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08
115. 새롬기술(1)
거래소 주식시장은 5월의 횡보 후 6월부터 다시 상승했다. 한여름의 햇볕만큼이나 뜨겁게 위로 피어올랐다. 코스닥 시장은 더욱 타올랐다.
유서준은 개인 자산과 회사 자산관리 계좌 모두에 코스닥 종목을 편입했다. SJ 투신의 고객 편드는 일정 부분만 코스닥을 편입할 수밖에 없었다. 펀드 운용 기본 방침이 있고 그 방침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거래소 종목을 위주로 편성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스닥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사실상 선물 옵션에 손을 댈 이유가 사라졌다.
6월 중순, SJ 증권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공개됐다. HTS는 PC를 이용해서 주식을 매매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YK 소프트가 주축이 되어 만든 이 HTS는 고객 편의성에서 탁월한 우위를 발휘했다. 초보자도 쉽게 매매 주문을 낼 수 있고 해당 종목의 챠트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 챠트에는 고객이 설정한 기술적 분석에 따라 매수와 매도 신호가 표현되었다.
지금 당장에는 고객이 정한 매매 신호만 가능했지만 향후에는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신호를 만들거나 증권사에서 추천한 전략에 따른 신호가 발생하도록 발전시킬 예정이었다.
고객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주식시장 활황으로 신규 투자자가 유입되는 가운데 이 HTS의 소문을 듣고 SJ 증권에 계좌를 개설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신선영은 프로그램 차익매매를 시작했다. 현물인 주식과 선물의 베이시스를 이용해 차익거래를 수행했다. 아직은 초기라 시험 가동하는 수준. 이론적으로는 무위험 거래였지만 현실에서는 각종 매매에러가 포함되어 의외로 만만치 않은 거래였다. 다행히 선물 거래량은 충분하여 오래지 않아 안정화될 것으로 보였다.
7월 말이 되었을 때 종합주가지수는 969.72를 기록했다. 방송을 시작하던 3월 초와 비교하면 무려 +86%나 상승했다. 7월에는 1000고지를 한차례 돌파했다가 곧바로 다시 미끄러져 내려오기조차 했다. 코스닥지수 역시 상승세가 돋보였다. 6월과 7월 두 달 동안 약 +32%의 상승을 보였다. 7월 말의 코스닥지수는 192.97(코스닥지수는 훗날 2004년부터 이 지수에 10배를 곱해서 표기된다).
서하나는 6월 중순에 제이씨현시스템을 교체 매매했다.
7월 말이 되었을 때 그녀는 간발의 차로 2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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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증권 김연식 / 보유주 : 기륭전자, 대양이엔씨, 서울이동통신 / 누적손익 : +126.5%
SJ 증권 서하나 / 보유주 : 삼성화재, 제이씨현 / 누적손익 : +172.2%
해솔 증권 박강수 / 보유주 : 대신정보통신, 데코, 바른손 / 누적손익 : +181.4%
B 증권 이동현 / 보유주 : 대신증권, 삼성전자 / 누적손익 :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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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13일]코스닥에 새롬기술이 상장되고 거래가 시작됐다. 액면가 5000원에 첫날 가격은 25750원. 거래량은 불과 280주.
코스닥에 새로운 종목이 상장되는 일은 흔했다. 최근의 주식 활황세와 벤처기업 붐에 힘입어 별별 이상한 이름을 가진 기업이 수도 없이 상장되었으니까.
오늘 첫 거래를 시작한 새롬기술을 보며 유서준은 고민하고 있었다.
새롬기술이 바로 밀레니엄 거품을 상징하는 주식이었으니까.
유서준은 자신의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에 꼽힌 많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 가운데는 그가 끝끝내 우겨서 자신의 서재에 가져다 놓은 서하나의 화보집 두 권도 한쪽 책장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화보집에 눈이 간 유서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이 아래로 내려갔다.
책꽂이 맨 아래에 다른 여러 책과 함께 어지럽게 놓인 다이어리가 있었다. 언뜻 보면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다소 낡은 평범한 일기장. 굳이 집에 도둑이 들어와 이 다이어리를 훔쳐갈 일도 없었고 서하나 역시 그의 서재를 건드리지 않기에 그는 다이어리를 숨기지 않았다. 괜히 깊숙이 숨겨두었다가 발각되면 더 이상할 것 같기도 했고. 평범하게 놓아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법이니까.
그는 서재의 의자에 앉아 다이어리를 꺼냈다.
어디에서 봤더라. 밀레니엄 주식 광풍이 쓸고 지나간 2000년 어딘가에 코스닥 광풍에 관한 종합 평가 및 소감이 적혀있었던 기억이 났다.
유서준은 천천히 다이어리를 넘겼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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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하반기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 코스닥 열풍은 수많은 종목의 거품을 낳았다. 그 가운데 최고의 거품 종목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 보면 이런 주식을 매매한 사람이 제정신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 열풍에 제대로 탑승하지 못한 아쉬움만 가득하다.
거품 종목은 상승기에는 모두에게 꿈을 주고 거품이 꺼지면서 폭락하는 시기에는 모두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다.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 본다. 물론 이 가격은 유무상증자로 인한 가격 보정이 생략된 그 날의 실거래가격이다. 중간에 액면 분할된 주식은 분할 전으로 표시했다.
– 골드뱅크 : 21배, 1999년 1월 4일 10600원, 1999년 6월 18일 231500원
– 새롬기술 : 120배, 1999년 8월 13일 25750원, 2000년 3월 3일 3080000원
– 다음 : 36배, 1999년 11월 11일 11200원, 2000년 3월 10일 406500원
– 장미디어 : 35배, 1999년 12월 14일 4480원, 2000년 3월 10일 155000원
– 싸이버텍 : 41배, 99년 12월 14일 5710원, 2000년 2월 2일 232000원
– 리타워텍 : 183배, 2000년 1월 26일 1780원, 2000년 5월 17일 325500원
– 마크로젠 : 18배, 2000년 2월 22일 10050원, 2000년 3월 30일 18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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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게 뭘까.
유서준은 눈을 비볐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가격 변화였다. 나열된 종목 가운데는 아직 상장되지 아니한 것도 있었다.
여기에 적힌 내용 가운데 골드뱅크는 이미 지나갔다. 다이어리에 적힌 대로 무려 21배의 상승이 있었다. 과거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폭등이었다.
유서준은 골드뱅크가 10월 초부터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가 착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매매를 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고민하는 종목은 바로 새롬기술이었다.
오늘 새롬기술이 코스닥에 상장됐다. 첫 상장일이라 아직은 거래가 없이 조용했다. 며칠 상한가를 치고 나면 한차례 손바뀜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 적극적으로 매수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무려 120배였다. 만일 그가 10억을 투입한다면 1200억으로 불어난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제정신으로 이런 주식을 매수할 수 있을까. 내년 3월 3일에 무려 120배나 올랐을 때 300만 원이 넘는 주식을 매수하는 미친놈은 대체 누구일까.
돈을 벌 생각이라면 아무런 고민 없이 다이어리에 적힌 날짜에 그냥 매수하면 된다. 하지만 유서준은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저렇게 주가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번다. 하지만 막판에 매수한 자는 이어지는 폭락에 전 재산을 잃게 된다. 폭등한 저 주식 가운데 상당수는 거품이 붕괴되면 애초의 가격으로 돌아가거나 심지어 부도로 상장폐지가 될 것이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유서준 본인도 2000년 이후로 주식에서 입은 손실로 큰 고통을 겪었다. 아마 다른 일반 투자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금은 달콤한 주가 상승이 기다리고 있지만 6개월 후부터는 모두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매수를 해야 할까.
유서준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가 지금 얻게 될 수익은 훗날 이름 모를 투자자의 피눈물이 될 것이니까.
그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는 다이어리를 덮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만졌다.
유서준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서하나였다.
“왜 그렇게 놀래?”
“아, 아무것도 아냐.”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슬그머니 내려 책장에 꽂아 넣으며 대답했다.
서하나가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너머로 고개를 쭉 뺐다.
“응? 일기장? 꽤 낡았네. 일기도 써?”
“아, 가끔.”
그는 어색한 표정을 수습하며 별 것 아닌 척했다.
서하나의 눈이 다이어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쓰던 것인가 보네. 혹시 내 이야기도 있어? 궁금해.”
유서준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재빨리 손을 저었다.
“아냐, 없어. 그냥 주식매매를 정리해 놓은 거야.”
“피, 놀라긴. 안 본다 안 봐. 분명 예전에 사귀던 애인 이야기가 적혀있나 보네.”
서하나가 눈을 흘기며 한발 물러섰다.
유서준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서하나가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품으로 순순히 들어왔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품 안에 앉혔다.
유서준은 가볍게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물었다.
“물어볼 게 있어.”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작전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다른 말을 기대했다가 주식 이야기가 나오자 서하나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한탕하고 빠져나오기 위해 작전을 벌이면 나쁜 놈이지.”
“하지만 대부분의 급등주는 작전주와 사실상 구분이 어렵잖아?” 주식시장에서는 수많은 작전이 횡행한다. 그 가운데 표면적으로 문제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문제가 된 경우도 조사를 벌인 후에 잘못이 밝혀지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건 왜?”
서하나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유서준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서준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어떤 주식이 급등해서 버블이 발생했을 때 일반 투자자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들게 돼. 하지만 주식은 계속 오를 수 없어. 어느 시점에서는 하락하게 되고 이때 막차를 탄 일반 투자가는 큰 손실을 보게 돼. 개인의 인생이 흔들릴 만큼.”
“그런데?”
“그럼 앞서 이익을 본 사람은 나중에 손해를 본 사람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할까?”
서하나는 금방 답변을 하지 않고 한참 고민을 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그녀는 곧 결론을 내렸다.
“그럴 필요 없다고 봐. 어차피 투자는 자신의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거니까. 막말로 매수해서 오르면 우량주이고 내리면 비우량주니까. 모든 것은 결과에 따라 결정되잖아? 내일 주식이 오를지는 아무도 몰라. 내일 내린다고 해서 오늘 판 사람이 비난을 받을 수는 없어. 그런데 왜?”
그녀의 말은 책임이 없다는 뜻이었다. 투자는 본인 책임이니까. 만일 반대로 움직여 올랐다고 해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나쁜 의도를 품고 상대의 매수를 유도한 것이 아니라면 상관이 없다는 건가. 유서준은 그녀의 말을 곰곰이 새기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종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 살까?”
“어떤 종목?”
“새롬기술.”
“아, 이번에 신규 상장한 종목? 별로 특별할 것은 없던데?”
유서준은 빙그레 웃었다.
“기업이 특별한 게 아니라 주변 환경이 특별한 거지. 밀레니엄이라는.” 서하나는 올해 초에 유서준이 강조했던 코스닥 버블을 떠올렸다. 벌써 하반기에 들어섰고 코스닥이 요즘 날아다니고 있다.
“제이의 골드뱅크 쯤 되는구나?”
“골드뱅크보다 더 뜰 걸?”
서하나는 올해 들어 무려 20배 이상 상승했던 골드뱅크를 떠올렸다. 그보다 더 오른다면 대체 얼마나 오른다는 이야기일까.
“새롬기술이 오늘 25000원 부근이었던가? 이게 20배 이상이면 얼마지? 대략 50만 원 쯤?”
유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를 거야.”
“그럼 100만 원?”
유서준은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대답했다.
“아니, 3백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