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29
137. 대박과 쪽박(2)
5월 26일 금요일이 되었을 때 유서준은 모든 선물 매도 포지션을 청산했다. 이날 주식시장은 600선 중반까지 떨어졌다. 연초대비 무려 -40%가량 하락했고 그가 선물 매도 포지션을 구축했던 3월 하순과 비교하면 -25% 하락한 지점이었다.
그가 얻은 이익은 1계약당 대략 30포인트나 됐다. 모두 1000계약이었으므로 150억에 달했다. 두 달 만에 벌어들인 수익이었다. 박강수의 공격으로 손해 본 부분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았다.
그의 수익을 본 신선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넌 정말 천재야.”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죠.”
항상 둘이서 주고받는 대화였다.
물론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통해 큰 흐름을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 사정을 모르는 신선영은 그가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당분간 포지션 없이 쉬고 싶지만, 시장이 저를 내버려 두지 않네요. 다음 주 월요일 곧바로 매수 포지션 구축할 겁니다.”
신선영은 며칠 전 옵션 포지션을 구축하고 싶으면 상 방향을 열어놓고 하라던 유서준의 조언을 떠올렸다.
“그럼 내일부터 오르는 거야?”
“내일부터라기보단 조만간 급반등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흐음.”
국내 주식시장에는 시장이 요동치며 투자자를 울고 웃게 만드는 큰 사건이 가끔 나타난다. 2000년 5월 말부터 6월 초에 이르는 구간은 옵션 투자자에게 5말 6초로 각인될 특이한 시기였다.
이 기간 갑작스러운 반등이 일어나 옵션 매도로 가두리 양식을 하던 기관과 큰손이 많이 다쳤다. 옵션 매도를 옵션 매수가 눌렀던 몇 안 되는 시기였다.
신선영은 자신감이 백배했다. 유서준이 오른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실제로 포지션을 구축한다면 분명히 오른다.
그녀는 상 방향을 열어두고 가장 유리한 옵션 합성을 고민했다. 그렇다고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그녀의 특성상 한쪽으로 특화된 포지션은 아니었다.
**
한가로운 주말, 서하나는 자신의 팬카페에 올리는 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생방송 이후 예능 방송에 출연하면서 그녀의 인지도는 급속히 올라갔다. 최근 SJ 증권의 물의로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인기는 여전히 대단했다.
팬카페 회원 수도 급속히 늘어났다.
서하나는 가끔 카페에 글을 올리며 팬들의 주식 매매에 도움을 주곤 했다.
주말을 맞아 시간이 남은 그녀는 오랜만에 글을 썼다. 최근의 하락으로 힘들어하는 투자자를 격려하는 내용과 다음 주 전망이었다.
유서준이 그녀가 작업하는 뒤에 서서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눈에 요즘의 그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뻤다. 자신의 아이를 가진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자신을 닮은 산적 아들을 낳으면 비극일 것 같았지만 그녀를 닮은 공주를 낳으면 그보다 더한 축복이 또 있을까.
“다음 주부터는 상승 시작이야. 난 월요일 아침에 매수로 들어갈 거야.”
서하나는 유서준의 의견을 참조하여 글을 썼다.
*
주말 미국 시장의 하락으로 인하여 월요일 29일에는 하락으로 시작하겠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나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논의되고 있고 국내 시장 역시 금리 인하가 임박하여 전반적인 상황은 오히려 좋은 편입니다.
급락 후의 급반등. 많이 들어보셨지요? 지금이 그런 시기입니다. 앞으로 약 10일간 상당폭의 반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자신감 있게 주식을 매수하셔도 좋습니다.
*
그녀가 올린 글 일부였다.
주식에 물려 고생 중인 사람은 상승 예측을 하는 그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최근 월요일마다 하락으로 시작하여 모두가 걱정하는 가운데 그녀의 전망은 가뭄 속 단비와 같았다.
“우와, 우리 하나 인기 짱이네.”
유서준이 그녀를 놀렸다.
“여긴 내가 왕이잖아, 히히.”
서하나 역시 미소로 그의 농담을 받았다.
유서준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살펴보며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확인했다.
주로 티비에 나왔던 예쁜 모습을 캡쳐해서 올라온 게 많았다.
가끔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방송 사진사가 찍어 올린 것도 있었다. 그중 가장 멋진 사진은 역시 예전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사진 일부를 유서준이 올린 것이었다. 컴퓨터 배경 화면 크기에 맞춰 올린 그 사진은 팬들의 호응을 받았다.
“해솔 증권 이야기 들었어?”
서하나가 넌지시 물었다.
“응. 지난 징계로 100억 이상 손해 봤다던데?”
“들었구나. 타격이 큰가 봐.”
대형 증권사도 아니고 중소형 증권사에 닥친 갑작스러운 100억대의 손실은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다. 사실 SJ 증권도 유서준이 미리 준비하디시피 했던 자금이 아니었다면 한차례 크게 휘청거렸을 것이다.
“강수는 일선에서 물러난 것 같아.”
“자업자득이지.”
유서준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거 네 작품이지?”
서하나가 확신하며 물었다. 아직 유서준은 해솔 증권에 대해 벌였던 작전을 밝히지 않았었다. 그녀는 난데없는 해솔 증권의 징계 소식에 분명히 유서준이 뭔가 작전을 벌였을 것이란 짐작만 했을 뿐이다.
이번의 타격으로 당분간 박강수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일선에서 물러났다면 더욱 수작 부리기 어려워졌을 테고.
금감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SJ 증권에 타격을 주려 했던 것이 정작 해솔 증권에 문제를 일으켰으니까.
“그 박민규란 자는 어떻게 처리했어?”
서하나가 그를 보며 눈을 깜박였다.
유서준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계획대로 해외로 보냈어. 필리핀인가 그곳에서 몇 년 살고 오겠다고 하더라. 우리가 상관할 일은 아냐. 감옥 안 보낸 것만 해도 어딘데. 일단 연락처도 알아.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을지도.”
유서준은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팔을 두르며 머리에 입을 맞췄다.
“결과적으로 우린 돈을 많이 벌었어. 리타워텍과 최근 선물 매매에서 꽤 벌었지. 하하.”
덕분에 잔파도에 조금도 휩쓸리지 않았음을 서하나도 잘 알고 있었다.
금감원의 징계를 받았을 때도 서하나는 그룹 자금만으로 오히려 고객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시했다. 모든 임직원이 그룹 지주사의 자금력에 든든함을 느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사건이 임직원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얼마까지 벌 생각이야? 이젠 다 쓰기 힘들 만큼 벌지 않았어?”
“내년까지 1조는 넘기고 생각해보자.”
유서준은 1조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개인 자산이 1조를 넘어가면 그야말로 재벌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뭔가 앞으로 생각해 둔 것이 있나 보구나?”
유서준은 대답하진 않았다. 물론 2027년의 그날 SJ 그룹의 모습은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 중간은 아직 완벽하게 그려지진 않았다. 단지 그 중간 그림을 오래지 않아 그릴 것 같다는 예상만 있을 뿐이다.
**
서하나가 팬카페에 올린 글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심정국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특히 지난 생방송 때 서하나의 시황 전망을 즐겨 봤다. 그녀의 예측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 일반 시청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 모르지만 그는 달랐다.
주가 오르내림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그녀의 발언이 얼마나 적중했는지 열심히 추적했었다.
최근 심정국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코스닥 종목을 매수해서 내린다 싶으면 곧바로 손절했다. 적당한 손절은 특히 상승장에서는 급등주로 갈아타는 디딤돌이 되지만 하락장에서는 계속 손해 보게 만드는 독약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계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망가져 있었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투자자로 들어선 것을 후회했다.
그런 가운데 떠오른 탈출구가 바로 선물 옵션이었다.
서하나의 예측을 밑바탕으로 방향을 잡고 자신의 탁월한 감각으로 타이밍을 잡으면 적어도 손실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으흑, 내가 서하나와 결혼했어야 했는데…….”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물론 상상은 범죄가 아니다.
이런 상상은 그의 삶에서 활력소가 됐다.
며칠 전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 오늘 팬카페에 올라온 그녀의 예측을 바탕으로 심정국은 결심했다. 월요일 아침 그가 할 일은 선물과 콜 옵션을 매수하는 일이었다.
**
[2000년 5월 29일]월요일 아침 미국 시장의 영향으로 지수는 무려 -4%가 하락한 627.4에서 장이 개장됐다. 곧바로 반발매수가 들어왔다.
선물 역시 전날보다 1.6이나 떨어진 81.0에 시작하여 위아래로 출렁였다.
유서준은 곧바로 선물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파생시장이 커지면서 한 호가에 최소 백 계약 이상이 버티고 있었고 하루 거래량도 수만 계약, 거래금액은 수십조에 달하는 상태에서 유서준의 거래 정도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의 포지션 계약은 기껏 수천 계약에 불과했으니까.
그의 강력한 매수 덕분은 아니겠지만 1시간가량 후에 선물지수는 시가보다 1포인트 위로 올라섰다. 그는 예정했던 1만 계약을 평균단가 81.45에 매수를 완료했다.
그 시각 심정국 역시 콜 옵션을 매수하고 있었다. 그는 행사가 90의 콜 옵션을 평균단가 0.46에 매수했다. 옵션 가격 0.46은 46000원을 의미했다(이 당시 옵션 가격 1은 10만 원으로 옵션 5개와 선물 1개가 가격이 같았다.).
옵션은 만기일까지 행사가에 도달하지 못할 때 모두 휴지로 변한다. 남은 만기일까지는 불과 7거래일. 이 기간 주가지수가 거의 70포인트는 올라야 행사 가능한 가격이었다.
사실 무모할 것 같았지만 심정국은 서하나를 믿고 베팅했다. 그는 이것이 사랑의 힘이라 생각했다.
그가 투입한 금액은 옵션 200계약으로 모두 920만 원이었다.
그날부터 밤에 잠을 못 자는, 아니 낮에도 정신이 없는 시간이 계속됐다.
29일, 낮게 시작한 주식시장은 장중에 큰 폭으로 상승하여 아침 시가의 하락분을 거의 만회했다.
다음날 30일에도 주식시장은 +5.39%에 달하는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심정국이 산 콜 90은 무려 0.44가 올라 그는 하루 만에 440만 원을 벌었다. 전날 장중 상승분까지 합하면 무려 700만 원이 넘는 수익이었다.
심정국은 믿을 수 없었다. 서하나가 오른다고, 급반등이 있을 것이라고 글을 썼길래 믿고 콜 옵션을 매수했더니 어마어마한 수익이 발생했다. 불과 이틀 만에 100%가 넘는 수익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코스닥 상한가 종목의 움직임과도 비교 불가능한 엄청난 변동이었다.
그는 옵션에 푹 빠져들었다.
급하게 머리를 돌린 주식시장은 거칠 것이 없었다. 다음 날인 31일에도 종합주가지수는 무려 +5.88%의 상승을 기록했다.
심정국의 수익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한편 그와 반대로 콜 옵션을 매도 쳤던 투자자는 그만큼 손해를 보았다. 자금이 부족했던 자들은 곧바로 마진콜을 당했고 추가 증거금을 넣었던 자도 자금이 간당간당한 위험선에 이르렀다.
반면 주식 투자자는 신이 났다. 물론 선물을 매수한 유서준도 큰 폭의 수익을 내고 있었다.
6월이 들어서도 주식시장은 꺾이지 않았다.
6월 1일 시장은 잠시 쉬어가는 듯했으나 그마저 +0.90% 올랐다. 6월 2일 금요일에는 다시 +3%의 상승을, 한 주가 지난 월요일인 5일에는 다시 4.41%가 올랐다. 파죽지세였다.
증거금이 부족한 선물 옵션 계좌가 연달아 무너졌다. 힘의 균형이 깨지고 나면 더욱 가파른 상승이 일어난다.
현충일로 하루 쉰 6월 7일, 만기 하루 전, 종합주가지수는 다시 +3.57%가 올라 822.54를 기록했다. 주가지수 800선을 두 달 만에 재탈환했다. 그것도 순식간에.
심정국이 매수했던 29일 아침과 비교하면 지수가 일주일하고 이틀 만에 무려 31%가 폭등했다. 개별 종목도 이렇게 오르면 대박인데 지수가 이렇게 올랐으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날 선물 가격은 105.05를 찍었고 콜 90은 무려 16.0에 도달했다.
심정국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썹만 비볐다.
“이게 얼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