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36
144. 주식의 신(4)
주가지수가 맥을 못 추며 내려가는 동안 코스닥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사실상 소생 불가능한 시장으로 바뀌었다.
그런 가운데 M 증권을 인수한 SJ 증권은 순항했다. M 증권 인력의 상당수를 SJ 투신에서 흡수하여 자산 운용 부분의 규모를 키웠다. M 증권의 지점은 SJ 증권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M 증권 인력의 구조조정은 사전에 노조와 협의한 대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됐다.
SJ 증권은 이제 중소형 증권사를 넘어 대형 증권사 초입에 들어섰다.
유서준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한동안 계속됐다.
주식시장이 얼어붙을수록 그에게 시황 전망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었다. 그는 그런 요청을 정중히 사양했다. 한두 곳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다 보면 점점 늘어나게 되고 그것이 다이어리에 적힌 미래를 왜곡할 확률도 커지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다이어리에 적힌 2016년까지 그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미래가 바뀌지 않는 편이 유리했다. 또 2017년 이후 제대로 자립하기 위해서 그때까지 실력을 키우려면 SJ 증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이어리의 내용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유리했다.
유서준의 경우 원래부터 그런 인터뷰를 삼갔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서하나는 달랐다.
유서준과의 인터뷰가 막히자 언론에서는 서하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녀의 경우 그동안 방송에 출연해왔었고 지금도 출연하고 있기에 그녀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식 시황이나 종목을 알아내려는 시도가 자주 발생했다.
서하나는 그것을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돌파했다. 원래 주식시장을 보는 뛰어난 직관을 가진 그녀였기에 그리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 점차 줄어들었다.
배가 불러오면서 자연적으로 그녀는 방송 출연을 중단했다. 출산 준비를 해야 했다.
점차 대중의 관심이 수그러들었다. 관심이나 인기란 것은 한방에 불타올랐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보여주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00년 크리스마스 이브. 서하나는 자신을 닮은 예쁜 공주님을 낳았다.
**
[2000년 12월 26일]주식시장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납회일을 맞았다. 새천년 첫해의 증시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썰렁했다.
종합주가지수는 일 년 동안 -50.9% 하락하여 정확히 반 토막 났다. 504.62로 500선을 겨우 지켰다는 점에 만족해야 했다. 코스닥지수는 무려 -79.5% 폭락하며 52.58이라는 사상 최저치로 한해를 마감했다. 환율 역시 오름세를 보여 98년 7월 이후 2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1254원을 기록했다. 여러모로 우울한 한해의 마감이었다.
두 시장을 합친 시가총액은 215조로 올 한해 무려 232조 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가운데 적어도 100조 이상의 개인 돈이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작년에 개인이 벌었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날 밤 유서준은 강남의 한 카페에서 친구와 어울렸다.
김동식과 김현아. 주식 동아리 동기들이었다.
“강수는 오늘 못 온다네.”
김현아가 대신 전했다.
그녀는 요즘 학교에서 잘 나가고 있었다. 학교 강의는 순탄했고 학생에게 인기도 많았다. 새로운 분야를, 그것도 돈이 되는, 취업에 연관되는 강의를 하는 덕에 항상 만원이었다.
그녀가 굴리는 학교 적립금 펀드 역시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99년 마지막은 당연히 성적이 출중했고 2000년 하락기에도 유서준의 조언에 따라 몸을 사려 적절히 피해 나갔다.
특히 그녀가 덕을 보았던 부분은 옵션 매도였다.
콜 옵션과 풋 옵션은 행사가 가능한 등가 옵션이 가격 프리미엄이 크고 행사가 어려운 외가로 갈수록 싸진다. 어차피 만기일이 되면 휴지가 되어 사라질 녀석이기 때문이다.
만기일이 다가오면 사실상 휴지가 되어버린 이런 옵션이 외가에 수북이 쌓인다. 그 가격은 옵션 최저가인 0.01 내외다. 즉 천 원에서 이삼천 원이었다.
이런 옵션을 매도하면 만기일 날 천 원씩 벌게 된다. 만기일 직전 극도로 주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런 옵션은 사실상 거저먹기였다.
충분한 증거금을 확보하고 있는 학교 기금은 이런 옵션을 매도하기에 유리했다. 김현아는 극외가 옵션을 매도했고 여기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천 원이지만 수량이 많았다. 주식 하락분을 만회할 충분한 수익이었다.
주가 하락으로 고통받는 올해에도 그녀가 플러스 수익을 달성한 것은 바로 이 극외가 옵션 매도 때문이었다.
유서준은 웃으며 그녀에게 조언했다. 물론 그가 이론 전문가인 그녀에게 조언할 위치에 있을지 의문이긴 했지만.
“극외가 옵션 매도 너무 좋아하지 마라. 그러다 한번 큰코다치니까.”
“알고 있어. 이건 대박을 노리는 개인의 무모함을 이용한 거니까. 어쨌든 수익은 쏠쏠하네.”
김현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적립금 수익률이 높아 매우 고무된 상태였다.
김현아가 함박웃음을 짓는 반면 김동식은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작년에 코스닥에서 많이 벌었다고 자랑했던 그는 올해 그 수익을 모조리 반납했다. 그나마 돈이 없어서 그 정도에 그쳤지만 만일 돈을 더 갖고 있었으면, 아니 아내가 말리지 않았었다면 더 큰 사고를 치지 않았을까.
“그게 말이지, 대박 종목이 나만 피해가더라고.”
김동식이 툴툴거리며 이야기했다. 올 한해 그의 주식 인생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2주일 연속 상한가를 맞았다가 2주일 연속 하한가를 맞기도 했다.
벌고 잃고를 반복하다가 남은 것은 빈손뿐이었다.
그렇게 상반기를 보내다가 그 역시 코스닥 시장이 회생 가능성이 없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10년간 주식시장에서 보냈던 그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김동식은 작전을 바꾸었다.
그는 과감히 모든 주식을 팔아치우고 파생상품으로 뛰어들었다. 마침 파생상품 개시증거금이 1500만 원으로 낮아졌다. 개인이 무리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처음 접하는 선물 옵션은 신세계였다. 오르내림이 심한 코스닥 종목보다 이것은 더 어지러웠다. 하루에 서너 배도 운 좋으면 벌 수 있었다. 반대로 하루에 서너 토막 나는 일도 우습게 벌어졌다.
결과는 다른 사람과 큰 차이 없었다. 순식간에 그는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투자자 가운데 99% 이상을 무덤으로 보낸다는 이 세계의 법칙을 그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게 말야, 옵션 가격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쉽게 벌 것 같던데 막상 해보면 너무 어려워.”
김동식이 투덜댔다.
그는 타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맥주를 기울였다.
유서준은 그의 일대기를 들으며 한숨만 내쉬었다. 올해 쪽박을 찬 투자자가 많다는 뉴스를 자주 접했는데 그 당사자가 바로 자신의 절친이었다.
“파생상품에서 돈을 버는 것이 주식보다 훨씬 어려워. 그런데 어쩌다 옵션을 시작했어?”
김현아가 질문을 던졌다.
김동식이 슬그머니 유서준의 눈치를 봤다.
유서준은 금방 그 전말을 파악했다. 분명히 강재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강재민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올해는 주식에서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선물이나 옵션으로 권유를 받았겠지.
김동식이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 그냥.”
유서준이 보기에 김동식과 강재민은 서로 간에 그리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김동식이 불리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유서준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하나 누나는 건강해?”
곧바로 유서준의 득녀 이야기로 넘어갔다.
“응, 무사히 잘 낳았어. 난 나 닮은 남아를 낳을 것 같아서 얼마나 걱정했던지. 하나 누나를 닮은 여아라서 다행이지.”
유서준의 대답에 두 사람이 킥킥거렸다. 유서준을 닮은 산적 같은 아이가 상상되는 모양이었다.
유서준이 손을 내저었다.
“말 마라. 꿈에 나타날 때는 정말 심각했다.”
“그런데 너 오늘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냐?”
김현아가 그에게 물었다.
유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난 어제 크리스마스에도 온종일 거기에 있었어. 지금은 장모님께서 계시지. 오늘만은 나도 자유다.”
“애 이름이 뭐야?”
“세라. 유세라.”
유서준의 딸 이름은 유세라였다.
“이제 애 아빠가 되었으니 더 많이 벌어야겠네?”
김현아가 놀리듯 말했다.
김동식이 투덜거렸다.
“이 자식은 벌써 엄청 벌어놨는데 뭘 더 벌어? 자산이 얼마라고 하더라? 뉴스에 난 것 보니 1조라던가…….”
“나도 그 뉴스 보고 깜짝 놀랐어. 언제 그렇게 벌었대?”
김현아도 가세했다. 화제가 유서준 개인에게로 넘어갔다.
유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미소만 지었다.
“하여간 이 자식은 난 놈이라니까. 너만큼 젊은 나이에 그렇게 자수성가한 놈이 어디 있겠어?”
“많을걸?”
유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사실 없지는 않았다. 밀레니엄 기간 벤처 붐이 일면서 수많은 벤처갑부를 탄생시켰으니까. 미국만 해도 야후나 아마존 창업자를 비롯하여 무수히 널렸다. 국내에도 엔씨소프트나 넥슨, 다음 등 꽤 많았다. 밀레니엄 기회는 그 시기를 잡은 사람에게 큰 기회를 주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옛말이 맞았다.
김동식이 피식 웃으며 투덜거렸다.
“나라면 1조 갖고 있으면 세계 일주 여행하고 맛있는 거 사 먹고 또 뭐 할까…… 미녀 옆에 끼고…… 하여튼 그런 것 할 거야.”
“그러니 돈이 네 옆에 가길 싫어하는 거야.”
김현아가 핀잔을 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모였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묻고 있었다.
유서준은 특별하게 그런 부분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오로지 먼 훗날 있을 자신의 자살을 막기 위해 뛰어왔다. 그러다 보니 돈이 불어난 것이다.
아직 멀었다. 이 정도로는 국가의 위기인 외환위기를 해결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과연 얼마나 필요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냥 막연하게 많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만 할 뿐.
1조를 넘어서면서 사실상 돈을 굴리는 것도 만만찮아졌다.
이제는 그 많은 돈을 굴리게 되면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던 미래가 바뀔 수밖에 없다.
이번에 그란 존재가 대외적으로 완전히 노출된 것만 봐도 그렇다.
한때 10조를 목표로 잡았던 적이 있었다.
아직 목표지의 1/10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계속 더 노력해야 함을 의미했다.
거기에다 외환위기의 본질을 고려하면 돈만 많이 모은다고 될 성질이 아니었다.
외환위기란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지만 가장 단순히 생각하면 외화, 즉 달러의 부족이다. 즉 외환위기 때 원화는 사실상 큰 역할을 할 수 없다.
지금 그가 1조란 돈을 모았고 이 돈을 현재의 환율로 계산해서 몇 달러라고 평가하겠지만 이것은 평소에나 가능하다. 위기가 발생하면 지난 외환위기에서 드러났듯이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위기에서는 달러 가치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유서준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국내에서 투자 중심의 증권사를 설립하려 애썼다. SJ 투신을 키우기 위해 애썼고 M 증권사도 그 때문에 인수했다.
앞으로는 방향을 해외로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외국의 투자은행은 국내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선진 기법과 자본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외국 투자은행과 대적 가능한 기업을 해외에 세워야 훗날 외환위기에서 진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유서준은 다이어리의 내용을 더듬었다. 딱히 뚜렷한 방향은 보이지 않았다. 연구가 필요했다.
“무슨 생각해?”
김현아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서준을 툭 쳤다.
“아, 아니.”
유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옆에서 김동식이 핀잔을 주었다.
“아니긴 뭐가 아냐. 그 돈으로 어느 나라 미녀를 후려볼까 그런 고민 했잖아?”
“응? 서준이도 그런 고민해?”
김현아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유서준은 웃음을 터트렸다.
“내 주제에 무슨 미인…….”
그의 변명이 두 사람에게 막혔다.
“하나 언니도 미인이야.”
“흐흐, 지금은 돈 버느라 정신없어서 그래. 조금 지나봐, 미인 찾아 돌아다니지.”
김동식이 킥킥대며 중얼거렸다.
“자, 그런 말 하지 말고 맥주나 마저 마시자.”
유서준이 잔을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유서준은 김현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정대로라면 김현아는 내년 9월 죽음을 맞게 된다. 그것이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죽게 되고 이 슬픔을 이기지 못했던 그는 한평생 결혼을 포기하게 된다. 이게 바로 미래에서 온 다이어리에 흔적이나마 나와 있는 내용이다.
비록 지금 그는 예전과 달라져 서하나와 결혼했고 예쁜 딸도 하나 두게 되었지만 그렇더라도 김현아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의 눈빛이 애틋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