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3
13. 주식투자연구회(1)
낙성대역에서 서울대로 올라가는 길은 기숙사생에게 익숙하고 정다운 길이다. 네 사람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걸었다.
김현아가 유서준을 다독였다.
“강수가 좀 건방진 면이 있지? 걔가 성격이 원래 그래. 집이 잘산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온 기숙사 학생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구인혁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 원래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 그런 것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구인혁은 남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번쩍거리더군. 원래 머리에 든 게 없는 사람일수록 겉모습을 치장하는 법이다.”
그의 옆을 걷고 있던 여학생 이지은이 농담을 터트렸다.
“킥킥, 그래서 네 꼴이 이 모양이구나?”
“당연하지. 난 찢어진 청바지를 걸쳐도 아우라가 빛난단 말이다. 머리에 든 게 많으면 저절로 그렇게 되지.”
모두가 한차례 웃음을 터트렸다.
유서준 역시 그런 일로 기분이 상하진 않았기에 함께 웃었다.
“뭐… 현재 과대표라서 학과 내에서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동아리 내에서도 꽤 영향력이 있네.”
김현아가 투덜대며 말했다. 그녀 역시 박강수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런 놈에게 주눅이 들 유서준은 아니었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중간에 낙성대 공원이 있다.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큰 별이 떨어진 것을 기념하는 장소다. 공원 한중간에 동상과 사적비가 세워져 있고 주로 동네 주민의 여가시설로 활용되는 곳이었다.
김현아가 어둠 속에 보이는 동상을 가리켰다.
“이야기 들었어? 밤마다 저 동상이 기숙사 앞마당을 돌아다닌다는 거?”
“응?”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야밤에 한적한 길을 걸을 때는 무서운 귀신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김현아가 겁을 주려고 과한 몸짓을 했다.
“서울대 못 들어와서 목메고 죽은 학생의 혼령이 동상에 들어가 있다가 돌아다니는 거래.”
“헉, 무섭겠다.”
“가끔 서울대생이 부러워서 야밤에 길 가는 학생에게 말을 거는데 그때마다 학생이 곧바로 기절한데나…….”
“아하, 그래서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서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구나.”
네 사람은 키득거리며 길을 올라갔다.
낙성대 공원을 지나자 기숙사 불빛이 그들을 반겼다.
**
주식투자연구회 동아리방은 학생회관 3층 구석에 있었다. 유서준은 학과수업을 마치고 동아리 방문을 두드렸다.
동아리 내에는 서너 명의 학생이 책을 펼쳐놓고 한창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유서준이 들어가자 여학생 하나가 그를 자리로 안내하고 말을 걸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여기에 가입하려고요.”
의례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여학생이 그에게 신입회원 입회원서를 내밀었다.
“전 여기 총무를 맡은 신선영이라 해요. 산업공학과 3학년을 다니고 있죠.”
신선영! 이 이름도 분명 들어보았다. 바로 미래에서 온 편지에서. 그는 뭔가 자신의 주변 인물이 먼 훗날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람임을 깨달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가. 이곳이 서울대 경제 경영학과 학생이 주축이 된 곳이었으니. 미래에 국가의 금융자본을 쥐고 흔들 인물이 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유서준이 그녀의 이름과 전공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짓자 오해한 신선영이 곧바로 해명했다.
“제 전공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놀라요. 이과생이 무슨 주식 공부냐부터 시작해서 여자가 공대는 왜 갔느냐, 거기에 주식 동아리에서 임원까지 맡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사실 이과생과 주식은 절대 무관하지 않아요. 요즘에는 컴퓨터가 서서히 영향력을 미치면서 주식의 가치와 주가 움직임을 계산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해석하려는 노력이 많아요. 바로 이과생이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죠.”
유서준으로선 처음 듣는 말이었다.
흥미를 보이는 유서준을 향해 신선영이 말을 이었다.
“퀀트(Quant)라고 들어보셨어요?”
당연하게도 유서준으로서는 처음 듣는 용어였다.
고개를 젓는 유서준을 향해 신선영이 상세하게 풀어주었다.
“퀀트(Quant)는 계량적(Quantitative) 분석가(analyst)를 뜻하는 합성어예요. 퀀트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주가를 예측하고 거래하는 사람을 뜻해요. 신종 펀드매니저죠.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고 이제 막 미국에서 도입되는 직종이긴 한데 아마 21세기에는 최고 유망직종이 될 거예요. 제가 다니는 산업공학과에서 퀀트 관련 내용을 가르치고 있죠.”
유서준은 경제 관련 학과가 아닌 공대에서 주식에 관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역시 학문 사이의 벽은 점차 사라지고 융합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더니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금융공학이라 하여 경제와 공학이 융합되고 있어요. 그쪽은 전공이?”
유서준은 입회원서에 철학과라고 썼다.
“아, 특이하네요. 이 동아리에는 경제학과 경영학과 학생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골고루 분포해요. 음미대생도 꽤 있고요. 철학과에서는 이 동아리 가입이 아마 처음인 것 같네요.”
신선영이 미소를 지었다.
유서준은 편하게 맞아주는 신선영 덕에 낯선 기분을 그나마 덜 수 있었다.
신선영이 동아리에 대한 기초적인 사항을 잡다하게 소개했다.
유서준은 이곳에서 주식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동아리 행사로는 학기마다 투자대회가 있어요. 원래 이 동아리는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여 투자하는 가치투자를 기본으로 해요. 하지만 국내 증시가 워낙 투기적으로 흐르다 보니 순수하게 가치투자를 고집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죠. 그래서 기술적 분석도 겸하고 있답니다. 하여간에 투자대회가 있고요, 가끔 기업방문도 해요. 기업의 실질적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죠.”
생각보다 동아리 활동 범위가 넓었다.
“그래서 졸업할 때쯤이면 웬만한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 수준에 이를 정도의 실력을 쌓게 되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이용하여 투자를 하더라도 경제에 관하여 제대로 실력을 쌓고 싶었다. 전공이 아닌 그에게 최적의 선택일 것 같았다.
신선영이 그가 쓴 입회원서를 받은 다음 말했다.
“처음 가입한 일학년은 시험을 치러요. 다른 의미는 없고 평범한 일학년이 경제지식을 얼마나 가졌는지 알기 위해서죠. 객관식이고 그리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역대 신입회원 중에 만점자는 없었어요. 물론 다 틀린 빵점도 없었죠. 호호.”
얼떨떨한 상태에서 유서준은 신입회원 시험 문제를 받았다.
신선영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모두 50문항에 제한시간은 20분입니다. 자, 시작해요.”
유서준은 당황했다. 갑자기 시험을 치를 줄은 몰랐다. 평소 경제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공부해본 바는 없었다.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운 것과 최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공부한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살펴본 바로는 사지선다형의 비교적 단순한 문제였다. 첫 문항은 금리와 주가의 관계를 묻는 문제였다.
유서준은 신중하게 첫 문제부터 풀기 시작했다.
그가 시험을 막 치기 시작했을 때 동아리 방에 몇몇 학생이 들어왔다.
어제 미팅에서 만났던 김현아와 그를 기분 나쁘게 했던 박강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경제학과 일학년 수업시간이 끝난 모양이었다.
시험지를 훑어보고 있는 유서준을 발견한 김현아가 반갑게 맞았다.
“서준이 왔구나. 시험 치는 중? 별 것 아니지만 열심히 봐. 과거의 통계를 보면 입회 시험에서 성적이 좋았던 사람이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
유서준은 그녀를 향해 눈짓으로 인사를 했다.
지금 밝은 실내에서 보는 그녀는 어제 맥줏집에서 봤을 때와 또 달라 보였다. 서글서글한 눈매가 고왔다. 뽀얀 피부 역시 단연 발군이다.
그녀의 옆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박강수가 중얼거렸다.
“철학과가 경제에 대해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어.”
무시하는 목소리에 김현아가 난감한 얼굴로 그의 팔을 건드리며 눈치를 주었다.
박강수가 그녀를 무시하며 다시 말을 내뱉었다.
“사실 그렇잖아? 해마다 상위권은 경제, 경영학과 출신이 독식했고 올해에도 다른 학과 학생은 절반을 맞춘 사람도 없었어.”
“그래도 서준이는 실제로 매매도 하고 있어. 알고 있는 지식이 달라.”
그녀의 두둔에 박강수가 안경을 고쳐 쓰며 유서준을 노려보았다.
“오호, 그래? 서준이라고 했나? 그럼 시험 잘 쳐봐라. 실전으로 다져진 실력 한번 보게.”
유서준은 짜증이 팍팍 났다. 그는 박강수가 자꾸 그를 적대시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젯밤에 이어 지금 다시 무시하는 투로 대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오기가 발동했다. 게다가 시험 역시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까다로운 문제도 있었지만 단순하게 경제 상식을 측정하는 문제도 상당했다. 학력고사 경제 과목에서 공부했던 것도 다수였다.
유서준은 슬쩍 질문을 던졌다.
“강수? 넌 이거 몇 점 받았는데? 잘 쳤나 보지?”
박강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철학과 학생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점수를 받았었지. 참고로 이번 신입생 중에 지금까지 내 점수가 제일 높았어. 너 정도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란 말이지. 그런 것을 넘사벽이라 말하던가.”
박강수의 오만한 기질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유서준은 가볍게 도발했다.
“그래? 그럼 곧 내가 제일 위로 올라가겠네?”
박강수가 가소로운 웃음을 짓더니 그를 향해 말했다.
“그럼 내기할까? 네 녀석의 점수가 더 높으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모두에게 과자 파티를 열어주지. 어떠냐?”
과자 파티란 말에 주변 학생이 콜을 외쳤다.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던 모두의 눈길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박강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 대신 네 녀석 점수가 낮으면 네가 과자를 사는 거다. 어때?”
“좋지.”
유서준 역시 물러설 수 없는지라 곧바로 응답했다.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학생 입장에선 어차피 재미였고 얻어먹을 기회였으니 당연히 흥미로워했다.
김현아가 두 사람 사이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아, 괜찮겠어?”
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열심히 시험 쳐라. 그래 봐야 결과는 마찬가지겠지만. 오늘 파산하는 거 한번 보겠네.”
박강수가 그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옮겼다.
지금까지 뒤에서 추이를 지켜보던 총무 신선영이 박강수를 불렀다.
그녀가 박강수에게 신입회원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해 뭐라고 나무라는 모습이 보였다. 곧바로 선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박강수의 모습도 이어졌다.
유서준은 곧 그들에게 관심을 끄고 시험 문제에 집중했다.
역시 주식 관련 문제는 고등학교 경제 수업만 들은 사람에게는 사실상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유서준에게는 실전 매매 경험이 있었다. 또 지난 중간고사 이후 도서관에서 주식 관련 서적 몇 권을 빌려 공부한 점도 컸다.
아무리 박강수가 경제학 전공이라 하여도 아직 실전 매매를 접해보지 않았다면, 또 일반경제학 입문 수준의 지식 정도만 갖고 있었다면 절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유서준은 내기에서 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1부 종목과 2부 종목을 구분하는 문제나 미국 다우지수 30종목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을 골라내는 문제는 주식 매매를 하지 않고 이론만 접한 사람이 풀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김현아가 한쪽 의자에 앉아 유서준이 시험 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20분은 금방 흘러갔다.
유서준은 답을 체크한 시험지를 들고 총무인 신선영에게 제출했다.
신선영이 답지를 받으며 말했다.
“사지선다형이니까 그냥 찍어도 기본은 25점이지? 올해 신입생 평균이 40점. 어떻게 생각해?”
“언론에서 항상 요즘 우리나라 대학생 경제관념이 빵점이라고 그러잖아요? 그것 감안해보면 그럴 법하기도 해요. 문제를 보니 단순하고 쉬운 문제지만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만 공부했다면 풀기 힘든 것이 많네요.”
“응, 대입 관련 문제에만 빠삭한 인간도 많으니까.”
신선영이 웃음을 지으며 유서준이 제출한 문제지를 슬쩍 훑었다.
“어떻게 생각해? 잘 쳤어? 본의 아니게 내기에 걸려들어서 고생이 많다.”
“뭘요.”
“만일 네가 지면 과잣값 절반은 내가 도움을 줄게. 첫날부터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다.”
유서준은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십여 명의 과잣값이라 해봐야 많은 금액은 아니었다. 박강수 역시 금전적으로 타격을 주겠다기보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에서 내기를 제안했을 것이다.
신선영이 웃음을 거두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신입생 평균은 40점, 신입생 중 최고점은 앞에서 밝혀진 대로 박강수이고 점수는 84점이었어. 어때? 자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