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26
134. 오류엔 오류(1)
미국 주식시장 폭락의 여파로 하락한 4월 17일의 주식시장은 처참했다.
거래소 종합주가지수는 무려 -11.63% 떨어진 707.72를 기록했다. 사실상 최대 하락이었다. 코스닥도 비켜 가지 못했다. 코스닥 역시 -11.4%가 폭락했다. 코스닥은 전고점을 기록했던 지난 3월 초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약 40%가 폭락했다. 상황은 아수라장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가 모두 비슷했다. 이날 일본 주식시장 역시 -7%의 하락을 기록했고 홍콩과 싱가포르도 비슷한 수준의 폭락을 보였다.
국내 주요 일간지와 방송은 이날의 주식폭락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그 뉴스 한가운데 SJ 증권에 대한 소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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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의 악재로 주가가 폭락한 가운데 증권사 시스템마저 불안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D 증권에서 사명을 SJ 증권으로 바꾼 이 증권사는 오늘 아침 주식 매매 프로그램이 불통되는 최악의 사태를 겪었다. 이로 인해 해당 증권사 주식 투자자는 원하는 시각에 매매를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주식 폭락에 더해진 이중고였다. 한편 이 증권사는 한꺼번에 선물 1만 계약을 매도하여 주가를 떨어트린 원흉으로도 지목받고 있다.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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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투자자의 성토가 불같이 일었다. 최근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본 사람은 화풀이를 SJ 증권으로 돌렸다. HTS의 먹통으로 매매를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쏟아졌고 일부는 금감원에 불만을 정식으로 제기했다. 선물 하락으로 주식하락을 유도했다는 비판도 잇달았다.
증권 포털 사이트에서는 SJ 증권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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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J 증권 HTS 개판이다.
– 신고하면 물어줌? 거기에서라도 조금 벌충해야지.
– SJ 증권이 어디지? 주식 여신이 부사장 아닌가?
– 서하나는 개미 편이 아니었다. 그 예쁜 얼굴 뒤에 숨겨진 사악한 미소 봤냐?
– 금감원 몰려가서 시위하자. 보상 크게 나온다에 내 목을 건다.
– 이런 날 선물 매도 패대기 치는 것이 인간이 할 짓이냐?
– 서하나 몸무게 공개하라! 몸무게 공개하면 다 용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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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부터 혼란스럽더니 온종일 모든 일이 다 꼬였다. 신선영과 통화해보니 선물 옵션 매매에서도 사고가 발생한 것 같았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박강수이던가.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 박강수는 그녀에게 그저 그런 후배였다. 특별한 인연도 없었다. 단지 유서준이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냥 개인적인 감정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벌어진 일을 생각하니 정도가 심했다. 이건 SJ 증권을 죽이겠다는 시도가 아닌가.
후배를 미워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런 감정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비서실장인 최훈재가 들어왔다.
“부사장님, 몇몇 지점에 개인투자자가 몰려와 시위한다는 연락입니다.”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그도 각 지점을 통해 엄청 시달린 듯했다.
서하나는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HTS 먹통 건은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발표하세요.”
“알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하루 지점 유리창이 깨진 곳만 열 군데가 넘습니다.”
최훈재의 보고에 서하나는 가슴이 찢어졌다.
자신이 지점에 있을 때 투자자가 시위하는 모습을 숱하게 보았고 그런 증권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모습을 되풀이하게 된 것이다.
아침에 발생했던 7분간의 먹통 시간이 투자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맞다. 하지만 굳이 그 시간에 주문을 내고자 했다면 전화 주문을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 시각 주가는 아침 개장과 동시에 곧바로 속락했기 때문에 사실상 거래 자체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개장과 동시에 서킷마저 매매가 불가능했다.
사실상 정상적인 상황이었어도 거래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시위하는 투자자 대부분은 오늘 아침 거래를 못 한 것에 대한 분노라기보다 최근 벌어진 주가 하락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선물 매매도 사실과 달랐다. 선물 신규 매도가 갑자기 들어가서 폭락시킨 것이 아니라 그날 아침에 샀던 매수 포지션을 청산하면서 벌어진 것일 뿐이다. 매도하면서 그만큼 하락했다는 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아침에 매수하면서 그만큼 적게 하락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SJ 증권을 마구 물어뜯고 있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변명일 뿐이다. 이런저런 사고에 대해 솔직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최훈재 비서실장이 그녀에게 마지막 현안을 보고했다.
“마지막으로 금감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금감원으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진상 해명을 원한답니다.”
“금감원이라…….”
그렇게 난리가 났는데 금융감독원이 끼어들지 않을 리가 없다. 아마 오도욱이 부른 것이 아닐까.
서하나는 오도욱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언제부터인가 오도욱은 그녀에게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아니 그녀를 압박하는 사람이 되었다. 단순히 증권사를 감독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문득 서하나는 오도욱과 박강수가 유학 시절에 서로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설마 이 모든 일이 두 사람의 연합전술일까? 얼마 전에 있었던 검찰 조사도 떠올랐다. 금감원에서 조사를 사주했다가 다시 거두어들였다고 했었지.
어쨌든 오라니 가지 않을 수 없다.
“알았어요. 시간 맞추어서 차량 준비해 주세요.”
서하나는 최훈재를 돌려보내고는 생각에 잠겼다. 일단 증권사에 돌아올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었다. 박강수에 대한 복수는 그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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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은 시각에 서하나는 금융감독원을 방문했다.
시간이 늦었음에도 오도욱은 퇴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해외 자본시장이 요동치면서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녀가 들어서자 오도욱은 안면 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손님맞이용 소파로 안내했다.
서하나가 오도욱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자본시장감독국이라 했던가. 오도욱은 거창한 이름을 가진 곳의 부국장이었다. 혼자 쓰는 사무실도 비교적 넓었다.
오도욱과 서하나는 서로 맞은편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서하나는 아침부터 일어난 일을 조리 있게 설명했다. HTS 작동과 선물 매매 오류에 대해 프로그램의 버그로 인한 것임을 주장했다. 물론 YK 소프트나 박강수에 대해 언급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원인이 다 밝혀진 것이야?”
“네, 그런 셈이죠. 전산 담당 쪽 의견이고 다른 원인은 없어요.”
오도욱이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 서하나는 한시름 놓았다.
천천히 오도욱이 시선을 내리며 서하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서하나는 그의 눈빛에서 야릇한 열기를 느꼈다. 최근 들어 그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점점 저런 빛으로 바뀌었다. 생각해보니 대학 때도 그리 순수한 눈빛은 아니었다.
오도욱의 시선이 내려가더니 그녀의 무릎에 머물렀다.
치마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있어서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서하나는 두 손으로 치마를 지그시 눌렀다. 그녀는 예의 없는 시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오도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오늘 금감원에 민원이 많이 들어왔어. 제재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아. 금융기관이니까 며칠 문 닫으면 신뢰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지? 잘못하면 영업에 치명타가 돼.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 위쪽에선 신규가입자 계좌 개설을 당분간 금지하는 제재를 가하라고 하고…….”
그의 말대로 제재를 받으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서하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거기에다 선물 일만 계약은 좀 너무 한 것 아닌가? 주식으로 따지면 무려 5000억가량이나 돼. 그만큼을 한방에 던졌으니 개인투자자가 성토하고 난리지. 그런데 증거금 규정은 제대로 지켰나? 일만 계약이면 대략 증거금이 700억은 있어야지. 자본금 400억 증권사에 그만한 돈이 있었을 리 만무하고…….”
“그…… 그건 기관의 경우 중간에는 증거금을 계산하지 않고 하루 단위로만 하니까요.”
서하나의 변명에 오도욱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편의를 봐준 거지 원칙은 아니지. 돈도 없으면서 마구잡이로 주문내는 것을 허용해줄 수는 없어. 그리고 오늘 그 덕분에 무려 50억이나 손실이 났던데? 50억 메꿀 돈은 있나? 증권사 인수하면서 생명과 투신을 곁들여 자금 사정이 빠듯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도욱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녀는 일단 잠자코 말을 들었다.
오도욱이 그녀의 태도에 만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 윗선에선 오늘처럼 주가가 폭락하여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선물을 무차별로 던진 것을 괘씸해 하는 분위기야. 당분간 증권사 계정의 파생상품 거래를 금지시키라고 하더군. 물론 기존 포지션 청산도 불가하지.”
“그…… 그건…….”
서하나는 유서준의 개인 자금 회사계정 펀드에 선물 매도 포지션이 쌓여있음을 기억했다. 그가 언제 매도 포지션을 청산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매매가 장기간 금지되면 자칫하면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오도욱의 압박에 서하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보기에 오도욱이 작정을 하고 조여 매는 것 같았다.
서하나는 일순 혼란스러웠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가 SJ 증권사를 경계하는 이유가 뭘까. 언뜻 보면 좋은 방안을 제시하면서도 묘하게 압박하는 오도욱이 아닌가.
서하나는 그것이 자신 때문인지 유서준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박강수를 돕기 위함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오도욱이 서하나의 표정을 관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소파를 돌아 그녀의 뒤로 갔다.
잠시 후 그의 한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기 시작했다.
서하나의 뒤편 바로 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들다면 내가 수를 써서 징계 수준을 낮춰줄 수 있어. 50억도 내가 해결할 수는 없지만 몇 달 납부 유예로 유보해줄 수 있고.”
서하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사내의 손길을 느꼈다. 갑자기 공포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어떻게 생각해?”
서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넘어오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을 터치했다.
서하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길을 거부하며 대답하려 했다.
“도…… 도욱 선배.”
그러나 그녀의 저항은 곧바로 막혔다. 사내의 손이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꽉 붙잡았다. 동시에 사내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훑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벼락을 맞은 듯 멈췄다.
“아직 SJ 증권은 신생 증권사라 제대로 제재를 두들겨 맞으면 버티기 쉽지 않을 거야. 모르긴 해도 당장 50억 때문에 부도 위기에 몰릴 수도 있지 않을까? 정부의 제재를 받은 증권사에 돈을 빌려줄 은행도 찾기 쉽지 않을 테고…….”
슬금슬금 오도욱의 손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 손은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머물렀다.
서하나는 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자 기겁을 했다. 오래전 증권사 대리 시절 가도건설 사장에게서 받은 수모가 생각났다. 그때도 비슷한 분위기였나? 권력으로 아랫사람을 억압하던.
사원일 때도 그런 수모를 당하더니 부사장이나 되어서도 바뀐 것은 없었다. 이제는 더 큰 것을 책임지고 있기에 더 저항하기 어려웠고 사회적 체면 때문에 더 움직이기 힘들었다.
사내의 손이 어깨너머로 내려오자 서하나는 상대의 손을 붙잡았다.
“이러지 말아요.”
서하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저항했다.
오도욱이 손을 멈추더니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서하나가 떨어지려고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오도욱이 다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생각해봐. SJ 증권의 앞날을.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
오도욱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