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1
11. 시동을 걸다(1)
[1987년 5월 1일]유서준은 아침 장이 열리기도 전에 매수 주문을 넣었다. 즉 시초가 매매에 동참한 것이다. 이 당시 개장 시간은 9시 30분. 동시호가 매매주문은 9시 20분까지 완료해야 했다. 그는 9시가 넘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서하나를 통해 주문이 이루어졌다.
매수 종목은 어젯밤에 연구한 바대로 롯데칠성. 서하나가 최근에 음식료업종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말렸지만, 그는 매수를 강행했다. 미래에서 온 다이어리가 있는데 사실 그가 무서울 게 있나. 손실이 날래야 날 수 없지 않은가.
9시 30분이 되고 장이 열렸다. 롯데칠성의 주가는 어제보다 460원 오른 15460원에 시작되었다. 매수 수량은 30주. 드디어 다이어리를 기반으로 한 역사적인 첫 매매가 시작된 것이다.
복리의 마법을 아는가.
예를 들어 100만 원을 투자하여 10%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자. 이 경우 순이익은 10만 원이다. 만일 당신이 다시 100만 원을 재투자해서 또 10%의 수익을 올렸다면 총 수익은 20만 원이 되고 총자산은 120만 원이 될 것이다.
반면 처음에 얻은 수익 10만 원을 합해 두 번째에는 110만 원을 투자한다면 10%의 이익을 얻을 때 수익은 10만 원이 아닌 11만 원이 된다. 이때 총자산은 121만 원이 되어 앞의 경우보다 1만 원을 더 벌게 된다. 이 1만 원의 차이가 작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복리의 마법이다.
일찍이 대작가였던 마크 트웨인은 복리야말로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했었다.
이 세상은 복리로 움직인다. 당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지나고 보면 복리다. 은행이자가 그러하고 물가상승률이 그러하다. 임금인상률이 그렇고 경제성장률도 그렇다.
주식투자에서 이 법칙은 보다 결정적이고 명확하게 작용한다. 매회 10%의 수익을 낸다고 가정할 때 합계 100%의 수익을 달성하는 것은 10번이 아니라 7번이 필요하다. 이것은 72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제에 대해 조금만 배웠다면 셀 수 없이 들었을 이 복리의 마법을 유서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유서준이 매일의 주가를 모두 알고 있었다면 그는 불과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부자가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초기 원금마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것이 문제일 뿐 결과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5월 7일이 되었을 때 아침 일찍 유서준은 서하나에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유서준인데요, 계좌번호는 ******입니다. 아, 네. 보유한 롯데칠성 주식 전량 17500원에 매도해주세요. 그리고 체결되는 대로 이번에는 제약주 가운데 아무거나 매수 부탁드립니다.”
“하하, 유서준씨, 아무거나라는 종목은 없어요. 그런 주문은 다소 곤란합니다.”
서하나로부터 웃음 섞인 질책이 들려왔다. 유서준은 그녀의 고운 얼굴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종목을 지정하지 않고 매수를 부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황급히 말을 바꿔 다시 말했다.
“아 그건 제가 연락받을 방법이 없어서 그렇고요. 매도 체결되면 그 돈으로 종가에 건설주인 대림산업 사주세요.”
“제약주에서 건설주로 곧바로 바꾸시는군요. 네, 좋습니다. 수량은 얼마나 할까요?”
“한도까지요.”
“신용도 쓰시나요?”
“신용은 하지 않습니다. 예수금 한도 내에서 매수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은 유서준은 절로 콧노래가 났다. 앞으로 벌게 될 돈이 눈앞에 아른거려서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서하나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라서이기도 했다.
잠시 혼자서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미소를 머금던 그는 시계를 보았다.
“헉, 수업시간 늦었다.”
그는 황급히 강의실로 뛰어갔다. 안타깝게도 벌써 출석 체크가 지나간 뒤였다. 이번 학기 학점이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5월 7일 아침에 대림산업 주식은 12200원에 매수되었다.
5월 13일이 되었을 때 유서준은 대림산업 주식을 14650원에 전량 매도했다. 6일 만에 무려 20%의 수익이었다. 그는 곧바로 삼부토건 주식으로 갈아탔다. 삼부토건 주식이 18일 상한가를 포함해서 상승한다는데 매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삼부토건 주식은 상한가를 친 다음 날 바로 매도했다.
삼부토건의 움직임은 아직 힘이 있어 보였지만 다이어리에 나와 있지 않은, 확정되지 않은 모험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아쉽지만 곧바로 매도했다. 아쉬운 마음은 다른 종목을 매수해서 풀어내면 된다.
일기장의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그 활용도는 매우 높았다. 평범한 주식매매라면 수익이 절반, 손실이 절반이다. 손실만 보지 않아도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는 매회 매매마다 평균 10%가량의 수익을 며칠 만에 얻었다.
아직 원금이 작아 그 수익이 작아 보이지만 원금이 불어날 몇 달 뒤가 되면 그 수익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질 것이다.
5월 중순 무렵, 유서준은 기숙사에서 그동안의 매매를 점검했다. 몇 번의 반복 매매 끝에 얻은 이익은 약 22만 원으로 원금이 50만 원임을 감안하면 대략 44%의 수익을 냈다.
대학 신입생인 그의 입장에서 22만 원은 거의 두 달을 먹고살 만한 큰 금액이긴 했지만 절대 금액 측면에서 본다면 소액임이 분명했다. 수익률만 따진다면 반달 만에 44%라면 한 달로 환산할 때 거의 80%를 넘나드는 수익률이 나올 것이다. 사실 엄청난 수익률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네.”
유서준은 다이어리의 내용을 보며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곧 그는 다이어리 원래의 내용으로 본다면 마이너스 수익이 속출했음을 깨달았다. 5월은 장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전의 그는 수익을 거의 보지 못했다. 만일 다이어리가 없었다면 그는 그런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아니, 다이어리에 있는 내용이 그 자신의 본래 매매였고 실력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난 얼마나 못하는 거야?”
그는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아마도 원래의 그는 설마 평균보다 못할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뒤쪽의 다른 다이어리는 펼쳐보지도 않았지만 사실 보지 않아도 짐작은 가능했다.
장이 좋고 나쁨에 따라 계좌에서 수익이 났다가 손실이 났다가 하는 그런 식으로 평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 교훈을 얻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미래의 다이어리를 현재로 보낸 이유는 주식매매를 보다 잘하라는 뜻일 거라고 짐작했다. 최근의 매매로만 본다면 그런 계획은 성공하고 있었다.
어쨌든 유서준은 자신이 대견스럽고 뿌듯했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철학이 아니라 본래 하고 싶어 했던 경제학을 공부해볼 거라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부전공으로 선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실전 매매를 통해 인정을 받아 투신사나 증권사 같은 곳으로 취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룸메이트인 구인혁이 들어왔다. 유서준은 반갑게 맞았다.
“늦었네?”
“아, 도서관에서 책 좀 보느라.”
건들거리며 수업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구인혁이 도서관에서 공부했다니 놀라웠다.
유서준은 이상함을 눈치채고 질문을 던졌다.
“지난 중간고사를 망했나 보네? 그러니 안 하던 공부를 다 하는 거지.”
구인혁이 갑자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와하하, 망하는 건 너의 사전에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 사전에는 그런 게 없단다.”
“그런데 뭔 공부를?”
사실 유서준의 중간고사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반에서 중간 정도였으니 좋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매일 주식에 신경 쓰느라 그렇게 된 영향도 사실 없지는 않았다.
구인혁이 대답했다.
“난 중간고사 성적이 나쁘진 않아. 지난번에 말했었잖아? 이미 교양과정 공부는 다 해치웠다고. 교양 수학이나 교양 물리는 사실 공부할 것도 없고 교양 국어가 조금 그렇긴 한데 그런 정도는 애교 수준이지.”
“그럼 뭘 공부해?”
유서준은 구인혁이 뭔가 종잡을 수 없는 기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기발한 대답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역시나 그의 대답은 평범한 대학공부는 아니었다.
“호킹 박사가 말한 초끈이론을 십이 차원 공간에서 풀어보면…….”
“아아, 머리 복잡하게 하지 말고.”
유서준은 곧바로 손을 내저었다.
“요점만 말해.”
“흐음, 그동안 내가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실마리를 잡았다고 할까.”
천재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드는 습성이 있다. 아마 구인혁도 그런 모양이었다. 궁금한 것이 생겨 도서관에서 머리 싸매며 공부했다는 뜻이겠지.
“뭔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거 하는구나.”
유서준은 곧바로 관심을 거두었다. 어차피 철학과인 자신에게 흥미로운 문제는 아니었다.
구인혁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뭐?”
시큰둥하게 묻는 유서준에게 구인혁이 미소를 지었다.
“으흐흐, 드디어 지난번에 말했던 미팅 날짜가 잡혔다.”
유서준은 얼마 전 구인혁이 여학생 기숙사랑 방팅을 하겠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날 그가 생맥주를 쏘기로 했던가.
“언제인데?”
“모레!”
특별한 선약은 없었다.
“넌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 예뻐?”
유서준은 호기심에 물어보았다. 미팅을 나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는 호기심일 것이다.
구인혁이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표시.
“헉, 너도 몰라?”
“몰라야 재밌지. 누가 나올지 얼마나 기대가 되겠냐?”
유서준은 아무리 생각해도 구인혁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유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잘못하면 폭탄을 맞을 우려도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미팅이 주선되었어?”
“으흐흐, 그건 비밀이다.”
구인혁이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대학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는 미팅. 남중 남고를 나온 유서준에게는 아마 색다른 경험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일었다.
**
미팅이 있는 날 오후, 일찍 수업을 마친 유서준은 곧바로 증권사를 찾았다.
오늘 있을 미팅에서 맥주를 쏘려면 약간의 돈이 필요했기에 그는 계좌에서 일부를 찾아야만 했다.
유서준은 증권사에 온 김에 서하나를 만났다. 서하나는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종목 상담하러 오셨어요?”
환하게 웃는 서하나의 모습이 참 예뻤다.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티비에서나 이런 얼굴을 보았던가.
유서준은 미소로 화답하며 대답했다.
“들린 김에 뵙고 가려고요.”
서하나가 그동안의 매매 내역을 찾아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우, 대단한데요?”
“뭐가요?”
“처음 4월에 했던 매매를 제외하고는 계속 승전고를 울리시네요? 사실 4월은 정부의 증시안정화조치로 시장이 하락세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대단한 수익이네요.”
이달 들어 그가 올린 44%의 수익은 특출 난 것이었다. 물론 일부 특별히 운이 좋은 사람이 연일 상한가를 치는 종목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유독 돋보이는 수익률이었다.
“주식 공부를 하셨나요? 아, 지난번에 경제 쪽 전공은 아니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주식 공부는 요즘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운이 좋았을 뿐이죠.”
유서준은 적당히 둘러댔다. 미래에서 온 일기장을 보며 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매매 내역을 유심히 살피던 서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목선택이랑 매수 시기가 참 좋네요. 선천적인 재능이 있나 봐요.”
“사실 저도 얼떨떨해요. 금액이 적어 크게 실감은 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잘 맞아떨어져서요. 당분간은 이런 매매 패턴을 고수할까 합니다.”
유서준은 자기 생각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