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03
110. 파생팀장(1)
갑자기 MC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방청객 가운데 일부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서하나 역시 당황해서 안면을 딱딱하게 굳혔다.
황급히 남자 MC가 답변했다.
“아, 그건 나중에 제가 개인적으로 물어봐 드리겠습니다. 그것 말고 주식을 물어보세요.”
– 약속한 겁니다?
전화한 인물이 끈질겼다.
MC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아, 네네. 얼른 주식을 물어보세요.”
– 제가 갖고 있는 주식이…… 거평인데요. 이게 손실이 너무 커서요. 다시 올라갈까요?
출연진의 안색이 다시 일그러졌다. 일부는 기침까지 해댔다.
거평은 97년 초 외환위기 직전에 부도가 난 회사였다. 현재 관리종목에서 거래되고 있어 사실상 정상화는 힘들다고 보아야 했다. 게다가 관리종목 매매는 그 특성상 투기성이 매우 강했다.
담당 MC가 출연진에게 공을 넘겼다.
“자, 어느 분께서 답해주시겠습니까?”
출연진 네 사람이 서로 눈치만 봤다. 이런 관리종목은 분석이고 뭐고 할 것이 없었다.
서로 미루는 분위기에서 B 증권의 이동현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시청자분께서 손해가 많으시다는 것으로 보아 부도나기 전에 사셨나 보네요?”
– 흑흑 그런 것 같아요.
“이런 경우는 제가 해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도 주식은 일단 적당한 가격에 처분하시고 새롭게 시작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흑흑, 나 망했어.
“더 물어보실 말씀 있으신가요?”
– 몸무게나 알려주세요.
“네? 제 몸무게요?”
– 아뇨. 당신 말고요.
뚝.
전화가 끊어졌다. 누가 끊었는지 모르겠지만.
출연자 네 사람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특히 서하나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음 짓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MC가 곧바로 매끄럽게 진행을 이었다.
“다른 시청자분 전화 받겠습니다.”
다시 시청자 목소리가 들렸다.
– 제가 삼성전자를 갖고 있거든요. 그거 물어봐도 되나요?
“물론 괜찮습니다. 자, 이번에는 어느 분이 답해주시려나요? 아, 서하나 부사장님께서 답변해주실까요?”
서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네, 제가 답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점이 궁금하신가요?”
– 앞으로 얼마나 오를까 해서요.
서하나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카메라를 향해 대답했다.
“삼성전자는 지수관련주입니다. 현재 반도체가 잘 나가고 있고요. 전망은 밝다고 봐야죠. 이번 주 우리나라 시장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니까 삼성전자라면 계속 들고 가셔도 괜찮겠습니다. 오늘 월요일 오전장 현재 86000원으로 약 3%의 상승을 보여주고 있네요.”
– 그게 제가 종목을 잘 잡아서 그렇습니다.
서하나가 다소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얼마에 매수하셨나요?”
– 지난 외환위기 때 4만 원 정도에서요.
“와우, 많이 이득 보셨어요. 굳이 여기에 전화해서 물어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
– 하하, 자랑하려고요. 제가 이 맛에 삽니다.
MC가 한숨을 내쉬더니 전화를 끊었다.
방청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MC가 황급히 수습했다.
“오늘 생방송 첫날이라 좀 어수선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전화 받아보겠습니다.”
두 시간 생방송이 마침내 끝났다.
관람석에 앉아있던 유서준은 촬영 세트로 내려갔다.
밝은 스트로보 불빛에다 긴장감 때문에 출연진 모두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서하나는 손수건을 꺼내 가볍게 이마를 문질렀다.
담당 MC가 모두에게 말했다.
“생방송이라 긴장 많이 하셨죠? 예상보다 훨씬 잘 하셨습니다. 다음부터는 더 안정된 방송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MC가 꾸벅 인사를 했다.
유서준은 서하나의 옆으로 가서 속삭였다.
“고생 많이 했어.”
“생각보다 어렵네. 더워서 혼났어.”
유서준은 그녀를 토닥여 주었다.
두 사람 곁으로 박강수가 다가왔다.
“어이, 서준. 요즘 잘 되고 있나? 펀드 수탁고가 많이 늘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그냥 그저 그렇지. 오늘 보니 강수 수익률 좋더라. 재주 있네.”
순간 박강수는 대학 시절 투자대회에서 항상 유서준에게 밟혔던 결과를 떠올렸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이 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운용 실적 대항전도 서하나와 자신의 대결이 아니라 유서준과 자신의 대결이란 사실로 인식되었다. 과거에 내기에서 박살 나서 동아리에 엄청 기부했던 치욕도 떠올랐다.
박강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이번에는 몽땅 다 갚아주마. 무슨 짓을 해서라도 절대 지지 않는다.’
**
그날 저녁 주식 포털 사이트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생방송 프로그램 자체는 신선하다는 호평 일색이었지만 문제는 서하나 개인이었다.
프로그램 관련 논평 댓글에 유서준과 서하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댓글이 등장했다.
*
– 역시 얼굴값으로 나온 사람이었어. 아마 부사장 승진도 얼굴값으로 했을걸?
– 그래도 꼴찌가 뭐냐? 꼴찌가.
– 아직 초반이잖아? 난 우리 여신 응원한다. 파이팅!
– 수익률 순위가 딱 외모 반대로 아니었나?
– 몸무게 공개됐냐? 난 그게 제일 궁금하다.
*
유서준은 반응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원래 연예인은 별별 악플에 시달린다고 했고 그걸 감수할 멘탈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당해보니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으아…….”
서하나가 씩씩거리며 분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괜히 옆에 있는 유서준을 두들겼다.
유서준은 그녀를 달랬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서하나는 능력으로 인정받은 경우가 많았다. 초창기 학교 동아리 투자대회에서도 항상 일등을 했었다. 학교 공부도 꽤 잘했었고 직장에서도 나름대로 직무수행을 잘했다. 오히려 그녀의 화려한 외모가 짐이 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랬던 그녀가 외모 때문에 출세했다는 식의 평을 들으니 분통이 터지는 것은 당연했다.
“초반 등수는 아무런 의미 없잖아? 그리고 우리는 높은 수익률보다 시청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매매를 제시해주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서하나가 유서준을 째려보며 투덜거렸다.
“이건 서준이 너 때문이야.” “으응? 내가 왜?”
“네가 하라고 떠밀었잖아?”
“난 그런 적 없는데?”
“적극적으로 안 말렸으면 그게 떠민 거지.”
유서준은 내심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화풀이를 받아주었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앞으로 더 힘든 비난이 댓글로 달릴 것이다. 어차피 겪어야 할 관문이라 생각하며 견뎌야 할 것이다. 이왕 이쪽 방면에 뛰어든 것이니 그녀가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바랐다.
잠시 안겨서 마음의 안정을 찾던 그녀가 떨어지며 말했다.
“아참, 오늘 담당 PD가 말했는데 포털 사이트에 내 팬카페가 생겼다고 하더라.”
“응? 그래? 정말 유명인 되려나 보네?”
두 사람은 곧바로 포털에서 팬카페를 찾았다.
팬카페명은 ‘서하나 – 주식 여신 서하나 팬카페’.
아직 회원 수는 얼마 없었고 게시물도 몇 안 된 신생 카페였다. 카페 주인은 그들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팬카페 회원 한 사람이 오늘 생방송에 나왔던 그녀의 모습 일부를 화면 캡쳐해서 올려놓고 있었다. 역시나 예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게시글은 그녀에 대한 칭찬과 찬양일색이었다. 방송 프로그램 댓글에서 보았던 악플은 없었다.
팬카페를 여기저기 둘러보는 서하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까 전 거기보다가 여기 오니 마음이 절로 치유가 되네.”
그 점은 유서준도 마찬가지였다.
유서준이 마우스를 클릭하며 말했다.
“나도 가입해야겠다.”
그의 재빠른 행동을 보며 서하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유서준은 가입 후 팬카페에 선물을 하나 올려 줄 생각이었다.
“이거 자료실에 올려놓을 생각인데 어때?”
유서준이 클릭하자 화면 가득 서하나의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다. 예전에 서하나가 스튜디오에서 화보 사진을 찍었을 때 그쪽에서 만들어준 컴퓨터 배경 화면용 사진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이라 화질이 상당히 높은 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서하나의 얼굴이었으니 보는 사람의 입이 벌어질 만한 사진이었다.
“아이, 부끄럽게…….”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도 극구 말리지 않는 것을 보니 싫지는 않은 듯했다.
유서준은 잽싸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서하나가 그의 행동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앞으로는 더 분발해야 할 것 같아. 아무리 최종 순위가 중요하다지만 지금처럼 너무 뒤처져서 욕먹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야.”
“누나의 능력을 믿어. 평소처럼 하면 될 거야.”
두 사람은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
며칠 후, 유서준은 중요한 손님을 맞았다.
SJ 투자금융지주 대표 사무실에서 퇴근 직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여인이 그를 찾아왔다. 바로 신선영이었다.
신선영은 LTCM을 그만두고 국내로 들어와 휴식을 가지던 중이었다.
서하나가 그녀에게 몇 차례 이메일로 연락하여 그녀가 찾아온 것이다.
유서준은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선영 누나, 오랜만이어요.”
“그러게, 예전에 너랑 하나 언니가 뉴욕으로 놀러 왔을 때 보고 처음이지?”
“그렇죠. 벌써 5년가량 되었나요?”
많은 시간이 흘렀다. 대학생 같아 보였던 그녀는 이제 청순함은 사라지고 다소 나이가 든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녀의 똑똑한 공대 여학생 인상은 여전했다. 한마디로 별로 외모를 꾸미지 않는다는 이야기. 다듬으면 나름 괜찮은 인물인데.
“여긴 어쩐 일이어요?”
“하나 언니가 오늘 보자고 해서. 너도 데리고 오라더라.”
“아하.”
서하나가 그녀를 스카우트할 기회를 잡을 모양이었다.
유서준은 책상 위의 서류를 챙기면서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신선영이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야, 언제 이런 회사를 다 차렸데? 대단하다.”
“세계적인 회사 LTCM을 다녔던 누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이미 망한 회사인데 뭘…….”
신선영이 피식하며 웃었다.
신선영이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저무는 햇빛이 그녀의 얼굴에 비쳤다.
“생각해보니 대단하네. 어떻게 하나 언니를 꼬셔 결혼할 생각을 다 했지?”
“놀랍죠?”
“당연. 넌 잘 모르겠지만 하나 언니 대학 때 정말 인기 많았거든. 언니만 쳐다보던 남자가 한 트럭은 넘었어.”
유서준은 웃음을 터트렸다.
신선영이 다시 그의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때 뉴욕에 왔을 때 둘이 사귄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요?”
“물론 난 잘 몰랐는데 현아는 그때 눈치챘던데.”
유서준은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현아 앞에서 둘이 가까운 티를 냈었던가. 사실 그 무렵 키스도 했고 그가 프로포즈를 한 후라 가깝기는 했지만 서하나와의 결혼은 아직 오리무중일 때였다.
“그땐 아직 결혼 약속하기 전이었어요.”
유서준이 변명했다.
신선영이 그의 눈을 직시하며 빙그레 웃었다.
“현아는 그렇게 안 봤어. 그날 밤 술자리에서 대화하면서 둘의 분위기를 계속 살폈다고 하던데?”
문득 유서준은 당시 서하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서하나는 그와 김현아 사이의 분위기를 살폈다고. 두 사람이 확실히 헤어진 게 맞는지 확인하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두 여인이 서로 반응을 살피고 있었던 셈이었다.
유서준이 놀라는 표정을 짓자 신선영이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이튿날 아침에 함께 관광 다니자고 했더니 곧바로 거절하고 둘이서만 떠나는 것을 보고 감을 잡았다고 하더라.”
사실 유서준은 그런 의도로 함께 다니는 관광을 거절했던 것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그 행동이 김현아에게는 확실한 거절 메시지를 전해버린 모양이었다.
신선영이 그의 팔을 툭 쳤다.
“그리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 때문에 현아가 충격을 받거나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현아 짐작이 맞지? 그때 둘이서 밀월여행 다녔던 것 아냐?”
유서준은 정곡을 찔린 듯 화들짝 놀랐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하나에게서 결혼을 수락받은 때가 바로 그 뉴욕 여행에서였으니까.
신선영이 문을 나서며 말했다.
“맞나 보네. 그때가 두 사람 첫날밤이었나 보네.”
유서준은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도 곧바로 그녀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