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01
108. 인기의 시작(1)
강재민이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 표정이었다.
유서준이 한마디 덧붙였다.
“사람들은 첨단을 원해. 특히 아이티를 원한다. 요즘 뉴욕에서는 거지도 닷컴을 붙여 장사해. 돈 모으는 깡통에 거지닷컴이라고 명패를 달면 벌이가 열 배 올라간다더라. 그게 바로 밀레니엄이야.”
뉴욕 나스닥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나스닥이 뜨면 국내에서는 코스닥이 뜰 수밖에 없다.
당연히 국내 기관투가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적이 뒤받쳐주지 않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었다.
향후 코스닥 시장에 불어올 광풍을 미리 알고 있는 유서준만이 망설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임소현이 들어왔다.
붉은색과 초록색이 줄무늬로 들어간 베이지색 상의와 청색 스커트 유니폼. 바로 예전 SJ 투자자문사 시절의 창구 유니폼이었다. 임소현은 그 시절 처음 뽑았던, 창구를 맡은 직원이었다. 지금은 이곳까지 따라와 SJ 투자금융지주 데스크 일을 맡아봤다. 때로는 유서준의 개인 비서 역할도 했다.
그녀는 처음 입사했을 때 갓 고교를 졸업한 풋풋한 새내기였지만 4년이나 지난 지금은 능숙한 여사원으로 변신했다.
임소현은 두 사람이 마실 커피를 태워 쟁반에 담아왔다.
그녀가 커피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자 유서준이 물었다.
“소현아 너도 커피 마셨니?”
“아뇨, 전 아직 못 마셨어요.”
“그럼 너도 커피 타서 이곳에 앉으렴.”
유서준은 초기 직원과는 허물없이 지냈다. 그는 임소현의 밝은 성격을 좋아했다.
임소현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커피잔을 하나 더 갖고 와서 유서준 앞에 앉았다.
유서준이 강재민에게 다시 말했다.
“기업 실적은 보지 말고 기업의 미래를 봐. 올해 밀레니엄 시대의 투자에서는 전통적인 PER나 PBR 같은 것은 절대 투자지표가 되지 못해. 첨단기업을 골라.”
강재민이 고민하며 중얼거렸다.
“첨단이라…….”
유서준이 커피를 마실 때 임소현이 강재민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에이, 이름 이상한 거 골라요. 영어 이름 쓰는 업체 많잖아요?”
강재민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임소현이 킥킥거리며 대답했다.
“닷컴, 소프트, 인터넷, 테크…… 그런 이름 있잖아요?”
유서준이 무릎을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맞다, 바로 그거야. 소현이가 잘 아네. 그런 이름 위주로 다시 뽑아. 우리는 4월부터 그런 기업에 집중투자할 거야.”
유서준은 웃고 있는 임소현을 보며 물었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주식을 하신다고 했던가?”
“아, 그랬었죠. 그러다 외환위기 때 크게 물려서 요즘은 안 하셔요. 돈이 없는 것도 있지만. 돈 있으면 또 하실걸요?”
임소현의 표정은 밝았다. 적어도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였다.
“네가 받은 월급은 잘 지키고 있나 보구나.”
“절대 아버지한테는 안 드리죠. 히히.”
다시 물어보니 회사 생활 동안 돈을 꽤 모았다고 했다. 증권 관련 업종에 취업하고 있으면 주식에 한 번쯤 손을 댈 만도 한데 신기하게도 월급을 그냥 은행에 차곡차곡 쌓았다고 했다. 주식으로 패망했던 아버지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나.
슬기롭게 대처한 그녀를 보며 유서준은 직원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직원 위주로 폐쇄형 펀드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SJ 투신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말이지. 앞으로 일 년 동안 엄청난 수익이 들어오는 버블이 발생할 건데 증권사 연관 기업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금지를 당하면 좀 억울하지 않겠니? 직원용 펀드를 만들어 공개적으로 운용할 생각이다.”
사실 그의 개인 자산도 폐쇄형 펀드로 전환 시킬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물론 실질적인 운용은 그 자신이 하게 되겠지만.
“그래요? 그럼 저도 참가할래요.”
임소현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유서준이 고객 펀드를 관리하면서 손해 없이 수익을 내서 되돌려주는 것을 몇 년간 지켜봤다. 사실 그녀 역시 펀드 가입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냥 은행에 돈을 묶어놓기엔 너무 아까웠다. 물론 그랬기에 외환위기 과정에서 돈을 지킬 수 있었지만.
유서준이 강재민에게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선택하는 기업이 앞으로 네 돈을 투자할 기업이 될 거야. 그러니 제대로 뽑아라.”
강재민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오래전 주가 1000 고점에서 과감하게 투자를 중지했던 유서준의 감각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의 일은 동아리 내에서도 신화처럼 전해졌다. 그런 유서준의 입에서 밀레니엄 버블이 언급되고 있었다.
강재민이 기억하기에 유서준은 이런 식의 언급을 했던 적이 없었다. 작년 하반기 무려 80%나 되는 주가 상승이 일어났음에도 버블이란 표현을 쓴 적은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앞으로 있을 일 년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행동하기에 따라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돈이 들어올 수 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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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1일]3월 1일은 월요일이지만 휴일인 관계로 주식시장은 휴장이었다. 방송은 변함없이 시작됐다. 다행히 오늘은 휴장이고 첫날이라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으로 진행된다는 차이가 있었다. 오늘을 제외하고 다음부터는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방송 주체는 대한경제방송. 주식 관련 케이블 티비 방송으로서는 상당한 인지도를 얻고 있었다. 방송 프로그램 명칭은 스타리그, 펀드매니저의 브러드워였다. 최근 유행 중인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서 네이밍 모티브를 얻었다나.
참가자는 SJ 증권의 서하나 부사장을 비롯해 해솔 증권의 박강수 부사장, A 증권사의 김연식 투자본부장, B 증권사의 이동현 투자 상무였다.
나이는 박강수가 가장 어렸고 나머지 두 사람은 삼십 대 후반으로 비교적 젊었다.
생방송 첫날 서하나는 새벽부터 미용실에 들러 외모를 단장한 다음 여의도에 있는 대한경제방송 스튜디오로 향했다. 반짝이는 작은 귀걸이를 하고 산뜻하면서도 이지적으로 보이는 연푸른 정장을 입었다. 스커트는 살짝 짧은 편.
그녀의 옆에는 유서준이 동행했다. 비록 옆에서 함께 촬영을 수행할 수는 없지만, 방청석에라도 앉아 그녀를 응원하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휴일인 오늘은 당연히 동행 가능했고, 앞으로도 그는 가급적 함께할 생각이었다.
서하나는 녹화 시작 두 시간 전에 도착하여 다른 출연자와 함께 전반적인 진행 상황에 대해 지시를 받았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본인 소개와 앞으로의 시장전망. 그리고 매매할 종목을 미리 언급해주는 것 등이었다. 첫날이라 대략적인 내용은 미리 어느 정도 입을 맞추었다.
서하나는 이를 대비해 며칠 동안 전략을 짰다.
유서준은 앞으로의 일주일간의 시황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해주었다. 서하나는 온종일 발표 연습을 했다. 물론 방송은 순발력이 중요해서 그런 식의 연습이 도움 되지 않겠지만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었다.
방송 담당 MC는 남녀 두 사람으로 모두 대한경제방송에서 가장 잘 나가는 MC라 했다.
녹화가 시작되자 서하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비단 그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참가자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몇 회 지나면 능숙해지겠지만 모두 처음인 상태에서 실수가 연발이었다.
이번 주 시황 예상 및 매매전략에 대한 발표가 시작됐다. 한 사람씩 쭉 발표하는 것을 녹화한 다음 실제 방송에서는 편집하여 마치 토론하는 것처럼 짜맞추겠다고 했다.
첫 발표는 A 증권사 김연식 투자본부장이었다. 그는 이미 이런 경험이 풍부한 때문인지 말주변이 좋았다. 그는 가능한 듣기 좋은 말로 도배했고 시황 역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장세관을 내놓았다. 설사 틀리더라도 교묘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사실 주가 움직임은 누구도 알 수 없고 일류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라 해도 다 맞추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그 확률은 반반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일 오른다고 못을 박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당연히 두리뭉실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 움직임을 보면 초반에 하락하다가 목요일이 되어서야 반등을 시작했고 금요일에는 대폭 상승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2월 한 달을 보면 여전히 하락 중입니다. 그럼 다음 주는 어떻게 될 것이냐? 저는 상승으로 봅니다. 다만 2월의 하락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하락이 계속되는 경우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언뜻 들으면 상승인지 하락인지 알 수 없는 말이 계속되었다. 거기에다 대부분 내용이 이미 지나간 지난주의 움직임 설명이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명확하게 언급할수록 나중에 변명할 길이 없어진다는 것을.
MC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라 질문도 둥글둥글하게 넘어갔다.
그다음은 서하나였다.
남자 MC가 그녀를 예능 프로그램처럼 소개했다.
“여러분, 화면이 밝아진 것 같은 느낌 들지 않으십니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아름다운 펀드매니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드라마 촬영장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는데요, 시청자 여러분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서하나 SJ 증권 부사장을 소개합니다.”
서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SJ 증권 서하나입니다.”
몇 안 되는 사람이 모인 방청석이었지만 방청객이 웅성거렸다. 유서준은 자신이 촬영하는 것처럼 긴장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환하게 조명을 받고 있는 서하나를 보며 뿌듯한 기분도 느꼈다.
“평소 탤런트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지 않습니까?”
남자 MC가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서하나는 화사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한때 그쪽 방향 진출도 고려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주식거래가 더 좋더군요. 그래서 이쪽으로 진출했습니다.”
물론 작가가 적당히 써준 답변이었다.
“연예계 진출하셨으면 미스코리아에 도전하셨을 것 같네요.”
여자 MC가 추임새를 넣었다. 남자 MC가 밝은 음성으로 계속 진행했다.
“자, 그럼 앞으로의 시황 전망부터 부탁드립니다.” 서하나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 먼저 최근의 국제 시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은 지난 1월 8일의 역대 최고치에 바짝 다가서고 있고 일본과 홍콩은 동남아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하락한 지수의 상당폭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도 상승입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3월에는 상당한 상승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핵심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키가 되는 것은 최근의 인플레이션 논쟁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다고 하면 긴축 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하겠지요. 주가 하락요인입니다. 반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작다고 판단하면 FRB에서는 금리 인상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주가 상승 요인이겠죠.”
“어느 쪽으로 보십니까?”
“우리는 현 FRB 의장인 그린스펀의 성향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FRB가 금리 인상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 봅니다. 따라서 미국은 조만간 전 고점을 깨고 상승할 겁니다. 우리도 상승 압력을 받을 겁니다. 단 미국 상승이 확인되는 시점, 즉 이번 주 금요일부터 다음 주 초 사이에 대폭적인 상승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다른 참가자들이 미묘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저렇게 구체적인 시점을 명시하는 것은 방송에서 금물이었다. 틀렸을 경우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하니까. 특히 박강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서하나는 나름대로 검토에서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언급한 것이었다. 사전에 그녀는 최근의 여러 요인을 취합하여 유서준과 토론했다. 유서준은 비교적 명확하게 다음 주 주가 움직임을 예상했다. 그녀는 그 예상과 자신이 검토한 요소를 연결하여 두 사람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뽑아냈다.
“그럼 금요일 매수 들어가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