘러 두 남녀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고 나아가 부부가 되었다.
이른 저녁.
고된 노동을 마치고 부부는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게 됐다.
남자는 침대에 등을 기대 앉아있었고 여인은 침대에 앉아 사내의 귀를 만지고 있었다.
-어쩌면 난 당신 귀 보고 반했을지도 모르겠어.
여인은 얄궂게 웃으며 사내의 늑대 귀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
넌지시 던진 말에 사내는 일순간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시야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내의 등을 감싸 안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래?
-동족 생각을 하고 있었어.
탑에서는 많은 수인이 살고 있고 웨어 울프 등의 라이칸슬로프를 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확히 같은 동족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니 마음이 저도 모르게 서글펐다.
피식.
사내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한 여인은 얄궂게 웃으며 말했다.
-혼자가 아니게 해줄게.
-그게 무슨…….
-눈치 없으면 혼난다.
머리끈을 지그시 풀던 여인은 그대로 사내의 입에 입을 맞췄다.
눈을 떴을 때.
시드 플랜트의 사람들은 괴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쿠구구구구.
하늘과 지반이 정신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불길한 조짐을 감지한 사내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니.
하늘 저편 너머로는 비늘을 잔뜩 두른 무언가가 하늘을 통해 간간히 엿보였다.
그것은 탑에 똬리를 틀며 올라가는 한 신의 자취였다.
이를 계기로 사내는 과거의 편린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시작된다.
세상을 혼돈으로 몰고 가 마침내 세상의 족속을 박멸시키려고 하는 괴물이 다시 움직이려 하고 있다.
내가 아니어도 돼.
여기는 탑이야. 탑 내에 있는 신들이라면, 충분히 뱀을 견제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마음을 먹으며 어떻게든 외면하려고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시체조차 남아있지 않는 공허한 풍경이 떠올랐다.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살피던 사내는 자책하듯 손으로 눈을 가리며 한 마디를 남겼다.
-미안해. 미안해.
구슬프게 울며 흐느끼는 남자의 곡성에 그의 눈을 피해 눈을 뜬 여인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는 탑에 오르는 것을 선택했다.
험난한 시련을 극복하고 조금씩 힘을 쌓다보면, 반드시 뱀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며…….
-금방 돌아올게.
-믿고 있으니까 기다릴게.
안 보이는 곳에서 많이 흐느꼈는지 여인의 얼굴은 다소 수축돼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밝은 미소를 유지하며 사내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배에 갖다 올렸다.
-무슨?
그녀의 행동에 사내는 조금 당황했지만.
두근.
곧 그녀의 심장과 다른 또 다른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말했지. 절대 혼자가 아니게 해줄 거라고.
-…….
막중한 책임감에 사내는 어찌해야 되나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짝!
방심한 그 틈을 타 여인은 사내의 양 뺨을 붙들고 말했다.
-이게 당신이 돌아와야 되는 이유고,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 하는 이유야. 맞지?
그녀의 말에 남자는 심기를 다졌다.
다시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 오르는 것뿐이다.
몇 년이 소요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여인, 아니 어머니가 된 그녀는 스스로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비치며 남자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반드시, 반드시 돌아올게.
-아 그래도 이름은 지어주고 가야 돼.
활짝 웃는 그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러워 남자는 여인을 꼭 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중대한 결심을 마친 사내의 결말은…….
허무하게도 죽음에 이르렀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놈.
한심한 놈, 한심한 놈, 한심한 놈.
그는 끝없이 절망하고 자책하며 점차, 점차 늪에 빠지고 있었다.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으로 천천히 잠식할 때쯤.
타악.
누군가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무슨?!
깜짝 놀라 고개를 들 때, 눈앞에서는 낯익은 청년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최, 최건우.
믿을 수 없는 눈길로 그 이름을 부를 때.
-닥치고 기어 나와.
짧고 굵직한 한마디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늪을 헤쳐 나오고 있었다.
***
스륵.
“……여긴.”
상당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연 볼프강의 주변에는 황금빛 실루엣이 가득했다.
혹시 이곳이 천국이란 곳이 아닐까?
의심을 했지만 곧 눈앞에서 자신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렌을 보며 자신이 멀쩡히 살아있음을 자각했다.
“……아빠.”
울컥!
동요하고 있는 렌을 빤히 쳐다보던 볼프강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태어나면서 한 번도 곁에 있어주지 못한 아들.
쫑긋거리는 귀와 경직돼 있는 꼬리는 얄궂게도 못난 자신을 닮아있었다.
파르르.
바들바들 떨던 손은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렌을 꼭 끌어안았다.
“렌, 렌. 흐윽! 렌!”
“자, 잠깐! 아, 아파요!”
렌은 기겁하며 떨어지려고 했지만, 으스러지게 껴안는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건우는 피식 웃고 있었다.
“괘, 괜찮으세요?”
볼프강의 동료인, 샤를리제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건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자 소생에 성공하셨습니다.] [칭호, ‘생과 사의 경계를 누비는 자’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자’로 격이 상승했습니다.] [저승에서 망자를 되살린 죄로 각 지옥의 성좌들이 급격히 분노했습니다.] [저승의 신, 하데스가 교란자, 최건우에게 적의를 표출했습니다.] [지옥의 여신, 헬이 당신을 흥미롭게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망자의 군주, 오시리스가 경고를 가합니다.]시스템창 너머로 성좌들의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지만.
‘어쩌라고?’
건우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며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렌을 놓아줄 생각 없이 꽉 껴안고 있는 볼프강을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저렇게 보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딱딱하게 군 건지…….”
“마스터는 감정 표현에 서투르시거든요.”
“죽고 난 뒤에야 하지 못했던 감정 표출을 하는 건가.”
못 말리겠다는 듯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두 부자 상봉을 지켜보다 인비저블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케이론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제 간의 정이 이미 두터웠는지 케이론은 어떤 때보다 힘차게 예를 취하며 답했다.
저벅, 저벅.
용무를 마친 건우는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어, 어디 가세요?”
당황한 샤를리제가 질문을 던지자, 건우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부자상봉을 딱히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지. 무엇보다 피곤해.”
“아, 알겠어요.”
샤를리제는 눈치껏 조용히 물러났고 건우는 다시 조용히 발을 뗐다.
***
으슥한 거리.
그곳에서는 건우가 멍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매그놀리아 거리에서는 그동안 발할라에게 학대를 받았던 마도사들이 기쁨을 만끽하며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허물어진 벽을 복원하려고 할 때.
“건들지 말거라. 그것은 건우 너가 해야 될 일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다시 이룩해야 되는 일이지.”
라페아가 뚜벅뚜벅 걸어오며 그 행위를 제지했다.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건우의 질문에 라페아는 잔잔히 분노를 곱씹으며 건우를 흘겨보았다.
“룰 개정권이 없는 이상, 시련에 강제로 개입할 수 없으니 발할라와 너의 전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렌에게 있었던 일도 미네르바를 통해 전해 들었느니라.”
“너한테 비밀은 안 통하겠네.”
“안심하거라. 바람피우는 일 이외에 모든 것은 눈감아주고 넘어갈 수 있으니.”
당당한 그녀의 말에 건우는 지그시 눈매를 좁혔다.
“어쩐지 무서워졌어. 그보다 니파는 어디 있어?”
“후후, 협약에 따라 순서를 지키고 있지.”
“협약? 순서?”
아리송한 표정으로 반문했지만.
라페아는 답해주지 않고 건우의 등에 자신의 등을 맞댔다.
아담하면서도 작은 등이지만, 건우는 어째서인지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고 안심이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자각했다.
꼬옥.
라페아는 그대로 건우의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죽은 자를 살리는 데, 어떤 대가를 쓴 거지?”
“리스크는 상당히 크지만, 말해줄 수 없어.”
“그런가.”
라페아는 눈을 감으며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나 이 등을 받쳐줄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음을 잊지 말거라.”
“……고마워.”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말에 건우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건우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라페아는 보조개를 피우며 살포시 웃다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건우.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광경이 있다. 이건 그대가 꼭 보아야 되느니라.”
“어떤 건데?”
그녀답지 않게 무척이나 들뜬 어조에 건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