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303)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Epilogue
달그락, 달그락.
오늘도 정신없고 분주한 하루였다.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됐는지…….”
앞치마를 둘러매고 설거지를 하던 춘삼은 신세한탄을 하다, 누군가 바지자락을 끄집어 당기자 슬며시 밑을 쳐다봤다.
뾰족한 귀에 금발의 에메랄드 눈빛을 가진 엘프 소녀가 수줍은 얼굴로 사과를 내밀고 있었다.
“삼촌, 사과.”
“하린아~ 이거 삼촌 주는 거야?”
불평, 불만으로 가득했던 춘삼의 얼굴이 귀여운 조카의 얼굴에 사르르 녹았다.
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손으로 동강내주면 안 돼? 오빠들은 쉽게 하는데, 하린이는 잘 안 돼.”
“…….”
춘삼은 잠시 어이가 날아간 표정으로 지그시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적금발 머리칼을 지닌 최가람과 하린과 쌍둥이 금발 엘프 소년, 최하준이 벽에 몸을 숨긴 채 춘삼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후후후후, 이 정도는 아주 쉽지.”
사과를 받아든 춘삼은 슬쩍 조카들의 눈치를 살피다 사과에 칼집을 내더니…….
“흐랏차!!!”
혼신의 연기를 다해 쫘악 소리를 내며 사과를 이등분했다.
“우와!!! 삼촌 정말 힘세다!”
“하하하하! 삼촌이 한 힘 하지.”
하린은 감탄하며 눈을 반짝였고, 춘삼은 콧대를 높이며 웃었다.
“……춘삼 씨, 이제는 조카들한테도 사기를 치네요.”
뒤늦게 업무를 끝마친 최지혜가 그 광경에 곤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모!!”
그녀의 등장에 세 남매는 우르르 몰려와 지혜에게 안겼다.
“고모 기다렸어? 우리 귀염둥이들.”
최지혜는 꺅꺅거리며 그런 조카들의 볼에 뽀뽀를 해줬다.
“어? 그런데 작은 형수님은 어디 계신가요?”
지혜는 하린과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언니는 오늘에야말로 하린과 하준한테 당근 파이를 먹이겠다며 아직까지 장을 보고 있어요.”
“…….”
“…….”
당근이란 말에 쌍둥이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경직됐다.
딱딱하게 굳은 동생들의 얼굴을 보며 가람은 결의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동생들이 싫어하는 당근은 내가 다 먹어줄 테니까.”
“형!”
“오빠!”
감격한 쌍둥이가 그대로 가람을 껴안았다.
“귀여워!”
아담한 몸으로 따뜻한 형제, 남매애를 발산하자 최지혜가 다시 한 번 꺅꺅거렸다.
반면, 춘삼은 얼굴에 그늘이 진 표정으로 말했다.
“……유전의 힘이란 정말 무섭군.”
어쩌면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은 유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밥 먹기 전에 고모가 동화책 읽어줄까?”
해질녘이지만 아직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그래서 지혜는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으나…….
씨익.
세 남매는 입꼬리를 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쿠쿵.
칼 같은 거절에 지혜는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서 경직됐다.
‘마이페이스인 저 아가씨가 무너지는 날도 있네.’
춘삼은 그 광경이 무척이나 신기한지 피식 웃으며 조카들에게 물었다.
“그럼 밥 먹기 전까지 뭐할 건데?”
“할아버지랑 놀 거야!”
“같이 가!”
가장 먼저 대답을 마친 하린은 다다닥 뛰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나마 세이비어 님이 있어서 다행이네.”
춘삼은 피식, 이제부터 곤혹을 치를 세이비어에게 미안한 웃음을 내비췄다.
바로 그때.
거실에서 TV를 시청하던 세피아가 춘삼의 다리를 툭툭 치며 빈 깡통을 건넸다.
다시금 콜라를 내놓으라는 의미였지만.
빠직!
슬그머니 열이 뻗친 춘삼은 매정하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뭘 잘했다고 콜라 달래? 네가 육아의 고통을 알아? 일해! 아주 하는 짓이 양아치야.”
맹렬한 독설을 잠자코 듣고 있던 세피아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보다가…….
빠악! 빠악!
그대로 춘삼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크아아아아악! 애들 교육상 안 좋다며 시선이 없는 데서 때린다고 안 들킬 줄 알아?! 네가 독랄한 것쯤은 애들도 이미 다 안다고!”
춘삼은 그대로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퍼억, 퍼억!
그리고 입을 연 만큼 세피아에게 밟혔다.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던 지혜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죽이 척척 맞는 거예요?”
빠직!
“죽이 맞긴 뭐가 맞습니까?”
세피아와 춘삼은 동시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강렬하게 서로의 사이를 부정했다.
***
탑의 20층, 엘더리아.
‘똬리를 튼 뱀’이 퇴치당하고 탑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난 지 어언 7년이 지났다.
엘프들은 이 날을 계기로 니제르의 검술 및 정령술을 터득해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로드 자리를 쟁탈하는 결투의 의식을 열었다.
올해는 더욱 더 강해진 엘프들이 경합을 펼쳤고, 최후의 도전자가 된 칼은 현 엘프로드 대행인 건우를 상대로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허억, 허억.”
전신의 기력을 쥐어짠 나머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우와아아아아아!”
주변의 엘프들은 화려하게 결투를 치른 칼에게 격려의 박수를, 그리고 건우가 다시 엘프로드가 된 것에 대해 환영의 박수를 쏟아냈다.
“이제 그만 왕관을 내려두고 싶은데?”
건우는 쓴웃음을 내비췄다.
이 7년 동안 칼은 니제르 5식까지 터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마지막 2식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슬럼프를 겪는 중이었다.
“에휴, 미련한 녀석. 놀 때는 놀 줄도 알아야지.”
근처에서 두 사람의 정면대결을 지켜보던 렌이 슬며시 칼에게 향했다.
이 7년 사이에 큰 성장을 이룬 렌은 신장이 어느새 건우를 뛰어넘어 180센티까지 도달했으며, 온몸 곳곳은 근육으로 꽉 차 있었다.
“무참하게 깨졌으면서 뭘 그렇게 쪼개고 있어?”
렌은 쓰러진 칼이 만족스런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칼을 들어올렸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네.”
건우가 장난을 걸어오자 렌은 인상을 홱 찌푸렸다.
“그냥 못난 친구 들쳐 메는 거니까 오해하지 마. 그나저나 형, 언제까지 탑에 있을 거야? 이제 가족한테 가봐야지.”
“……넌 왜 그렇게 날 못 쫓아내서 안달이냐. 내가 여기 오려고 얼마나 하소연을 한 줄 알아?”
조금 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건우는 섭섭한 표정으로 렌을 쳐다봤다.
이에 렌은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형이 돌아가지 않으면 숲에 어떤 재앙이 벌어질지 알기나 해?”
“……알고 싶지 않아.”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휘이이이잉!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빈 공간에 강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치며 라페아가 지면에 착지했다.
적금발의 머리를 말아 올리고 단아한 정장을 갖춰 입은 그 모습은 이전보다 한층 더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듯 보였으나…….
찌릿!
눈매만은 여전히 매서웠다.
“…….”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엘프들이 알면서도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흐음. 놀고 갈 생각이었나 보네. 여~보.”
귓가를 자극하는 싸늘한 말투에 건우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짓다 곧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잡혀 사는 것은 맞지만, 늘 자신을 향한 직선적인 그녀의 애정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조금만 데이트하고 집으로 갈까? 라피.”
건우의 상냥한 말투에 라페아는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말했다.
“조금만이다.”
라페아는 쑥스러운 듯 스윽 손을 내밀었다.
건우는 그대로 그녀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아까부터 계속 웃고 있는데, 설마 비웃는 건 아니겠지?”
라페아의 투정어린 질문에 건우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니야. 그냥 행복해서 그래.”
***
탑 외부의 세계는 천외천이라 불린다.
아직 이곳에 도달한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다.
자칫하면 신들마저 의식의 경계가 모호해져 방황할 수 있기에 아무도 도전하지 못한 것이다.
스스스스.
오직 무로 가득한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 거대한 황금빛 기둥으로 이루어진 신전이었다.
이것은 시간의 신 차이트의 고유 권능인 무한의 창궁으로, 현재 차이트는 이곳에서 한 존재와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창궁 안에 갇힌 존재에게서 발산되는 불길한 기운은 단숨에 창궁 밖을 벗어나 탑에 강림하려 했지만
스스스스슥.
무한의 창궁의 권능에 의해 기운은 본신에게 되돌아갔다.
“어이쿠야.”
턱수염이 아주 길게 자란 차이트는 곧 수염을 싹둑 잘라내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너는 아직 이곳에 있어야 돼. 그게 너랑 나의 약속이잖아.”
쿠구구구구.
언뜻 봐도 닥치라는 듯 기운은 더욱 흉포해졌지만, 차이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심심해서 턱수염이 어디까지 자라날까 실험 중이었는데…….”
차이트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창궁 안에 갇힌 존재에게 말했다.
“심심하면, 다시 이야기를 들려줄까? 아, 자. 토. 스.”
스스스스스.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차이트의 말에 아자토스는 다소 기운을 누그러뜨렸다.
어차피 신에게 시간이란 그저 광대하기 짝이 없는 것.
조바심을 내는 것보다 어떻게든 이 지루함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탑에서 제일 깽판 치기로 유명한 여섯 날개의 기사야.”
차이트가 입을 연 직후,
치지지지직.
노이즈가 낀 시스템 화면 창에 여섯 날개의 기사, 칼리언트 슈타크의 모습이 드러났다.
차이트는 싱긋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소개를 시작했다.
“너를 쓰러뜨리기 위한 나의 두 번째 플랜이자, 사도지.”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