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24
132. 짙어가는 음모(2)
만기일 이튿날인 3월 10일, 종합주가지수는 예상대로 약간의 반등을 보였다. 그러나 전날 막판 프로그램 매물로 인한 하락마저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눈치 빠른 자는 시장이 약세임을 증명하는 신호란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코스닥지수는 이날 장중에 사상 최고인 292.55를 기록했고 종가 역시 283.44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인 3월 13일, 종합주가지수는 -4%가 폭락하여 시장이 하락으로 접어들었음을 확실하게 알렸다. 코스닥지수는 오전에 상승으로 출발했다가 곧 미끄러졌다. 차트에서 지수 흐름은 상승을 보였지만 연이은 음봉이라 좋은 모양은 아니었다.
이날 이후 코스닥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아래로 죽죽 미끄러졌다. 개인투자가의 비명이 메아리치는 죽음의 구간이 시작된 것이다.
유서준은 개인 펀드에서 파워텍을 제외한 모든 주식을 정리했다. 적어도 지금부터 2년간은 주식은 쳐다보지 말아야 할 시기다.
이 기간 그가 할 일은 선물과 옵션 부분이었다. 주가가 요동칠수록 선물 옵션에서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다이어리에서 알려준 2016년까지의 미래에서 선물 옵션으로 단기간 큰돈을 벌어들일 기회는 지금부터 2002년까지와 2008년경 단 두 번뿐이었던 것으로 기억났다.
그 첫발은 지금부터 5월 말까지 주식이 폭락하는 기간이다.
3월 초 하락했던 종합주가지수는 3월 중순부터 다시 슬금슬금 위로 방향을 틀었다. 주식은 대개 아래위로 출렁거리면서 제갈길을 찾는 법이다.
유서준은 3월 말부터 선물 매도를 통한 하락 포지션을 구축했다.
함께 매매하는 신선영 역시 투입 물량을 늘렸다. 그녀가 추구하는 매매기법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오르내림에 사실상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옵션의 비선형성에 기인한 방법으로 주가의 오르내림을 모른다고 생각할 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서준이는 앞으로의 장을 하락으로 보고 있다는 거네?”
신선영이 부지런히 매매 주문을 내며 물었다.
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선영이 신기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넌 참 이상해. 대학 때도 그랬고. 신기하게도 시장의 방향성을 기가 막히게 맞춘단 말야. 선물 쪽에 특화 되어 있는 것 같아.”
“에이, 어쩌다 맞춘 거예요.”
유서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선영이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흠, 홍콩물고기나 압구정 미꾸라지가 울다 갈 실력이란 말이지.”
“홍콩 물고기는 뭐예요?”
“99년부터 선물 옵션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는 자가 있어. 홍콩계 자금인데 검은 머리 외국인이란 설이 있지.”
국내 일반 투자자가 외국인의 움직임을 추종하다 보니 가끔 유명 외국계 펀드나 투자사가 세간의 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외국인 펀드의 경우 한쪽으로 물량을 집중시키는 경우가 많아 시장의 방향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압구정 미꾸라지는요?”
“아, 그 사람은 대신증권의 유명 파생 트레이더야. 작년부터 올해 초 사이에 떼돈을 벌었다는 설이 있어. 하루에 선물 수천 계약을 오가며 시장을 주도한다고 해. 목포 세발낙지도 비슷한 케이스고.”
이 동네에서 유명한 트레이더는 별명으로 주로 물고기 이름이 붙었다. 미꾸라지나 메기나 붕어. 왜 그렇게 별명을 붙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선영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야. 그 사람들이 그런 별명을 얻었으면 너도 별명을 얻을만한데?”
유서준은 웃긴 물고기 이름을 떠올리며 손사래를 쳤다.
“제가 뭐 그렇게 유명할 일 있나요?”
사실 유서준이 주식시장에서 번 돈은 엄청났다. 그런데도 그는 단지 증권사를 인수한 자로만 알려져 있었다. 유명 트레이더로서 이름을 날리진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활동하는 영역이나 기간이 불연속적이기 때문이었다. 어떨 때는 거래소 주식에, 어떨 때는 코스닥에, 어떨 때는 파생시장에서 움직였으니까. 사실 선물 옵션을 하다가 주식으로 옮겨가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기관이 아니라면 둘을 동시에 다루는 경우도 많지 않았고.
신선영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무래도 적당한 물고기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 흠, 어디 보자. 여기가 테헤란로니까 테헤란 철갑상어. 이런 것도 괜찮지 않아?”
“에이 철갑상어가 뭐예요? 아, 갑자기 배가 고프네.”
둘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서하나가 들어왔다.
서하나의 뒤에는 양상만 전산부장이 뒤따라왔다.
“어? 업무 시간 중에 하나가 여기 웬일이야?”
신선영이 황급히 들어오는 두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더니 혀를 찼다.
서하나는 여의도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그녀가 이곳 지주사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의미였다.
서하나가 두 사람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임검사로부터 받은 자료야. 전화통화 내역.”
유서준은 서하나가 내민 자료를 살폈다.
다행히 박민규 개발부장과 양상만 전산부장의 통화 내역은 그리 많지 않았다. 프로그램 개발 초반에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최근에는 가물에 콩 나듯 한두 번이었다.
유서준이 양상만 전산부장을 쳐다보자 양상만 부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양부장 통화 내역은 이미 해명되었어.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없더라.”
다행이었다. 전산부장을 믿지 못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걸리는 일이 많아진다.
유서준은 다시 자료의 하단부로 눈길을 돌렸다.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어느 순간부터 박민규 개발부장과 박강수의 통화가 잦아졌다.
“해솔 증권하고 YK 소프트가 업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양상만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해솔 증권은 지금까지 대기업 계열사에 외주를 넣어 프로그램 개발을 해결했습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볍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유서준과 서하나, 신선영의 눈길이 모였다.
신선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강수 이 자식이…….” 신선영이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꾹 쥐었다.
유서준이 이상한 조짐을 느끼고 물었다.
“왜요? 뭔 일 있어요?”
신선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이 자식을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지…….”
서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토닥였다.
신선영이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며칠 전부터 선물 스캘핑 자동매매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더라고. 매수 들어가고 나가는 부분에서 뭔가 동시에 일어나는 느낌? 예전 대비 한 박자 늦어진 것 같기도 하고 말야. 물론 가끔 그럴 수 있다는 건 알아. 근데 어쩐지 누군가가 나랑 똑같이 매수매도를 반복하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서하나가 물었다.
“원인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누군가가 똑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매매를 하고 있는 거야. 누군지 알겠지?”
유서준은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YK 소프트 박민규 개발부장이 박강수에게 프로그램을 팔아먹었군.
신선영이 덧붙였다.
“게다가 지난번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모든 프로그램 소스를 프린트로 받았잖아? 근데 며칠 전 옵션 포지션 계산이 이상하더라고. 그래서 며칠 전에 다시 소스를 확인해 봤는데 계산식이 이상해. 수정되었더라고. 지난번엔 제대로 되었던 것이. 난 그게 개발사에서 실수로 잘못 건드린 거로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신선영이 씩씩댔다. 이제야 그녀는 프로그램의 이상한 부분이 실수가 아니라 고의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의 이면에 박강수가 있음을 짐작했다.
서하나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식이라면 YK 소프트에서 만든 모든 프로그램을 다 의심해 봐야 하는 거잖아? 보통 일이 아니네.”
유서준은 책상 위에서 두 손으로 턱을 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런 식으로 치졸하게 싸움을 걸어오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싸움을 걸어오면 피하지 않는다. 예전에도 박강수와는 항상 그런 관계였다. 그런 내기에서 번번이 이기기도 했었고.
유서준은 생각을 정리한 다음 지시했다.
“양상만 부장님, YK 소프트에서 해솔 증권에 우리 프로그램을 다 넘겼다는 가정하에 대책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어떤 장난을 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시죠.”
유서준의 명령에 양상만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다시 세 사람이 남았다.
유서준은 말을 이었다.
“선영이 누나는 일단 선물 옵션 자동매매 규모를 절반으로 줄여주세요. 저쪽에서의 대응을 한번 보죠. 그리고 혹시 전산 쪽으로 알고 있는 전문가가 있나요?”
“양부장을 완전히 믿기는 좀 위험부담이 크지?”
서하나가 물었다. 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선영이 주저하면서 대답했다.
“아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럼 그 사람 한번 데려와 보실래요?”
유서준은 그녀가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고 말했다. 유서준은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신선영과 공대 전산실을 갔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그녀는 공대 전산학과 학생과 매우 친했었고 그쪽 동아리에도 가입되어 있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다면 그쪽 분야의 인맥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 알았어.”
어쩐지 다소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유서준은 철회하지 않았다.
박강수의 도발이 이런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모두가 짐작하는 바였다. 하지만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지, 또 증거를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그들은 몇 가지 다급한 조치를 위한 의견을 나눈 다음 다시 각자의 업무로 돌아갔다.
**
며칠 뒤 밤늦게 유서준과 서하나는 신선영과 강남의 카페에서 만났다.
신선영은 곱상하게 생긴 남자 한 사람을 데려왔다. 나이는 그녀와 비슷하게 보였다.
유서준은 그 남자와 악수를 했다.
“SJ 대표 유서준입니다.”
“메가소프트 대표 천재욱입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프로그래밍 쪽으로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던 친구야. 전산학과 나왔고 나랑 동갑. 지금은 게임 개발을 하고 있는데 만드는 게임마다 족족 망해서…….”
신선영이 소개를 하며 웃음을 지었다.
천재욱이 안색을 붉히면서 그녀의 옆구리를 툭 쳤다.
“다 말아먹은 건 아냐.”
“그게 말아먹은 거지.”
둘이 툭탁거렸다.
서하나가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니군.
“바쁘신데 뵙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먼저 본론부터 들어가죠.”
유서준이 그동안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천재욱의 표정이 다소 심각하게 변했다. 그는 주식에 대해 아는 바 없으나 프로그램 기능 부분에 대한 이해는 충분했다.
전반적인 내용을 모두 들은 천재욱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제가 보기엔 두 가지 위험이 있어요. 하나는 고객이 사용하는 프로그램 즉 HTS의 문제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접속 시마다 업데이트를 하다 보니 전 프로그램에 오류 프로그램을 심기가 매우 쉽죠. 예를 들어 계좌잔고를 이상하게 보이게 만든다거나 아니면 저절로 매매가 일어나도록 만들어버린다거나.”
천재욱이 커피를 마신 다음 둘째를 말했다.
“다른 하나는 HTS 외 개발했던 다른 자동매매 프로그램이 제멋대로 매매를 수행하게 해서 피해를 입히는 거죠.”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유서준과 신선영은 식은땀이 났다.
얼마 전 발견되었던 수식 오류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큰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해결책은 있어?”
신선영이 기대감을 내비치며 물었다.
천재욱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알기 힘들어. 그 대신 문제 발생 시 바로 오류를 복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천재욱이 몇 가지를 조목조목 짚으며 대책을 말했다.
신선영이 곧바로 의문점을 물었고 천재욱이 바로 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서준은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