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21
129. 옵션 매매(1)
집에 도착하니 집안 전체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응? 갑자기 무슨 일이지?”
유서준은 황급히 부엌으로 다가갔다.
어깨 뒤로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내려오고 위에는 헐렁한 하얀색 티에 아래로는 옆트임이 있는 연청색 긴 데님 스커트. 돌아서자 거기에 분홍색 앞치마마저 두르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서하나가 싱크대 앞을 바삐 오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저녁밥 해주려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아니 동쪽으로 지려나?”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서하나가 해주는 밥을 먹었던 게 손에 꼽을 정도였던가. 서로 바쁘다 보니 사실 거의 힘들었다.
유서준은 신기한 눈으로 서하나가 요리하는 것을 구경했다.
몇 번 해보지 않은 터라 아직도 새댁처럼 서투르긴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잠시 후, 식탁에 겉보기엔 맛있어 보이는 밥상이 차려졌다.
둘이서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 유서준이 물었다.
“진짜 오늘 무슨 일이야?”
“정말로 밥 해주고 싶었다니까.”
서하나가 그를 보며 생글생글 미소를 지었다.
뭔가 수상쩍었다. 서하나가 이리저리 반찬까지 집어줬다.
밥을 먹고 나자 곧바로 사과와 배를 가져와 깎아주었다.
이쯤 되니 정말 신기했다. 평소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분명히 뭔가 있는데…….”
유서준이 그녀와 눈을 맞추며 추궁했다.
서하나가 몇 번 눈을 피하다가 마지못해 실토했다.
“실은 새롬기술이…….”
“아하, 오늘 새롬기술 308만 원이다!”
절대 못 올라갈 것 같던 고지에 결국 도달하고 만 것이다. 시가총액이 무려 4조 원을 넘어섰다나.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 가격이었지만 엄연히 코스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었다.
“아하하, 이겼다!”
유서준이 대소를 터트리며 기지개를 쭉 켰다.
서하나가 입술을 쭉 내밀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번에는 꼭 이기고 싶었는데, 이게 뭐야. 흑.”
유서준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뭐 하기로 했지?”
“몰라, 몰라.”
서하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유서준이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그녀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뭐였지?”
“치…… 치마 입고 물구나무서기.”
서하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서준의 시선이 그녀의 치마로 향했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치마. 하지만 옆트임이 꽤 높아서 현란한 다리가 많이 드러나 있었다. 이대로 물구나무를 서면 볼만할 것 같긴 했다.
“그게 아니고 예술품 만들기 아니었어?”
“헉, 아냐, 아냐.”
서하나가 귀엽게 고개를 저었다.
유서준이 그녀를 거실 중앙으로 데려가자 서하나가 그의 팔을 잡았다.
“아냐, 내가 오늘 밥도 해줬잖아? 다른 걸로…… 응?”
그녀의 입에서 애교 담긴 목소리가 나왔다.
그가 미소만 짓고 있자 서하나가 다시 매달렸다.
“우리 서준 대표님, 저도 소셜 포지션이 있잖아요. 한 번 봐줘요. 증권사 부사장 체면도 생각해주고요. 응?”
원래 여성스러움이 많던 그녀였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행동이 유서준의 마음을 녹였다.
그는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기는 내기다.
유서준은 그녀를 거실 한복판에 세워 놓은 다음 실내의 전등을 모두 켰다. 거실이 엄청나게 밝아졌다.
“뭐해?”
서하나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예술품은 조명발이 좋아야 해.”
“으악.”
당황하는 서하나를 향해 유서준이 말했다.
“밀로가 좋아? 아니면 보티첼리가 좋아?”
서하나의 눈앞에 밀로의 비너스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오르내렸다.
서하나가 손을 내저으며 안색을 붉혔다.
“시러, 시러.”
유서준이 의자를 가져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며 관객 흉내를 냈다.
“으으으…….”
서하나가 옷자락을 잡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서하나는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됐다.
**
[2000년 3월 9일]3월 둘째 목요일인 이날은 선물 옵션 만기일이었다.
유서준은 신선영과 함께 아침 개장부터 주식시장 동향을 살폈다. 만기일은 선물 옵션의 희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날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 서서히 선물 옵션 거래량이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거래소 주식시장이 하락으로 돌아서면서 눈치 빠른 투자자가 선물 옵션으로 옮겨온 덕분이었다. 일부는 코스닥으로 옮겨갔다. 코스닥은 연초의 하락을 극복하고 다시 최고지수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작년과의 차이점이라면 작년에는 벤처라면 무차별로 올랐지만 올해는 종목별 차별화가 심해졌다는 것.
어제보다 다소 오른 상태에서 주식시장이 시작됐다.
선물 개장지수는 114.55. 어제보다 -0.45 하락한 가격이었다. 종합주가지수는 어제보다 +0.74% 오른 922.71. 선물 기준지수인 코스피 200지수 역시 어제보다 상승한 115.31로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종합주가지수와 코스피 200지수는 그 오르내림이 거의 같다. 코스피 200지수가 거래소 종목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200개를 모아 지수를 만든 것이니까.
선물은 코스피 200지수의 그림자이기에 사실상 같이 움직여야 한다. 오늘 아침처럼 다르게 시작한 것은 오늘이 만기일인 탓이 크다. 투자자들이 오늘 만기일을 하락으로 본다는 의미다. 만기일인 오늘 종가에 선물은 청산되어 두 지수는 일치하게 된다.
어쨌든 개장 후 선물지수는 현물인 주식에 이끌려 곧바로 상승으로 돌아섰다.
신선영이 지수 움직임을 보며 말했다.
“선물은 이미 많이 거래해봐서 잘 알지? 오를 것 같으면 매수, 내릴 것 같으면 매도. 그게 전부야. 오늘 같은 만기일에는 마감 종가를 잘 맞추는 게 기본. 사실 오르고 내림 딱 두 가지니까 이게 매우 단순해서 쉽게 맞출 것 같지만 의외로 어렵지. 단순할수록 더 어려운 거니까.”
주식은 오르거나 내리거나 두 방향이다. 이것을 맞추는 게 선물이다. 만일 원숭이가 오르내림을 찍으면 확률은 절반인 50%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개 더 잘 맞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대부분 맞출 확률 50% 부근. 매우 어렵다.
선물로 돈을 잘 번다는 슈퍼컴퓨터 시스템도 그 확률이 60%를 넘기 어렵다. 만일 그 확률이 80% 정도만 된다면? 전 세계 돈이 모두 그 사람의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오늘 종가는 어떨 것 같아?”
신선영이 그에게 물었다.
유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오늘 내릴 것 같네요.”
물론 그는 다이어리에 적힌 오늘 종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사실 다이어리를 따라 그대로 매매하면 백전백승이다. 하지만 유서준은 그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알고 있는 기간은 2016년까지다. 2017년부터 문제가 되는 2027년까지는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버텨야 한다. 또 지금처럼 그의 자산이 커진 상황에서 이 돈을 제대로 풀베팅 해버리면 모르긴 몰라도 주가 변동으로 미래가 바뀌어 버릴 거다. 점점 커지는 자신의 자산과 SJ 펀드를 제대로 굴리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다이어리가 아닌 실력이 요구됐다.
그가 선물 옵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현재 예상으로는 오늘 마감 프로그램 매물이 대략 5천억은 나올 거야. 과연 시장에서 충격 없이 받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 아침 선물 시가가 낮게 형성된 것도 그에 대한 우려 때문이고.”
신선영은 현 시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여러 각도에서 설명했다.
한참 이런저런 설명을 마친 후 그녀가 결론을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는 시장 참여자라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 이런 재료가 반영된 것이 현재 가격이야. 앞날은 아무도 모르지. 하하.”
신선영은 단순한 확률 게임을 싫어했다. 그런 이유로 선물 매매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맡겨두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현재와 같은 패턴이 과거에 발생한 적이 있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통계 내어 확률적으로 움직였다. 아직 국내 선물 데이터가 많지 않아 적용이 제한되긴 했지만.
그녀는 선물 포지션 트레이딩과 선물 오르내림을 스캘핑으로 추적하는 기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컴퓨터 자동매매를 실행하고 있었다.
신선영의 화면이 바뀌었다. 모니터에는 옵션 포지션과 기대수익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졌다.
“옵션은 선물과 달라. 옵션은 다양한 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물론 이것 역시 만기 지수가 얼마냐를 딱 맞출 수 있으면 떼돈을 벌지. 선물은 오르고 내림을 맞추지만, 옵션은 지수를 맞추어야 하니까.”
유서준은 옵션거래에서 사실상 아직 초보나 마찬가지였다.
신선영이 설명을 계속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재주로 오늘 끝나는 지수를 맞춰? 신이 아닌 다음에야 못하지. 그럼 방법이 없느냐? 그렇지 않아. 옵션에선 별별 기법이 다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지수를 따라가면서 특정 옵션을 계속 사고팔아 포지션을 쌓아. 그러다 보면 저절로 수익이 나는 기법도 있어.”
신선영이 콜 옵션 몇 개를 행사가격대별로 매수하고 매도했다.
“이런 식이야. 이걸 30분에 한 번씩 계속 반복하며 지수를 따라가는 거지.”
일종의 옵션 합성 기법이었다. 옵션 각각은 지수 변화에 비선형적으로 움직이므로 여러 행사가격대의 옵션을 섞으면 별별 다양한 수익 곡선이 만들어진다.
옵션에서 최적의 기법은 시장의 움직임 방향과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오전 11시가 될 때까지 시장은 아침의 강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선물은 시가 대비 1포인트가량 위에서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11시가 넘어가자 갑자기 주가지수가 밀리기 시작했다. 불과 20분 만에 약 1포인트가 쭉 빠졌다. 종합주가지수도 고점 대비 7포인트가량이 하락했다.
“드디어 만기일 부담을 느끼나 보네.”
신선영의 표정은 밝았다. 생각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리라.
모니터에 나타나는 빨간색 파란색 글자. 1초도 쉬지 않고 선물거래가 계속되고 있었다.
선물 한 틱은 0.05 포인트. 금액으로는 2만 5천 원이다(2016년 들어 1만2천5백 원으로 변경됐다). 한 틱이 오르거나 내릴 때마다 누군가는 그만큼의 돈을 벌고 있고 누군가는 잃고 있다. 그게 쌓여 선물 1계약당 하루에 50만 원 이상의 손익이 벌어진다. 10계약을 거래하면 500만 원 이상 벌거나 잃는다.
저 지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게임 머니 같은 가상의 느낌도 들지만, 저 움직임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그 모습이다.
주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장감과 피로감으로 투자자를 압박하는 것이 바로 선물 옵션거래였다.
유서준은 고심하다가 콜 옵션을 매도하고 풋 옵션을 매수했다.
만일 등가 옵션(코스피 200지수와 가장 가까운 행사가격 옵션)에서 콜 매도, 풋 매수 포지션을 잡으면 선물 매도와 같은 효과가 생긴다. 그는 변화를 주기 위해 콜 옵션 매도량을 2배로 늘렸다.
12시가 되며 오전장이 끝났다. 선물의 오전장 종가는 114.55. 신기하게도 시가와 동일한 가격으로 끝났다.
지금부터 1시간은 점심 휴장 시간(점심 휴장이 없어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 이후다).
유서준과 신선영은 부근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서 배를 채웠다. 사실 선물이나 옵션의 포지션을 가진 상태에선 밥이 잘 먹히지 않는다. 수십억이 걸린 도박판을 앞에 두고 소화가 잘 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도박판에서 돈을 걸고 판이 돌아가는 상태라 보면 비슷하다.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신선영이 큭큭 웃었다.
“예전에 LTCM에 있을 때 내 파트너는 거의 매일 햄버거로 점심을 때웠어. 미국은 점심시간 휴장도 없잖아. 언뜻 보면 꼭 돈이 없어서 햄버거를 먹는 것 같은데 사실 그 사람 개인 재산만 무려 19억 달러나 있던 사람이야. 시간이 없으니 햄버거도 감지덕지였어.”
“하하, 저도 비슷한 처지네요.”
유서준도 웃었다.
햄버거를 한 입 크게 베어 문 신선영이 물었다.
“서준이 넌 앞으로 시장을 하락으로 본다고 했지?”
“그렇죠. 거래소는 이미 끝났고 코스닥도 이번 주가 끝이어요. 앞으로는 줄줄이 미끄러질 일만 남았죠.”
“그렇다면 앞으로 선물 옵션 시장 규모가 더 커지겠네.”
“그렇다고 봐야죠.”
주식이 내리면 개인투자자가 피할 곳은 파생시장인 선물 옵션밖에 없다. 하지만 선물이나 옵션 시장에서 개인이 이길 확률은 주식시장보다 훨씬 작다. 그런 이유로 한쪽에선 파생시장이 비대해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파생시장이 존재해야 다양한 상품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파생시장 확대는 선진금융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필수다.
결과적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사실상 주식시장의 주역은 선물 옵션으로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