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79)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78화
작은 소동이 종결된 후.
건우는 시엘의 옆에 앉아 여우 정령과 놀아주고 있었다.
그 옆 자리에는 춘삼이 수면안대를 끼고 세상모르게 숙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시엘은 건우를 보며 생각했다.
‘신기한 사람.’
뀨우.
건우의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여우정령은 건우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보통 탑 밖의 외지인은 정령과 교감에 필요한 친화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것은 각성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령들은 그들의 힘을 두려워해 멀리 떨어지기 일쑤였다.
여우 정령도 지금까지 그렇게 반응해 왔다.
‘친화력이 얼마나 되는 거지?’
시엘이 어색하게나마 건우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시엘 타이히예요. 미하노프한테서 들었어요. 탑의 물건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있다면서요. S급 헌터인 것만 해도 대단한데, 지식도 연구자 이상이라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건우는 그녀의 손을 마주잡으며 말했다.
“최건우입니다. 협회 내에서 인기가 엄청나던데요.”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시엘은 민망했는지 뺨을 긁적이며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엘프 특유의 미모로 인해 협회에서 그녀의 인지도는 구자혁을 넘어선 1위였다.
“죄송해요. 미하노프가 워낙 고집불통이라서 저 때문에 괜히 마탑까지 가게 돼서 죄송해요.”
“아, 그건 괜찮아요. 저도 꽤 흥미가 있어서요.”
그것은 진심이었다.
건우는 오히려 마탑의 정보를 이용해 활동을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타겟은 정해져 있다.
극약 레이즈의 제조자와 디아도스.
어떻게 같은 장소에서 이 전생의 인연이 겹칠 수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해진 답은 하나였다.
이 둘 사이에는 분명 모종의 관계가 있다.
‘나한테 불리한 싸움이 아니야. 녀석들은 내 정체를 모르니까.’
건우는 심지를 다지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세이비어는 그런 건우에게 충고를 남겼다.
-서두를 필요 없다. 적들은 방심하고 있으니.
씨익.
그의 말에 건우는 긴장을 풀고 입꼬리를 들썩였다.
“알고 있어요.”
건우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시엘이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했나요?”
“아니요. 아무것도.”
건우는 아차 싶었는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시엘은 다시금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이상한 사람.’
***
캘리포니아 온타리오 국제공항.
기나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건우는 미국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는 공항을 빠져나와 시엘과 함께 도로 한편에서 잠시 대기했다.
“흐아함.”
수면 안대를 이마에 쓴 춘삼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건우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한 번도 안 깨냐?”
“원래 잘 때는 탱크가 지나가도 모릅니다.”
춘삼이 눈꺼풀을 비비며 답하는 걸 본 시엘이 춘삼의 얼굴을 알아봤다.
“앗,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정아한테 사기 친 사기꾼 분 아닌가요?”
뜨끔!
춘삼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과거 일은 다 청산했다고 하나, 이런 노골적인 지적에는 아직까지 약했다.
그래선지 반사적으로 전매 특기인 ‘어수룩한 외국인’ 흉내가 튀어나왔다.
“……하, 한쿡말 잘 몰라요.”
“방금 전까지 한국말 아주 잘 했거든.”
건우의 지적에 춘삼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아 누님이랑은 대화로 잘 풀었습니다.”
시엘은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여우 정령을 쓰다듬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왜, 왜요?”
“지난번에 정아한테 잘못 걸린 A급 각성자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는 전치 8주 부상을 입었거든요. 솔직히 그런 신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히끅!”
춘삼은 딸꾹질을 했다.
만약 춘삼이 권정아에게 쫓길 때 건우가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온몸에 붕대를 둘러매고 있었을 거다.
파르르.
그 사실을 인지한 춘삼은 건우에게 팔짱을 꼈다.
건우는 어이가 없다는 눈초리로 춘삼을 쳐다봤다.
“……뭐 하냐?”
“저는 형님 옆에 이렇게 찰~떡같이 붙어서 절대 안 떨어질 겁니다.”
“맞고 떨어질래? 얌전히 떨어질래?”
휙!
맞기는 싫었는지 춘삼은 팔짱을 풀었다.
“때때로는 떨어져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죠.”
시엘은 그런 그들을 보며 말했다.
“사이가 좋으시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건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 그들의 앞으로 기다란 리무진이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이는 30대 백인 남자였다.
붉은 머리칼에 주근깨가 군데군데 박혀 있었고, 콧잔등에 얹어 있는 뿔테안경은 너무 커서 얼굴의 반을 차지했다.
시엘은 그에게 다가가 그대로 껴안아 줬다.
“오랜만이야. 안토니오. 안 본 사이에 키가 훨씬 컸네.”
“박사님은 도저히 늙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하.”
“어라? 한국말?”
의외로 유창한 한국말이 튀어나오자 건우는 약간 놀랐다.
시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요놈 교육은 제가 책임지고 다 했거든요.”
“덕분에 박사님의 무서운 모습도 많이 봤죠.”
“어허, 여기서 그 말은 금기어일 텐데.”
그 모습이 마치 엄마와 아이가 서로 상봉하는 느낌이었다.
“박사님. 근데, 저분들은 누구입니까?”
안토니오는 뒤에 있는 춘삼과 건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라? 몰라?”
“네. 유명하신가 보네요?”
“정말?”
시엘은 의외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건우의 모습은 세계에서도 몇 번 보도되기도 했다.
특히 성동구에 벌어진 그레이트 웜 습격 사건 때 엄청난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유린하는 장면은 세간에 큰 화젯거리기도 했다.
‘아무리 타 국가 사람이더라도 S급 헌터를 못 알아볼 리는 없을 텐데?’
의문이 깊어져 갈쯤 건우가 조용히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그 의미를 대번에 알아차린 시엘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하하, 아니야. 이분들은 내 동료야.”
“그렇군요. 너도 반가워.”
안토니오는 시엘의 어깨를 목도리처럼 감싸고 있는 정령에게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르르릉. 카앙!
“아얏!”
여우정령이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안토니오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시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이 아이가 경계심이 많아서 그래.”
“괜찮아요. 자,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요?”
안토니오가 민망한 표정으로 운전석에 올라탔다.
“난 뒤에 앉을게. 또 물 수 있으니까. 사기꾼씨, 혹시 조수석에 타주실 수 있나요?”
빠직!
춘삼은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이 여자.
순진한 표정으로 사람을 골리는데, 제법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사기꾼이 아니라 로베르토입니다.”
“가서 얌전히 앉아라. 춘삼아.”
“……넵.”
건우의 말에 춘삼은 고분고분 조수석에 올라탔다.
“아 이름이 춘삼 씨였군요.”
시엘은 살포시 웃으며 뒷좌석에 건우와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건우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어째서 사람들이 건우 씨 인상을 못 알아보는 거죠?”
“영업 비밀입니다.”
건우는 싱긋 웃으며 귀걸이를 매만졌다.
‘아티팩트 효과인가 보구나.’
시엘은 그제야 건우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르르르.
그녀의 어깨 위에 있던 여우정령은 아직까지도 앞에 있는 안토니오와 춘삼을 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자, 자. 도착할 때까지 자고 있어.”
건우는 자연스럽게 여우정령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뀨우.
사나웠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여우정령은 마치 제 집인 것 마냥 포근히 잠을 취했다.
‘왠지 질투 나는데?’
시엘은 서운함이 섞인 미소로 여우를 바라보았다.
***
공항에서 마탑까지 도착하는 데 1시간이 걸렸다.
연구동으로 들어온 시엘은 주변을 둘러보다 인사를 건넸다.
“시엘 타이히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웅성웅성.
시엘의 인사에 연구동의 교수들은 서로 수군거렸다.
“여기서도 인기가 많네요.”
건우는 시엘의 인기에 다시 한번 놀란 참이었다.
안토니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박사님은 정령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거든요. 그리고 교류자 중에서도 가장 협력적이고요. 보기에는 마냥 어려 보이지만 제가 12살 때부터 저 외모 그대로였습니다.”
“대박! 영원한 청춘이네요. 형님.”
춘삼은 그 사실에 감탄했다.
‘엘프니까 그러지.’
건우는 새삼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막상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전생을 각성하기 이전이었다면 그 역시 놀랐을 것 같았다.
“그럼 탑에서 건너온 물건은 보러 가 볼까요?”
자리를 옮긴 시엘은 반투명한 유리막 건너편에 있는 은색의 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눈을 감은 순간,
우웅.
유리막 안쪽으로 여인의 형상을 한 물방울이 꿈틀거렸다.
“오오! 형님! 저게 그 소문의 운디네인가요?!”
“……알면서 뭐 하러 물어보냐?”
건우는 팔짱을 낀 채, 유리막 안을 살폈다.
운디네는 구체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왜일까?
운디네는 바싹 겁을 집어먹어 더 이상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건우가 눈에 힘을 주었다.
치직.
그러나 노이즈만 들릴 뿐 평소에 바로바로 나오던 상태창이 지금은 나오지 않았다.
‘수상해. 분명 어디선가 접한 느낌은 있는데.’
눈앞이 무언가 아른거리는 것은 과거 기억의 편린 때문일 것이라.
건우는 분명 저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왜일까?
기억을 되짚어 봐도 저런 형상의 물건은 본 적이 없다.
꿈틀.
그때 은색 구체가 말랑말랑 움직이다가 순식간에 운디네를 덮쳤다.
구체가 운디네를 집어삼켰고.
울컥! 주륵!
운디네가 강제로 송환되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 때문에 시엘은 각혈을 했다.
“바, 박사님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 고마워.”
시엘은 안토니오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자신의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위험한 물건이에요.”
“그럴 리 없소! 저 정도는 크나큰 위협이라고 볼 수 없소. 여기까지 이송했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소.”
연구책임자인 짐코어 도밍게스 교수는 그녀의 말에 곧장 반박했다.
시엘은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더 큰일일 거예요. 작은 생물은 잡아먹고 큰 생물에게는 물건처럼 가만히 있다는 것은 저것 자체에 그 정도 지능이 있다는 거니까요.”
“흥! 어처구니없는 논리구려. 그럼 실험용 생쥐를 투입해 보겠소.”
-안 된다고 해라.
보다 못한 세이비어가 건우에게 말했다.
“저게 뭔지 알아요?”
-너도 알고 있다. 단지 책으로만 접해서 직접 본적이 없을 뿐이야.
“설마?!”
건우는 눈을 부릅떴다.
띠링.
정체를 깨닫기가 무섭게 상태창이 구체의 정체를 일러 주었다.
“……뭐야? 별것 없잖아.”
건우는 한숨을 쉬며 시엘의 앞에 나섰다.
“자네는 뭔가?”
짐코어 교수가 불쾌감을 드러내자 시엘이 즉각 변호해 주었다.
“제 동료예요. 이 분야에서 능통한 분이시죠.”
소개와 동시에 건우는 시엘을 쳐다봤다. 어차피 영어는 못하니, 그녀에게 통역을 부탁하는 제스처였다.
시엘은 걱정 말라는 듯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사인을 보냈다.
그제야 건우는 천천히 입을 뗐다.
“저건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건우의 말을 시엘은 즉각 통역해 전달했다.
짐코어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마치 아는 것처럼 말해 주는군.”
“저건 탑에서 건너온 물건이 아닙니다. 몬스터 중 하나인, 메탈 슬라임입니다.”
웅성웅성.
“메, 메탈 슬라임.”
처음 들어 본 몬스터 이름에 연구진들이 일동 당황했다.
그리고 통역해 준 시엘 역시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건우는 다시 한번 구체를 살펴보았다.
-등급: ★
-설명: 몸을 경화시킬 수 있는 금속소재의 몬스터, 평소에는 겁이 많아 움츠려 있다가 사냥을 할 때 형체가 변모된다. 타격으로부터 금방 재생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능력치
공격력: 1 방어력: 1 마력: 1
상당히 별것 없는 능력치.
그것은 다소 보기 희귀한 몬스터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우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를 연구해서 득이 될 건 없으니, 파괴하셔야 합니다.”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