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20
128. 리타워텍(2)
유서준은 금방 계산해냈다.
최근의 파워텍은 2000원 부근에서 조정받고 있었다.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이라 5000원으로 보면 2만 원 정도의 가격이다. 순익을 못 내는 회사 치고는 가격이 비쌌다. 솔직히 이 가격도 말이 안 되는 것이긴 하다.
“큰 회사가 아니라서 사봐야 10억이나 살 수 있을까.”
“그 정도면 고민하지 말고 사. 설사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거의 타격이 없어.”
서하나가 그를 부추겼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5천억 중에 불과 10억이었다. 그것도 소비가 아니라 투자에 들어가는 10억이다.
유서준은 머릿속에서 모든 계획을 완료했다.
2000원 이하에서 일단 무조건 사 모으기로 했다. 10억이면 대략 50만 주가 가능했다.
“그래 결정했어. 내일부터 매수 시작이다. 또 대박 냄새가 나네.”
유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대박이란 말에 서하나가 물었다.
“새롬기술 말이야. 요즘 보니 많이 빠졌던데?”
“응, 그렇지. 고점 대비 약간 내렸지.”
“그게 어떻게 약간이냐? 고점 대비 절반 가까이 내린 거지.”
서하나가 투덜거리며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았다.
유서준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새롬기술은 왜?”
“내가 내기에서 이긴 거지? 300만 원은 못 갔잖아? 거기에다 이제 내리는 추세니까…….”
유서준은 그녀가 주장하는 바를 깨달았다.
서하나는 내기에서 무척이나 이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가 내기에서 이긴 적은 없었다. 그녀의 마음도 이해는 됐지만.
“조금만 기다려.”
“와아 치사하다. 1년은 더 기다리라고 할 태세네.”
서하나가 삐진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째려보았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3월 말까지. 그럼 됐지?”
“흥, 그 정도는 기다려주지.”
서하나가 인심 쓴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새롬기술의 주가는 꺾인 형상이었다. 거기에 코스닥지수마저 추락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다시 고점에 도달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서하나는 승리를 자신하고 콧노래를 불렀다.
“으흐흐흐, 뭘 시키지?”
그녀가 유서준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유서준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대답했다.
“난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서하나가 안면에 홍조를 띠더니 말했다.
“킥킥, 내가 이기면 다비드상 만들어야지.”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이다.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지려는 성서의 영웅 다비드를 나체로 조각한 상이었다.
“아니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까?”
로댕이 조각한 이 작품은 의자에 앉아 한쪽 팔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는 유명한 조각상이었다. 마찬가지로 신체는 나체로 표현됐다.
서하나의 의도를 간파한 유서준이 물었다.
“설마 나체로?”
“킥킥, 당연하지. 조각상 그대로 표현해야 하니까.”
서하나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킥킥거렸다.
유서준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난 뭘 시키지?”
“넌 치마 입혀 물구나무 세운다며?”
서하나가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 나도 생각을 바꿀래.”
유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나도 예술품을 만들까? 밀로의 비너스상도 좋고…….”
밀로의 비너스상은 상체만 벗은 형태였다.
“그게 아니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도 괜찮을 것 같아.”
보티첼리가 그린 이 명화에는 비너스가 두 손으로 간신히 중요 부분만 가리고 서 있다.
서하나가 그림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더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아이, 짐승!”
**
다음날부터 유서준은 파워텍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파워텍은 2000원 아래에서 꾸준히 오르내렸다. 거래량이 많지 않아 마음껏 사기도 쉽지 않았다.
그가 매집을 완료한 시점은 1월 26일. 파워텍의 주가는 1780원이었고 그의 평균 매입가는 1800원이었다. 총 매수한 주식 수량은 10만 주였고 투입 자금은 1억 8천만 원이었다. 더 사고 싶었지만, 주식 거래량이 많지 않아 살 수가 없었다.
파워텍은 1월 27일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일 상한가로 뛰면서 증권가에서 찌라시로 돌던 미국계 인수합병 회사의 인수 소식이 전해졌다.
다음부터는 파죽지세.
2월 8일, 파워텍은 미국계 리타워 인베스트먼트에 인수합병 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다른 특별한 재료가 없다고 회사 측에서 공시를 냈지만 상한가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통적인 보일러 부품 생산 업체가 인수합병 후 첨단 인터넷 업체로 탈바꿈한다는 변화를 호재로 받아들이고 주가 상승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미국 나스닥에 우회상장 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얼마 되지 않아 파워텍은 또 다른 인터넷 회사를 인수 합병했다. 역시 주가 상승의 재료로 받아들여졌다. 주가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파워텍은 그로부터 약 5개월 후 사명을 리타워텍으로 개명하게 된다.
유서준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고 자축했다. 이제 이 종목은 끊임없이 올라 1월 하순 매수 시점 주가의 180배까지 오를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 가격일 리가 없지만 흥분한 대중은 이미 판단 능력을 상실했다. 주가가 오를수록 더 사기 위해 광분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대중의 판단이 틀릴 경우가 대단히 많으며 많은 사람이 오판할수록 불행한 역사로 빠져드는 경우도 흔하다.
이제 느긋하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파워텍은 1월 27일부터 무려 3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 기간 파워텍은 회사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열 건에 달하는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인수 대상에 오른 기업은 대부분 첨단 인터넷 관련 기업이었다. 인수합병에 사용된 돈은 회사 주식이었다. 한 회사를 인수하는 대가로 유상증자를 통해 주식을 일부 넘겼다. 이른바 주식 스왑 방식. 회사를 인수하면 곧바로 주식이 뛰었다. 첨단 회사를 인수한 만큼 성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였다.
주가가 올라간 만큼 인수합병의 무기로 사용될 자금이 다시 불어났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파워텍은 몇 달 만에 십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지주회사로 성장했다. 3월에 접어들면서 파워텍의 시가총액은 1조를 돌파했고 국내 전체 기업 가운데 10위 권내로 등극했다.
파워텍이 하늘을 모르고 치솟는 동안 유서준은 연초에 매입했던 싸이버텍을 팔아치웠다. 연초에 18000원가량이었던 싸이버텍은 2월 2일 232000원까지 치솟았다. 그는 싸이버텍이 최고가에 오르기 직전에 전량 매도했다. 1주당 무려 이십만 원의 이득을 챙겼다. 총 이익금은 1천억이 약간 못되었다.
그가 연초에 투자했던 주식 장미디어도 계속 상승 중이었다. 연초 평균단가 14000원에 매수했던 이 주식은 대략 일주일 뒤면 15만 원까지 약 10배의 상승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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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 말 256.14에서 줄기차게 하락하던 코스닥지수는 1월 하순에 176.68을 찍은 후 반등을 타기 시작했다. 연초대비 약 -30%에 달하는 폭락 이후 나타나는 급반등이었다. 지수가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전고점에 근접한 240대를 회복하자 투자자는 열광했다.
이때부터 2월 한 달간 지수는 옆으로 횡보하며 출렁였다. 단기 매매를 추구하는 데이 트레이더에게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상승 종목은 끊임없이 상승하고 하락 종목은 연속으로 하락하는 종목 장세가 출현했다.
99년부터 주식 상승으로 돈의 맛을 본 개인투자자는 초단타 매매에 몰두했다. 하루에도 수십%가 오르내리는 변동성에 마치 도박하듯 주식매매를 했다. 결과는 증권사의 수수료 수입으로 이어졌고 실제로 돈을 번 투자자보다 잃은 투자자가 훨씬 많았다.
증권사 주최 투자수익률 대회도 성황리에 이어졌다. 수천 %의 수익을 낸 1등 당선자도 속출했다. 사람들은 그 숫자에 열광했지만 그 이면을 알지는 못했다. 수천%의 수익률은 대부분 소액 계좌였고 실제 이익금은 그리 크지 않았다. 또 당선자의 매매내역을 제대로 살펴보면 유동성이 극히 적은 소형 작전주가 대부분이었다. 일반 투자자가 따라 할 수 있는 성공 사례는 아니었다.
증권 포털 사이트도 유입인구가 폭증했다. 주식투자인구가 늘고 있다는 증거였다. 직장인 중에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팔불출이라 불렸다.
덩달아 인터넷 상에서 서하나의 인기 역시 폭등했다.
그녀는 주식 사이트에 오늘의 시황을 연재하지 않았지만, 매번 시황 전문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방송에서 흘러나온 그녀의 전망이 곧바로 복사되어 퍼졌다.
‘서하나 – 주식여신 서하나 팬카페’ 역시 회원이 폭발했다. 방송에서 캡쳐된 그녀의 모습이 수없이 올라왔다. 그중 일부는 대단히 고화질의 사진도 있었다. 그 대부분은 유서준이 자료실에 올려준 것이었다.
서하나는 주식 여신으로 추앙받았다. 팬카페에서 그녀에게 팬미팅을 요구했지만 서하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
[2000년 3월 3일]유서준은 SJ 펀드에 편입된 모든 코스닥 종목을 처분할 것을 지시했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지금이 주식을 털어낼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코스닥지수는 3월 10일 292.55를 최고점으로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지수는 다이어리의 마지막인 2016년 말이 되어도 절대 회복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사실상 일부 거래소 대형 우량주를 제외하고 SJ 펀드에서 주식은 사라졌다. 주식이 사라진 부분은 국채를 비롯한 채권이 채웠다. 동시에 선물 옵션과 관련된 파생상품이 일부 편입되기 시작했다. 사실상 지수하락에서 수익을 낼 방법은 파생상품밖에 없었으니까. 파생상품은 그 위험성만 잘 제어하면 의외로 가장 안전한 상품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기법을 추구하다가 LTCM이 한방에 파산했지만.
유서준의 SJ 투자금융에는 신선영이 존재했다. 투자기법에서 거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그녀였기에 유서준은 그녀를 믿고 투자의 상당 부분을 맡겼다.
최근에 유서준은 그녀의 기법을 배우고자 노력했고 이에 맞추어 신선영은 SJ 투신이 아닌 SJ 투자금융지주로 출근했다. 그녀는 장이 열린 시간에 대표실에서 유서준과 함께 파생상품 매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상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어디에서나 매매가 가능했으므로 그녀의 출근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서준의 개인 펀드에도 남은 주식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대부분 현금화된 상태였다. 다이어리에서 아직 오른다고 예정된 극히 일부 종목에만 투자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할 시점이었다.
며칠 뒤에는 팔아치울 장미디어와 여전히 상한가 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리타워텍이 현재 그가 보유한 주식의 대부분이었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를 때를 아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그는 요즘 확실히 이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외환위기 직전인 97년에만 주식을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또 지금 현재인 2000년에만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더라도 그 사람은 평생 성공적인 투자자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이어리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 역시 지금부터 약 2년간의 하락에서 모든 것을 잃고 결국 평창의 땅마저 팔아치우는 비극을 맞이했다. 지금의 그는 그럴 일은 없다. 하지만 이 사회에는 그때의 그와 같은 사람이 무수히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일 년간 전 재산을 탕진하고 거리에 나앉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만큼 지금 상황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대중은 그것을 모른다.
3월 3일인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토요일장은 없어졌으므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술 한 잔 생각도 있었지만 집에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유서준은 집으로 가는 길에 김현아에게 문자를 넣었다.
*
– 주식은 다 팔았어?
*
답장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저편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그는 다시 문자를 넣었다.
*
– 연초에 다 팔라고 했잖아?
*
김현아가 맡은 학교 적립금 운용에 관한 조언이었다.
답장이 문자로 날아왔다.
*
– 그래도 지난 연초에 네 말을 듣고 많이 정리했었어. 아직 미련이 남아서 다 정리하긴 힘드네. 코스닥지수는 오늘도 올랐고.
*
누구나 다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지금 팔고 빠져나오면 다시 올라버릴 것만 같은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주식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떠날 때는 빈털터리가 된 다음이다.
유서준은 간략하게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
– 기회는 일주일뿐이야. 빨리 전부 다 정리해. 거래소든 코스닥이든. 무조건 주식은 피해.
– 알았어.
*
김현아가 실제로 얼마나 그의 말을 따를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이 정도 경고했으면 다음은 그녀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