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30
138. 대박과 쪽박(3)
심정국은 5월 29일 아침에 콜 옵션을 0.46에 100개를 매수했었다. 며칠 후인 6월 7일 콜 옵션은 무려 16.00을 넘나들고 있었다.
무려 33배!
계좌의 추정 잔고는 3억 2천만 원을 찍고 있었다.
올해 들어 입은 손실액을 한방에 만회할만한 액수였다.
코스닥 매매로 대박을 쳤을 때에도 보지 못하던 숫자 3억이었다.
엄청난 금액의 계좌를 접했을 때 보통 사람이 하는 행동이 있다.
그는 모니터에 표시된 숫자의 자릿수를 확인했다. 틀림없는 억이었다. 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그는 자신의 얼굴을 꼬집었다. 현실이었다.
장 마감 직전 심정국은 고민했다.
내일이 바로 6월의 둘째 목요일인 만기일이었다. 만기 정산을 받을 것인가.
그의 머리는 98년부터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만기일 기관의 횡포를 떠올렸다. 투신과 증권으로 대표되는 기관은 만기지수를 자신의 포지션에 가장 유리한 지점에 맞추고자 현물을 동원하여 사실상 지수 조작에 가까운 횡포를 벌여왔다. 그 바람에 만기일에는 파생 근월물 거래가 마감된 2시 50분 이후부터 10분간 동시호가에서 현물 주식을 동원한 폭등과 폭락이 반복된다.
이번 6월물은 갑자기 과도하게 위로 상승하여 깨진 기관이 다수라는 소문이 꼬리를 잇고 있었다. 명동 찌라시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에서는 파생팀을 해체한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손해를 조금이라도 벌충하기 위해 만기일에는 지수를 아래로 끌어내릴 확률이 농후했다.
불확실한 모험은 피하는 게 낫다. 현재의 수익은 아직 숫자로만 난 것이다. 옵션을 청산해야 현금이 계좌로 들어온다.
여러 사정을 고려한 심정국은 만기 하루 전인 7일 종가에 옵션을 모두 정리했다.
서하나를 믿고 베팅했던 그의 무리한 옵션 매매는 무려 3억1천만 원이라는 수익을 남기고 종료되었다. 완전한 기사회생이었다.
한편 이날 유서준 역시 선물 매수 포지션을 청산했다. 이날 선물의 종가는 105.05였고 그는 1계약당 1180만 원의 이득을 보았다. 투입금액 대비 대략 2배의 수익이 났다.
1만 계약을 매수했던 그의 총 수익은 무려 1180억이었다. 신선영이 농담 삼아 말했던 테헤란 철갑상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장이 마감된 후 심정국은 흥분하여 서하나의 부사장 사무실로 뛰어갔다.
비서를 통해 서하나와 연결되는 시간이 한 시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청 길었다.
잠시 후 들어오란 허락이 떨어졌을 때야 그는 제정신을 찾았다.
이대로 뛰어들어가서 고맙다고 그녀를 껴안을 수도 없고. 음료수도 하나 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후회했다.
심정국은 스스로의 기분을 억누르며 최대한 냉정을 되찾았다. 아무리 그녀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녀 앞에서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서하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자리에 앉아 각종 결재 서류를 살피고 있었다.
심정국이 들어서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맞이용 소파로 갔다.
“오늘은 어째 안색이 좋군요? 좋은 일이 있나 보죠?”
서하나가 가볍게 인사하며 자리를 권했다.
심정국은 그 특유의 으스대는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죠? 주식에서 벗어나 선물이나 옵션을 하겠다던…….”
“그런 식으로 선물이나 옵션을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하하, 제가 누굽니까? 최근 코스닥 시장에서 다소 헤매긴 했지만 제 실력이 어디 갈까요? 완벽하게 부활했습니다.”
심정국의 음성에는 자신감과 만족감이 묻어났다.
서하나는 안심했다. 지난번에 봤을 때 심정국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고 말하던 것으로 보아선 다소 무리를 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대개 무리한 투자는 후유증을 낳는다.
심정국과 그리 친할 일은 없지만 아는 사람이 잘못되는 것보다는 잘 되는 게 낫다. 특히 그는 이곳 증권사에 계좌를 튼 손님이었으니까.
서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요즘 장이 좋죠? 그래서 무엇을 하셨나요?”
“하하, 제가 옵션의 달인 아닙니까.”
“아, 옵션 시작하셨어요? 그거 매우 위험한 것인데…….”
옵션에서 갑자기 돈을 버는 개인은 많다. 하루에도 두 배씩 뛰는 상품이 바로 옵션이니까. 오르고 내리고를 맞출 확률은 50%. 첫 투자에서 옵션으로 돈을 벌 확률도 50%다. 문제는 그런 매매가 반복될수록 점차 손실이 커진다는 거다. 결국 반 토막 나는 거래를 몇 번 반복하면 회복 불능에 빠진다. 그게 주식과 다른 파생상품의 위험성이다.
통계적으로 개인투자자는 옵션 시장에서 한 달을 제대로 버티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 옵션으로 수익이 나는 투자자는 손에 꼽을 만큼 희귀하다는 결과도 들려왔다.
“다행히 수익이 나셨나 보네요.”
“당연하죠. 느낌이 오는 방향으로 팍 찔렀더니…….”
서하나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심정국이 황급히 말을 수정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면밀하게 분석해서 투자했죠.”
“네. 그러셔야죠.”
서하나는 그의 말을 차분하게 받아주었다.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는 상대를 보니 오늘 많은 이익이 났음을 짐작하게 했다.
심정국이 그간의 매매를 결산하며 말했다.
“오늘 정산해보니 지난 코스닥에서 손해 본 거 싹 만회했습니다. 이게 다 서부사장님 덕분입니다.”
“네? 제가 왜요?”
“지난번에 저에게 앞으로 상승한다고 조언해주셨잖아요. 그래서 콜을 매수했죠.”
서하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든 것을 파악했다.
최근 주식시장은 유례없이 가파른 상승을 보였다. 10일도 안 되는 사이에 지수가 무려 30%나 상승했다. 급격한 상승이나 하락에선 옵션 매수보다 유리한 상품이 없다. 그렇게 본다면 심정국은 최적의 상품을 선택한 것이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런 운을 잡은 것도 실력이다.
심정국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드립니다.”
“아, 뭘요.”
어쨌거나 서하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한동안 껄껄 웃으며 기쁨을 가누지 못하던 심정국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네?”
“약간이나마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 술 한잔 어떠십니까?”
심정국의 표정에 간절함이 보였다.
서하나는 내심 웃음을 머금었다. 유부녀인 자신에게 대체 무슨 수작인지.
그녀는 밝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말만 들어도 감사하네요. 다만 제가 요즘 임신 중이라 술을 못해요. 잘 대접 받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놀란 심정국의 입이 벌어졌다.
서하나가 유서준의 아내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증권사에 홀로 있는 그녀를 보면 도무지 유부녀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서하나를 결혼 전의 그녀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임신이라니. 천사 같은 그녀가 산적 같은 유서준의 아이를 낳는다고?
심정국에게는 충격이었다. 결혼한 부부였으니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여전히 그에게 유서준은 이쪽 분야를 전공으로 삼지 않은 허접이었다. 반면 서하나는 자신도 우러러보는 최고의 학교에 최고의 공부를 수료한 전공자였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 결합했다는 사실이 괴로웠는데 벌써 두 사람의 아이가 태어난다니.
왠지 모를 패배가 가슴을 채웠다.
그는 쓰라린 가슴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그럼 술은 못하시겠네요. 다음에 다른 것으로 대접하지요.”
심정국은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서하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다음날 만기일은 예상대로 기관이 힘을 발휘했다. 오전에 튀어 오르는 지수를 투신, 증권은 강제로 눌렀고 마지막에도 최대한 지수를 낮추려고 노력했다. 결국 전날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서 장을 끝냈다.
6월물이 끝나자 개인투자자의 찬가가 증권 포털을 메웠다.
*
– 앗싸! 이번 6월물 대박 났음!
– 매일 가두리 양식장 경영하던 증권 놈들 개박살 났다!
– 주식 여신 서하나 만세! 덕분에 많이 묵었어요. 흑흑.
– 으흐흑 또 깡통 났습니다. 오늘 한강 갑니다. 제 계좌번호는 국민은행 ******.
– 테헤란 철갑상어라고 들어봤어? 이번에 대박 났다더라.
– 이 동네는 물고기가 왜 이리 많아? 압구정 미꾸라지 형님이 최고다!
*
난데없이 인터넷상에서 테헤란 철갑상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리저리 올라온 글을 종합해보면 홍콩 물고기는 이번에 많이 다쳤다고 했다. 압구정 미꾸라지는 꽤 쏠쏠한 성적을 거두었고 신인으로 등장한 철갑상어가 대박을 쳤다나. 물론 그 정체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테헤란로 어딘가에서 선물 옵션 매매를 하는 사람이란 정도만 알려졌다.
유서준은 테헤란 철갑상어란 닉네임이 갑자기 뜨자 깜짝 놀랐다.
이 닉네임은 지난번에 신선영이랑 둘이서 농담 삼아 대화로 삼았었다. 이게 인테넷을 떠돌고 있다는 이야기는 신선영이 인터넷 어딘가에 올렸다는 이야기인데.
“누나, 테헤란 철갑상어가 갑자기 등장했네요?”
유서준이 묻자 신선영이 대소를 터트렸다.
“우하하, 나 잘했지? 무적의 철갑상어라고 글을 하나 올렸지. 외국인 홍콩 물고기를 무찔렀다고 모두 좋아하더라.”
어느 분야나 다 마찬가지지만 외국 자본을 무찌르는 국산 토종을 대단히 환호하고 좋아했다. 98년에 T 펀드가 사실상 백기를 던지고 철수했을 때에도 개인투자자는 마치 자신의 승리처럼 자축했다.
파생시장을 휘젓는 홍콩 물고기에 대항하는 압구정 미꾸라지에 찬사를 보내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그렇다 보니 갑자기 나타난 영웅 테헤란 철갑상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어떤 자는 중동산 원유와 관련된 핫머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신선영은 만기일을 무사히 보냈다.
이번 5말 6초의 갑작스러운 상승은 유례가 드문 일이라 옵션 합성 거래자는 사실상 수익이 힘들었던 월물이었다. 대부분 옵션 합성거래자는 일 년에 한두 번 실패하고 나머지 달은 큰 수익을 얻는다. 이번 6월이 옵션 거래자가 실패하는 그런 달이었다. 만일 과다하게 합성을 구축했다면 곧바로 계좌가 거덜 났을 그런 지수 움직임이었다.
신선영은 유서준의 조언에 따라 상방으로의 위험에 미리 대비하여 콜 옵션 매도를 삼갔었기에 전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수익이 유서준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유서준이 같은 기간 한 방향으로 밀어붙여 엄청난 수익을 내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녀가 유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경이롭게 변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철갑상어 이야기는 적당히 올리세요. 수익이 크다는 것이 알려지면 개인들은 좋아하지 않죠. 특히 파생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라 제가 번 만큼 누군가는 잃었거든요.”
“큭큭, 알았어.”
유서준의 말에 신선영이 킥킥대며 웃었다.
가까스로 신선영이 웃음을 그치자 유서준이 말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마음껏 매매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제 시험적인 매매는 할 만큼 했으니 앞으로는 제대로 수익 나는 매매를 해야죠. SJ 투신 파생팀도 확장하시고 어때요?”
아직은 사실상 SJ 투신에서 파생매매를 담당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인원이 더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확대된 파생팀을 출범시키자는 말에 신선영 역시 찬성했다.
그녀는 과거 LTCM에서 구축했던 파트너 산하의 트레이딩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스카우트할만한 사람 있나요?”
“아니, 없어.”
신선영은 국내 인맥이 그리 많지 않았다. 국내보다는 미국 쪽에 더 많은 지인이 있었다.
유서준은 언젠가는 그 부분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SJ 투신은 제대로 된 자산 운용을 수행하기엔 너무 규모가 적긴 하죠. 주식이나 채권도 빠듯한데 파생팀까지 꾸리기엔…….”
유서준의 머릿속에는 각종 선물 옵션을 담당하는 파생팀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 파생팀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각종 ELS(주가연계증권) 같은 상품을 구성해서 고객에게 팔 수 있다. ELS 상품은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상품이다. 파생 활성화가 단순하게 파생상품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다.
“그 부분은 제가 SJ 투신 손달호 사장님과 이견을 조율해 보죠.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유서준의 머릿속에 그가 생각하던 증권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객의 수수료를 먹고 사는 소매형 증권사가 아닌 외국 투자은행과 유사한 투자 중심의 선진형 증권사였다. 이젠 그쪽으로 서서히 옮겨가야 할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