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15
122. 서울중앙지검(2)
심정국이 마치 걸그룹에 넋이 나간 삼촌팬처럼 서하나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말했다.
“요즘 제가 수익률이 엄청 좋습니다. 아, 저만 좋은 게 아니어요. 제 룸에 있는 전업투자가 모두가 다 좋죠. 이건 분명히 여기 터가 엄청 좋아서인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아니면……?”
서하나는 내심 피식 웃으며 물었다. 예전부터 심정국은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다. 아마 오늘도 주식을 매매하다가 심심하니 여기로 놀러 온 것일 듯싶었다.
심정국이 웃음 띤 표정으로 그녀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서하나 부사장님의 기를 제대로 받아서일 겁니다.”
서하나는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표정 하나 변함없이 상대에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쨌거나 자신을 좋게 봐준다는데 싫어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녀는 웃음을 지어주었다.
“어휴, 제 기라고 할 게 있나요.”
“지난 방송 펀드매니저 리그에서 우승하신 분이 기가 없을 리 있습니까?”
“그 생방송 보셨나 보네요.”
“아, 그날 멋졌습니다. 춤 제대로 추시더군요.”
심정국이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서하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녀는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한동안 얼굴을 부친 다음 화제를 돌렸다.
“요즘 수익이 잘 나죠? 코스닥에 물이 제대로 올랐어요.”
“아하하, 그렇죠. 요즘 같으면 돈 버는 것이 우습죠. 이렇게 계속 벌면 저도 조만간 증권사 하나 차릴 것 같습니다.”
저렇게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정말 많이 벌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정국이 제 물을 만난 듯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심정국이 명동 인베스트먼트를 나온 것은 보다 자유로운 매매를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다양한 종목과 매매기법을 적용할 의도였다. 일단 지금까지 그가 원하는 대로 됐다. 치고 빠지는 데이트레이딩을 추구하는 그의 기법은 현재의 코스닥 상황과 잘 맞았다.
회사에 다닐 때와 달리 버는 돈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이 매매에 모든 정성을 쏟게 했다. 다년간 다져진 경험에다 적절한 증시 환경이 부합하여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심정국이 서하나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지난달에만 1억 이상을 벌었습니다.”
결론은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서하나는 축하해주었다.
“수익 많이 나셨네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수익이 날 수 있기를 기대할게요.”
“하하, 전 제가 주식 신동이 아닌가 가끔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신동이 별건가요. 수익 나면 신동이고 천재인 거지. 어쨌든 회사도 그만두고 매매하시는데 수익 났다니 반갑네요. 다행입니다.”
심정국은 최근 자신이 건드린 종목 이야기를 계속했다.
대부분이 요즘 한창 뜨는 코스닥 종목. 어처구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는 것도 많았지만 그런데도 주저하지 않고 매수매도를 할 수 있는 용기는 대단한 것이다.
문제는 그 수익을 자신이 매매를 잘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수익은 시장이 주는 것이다. 최근의 억대 수익은 밀레니엄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내년부터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익일지도 모른다.
비교적 경험 많은 심정국 같은 자도 그 수익을 자신이 잘해서라고 받아들이고 있으니 서하나는 걱정이 되었다. 올해는 연봉 이상 벌었지만, 내년부터는 어떻게 먹고 살려고.
“아하하, 그래서 오늘도 상한가를 먹었습니다.”
심정국이 이런저런 말을 주절거렸다.
서하나는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생각해보니 지금 심정국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하나는 캔커피를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디 가세요?”
“커피 잘 마셨어요. 생각해보니 외부에 일이 있네요. 다음에 제가 커피를 대접해드리죠.”
서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문을 가리켰다.
그녀는 적당히 책상 위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신고 외출 준비를 했다.
심정국은 그녀를 따라 사무실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서하나는 차를 대기시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서울중앙지검.
서초동에 자리 잡은 법조타운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하얀 건물이다.
유서준은 중앙지검의 주차장에서 서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유서준은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았다.
긴장된 표정으로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그녀를 유서준은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풀어주었다.
“얼굴 펴. 잘못한 것은 없잖아. 그리고 말야. 당신처럼 예쁜 여자는 어떤 검사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해.”
“으이그.”
서하나가 유서준의 말에 마지못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여자가 예쁘다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큰 장점이 있다는 것을. 물론 가끔 그 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한다. 예전의 그녀처럼.
“임중건 검사라고 했지?”
“응. 이쪽 금융 관련 범죄에 특화된 검사인가 봐.”
두 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5층이었나 6층이었나. 의외로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 구조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임중건 검사라고 팻말이 적인 사무실 앞에 다다랐다.
유서준과 서하나는 크게 숨을 쉬며 가다듬은 다음 노크를 하려고 손을 뻗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남색의 고급스러운 양복.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넘기고 굵은 뿔테 안경을 쓴 젊은 남자. 바로 박강수였다.
박강수가 유서준을 알아보고는 손으로 인사했다.
“서준이 오랜만이다.”
유서준은 박강수가 왜 이곳에 있는지 고민했다. 곧바로 그는 박강수 역시 서하나와 함께 방송 수익률 대회에 참가했었음을 상기했다. 아마 출연했던 네 사람을 모두 소환해서 조사하는 모양이었다.
“답변은 잘 했어?”
그의 질문에 박강수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나야 털어도 먼지 한 톨 없는 사람 아니냐? 별로 묻는 것도 없더라.”
박강수의 시선이 서하나에게로 향했다.
“누나, 답변 잘 하고 오세요. 이만 갑니다.”
박강수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저쪽으로 사라졌다.
유서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금방 박강수가 밖으로 나올 때 안색이 별로였었다. 그들을 보며 바로 안색을 고치긴 했지만.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서하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담당 검사 임중건은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사람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각이 진 턱선이 비교적 샤프하게 보였다.
유서준과 서하나는 곧바로 담당 검사와 마주했다. 옆에는 검사의 수사관으로 보이는 나이 든 사람이 붙었다.
검사는 서하나를 보고는 반색을 하며 자리를 권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그녀의 미모에 놀랐음이 분명했다.
서하나는 명함을 꺼냈다. SJ 증권 부사장이라는 직함이 적힌 세련된 명함이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자신의 직함을 드러냄으로써 조사에 다소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싶어서였다.
명함을 받은 담당 검사 역시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흔한 인사말이 이어졌다.
옆에 앉은 수사관이 서류를 뒤적이는 가운데 담당 검사가 말을 꺼냈다.
“먼저 골드뱅크 관련해서 저희가 SJ 증권과 투신의 펀드를 조사했습니다. 의외로 골드뱅크를 매매한 적이 없더군요.”
임중건 검사가 질문을 시작했다.
검사의 질문은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검사는 말끝에 정치권의 압력을 토로했다.
“어쨌든 그래서 저희도 요즘 죽을 맛입니다.”
“고생 많으세요.”
서하나가 옆에서 장단을 맞추어주었다.
검사의 안색이 밝아졌다.
“갑자기 수익률 대회를 왜 조사하라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요즘 증권사마다 수익률 대회가 엄청 많잖아요? 사실 그거 파헤쳐보면 전부 약간씩 비리가 다 있어요. 자기 혼자 두 계좌로 주고받고 해서 주가만 올린다던가. 아니면 지인 계좌를 동원한다던가. 그래도 모른 척하고 넘어가죠. 그런데 이번에는 일단 수사하라고 해서…….”
“어디에서요?”
검사가 서하나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조용하게 속삭였다.
“어디긴요, 금감원이죠.”
순간적으로 서하나의 안면이 굳어졌다.
그녀의 표정을 걱정하는 기색으로 판단한 검사가 손을 내저었다.
“아, 서부사장께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조사해보니 매매하신 내역과 SJ 증권에서 편입한 종목이 다르더라고요. 그렇다고 삼성전자로 작전을 벌였다고 할 수도 없고요.”
물론 서하나의 표정 변화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금감원이란 말을 듣는 순간 오도욱을 떠올렸다. 이 사건 뒤에 오도욱이 있는 것일까. 물론 우연일 수도 있었다.
잠시 생각을 마친 서하나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어차피 전 대회에서 꼼수를 쓰거나 한 적은 없으니까요.”
“저희는 혐의없음으로 적당히 조서를 꾸미겠습니다.”
담당 검사가 호의적으로 결론을 지었다.
검사가 서류의 이곳저곳에 뭐라고 적으며 중얼거렸다.
“앞에 조사받았던 분은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더라고요.”
“네?”
검사가 고개를 들어 서하나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의 언급은 개인 정보 관련 문제라 삼가는 듯했다.
앞에 조사받았던 사람은 박강수가 아니던가.
유서준은 그 말에 짐작되는 바가 많았다. 그가 짐작하는 내용만 하더라도 마지막 주에 현대차를 비롯하여 코스닥 종목에서 이상하게 움직인 종목이 있었다. 분명히 박강수가 건드린 것이라고 심증을 갖고 있던 차에 검사까지 확증해주고 있었다.
강제로 남의 종목 주가를 끌어내리려 하더니 제대로 걸린 모양이었다.
‘강수 이놈이 제 묫자리를 팠군.’
그는 내심 웃음을 지었다.
서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임중건 검사가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황급히 그녀를 잡았다.
“아, 이런 것 알려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서하나의 시선을 받은 검사가 황급히 서류철을 펼쳤다.
“이번에 조사하다가 우연히 나온 것입니다. 서하나 부사장님의 거래 내역을 그대로 카피하여 그 정보를 팔아먹는 주식정보 카페가 있더군요.”
“네?”
서하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아 조사는 덮었습니다만 서하나 씨께서 매매하면 곧바로 카페에 올리더라고요. 물론 유료 회원에게만 말입니다. 저희는 서하나 씨 본인으로 생각해서 조사를 했지만, 그것은 아니었고요, 또 아직 영향력이 무시할 수준이라…….”
“제 매매가 방송에 올라오니 그런 것 아닌가요?”
“방송에선 일주일마다 올라오죠. 거긴 거의 실시간입니다.”
그녀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검사가 서류철을 넘기며 손가락으로 해당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마지막에 한국정보통신을 매수한 것요. 그날이 화요일이었으니까 방송이 없던 날이었고요. 그런데 그 카페에선 한국정보통신을 서하나 부사장님이 매수했으니 매수하라고 추천이 올라왔어요.”
유서준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군가가 서하나의 주식매매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흥미롭게도 가끔 SJ 펀드 편입 종목 정보도 올라옵니다. 주로 교체 매매한 것을 대상으로 말이지요. 이건 분명히 증권사 내부에 범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혹시 증권사 직원이라면 계좌의 잔고나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나요?”
증권사 직원은 고객의 계좌를 볼 수 있다. 물론 비밀번호를 모르면 주문은 낼 수 없다. 직원 중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서하나의 거래내역을 훔쳐보고, 또 펀드를 훔쳐보고 그 정보를 주식카페에서 팔아먹고 있었다.
아직은 주식정보 카페 회원 수가 많지 않아 별문제가 아니지만 지난 수익률 1위를 기점으로 카페회원이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 카페를 조사하기를 원하십니까?”
임중건 검사가 그녀에게 답을 구했다.
서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공론화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그 주식카페 운영자가 누군지 사용 아이피는 어떻게 되는지 그런 부분만 조사해서 알려주세요.”
임중건 검사가 서류철 한쪽에 그녀의 요구사항을 적었다.
“조사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담당 검사는 친절했다. 그녀의 신분이 부사장이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외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