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07
114. 코스닥 입성(3)
김현아를 본 순간 유서준은 순간적으로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얻었다. 김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한참 눈을 고정시켰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유서준이 결혼하기 전 미국에 들렀을 때였으니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때 김현아는 박사과정 재학생이었고 유서준은 서하나와 막 SJ 투자자문을 차리고 정신없었을 때였으니까.
미국에서는 마냥 반가운 느낌뿐이었는데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만나니 과거의 온갖 상념이 꾸물꾸물 피어올랐다.
김현아가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잘 지냈어?”
유서준은 옆자리를 권했다.
“언제 들어왔어? 연락 좀 하고 다녀라.” 그가 투덜거렸다.
김현아는 올해 초에 국내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녀는 서울 근교에 소재한 사립대학인 대화대학교 교수초빙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다행히 채용됐다. 정식 출근이 5월 초부터였으니 이제 보름가량 된 셈이었다.
“우와 그럼 이제 교수님이네?”
유서준이 감탄사를 발했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기간을 인정받았어. 현재 직함은 경제학부 조교수. 물론 큰 사고를 치지 않으면 잘릴 일은 없으니까 정식 교수라고 할 수 있어.”
“뭐 가르치는데?”
“이번 학기는 중간에 임용되어서 아직 없고 다음 학기에는 현대투자론을 가르칠 거야.”
“내가 청강할까?”
두 사람이 동시에 키득거렸다.
유서준은 예전에 그녀와 나누었던 미래의 꿈을 떠올렸다. 김현아는 투자기술에 관해 선진 학문을 수용하고 그것을 국내에서 발전시키기를 원했었다. 경제 관련 연구소에서 투자 연구를 하거나 아니면 대학교수가 꿈이었다고 했던가.
한때 그녀가 말했던 금융 강국의 꿈이 떠올랐다.
어쨌든 그녀가 자신의 꿈을 이루었음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어릴 적 꿈을 이루었네?”
“서준이 너도 꿈을 이루었잖아?”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들 두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유서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김현아가 질문했다.
“증권사는 잘 돼? 요즘 퇴출이다 합병이다 말이 많던데.”
“내가 그 덕에 증권사를 인수했잖아. 현재까진 잘 나가고 있어.”
“그럼 앞으로 내가 신세를 질 일이 많겠다.”
“응?”
“제자들 취업시키려면. 하하.”
유쾌한 대화가 이어졌다.
주변에서 모두 김현아를 축하했다. 한바탕 인사치레가 끝난 후 김현아와 신선영의 미국 시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신선영이 국내에 먼저 들어오고 난 다음 김현아 홀로 남았을 때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다. 신선영이 그녀의 말 중간에 몇 마디씩 거들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김현아가 갑작스럽게 생각난 듯 유서준에게 물었다.
“구인혁이랑 연락해?” “응.”
“얼마 전 미국에서 봤다.” 그러고 보니 바쁜 일정 때문에 구인혁을 잊고 있었다. 구인혁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표준연구원에 있다가 미국 MIT의 물리학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다운 행보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는 구인혁과 한 달에 한두 차례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었다.
구인혁이 미국으로 갔다는 것은 분명 시공간 연구에서 뭔가 막혔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 상태로 시간이 진행되면 구인혁은 다시 타임머신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유서준은 구인혁이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것이 이로운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구인혁의 의견으로 판단해보면 설사 지금 구인혁이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않더라도 이미 과거로 와버린 다이어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보다 미래인 타임머신 개발이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오히려 타임머신 개발로 다시 과거로 뭔가를 보낼 수 있는 여지가 발생하여 변화가 생길 위험이 상존한다. 때로는 가끔 타임머신 연구를 그만두라고 요청하고 싶기도 했다.
잠시 구인혁과의 일을 회상하던 유서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서하나를 찾았다.
그녀 역시 저쪽 구석의 한 테이블에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비슷한 또래의 동문 친구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의 눈에 그녀의 바로 옆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한 인물이 들어왔다. 유달리 잘생긴 얼굴에 서구적인 외모. 반듯하고 매끈한 행동마저 돋보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오도욱이었다.
**
“이번에 연기금 운용 신청 넣었어?”
오도욱이 서하나에게 물었다.
서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생각 중이어요.”
“그게 금액이 크잖아? SJ 투신에 많은 도움이 될 텐데? 대외적인 홍보로도 매우 좋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가 연기금은 주기적으로 운용할 기관을 선정했다.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안정적인 증권사 몇 군데를 골라 연기금 운용을 맡겼다. 기본적인 운용지침이 항상 정부에서 내려오기에 운용 자체는 어려운 점이 없었다. 다만 운용에 간섭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주식 폭락기에 주가를 받치라는 요구가 떨어진다거나.
국가 연기금을 운용한다고 알려지면 믿을 수 있는 증권사란 타이틀이 달리기에 대외적인 신인도가 올라가는 효과가 컸다. 연기금 운용 수수료 이익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런 대외적인 신인도 때문에 많이 신청했다.
“난 적극 추천한다. 신청서 내게 되면 알려줘. 내가 할 수 있는 한 선정되도록 조치를 취해 줄 테니까.”
“알았어요.”
서하나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그녀는 오도욱의 친절이 부담스러웠다. 아니, 이상했다. 아직도 과거에 쫓아다니던 이성에게 관심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냥 동문이나 아는 처지여서 도와주려는 것일까.
그녀는 지금까지 오도욱이 권했던 모든 일이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는 것이란 사실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공짜 점심은 없다지만.
그가 유도한 생방송 출연도 뭔가 칼날이 숨어 있는 듯했고 지금 권하는 연기금 운용도 마찬가지였다. 연기금을 운용하기 시작하면 금감원의 간섭을 더욱 심하게 받아야 한다. 뭔가 그가 의도하는 방향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금감원을 피하며 영업할 수는 없겠지만 당장 지금은 아니었다.
서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만 남편에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가볍게 머리를 숙인 다음 몸을 돌렸다.
오도욱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5월에는 지금까지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5월 첫째 주에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7%의 상승을 이루었지만 둘째 주가 되자 분위기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오히려 -9%의 하락으로 돌변했다. 전주의 상승분을 모두 되돌려버렸다. 800선을 넘어섰던 지수가 700대로 내려앉았다.
셋째 주도 약세를 이어 갔다. 대략 -4%가량의 하락이었다. 700을 깨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5월 넷째 주는 그간의 하락에 대한 반등이 일었다. 셋째 주의 하락을 회복했다. 5월 전체로 보면 등락을 반복한 보합이었지만 상승 기조는 깨어졌다.
반면 코스닥 시장은 그 움직임이 달랐다.
골드뱅크의 무한 질주가 지속됐다. 골드뱅크는 1만 원을 넘어서도 거침없는 상한가 행진을 펼쳤고 투자자를 코스닥으로 끌어들였다. 골드뱅크와 유사한 코스닥 벤처 주가가 날뛰기 시작했다.
거래소 지수가 약간의 하락으로 5월을 마무리한 것과 달리 코스닥지수는 무려 +22%의 폭등세를 보였다. 비록 둘째 주와 셋째 주는 하락이었지만 가뿐하게 넷째 주에 만회했다.
**
[1999년 5월 31일]5월 31일 생방송 시간이 되었을 때 출연진의 스타리그 랭킹에서 다소 변화가 일어났다.
*
A 증권 김연식 / 보유주 : 경덕전자, 디지틀조선, 유니슨산업 / 누적손익 : +86.3%
SJ 증권 서하나 / 보유주 : SK 텔레콤, 제이씨현 / 누적손익 : +128.1%
해솔 증권 박강수 / 보유주 : 모아텍, 텔슨정보통신, 한국통신 / 누적손익 : +135.2%
B 증권 이동현 / 보유주 : 포항제철, SK 텔레콤 / 누적손익 : +77.1%
*
서하나는 5월 한 달간 교체 매매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절반 거래소, 절반 코스닥을 고수했다. 거래소의 SK 텔레콤은 연중 최고가를 연일 경신했다. 코스닥의 제이씨현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SK 텔레콤은 한 달간 33%가 올랐다. 5월 한 달간 주가는 100만 원을 확실히 돌파했다. 월말 마지막 주가는 132만 원이었다. 제이씨현시스템은 폭등세를 보였다. 한 달간 무려 140%나 올랐다. 폭발적인 상승이었다. 물론 이때의 코스닥 종목 중에 이만큼 오른 종목은 꽤 많았다. 적당히 코스닥 벤처 중에 하나를 고르면 떨어지는 종목을 찍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덕분에 서하나의 수익률은 놀라웠다. 한 번도 교체 매매를 하지 않고 이뤄낸 업적이었다. 교체 매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청자 입장에서 매우 편해진다. 따라하기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서하나는 이제 외모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매매에서도 인기 폭발이었다.
한 달 새 변화한 가장 큰 특징이라면 B 증권 이동현만 제외하고 모두가 코스닥을 건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월 첫 주 서하나의 제이씨현시스템이 폭발적인 상승을 보이자 모두가 놀라 코스닥으로 옮겨왔다. 그중에서 박강수의 재빠른 변환은 실로 눈부셨다.
그는 본능적으로 코스닥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하나가 치고 나오자 곧바로 코스닥으로 옮겨갔다. 덕분에 1위를 고수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수익률에 쫓긴 그는 신혼여행 기간에도 주식매매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방송에 보고된 실제 매매일지를 보면 그가 해외 신혼여행 기간에도 밤에 잠도 없이 매매에 열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신혼여행 때는 원래 밤에 잠을 안 자는 거라는 우스개도 댓글에 올라왔다.
가장 특이한 매매를 보이는 사람은 B 증권 이동현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거래소 대형주 위주였고 지금도 이를 고수했다. 현재는 시류에 맞지 않아 꼴찌로 추락했지만, 원래대로라면 가장 바람직한 매매법이었다.
5월의 마지막 날, 유서준과 서하나는 집에서 자축행사를 했다.
간단한 술안주에 와인을 펼쳐놓고 붉은빛이 도는 잔을 마주쳤다.
서하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무려 두 달간이나 랭킹에서 꼴찌를 고수한 터라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었다.
유서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했다.
“원래 이렇게 될 리그였어. 이제 일등을 노려봐야지.”
“아니, 이 정도면 만족해. 이보다 더 수익을 내려면 잦은 교체 매매를 해야 해서 시청자에게 아무런 메시지를 줄 수 없어. 게다가 절반은 거래소에 남는다는 대원칙도 훼손시켜야 하잖아.”
아쉽지만 유서준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2등만 해도 잘한 것이다. 애초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방송이 예정된 7개월 중에 아직 절반이 남았고 그중 마지막인 9월이 하락예정이라 사실상 마지막이 중요함을 알고 있는 그였다.
코스닥 종목에서 상한가가 속출한다고 하여 절대 매매가 쉬워진 것은 아니다. 상한가 종목은 거래가 어렵다. 사기도 어렵다. 상한가가 깨져서 하한가로 돌변하고 연일 하한가를 치게 되면 빠져나올 수도 없다. 그래서 코스닥에서 수익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 매매는 그래서 많은 차이가 있다.
와인을 마시면서 유서준은 방송 프로그램 시청 소감 및 및 댓글을 확인했다.
*
– 주식 여신 드디어 꼴찌 벗어나셨네.
– 오늘 보니 얼굴이 완전히 폈던데 역시 수익이 좋아서였어.
– 따라서 매매하고 있는 사람 손!!
– 서하나 언니!! 요즘 대박이야!
– 몸무게 빨랑 공개해라. 안 하면 방송국 쳐들어간다.
*
유서준은 댓글을 보며 킥킥거렸다.
서하나가 피식 웃으며 투덜댔다.
“그놈의 몸무게 타령, 첫날부터 계속이네. 아우, 지겨워.”
“저들은 저렇게 댓글 올리는 재미로 사니까. 근데 나도 궁금하다.”
“뭐가?”
“몸무게.”
“죽을래?”
서하나가 그의 가슴을 토닥였다.
유서준은 벌떡 일어나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으악.”
서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유서준이 그녀를 안은 채 거실을 빙 돌며 중얼거렸다.
“몸무게가 조금 늘어난 것 같긴 하다. 체중계에 올려봐야 할 것 같아.”
“으악, 안돼. 너 죽는다.”
서하나가 발버둥을 쳤다.
유서준은 끝내 그녀를 체중계 위에 올려놓았다. 그날 밤 유서준은 안방에서 쫓겨나 독수공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