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33
141. 주식의 신(1)
인터넷상에 SJ 증권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 SJ 증권 뒤에 외국계 자본이 있다더라.
– 외환위기 초반에 돈 질러댈 때 알아봤어. 이번에 M 증권에 또 돈 지른다더라.
– 일본계 대부업체 자금이라고 하던데? 국내 업체 사수하자!
– 그럼 서하나가 일본인 첩이었어?
– SJ 증권 그렇게 안 봤는데 나쁜 놈이었네.
– 서하나 몸무게 얼마냐? 몸무게 공개하면 다 용서해 준다.
*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일본계 자금이 대부업체를 인수하며 급성장하고 있었다. 일본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국민 정서에 대부업체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더해져 일본계 자금이 들어간 기업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계 자금이 SJ 증권의 원천이라는 소문은 이미지에 치명타를 가했다.
특히 SJ 대주주 가운데 대부업체가 있다는 사실은 소문의 신빙성을 더했다.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에 두 사람은 대책을 고민했다.
정작 유서준은 느긋했지만 서하나는 좌불안석이었다.
서하나의 경우 방송 출연이 잦은 상태에서 이미지를 버리는 나쁜 소문은 자칫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다.
베란다 쪽에 자리한 커피 테이블에 앉아 유서준은 상념에 잠겼다.
갑자기 떠도는 소문은 분명 냄새가 났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 범인은 둘 중 하나였다. 박강수 쪽이거나 아니면 금감원 쪽이거나. 금감원 쪽이라면 분명 오도욱이 개입해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유서준은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어차피 이미지로 먹고 살 생각은 없었다. 고객을 위주로 한 증권사 소매 영업을 할 생각이었다면 이미지는 중요했다. 이미지에 따라 증권사 흥망이 결정된다. 현대증권이 바이코리아를 외친 이유도 그렇고 미래에셋증권이 박현주를 띄우는 이유도 이미지 문제다.
하지만 앞으로 투자 중심의 증권사로 옮겨갈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성과다. 투자성과가 높으면 자연히 고객이 몰리게 되어 있다. 미래에셋의 인디펜던스 펀드를 보면 명확하다.
작년인 99년에 미래에셋의 펀드는 수익률 100% 신화를 달성했다. 자연히 돈이 몰렸다.
문제는 SJ 펀드였다. SJ 펀드 역시 그 못지않은 수익률을 올렸다. 그런데도 펀드 규모가 작아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올해 2000년은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주가지수가 폭락을 거듭한다면 주식형 펀드 가운데 플러스 수익을 내는 펀드는 사실상 없을 것이다.
SJ 펀드는? 물론 SJ 펀드는 완전한 주식형 펀드는 아니다. 때로는 채권에 더 많이 넣기도 하고 때로는 파생상품을 찝쩍대기도 한다. 어쨌든 SJ 펀드는 적어도 마이너스 수익률은 아니다. 주가지수가 반 토막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플러스 수익이란 것은 사실 획기적이다. 물론 일반인의 눈을 사로잡을 수익률을 기록하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펀드 규모가 작기에 별다른 반향은 없었다.
“일단 몸집을 키워야 해.”
유서준이 M 증권의 인수를 서두르는 이유였다.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증권사 이미지가 그리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서준은 부엌에서 다과를 준비하고 있는 서하나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내를 건드리는 것은 좀 심한데…….”
본의 아니게 일본인의 첩이란 오해를 받아 속이 상한 서하나에게 미안했다. 졸지에 자신도 일본인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었지만, 그는 그리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서하나가 장미가 그려진 예쁜 잔에 커피를 두 잔 타서 가져왔다.
서하나가 그의 앞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유서준이 안색을 굳히고는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했다.
“서하나!”
“응?”
난데없이 질책 어린 목소리에 서하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커피 마시지 말랬지?”
“아…….”
서하나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눈치를 보며 투덜거렸다.
“흑, 이제 누나 소리도 안 하네.”
“커피 마시니 그렇지. 커피는 애한테 해로워.”
유서준이 서하나의 커피를 뺏으려 하자 서하나가 냉큼 커피를 사수했다.
“아, 난 커피 없으면 못 살아. 이거 하나만 마실게. 응?”
다소 애교 어린 목소리로 서하나가 말했다.
생글생글 미소를 머금는 모습이 영락없이 유서준을 홀리는 모양새였다.
유서준은 내심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아내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커피잔으로 가져가는 그의 손을 서하나가 꽉 잡았다. 그녀가 하소연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유서준의 입에서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그럼 보티첼리의 비너스 한 번 더 해, 그럼 봐준다.”
“으악.”
서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비명을 터트렸다.
그녀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 그 비너스는 대체 언제까지 구워 먹을 거야? 게다가 이젠 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해서 볼품이 없단 말이야.”
서하나는 그날이 일생일대의 수치였다고 투덜댔고 그럴수록 유서준은 그날의 일을 우려먹었다.
사실 그날이 기억에 남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대략 계산해보면 아마 그날 아이를 갖게 된 것이 아닐까.
결국 서하나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을 수 없게 된 유서준이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이번 한 번만이다.”
“넵, 우리 착한 서방님.”
서하나가 배시시 웃으며 커피잔을 입에 물었다.
한참 떠들며 놀던 서하나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괜찮겠어? 우리도 반격해야 하지 않나?”
요즘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소문이 부담스러운 기색이었다.
유서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인터넷이라 반격도 무의미해. 요즘 문제 있어?”
“방송 연예 프로그램 담당 피디가 좀 신경 쓰이나 보더라.”
그녀가 출연 중인 주말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였다.
한참 고민하던 유서준이 말했다.
“이건 모두 내가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이겠지?”
“그렇긴 하지만…….”
사실 SJ 증권의 간판으로 유서준보다 서하나가 훨씬 유명했다. 이것은 서하나가 방송에 자주 출연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었다. 한편으로는 유서준이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도 있었다. 유서준은 B 증권을 인수해 SJ 금융그룹을 설립할 때 잠시 언론에 노출된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되다 보니 그 이후로도 대외적인 창구는 가급적 서하나로 통일했다.
유서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와 인연을 맺은 극소수의 금융가 사람뿐이었고 나머지 사람에게 그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의 자금줄 또한 베일에 싸여있었다. 일본계 자금이라는 뜬 소문이 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어쨌든 이런 경우는 정면돌파가 답이야. 괜히 이리저리 피하다가 더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
유서준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대답했다.
“어떻게 하려고?”
서하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면에 나서야지 뭐. 우리가 M 증권을 인수할 충분한 여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줘야지.”
유서준은 대응방법을 떠올렸다.
상대가 치사한 방법으로 나오고 있지만 굳이 자신까지 치사해질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태클 걸든 저렇게 태클 걸든 어차피 타격받을 일은 없으니까.
**
월요일 아침에 유서준은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SJ 증권이 일본계 자금이라는 소문을 부인했다. 동시에 SJ 증권은 M 증권을 인수할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그는 자신의 현재 재산이 대략 1조 원에 육박함을 밝혔다.
인터넷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네티즌은 1조 원의 재산을 가진 유서준을 곧바로 재벌에 올렸다. 개인 자산이 이 만큼인 상황에서 SJ 증권의 자금 여력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상을 훨씬 능가하는 유서준의 개인 재산에 모두가 놀랐다. 동시에 서하나를 향해 부러움의 시선이 쏟아졌다.
일본계 자금이라는 설 역시 쑥 들어갔다.
**
박강수의 안색은 창백했다.
그는 유서준이 밝힌 재산의 규모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D 증권을 인수하고 그간의 위기를 소리 없이 돌파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꽤 많을 것이란 추측은 했었다.
거기에다 유서준의 집에서 사실상 확인했던 다이어리의 존재. 미래를 알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이점을 고려하면 그동안 번 것이 많을 것이란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1조라니!
몇백억 정도는 이해가 된다. 증권사를 인수할 정도의 재산은 될 것이라 봤으니까. 그런데 몇천억도 아니고 1조라니. 이것은 규모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1조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 현재 상장사의 시가총액 전체 규모가…….
박강수는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생각할수록 유서준에 대한 열등감만 깊어갔다.
한편으로는 앞날을 기약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2017년만 되면 자신에게도 미래를 알 수 있는 다이어리가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그의 세상이었다.
“흐흐, 최종 승자는 결국 나란 말이지.”
박강수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을 전환하며 기분을 되돌렸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오도욱이었다.
박강수는 하소연할 대상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예, 접니다.”
“유서준이 재산이 그렇게 많았어?”
다짜고짜 재산 이야기부터 들려왔다. 그만큼 오도욱의 입장에서도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저도 놀랐습니다.”
“그럼 네 녀석 작전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잖아?”
M 증권 인수건을 묻는 모양이었다. SJ 증권이 M 증권을 인수할 자본이 없다는 쪽으로 여론을 조성했다가 반대로 역풍을 맞은 모양새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박강수는 순순히 자신의 실패를 시인했다.
전화기 저편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아, 어렵긴 어렵군. 생각보다 강적이네.”
오도욱의 실망한 표정이 눈앞에 그려졌다.
박강수는 진행 상황을 다시 되새기며 머리를 굴렸다. 아직 승부가 결정난 것은 아니었다.
“형님,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또 뭐냐?”
반응이 다소 시큰둥했다.
박강수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재산이 1조라면 그에 상승하는 세금을 냈을 것 아닙니까? 사실 이 나라에 세금 제대로 내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단기간에 그만큼 벌었다면 분명 세금 쪽으로 찔리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
“세무조사를 하자는 의미냐? 외환위기 이후로 기업이 힘드니까 세무조사는 가급적 유보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냐?”
오도욱의 질책이 이어졌다.
박강수는 다급하게 다시 설명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업 말고 개인을 털자는 거죠.”
“개인?”
“유서준 개인의 세무조사로 가죠. 조세포탈 이런 죄목으로 걸고넘어지면 분명 걸리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으니까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지 대답이 없었다.
박강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무리한 조사란 역풍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신규 재벌로 부상해서 세무조사를 했다고 하면 될 겁니다. 외환위기로 재벌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으니까요.”
“좋아 그렇게 하지. 세무조사 하다 보면 하나는 걸리겠지. 내가 국세청과 검찰에 협조를 요청하지.”
박강수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야 제대로 유서준에게 타격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세무조사를 받는 유서준이 세금을 탈루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 죄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이미지만 망가지면 목적 달성이었다.
거기다 문득 떠오른 생각. 그는 대박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그는 황급히 오도욱에게 요청했다.
“형님, 세무조사 가는 김에 자택 압수수색을 한번 합시다.”
“응? 압수수색까지?”
“하는 김에 제대로 해야죠. 무엇보다 가택 수색을 하면 그 압박감이 보통이 아닐 겁니다. 형님의 힘도 과시할 겸 말이죠.”
오도욱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그럴까? 나를 거부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긴 하지. 회사를 압수 수색하는 것은 여론의 역풍 때문에 부담이 있지만 개인 자택 수색은 그리 부담 없지. 기자도 좀 동원하고.”
박강수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부추겼다.
“압수 수색할 때 개인 서재를 꼭 좀 하라고 하세요. 특히 개인의 비자금이 적힌 장부나 다이어리 같은 것은 반드시 압수해야 합니다.”
박강수는 유서준이 가진 다이어리를 이 기회에 뺐겠다는 생각을 했다. 검찰이 압수 수색해서 다이어리를 확보하면 오도욱을 통해 다이어리를 빼돌릴 것이다.
이것만 성공하면 다른 것은 모두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다이어리를 가진 박강수 자신의 것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