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84)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83화
고동색으로 반짝이는 윤기 있는 가죽.
금빛을 품은 눈동자에는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거만하면서도 살벌한 야성이 깃들어 있었다.
크르르르르르.
눈보라가 들이닥친 곳에서 숨결을 토해내는 그 모습은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이 흉포한 짐승과 마주한 플레이어들은 자연히 자신들의 죽음을 직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근.
머릿속에 고양된 극도의 공포와 혼란은 7성급 브렌넨을 조우할 때랑은 비교가 안 됐다.
하지만.
이 괴물은 누구도 해칠 수 없다.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것은 그 몸을 결박한 끈과 주둥이에 꽂힌 거대한 대검.
이 괴물의 결박이 풀리는 것은 종말이 시작될 때이며…….
그전까지는 세상과 격리된 운명을 따라야 했다.
건우는 이 짐승의 정체를 알고 있다.
“……펜리르.”
-몰라보는 게 더 이상하지.
어마어마한 존재감에 건우는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꿈틀.
그때 펜리르는 고개를 돌려 건우를 쳐다봤다.
-소문의 교란자 치고는 덩치도 힘도 한참 작은 애송이군.
다소 얕잡아 보이는 평가에 건우는 울컥했다.
“보태준 거 있냐?”
-담력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어째 낯익은 말투에 건우는 어렵지 않게 그가 뱀과의 싸움에 끼어든 장본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아까 뱀과 대화를 나눈 건, 너였지? 어째서 싸움에 끼어든 거야?”
-오래전부터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너를 도와준 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거라.
“뱀을 파편 나부랭이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지?”
펜리르는 건우를 비웃으며 말했다.
-호오, 녀석을 대적하면서 아직 녀석의 본질을 깨닫지 못 한 건가?
“……몰라. 그러니까 알려줬으면 싶어.”
펜리르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뗐다.
-그렇다면, 거래를 하지.
“거래?”
펜리르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속박의 끈, 글레이프니르, 그리고 주둥이에 꽂힌 검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들의 봉인을 풀어주면 생각해보지.
-어림없는 소리.
세이비어는 유령의 모습으로 튀어나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경계심이 높은 건 당연했다.
바나르간드, 펜리르.
그는 차후 최고신을 집어삼키는 운명을 가진 대재앙의 마신이다.
또한 탑에서는 똬리를 트는 뱀을 견제할 정도의 엄청난 힘을 갖추고 있다.
언젠가 구속에 풀려날 운명이지만.
지금 건우가 구속을 해제한다는 건, 종말 전쟁에 개입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
피식.
건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나라면, 그 구속을 풀 수 있을 거야.”
-…….
너무나 매혹적인 한 마디에 펜리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한편으로 의심했다.
자신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이런 자그마한 인간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조건에 조건을 걸어야겠어.”
-조건?
건우는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구속이 해제된 순간, 너는 가장 우선적으로 내 세 가지 지시를 따라야 해. 즉, 복종하라는 뜻이야.”
-웃기지 마!!
콰아아아앙!
펜리르가 미미하게 힘을 방출하자, 일순간 눈보라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디디고 있는 지반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되며 건우에게까지 그 영향력이 미쳤다.
씨익.
[회귀의 링을 시전했습니다.]그러나 건우는 어렵지 않게 자신을 휩쓸려는 토사물들을 모두 원상 복귀시켰다.
펜리르는 살기를 품은 눈빛으로 건우를 쏘아보며 말했다.
-하찮은 인간이 내게 가당치도 않은 요구를 해?
건우는 양손을 주머니에 끼며 말했다.
“잘 생각해봐. 이건 너한테 절대 나쁜 조건이 아니야. 펜리르. 절대 널 서운하게 할 일은 없을 거야.”
능글맞은 그 모습에 펜리르는 이를 갈며 말했다.
-네놈의 혀는 신들보다 더 도발적이군.
“뱀이 날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지.”
건우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보였다.
[사멸의 링을 시전했습니다.]느닷없이 형성된 칠흑의 링이 펜리르의 오른쪽 다리에 구속된 글레이프니르를 휘감더니…….
두두두둑! 쫘아아아악!
그것을 종잇장처럼 단숨에 찢어발겼다.
-?!
당황한 펜리르는 눈을 부릅떴다.
힘에 있어서는 천둥의 신, 토르나 티탄들도 펜리르를 앞설 수 없다.
글레이프니르가 그 명성이 두드러진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최강자인 펜리르가 끊을 수 없었기에 명실상부한 탑 최강의 봉인구.
한데, 교란자인 그는 대수롭지 않게 끊어버렸다.
스스스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끈 하나가 끊어지기 무섭게 펜리르를 구속하고 있던 남은 글레이프니르의 구속력이 상당히 약해졌다.
건우는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서비스야.”
-서비스?
“구태여 날 지켜주려고 한 건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너로 인해서 제천대성이 나한테 접근을 하지 못 한 거잖아.”
신계를 어지럽히며 최고신조차 농락한 제천대성, 손오공.
그 힘은 탑의 신 중에서 상위권임은 틀림없었다.
제 아무리 십존이 탑에서 최강급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신을 상대로 격전을 벌이는 것은 아직까지 무리라는 평도 자자했다.
하지만 그런 신조차 펜리르를 경계한다.
손오공은 지금 당장이라도 건우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됐지만.
섣불리 건우에게 다가가지 못 했던 것은 오직 펜리르 한 명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이었다.
-……딱히 네놈을 위해서 한 일은 아니다.
펜리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건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한 거야.”
-글레이프니르에 무슨 짓을 벌인 거지?
피식.
건우는 팔짱을 끼며 펜리르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구성하고 있는 여섯 가지 요소 중 하나인 ‘여인의 수염’을 소멸시켰어.”
글레이프니르는 여섯 가지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여인의 수염, 산의 뿌리, 고양이의 발자국 소리, 생선의 숨결, 곰의 힘줄, 새의 침.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구성요소로 이름만 듣는다면 황당무계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강렬한 구속구가 되었다.
“안심해. 남은 것도 모조리 끊어줄 거야.”
-나는 아직 네놈의 요구에 승낙하지 않았다만.
“분명 마음에 들 거야. 이야기를 하자. 펜리르. 이야기할 시간은 길어.”
-……네놈은 실로 음흉하군.
“그게 내 매력이야. 아무도 헤어 나올 수 없거든.”
웃고 있는 건우의 미소는 매우 도발적이었다.
뻔뻔한 그 미소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펜리르의 몸은 곧 고동색의 빛을 발했다.
***
휘이이이잉!
거칠게 불어 닥친 새하얀 눈보라.
콰콰콰콰쾅!
하지만 그곳에는 눈보라뿐만 아니라 전광이 번뜩이며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갑작스런 기상이변을 일으킨 건 뇌운에 올라탄 존재, 바로 손오공이었다.
화안금정을 반짝이며 여의봉을 어깨에 두르고 있던 그는…….
빠득!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지 이를 갈며 분개를 품었다.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하나.
바로 교란자, 최건우와 재전이었다.
그는 일전에 탑의 코어를 관리하는 수호자로서 건우와 맞대결을 벌인 적이 있었다.
과정만 보면 그때 당시에 손오공은 건우를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철저히 농락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모든 게 건우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그때 당시 치명적인 데미지까지 입어 힘을 수복하는데 꽤나 고생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시간은 약 6개월 가까이 지났다.
손오공은 코어를 지키지 못했기에, 수호자의 자리에 벗어났고.
자유를 얻은 그는 곧 뱀과 계약해 건우와 리벤지 자리를 가지게 됐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필이면 리벤지가 마련된 무대가 71층.
탑에서 제일 강력한 마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니 말이다.
“섣불리 건드릴 수도 없고. 성가시게 하는군.”
제천대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언덕 위에서 어슬렁 비치는 펜리르의 그림자를 지켜봤다.
아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늘도 어김없이 펜리르의 하울링에…….
저릿저릿!
털이 쭈뼛쭈뼛 서며 절로 소름이 끼쳤다.
“도전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벽이군.”
체념을 하려는 순간.
“호오.”
지상을 바라보던 그는 호기롭게 탄성을 자아내며 슬며시 하강하기 시작했다.
***
주변의 지대는 땅이 아니라 얼어붙은 거대한 호수였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그곳에서 건우는 나른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콰콰콰쾅!
자그마한 근두운이 빙괴를 단숨에 쪼개며 한기가 치솟은 물이 철썩 출렁이며 바깥쪽까지 범람하려고 했다.
스스스스.
손오공은 신력으로 물살을 제어하며 곧 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다. 교란자.”
히죽!
어찌나 반가웠던지, 잇몸을 활짝 만개하며 재회의 기쁨을 표출했다.
피식.
그리고 건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오공에 질문을 건넸다.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왜 그렇게 날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났을까나.”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근두운에 내려와 빙괴 위에 발을 내딛은 손오공은 곧 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네놈의 건방진 행동이 나를 자극하기 때문이야.”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혈기왕성하게 만들어줬다는 거잖아.”
지지 않고 자신의 말을 맞받아 치자, 손오공은 슬그머니 핏발이 선 눈으로 건우를 엄하게 노려봤다.
“지금까지 늑대 꼬랑지에 모습을 감췄던 놈치고는 무척 말이 많군.”
“너 못지않게 나도 사정이 있었어.”
건우는 한쪽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시간은 이미 이틀이 지나 전신에 일렁이던 데스 토큰 아홉 개는 모조리 사라졌다.
HP는 이미 완전히 수복했기에 번거로운 리스크 없이 싸울 수 있었다.
“용케 도망가지 않았군. 수준 차이는 변하지 않았을 텐데.”
손오공의 도발조에 건우도 슬그머니 눈꼬리를 세웠다.
앙금이 있는 건, 손오공뿐만이 아니다.
그때 치욕을 겪었던 것은 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다시 한번, 그와 재전을 마련해 준 뱀에게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건우는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때랑 지금이랑 내 수준이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아아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재미없는 난투극이 되면 바로 네놈을 바로 죽여 버려야 되니까.”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쇄액!
순간 두 남자는 서로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쩌저저저적!
신력이 담긴 권압에 호수의 빙결이 갈라지고 쪼개졌고.
콰아아아아앙!
두 남자는 서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5미터 밖까지 밀려났다.
얼핏 보면 용호상박의 결전처럼 보이지만.
콰쾅!
직격당한 손오공의 복부의 갑옷이 완전히 파손됐다.
그뿐만 아니라…….
주륵.
내장이 꿀렁이는 역한 감각을 이기지 못하고 입 바깥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이, 이게 무슨?!”
그때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위력에 손오공은 믿기지 못하는지 눈을 번뜩 떴다.
반면, 건우는 뺨을 맞아 입술이 터져 피가 나는 것 외에는 어떤 상처도 없었다.
스스스스.
손오공을 강타한 오른손에는 칠흑의 링이 둘러져 있었다.
“……네놈.”
그것이 심상치 않는 권능이란 것을 직감한 손오공은 빠득 이빨을 갈았고.
건우는 엄지로 스윽 상처 난 입술을 훑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엄지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새빨갛게 부어오른 멍도 터진 상처도 존재하지 않았다.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