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4
14. 주식투자연구회(2)
박강수의 점수는 생각보다 높았다. 84점이면 50문항 중에 8개를 틀렸다는 말이 된다. 유서준은 잠시 자신이 풀었던 문제 중에 애매했던 것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그 역시 비슷한 숫자를 틀릴 확률이 높았다.
“저도 비슷할 것 같은데요?”
유서준이 대답하자마자 주변의 시선이 몰렸다.
“와아, 서준이 대단하네. 역시!”
김현아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신선영이 김현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아가 올해 두 번째 고점자였어. 점수는 80점.”
유서준은 김현아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응? 잘하네?”
“난 경제 전공이니까.”
김현아가 유서준의 물음에 손을 내저었다.
신선영이 붉은 색연필로 채점을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김현아는 동그라미와 사선이 그어질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박강수는 마치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아니 당연히 자신이 이길 것처럼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40문항을 채점했을 때 틀린 개수는 5개였다. 상당히 잘 친 수준. 지켜보던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유서준을 살폈다.
“그래도 뒷부분 문제가 더 어려우니까.”
아직은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46번 문항에서 유서준은 다시 틀렸다. 틀린 것은 모두 여섯. 88점. 남은 문항은 4문항.
붉은 색연필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 50번 문제 역시 틀렸다.
“아!”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유서준의 최종점수는 86점. 올해 신입생 최고 점수였다.
“서준아, 네가 이겼어.”
김현아가 유서준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녀는 자기 일인 것처럼 좋아했다. 손으로 엄지를 세워 보였다. 유서준은 담담한 미소만 지었다.
한쪽 옆에선 박강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총무 신선영이 박강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자, 매점 갔다 와. 먹을 것 많이 사 오고.”
“으으…….”
박강수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유서준을 노려보고는 곧바로 사라졌다.
신선영이 그 모습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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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5월 31일]1987년 5월의 주식시장은 호황을 지속했다. 4월의 조정 장세에 반발한 매수심리가 강화되면서 주가는 오름세를 보였다. 5월의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30일 토요일의 주가지수는 387.99로 전달 대비 29.36포인트, +8.2% 상승했다.
이 기간 유서준의 매매 역시 눈부셨다. 마법 다이어리를 이용하여 그는 건설, 은행주가 주도주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종합지수마저 상승하는 시기여서 사실상 그의 매매는 실패가 불가능했다. 그는 주도주 위주로 매매를 벌여 한 달 동안 대략 75%에 달하는 이익을 거두었다. 계좌의 잔고 역시 이번 달 들어 받은 과외비를 새로 넣어 100만 원을 넘어섰다.
금액이 100만 원을 넘어서니 역시 이전과 달리 매매할 맛이 났다. 이젠 1%만 벌어도 1만원의 수익이다. 한차례 매매할 때마다 계좌가 불어나는 기분이 남달랐다.
“천만 원을 넘어서면 어떻게 될까?”
그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매우 기분 좋은 일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산 다이어리에 총자산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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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5월 31일, 총자산 11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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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월 1일 자 다이어리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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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일 월요일, 주가지수 387.44. 오늘 동아건설을 전날 대비 100원 오른 10300원에 매수했다. 최근 장세는 주가지수 400 근처만 가면 여지없이 두드려 맞고 하락하는 장세가 계속되고 있다. 주도주인 건설주를 사서 주가지수가 400 부근에 가면 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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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매수의 결과는 6월 10일에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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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0일 수요일, 주가지수 389.54. 며칠째 390선을 반복해서 등락하고 있다. 1일 매수한 동아건설 주식은 별반 재미를 못 보았다. 오늘 종가인 10800원에 매도했다. 한주당 500원인 +4.9% 수익이다. 수수료와 세금을 제하면 4%에 채 못 미친다. 작지 않은 수익이지만 지난 1일 함께 고려했던 한보종합건설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한보는 그동안 무려 1090원이나 상승하여 주가대비 +23.7% 상승했다. 찍어도 꼭 반대편을 찍는다. 아쉽다.
한편 오늘 주식을 판 이유는 시국이 수상해서이다. 지난 4월에 발표된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선언 이후 시위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오늘 대자보를 보니 6월 9일이었던 어제 시위 도중에 최루탄을 맞아 연세대 대학생이 사망했다고 한다. 학생회에서는 기말고사를 거부하고 시청으로 원정 시위를 독려하고 있다. 평소의 교문 앞 시위가 시청으로, 또 대학 간 연합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시국이 불안하다. 오늘 학과 내에서도 시험거부 및 시위 참여 토론회가 열렸다. 당분간 대외적인 영향으로 주식시장이 오름세를 타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다소 긴 내용의 일기였다.
유서준은 다이어리의 내용을 반복해서 읽었다. 주식투자는 이미 결정했다. 5% 오르는 동아건설을 매수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옆에 무려 23% 상승하는 한보종합건설이라는 주식이 있었으니까. 물론 중동에서 엄청난 실적을 거두는 대형건설사인 동아건설에 비해 국내에서 아파트를 짓고 있는 한보건설은 기업 규모 면에서 비교 불가하다. 하지만 주가 움직임은 그런 것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이미 뼈저리게 배웠기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일기의 다른 내용에 더 관심이 갔다.
“기말고사 거부라고? 시청으로 원정 시위?”
이게 무슨 내용인지 얼떨떨했다. 뭔가 평소와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의미였다. 지금까지 주가와 상관없는 일이 일기에 적혔을 때 대부분 매우 특별했다. 사실 그 중 상당수는 개인적인 일이었고 시국과 관련해서 이처럼 장문이 적힌 것은 처음이었다.
다가오는 6월은 이전과 다른 일이 벌어질 것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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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주가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종합주가지수는 400바로 아래에서 오르락내리락 횡보를 거듭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건설주는 강세 기조를 유지했다. 그가 매수한 한보건설은 다른 건설주에 비해서 유독 잘 나갔다. 계좌에 돈이 쌓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6월 9일 밤, 저녁 종합뉴스 시간에 낮에 있었던 학생시위가 등장했다. 학생시위는 연일 계속되었지만, 주요 뉴스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날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전경과의 대치 상황에서 한 학생이 크게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연세대 정문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전경이 직격한 최루탄을 맞아 경영학과 학생 한 명이 위독한 상태라 했다.
유서준은 이 소식이 일기장에 있던 바로 그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예상대로 기말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비상시국회의가 교내 아크로 광장에서 열렸다. 동시에 학과 내에서도 기말고사 시험거부 투표가 진행되었다. 당연히 학교 행정당국에서는 기말고사를 치지 않을 경우 모두 학점을 F로 처리한다는 경고가 나붙었다.
유서준네 철학과에서는 열띤 토론 끝에 시험거부로 결론이 났다. 거기에다 그날 저녁 시청으로 원정 시위를 강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오후가 되며 정문 앞은 최루가스로 덮였다. 학교 밖으로 나가 시위를 하려는 학생과 이를 막으려면 전경이 진을 쳤다. 정문을 뚫으려는 일진이 화염병으로 격렬하게 대치하는 동안 주요 시위대는 후문을 이용하여 일반 학생과 섞여 밖으로 진출했다. 학생 시위대의 목표지는 시청이었다.
시험거부에 돌입하면서 학과 학생에게도 단체 행동이 요구되었다. 모두가 함께 이동하여 시청으로 갈 것을 요구받았다. 유서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시청 앞은 북새통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부분 학교에서 대학생이 참가했다. 예상 밖으로 일반 직장인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유서준은 입학 후 그날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오후 6시를 기해 전국에서 일제히 시위에 돌입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전투경찰과 대치를 한 상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데모가를 열창했다.
“…… 산 자여 따르라.”
4.13 호헌조치 무효를 외치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고자 최루탄이 발사되고 이를 항의하는 투석과 화염병이 난무했다.
거리는 전쟁터로 돌변했다.
시청 시위에 참여했던 유서준은 시위대와 함께 호텔 뒤편으로 쫓겨났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전국 22개 도시에서 시위가 발발했다고 했다. 또 민주당 김영삼 총재가 직접 나서 시위대를 독려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시위대가 을지로와 충무로의 파출소로 진격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여당이었던 민정당 지구당사를 습격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모든 것이 혼란 그 자체였다. 학과 학생과 시위에 참여했던 유서준은 전경에 쫓겨 흩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벗어났다. 메케한 최루가스가 가득한 거리에는 투석한 돌멩이가 곳곳에 널려있었다.
진압하는 전경을 피해 주변 골목으로 대피하는 길목에서 유서준은 김현아를 만났다. 머리를 질끈 묶은 그녀는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골목 안으로 대피하며 대화했다.
“어? 서준아, 너도 시위하러 왔네?”
그녀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유서준은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학과에서 모두 참여하라고 결의해서 말이야. 너네도 그렇지?”
“응. 우리 경제학과에서는 기말시험을 거부하고 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의했어. 너네도 마찬가지지? 인문 사회대 쪽은 대부분 그런가 보더라. 이공계 일부 학과를 빼면 대부분 시험거부야.”
김현아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유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우리는 오늘 오전까지 정상적으로 시험을 쳤어. 하지만 내일부터는 전면 거부야. 이번 학기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뭐, 다 같이 안 치면 어떻게 되겠지. 그보다 친구 하나가 전경한테 끌려갔는데 무사한지 모르겠다.”
김현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실 시위 과정에서 다치거나 연행되는 일은 다반사였다. 대부분 다시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다음날 바로 풀려났지만 여러 번 상습적으로 걸리면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구속된 학생이 각 학과마다 한둘은 있었고 그런 경우 그 학과 학생은 더욱 격렬하게 시위에 동참했다.
두 사람은 골목길 담벼락에 숨어 상황을 주시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시위는 시위대가 도로 이곳저곳에서 게릴라전으로 산발적 시위를 벌이면서 다시 격렬하게 바뀌었다. 이곳저곳에서 ‘오월의 노래’를 비롯한 각종 데모가가 퍼져나갔다. 전경 무리가 쫓아가면 시위대는 곧 해산하며 숨바꼭질을 했다.
“을지로로!”
누군가에게서 행동지침이 떨어졌다. 시위대로 보이는 학생과 회사원의 이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유서준 역시 김현아와 함께 시위대를 뒤따라갔다.
“학교 정문에서 대치하며 시위할 때랑은 많이 다르네.”
김현아가 헉헉거리며 중얼거렸다.
유서준은 시위 참여가 처음이었지만 그 차이는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의 시위는 대치가 길었고 서로 간에 밀고 밀리는 한계선을 어느 정도 그어놓은 듯 암묵적인 합의 하에 행해졌기에 위험도가 낮았다. 반면 도심에서의 시위는 일반인과 뒤섞여 난장판이었다. 전선 역시 곳곳에 형성되었다가 곧 사라지곤 했다. 시위 역시 훨씬 격렬하고 조직적이었다. 방심하면 어느 곳에서 전경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다.
“나름 흥미롭기도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 치고 시위에 한 번 참여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서준 역시 오늘 확실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따다따땅!
근처에서 최루탄 발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두 사람은 쿵덕거리는 가슴을 쓸어안고 황급히 뛰었다.
“악!”
뒤에서 따라오던 김현아가 비명을 질렀다.
유서준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김현아가 발을 삐어 휘청거렸다. 그녀의 안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유서준은 그녀를 부축했다.
“조심해서 걸어봐.”
“내가 운동에 좀 둔한 편이라…….”
김현아가 투덜거리며 아픔을 삼켰다.
다행히 쫓아오는 전경 무리는 없었다.
유서준은 쩔뚝거리는 그녀를 부축하며 시위대 흐름에서 벗어났다. 주변 건물 내부 계단으로 데려간 다음 계단에 걸터앉았다.
“신발을 벗어봐.”
김현아는 오른쪽 신발을 벗고 발목을 주물렀다. 그녀의 표정이 고통을 호소했다.
유서준은 그녀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꾹꾹 누르며 일단 아픔을 덜어주었다. 새하얀 양말이 정말 예쁘게 느껴졌다.
김현아가 양말을 반쯤 내렸다. 빨갛게 부어 있는 발목이 드러났다.
그는 그녀의 발목을 정성스럽게 마사지했다.
김현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젠 괜찮아.”
“파스라도 사 올까?”
유서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간 떨어진 곳에 약국이 보였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냉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