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40
148. 폭락의 여파(1)
12시에 주식시장이 개장되자 곧바로 매물이 쏟아졌다.
폭락과 함께 현물시장과 선물시장에 모두 서킷 브레이커(과도한 폭등 또는 폭락으로 인한 매매거래 일시중지)가 걸렸다. 국내 증시에서 현물 선물 동시 서킷은 사상 세 번째였다.
서킷 이후에도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겁에 질린 자는 주식을 내던졌다.
대다수 종목이 하한가를 맞은 가운데 선물 역시 하한가를 기록했다. 반면 풋 옵션은 상한가를 기록했다. 옵션이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사실 옵션에 상한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던 자도 없었다. 그만큼 옵션 상한가는 낯선 현상이었다.
이 무렵 주식은 상하한가 폭이 15%였다. 반면 선물은 그 폭이 10%였다. 이 차이 때문에 오늘 문제가 발생했다.
주가지수가 -10%보다 많이 떨어지면서 폭락했지만 선물은 하한인 -10%에 걸려 더 떨어지지 못했다. 현선물 베이시스(코스피 200지수와 선물지수의 차)가 백워데이션(선물지수가 낮은 현상)이었던 평소와 달리 콘탱고로 전환했다. 즉 선물지수가 더 높은 상태로 반전한 것이다.
평소에 이런 상태가 되면 프로그램 매수가 유발된다. 비싼 선물을 팔고 싼 주식을 자동으로 매수한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없었다. 선물이 하한가라 선물을 더는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사실상 거래 불능 상태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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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제 빌렸던 20만 원으로 샀던 풋 옵션 62.5가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수업시간 종이 쳤건만 그는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것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얼마야…….”
눈을 비비며 잔고를 확인했지만 뒤에 붙은 0을 세기도 힘들었다.
어제 단돈 일천 원이었던 풋이 오늘 현재 상한가를 쳤다. 현재가는 무려 50만5천 원.
504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의 일생에 이런 일이 있었던가.
그의 계좌에 적힌 잔고는 20만 원에서 1억 100만 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법도 이런 마법이 없었다. 하루 자고 일어났더니 20만 원이 200만 원도 아니고 일억으로 바뀌었다.
한참 동안 입만 벌리고 정신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던 그는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냈다.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됐다.
“서…… 서준아, 지금 풋 옵션 62.5 상한가 맞냐?”
“이 자식아, 너 아직도 옵션 하냐? 내가 하지 말랬지?”
유서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김동식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게 아니라 내가 어제 풋 옵션을 조금 샀는데 그게 지금 난리도 아니네. 어떡하냐?”
“어떡하긴. 무조건 팔아야지.”
김동식은 다시 눈을 모니터로 돌렸다.
상한가에 딱 멈추어서 상한가 매수 잔량만 쌓이고 있었다. 지금 기세를 보니 내일 또 오를 것만 같았다.
“내일 또 오르면 어떡해?”
외가 옵션은 오름폭이 기하급수적이다. 다시 말해 이차곡선 같은 모양을 그린다. 내일 하루 더 대박을 치면 오늘 잔고 1억이 10억 이상으로 바뀔 것이다.
그는 욕심이 났다. 지금 이 시각 완전한 인생 역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제대로 된다면 주식에서 손해 본 것을 만회하고 마누라 앞에서도 힘을 줄 수 있었다.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전화기에서 유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식아, 나를 믿어라. 내일은 그거 휴지 된다.”
김동식의 손이 덜덜 떨렸다. 어쩌다 보니 남들은 꿈조차 꿀 수 없는 500배란 환상의 숫자를 맞았지만 고민은 더 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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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준은 모니터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 풋 옵션 62.5가 전날 대비 500배나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사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은 뭘까. 파생은 주식과 다르다. 주식은 비싸다고 생각하면 사지 않으면 된다. 선물이나 옵션은 그렇지 않다.
어제 이 풋 옵션을 단돈 천 원에 매도 친 사람은 지금 무조건 포지션을 정리하려 할 것이다. 즉 이 옵션을 매수해야 한다. 아니면 곧바로 증거금 부족에 걸려 내일이면 강제 매매를 당하기 때문이다. 즉 마진콜이다.
또 극히 희박한 확률이지만 내일도 이 옵션이 오르면 그 오름폭은 오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오늘은 집을 팔아 손실을 메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일은 빌딩을 팔아야 가능하다. 그러니 무조건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저 옵션에 코가 꿰인 증권사 파생팀이 그런 심정일 것이다. 오늘 손실은 그냥 큰 손실로 묻어버리면 된다. 내일 다가올 손실은 증권사가 파산해도 감당 불가능한 손실로 커질 것이다. 그러니 일단 위험을 줄이려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리하려면 무조건 옵션을 사야 한다. 그런 움직임이 풋 옵션을 상한가로 끌어올렸다.
이것이 파생상품의 무서운 점이다.
유서준은 자신의 계좌를 살폈다.
어제 샀던 풋 옵션이 모두 엄청나게 올라있었다.
풋 옵션 65는 53배가 났고, 풋 옵션 62.5는 504배, 풋 옵션 60은 300배가 났다.
그는 냉정하게 모든 옵션을 정리했다. 아니,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포지션을 뒤집었다. 살 사람이 줄을 서 있으니 매수분을 매도로 뒤집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풋 65를 정리한 돈이 5130억, 풋 62.5가 504억, 풋 60이 300억이었다. 약 100억을 투자하여 하룻밤 사이에 대략 6000억으로 불렸다. 선물 매도분까지 합하면 거의 7000억을 벌어들였다.
그는 이 돈을 이용해서 풋 옵션 60을 대량 매도했다. 다이어리에 적힌 지수로 유추해보면 내일 만기 정산 때 이 풋 옵션은 휴지가 된다. 오늘 30만 원짜리가 내일은 0원이다.
다른 이는 이 풋 옵션이 내일 더 오를지 몰라 겁이 나서 매도칠 수 없지만, 내일의 가격을 알고 있는 그는 겁이 날 리가 없었다.
그는 대략 500억 원에 달하는 풋 옵션 60을 매도했다. 남이 보면 미쳤다고 할 만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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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수는 주가의 흐름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샀던 풋 옵션이 대박을 쳤다.
해솔 증권 파생팀에서도 고맙다는 전화가 정신없이 왔다. 그가 미리 정리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해솔 증권 역시 큰 난국에 봉착했을 것이다.
어제 그가 산 풋 옵션은 모두 2만 계약. 그 2천만 원이 지금 현재 100억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지난번에 자신이 손해 보았던 액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갚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해솔 증권에서 손해 보지 않은 것만 몇백억은 될 테니까.
그의 입가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걸 어쩐다?”
그 역시 이 풋 옵션을 정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여기까지는 다이어리를 유추해서 잘했다. 문제는 다이어리에 내일인 13일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그는 유서준이 부러웠다. 다이어리를 갖고 있는 유서준은 분명히 13일의 움직임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만일 내일도 풋 옵션이 대박을 친다면 국내에 살아남을 증권사는 없다. 이것으로 추정해본다면 내일은 어떤 식으로든 주가를 끌어올리려고 기를 쓸 것이 확실했다. 즉 이성으로만 따지면 내일은 풋 옵션 대박이 없다.
하지만 감성은 다르다. 무려 500배란 대박을 맛본 뜨거운 피가 다시 유혹했다. 풋 옵션을 정리해서 이익을 현실화시키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맞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동식이냐?”
“아, 강수! 오랜만이네. 어쩐 일이야?”
그가 선택한 자는 김동식이었다. 유서준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친구.
박강수는 슬쩍 말을 꺼냈다.
“너 요즘도 옵션 하냐?”
갑자기 김동식의 음성이 흥분에 젖어 높아졌다.
“우와, 말 마라. 오늘 대박 났다. 내 생애 이런 일도 있네.”
“축하한다. 그래서 정리했어?
“서준이가 욕심부리지 말고 무조건 정리하라는데 어떡해야 하지?”
딩동!
묻지도 않았는데 정답이 튀어나왔다.
무조건 정리하라고 했다면…….
박강수는 자신이 예상하는 바와 같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눈 다음 전화를 끊었다.
“내일은 오를 게 확실하군. 적어도 오르지 않더라도 내리진 않아.”
박강수는 조금도 주저 없이 보유한 100억대의 풋 옵션을 모두 정리했다.
이제 그의 생각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바로 김현아였다. 애초에 911 테러를 숙고했던 이유도 김현아 때문이었으니까.
그는 해솔 증권에 맡겨져 있는 대화대학교 적립금 계좌 현황을 열었다.
김현아의 옵션 포지션. 이미 그가 짐작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난리가 났다. 최악이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1억가량을 벌기 위해 만기일을 앞두고 콜 옵션과 풋 옵션을 매도했다. 콜옵션은 어차피 휴지가 될 것이니 고려 대상이 아니지만 풋 옵션이 문제였다.
평소라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이 포지션이 911 테러로 인해 상황이 급변했다.
그녀가 가진 옵션 포지션은 풋 옵션 62.5, 4만 개 매도, 풋 옵션 60, 4만 개 매도.
어제 종가로 따지면 불과 8천만 원. 그런데 그 옵션의 가격이 현재는 각각 202억과 120억. 즉 322억이었다. 그녀는 매도 포지션을 갖고 있었으니 불어난 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현재 대화대학교 적립금 운용 규모는 대략 1000억. 그중 김현아가 관리하는 주식 부분은 약 200억. 그 주식 운용금을 다 넣어도 손실 322억을 막을 수 없다. 채권에 들어 있는 800억 원으로 일단 막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녀는 현재 322억의 손실을 보고 있다. 만일 내일 하루 더 주가가 내린다면? 대화대학교 적립금 1000억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 그전에 증거금 부족으로 마진콜이 먼저일 것이다. 내일 아침 이 계좌는 강제 정리매매를 당할 것이고 장부상의 지금 이 손실은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김현아 그녀로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안고.
그의 눈에 겁에 질려 안절부절 못 하는 김현아가 눈에 선했다.
“이제 슬슬 살려달라는 전화가 올 때가 되었는데…….”
물론 그에게 전화가 와봐야 그가 살려줄 방법은 없다. 기껏 마진콜을 미루어주는 정도가 전부다.
어쨌든 박강수는 김현아가 벼랑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아마 지금쯤 정신이 없겠지.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떻게든 수습해보려 할 테고…… 그 첫 번째 방법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상담하려 할 것이다. 그때 나는 그녀에게 적당히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녀는 절대 나의 손을 거절하지 못한다. 무려 300억이다. 그녀가 일평생 받을 대학교수 월급을 다 모아도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니까.”
박강수는 다이어리에 적혀있던 글귀를 떠올렸다.
*
어쩔 수 없이 김현아는 박강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그날 밤 박강수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추측해보면 김현아는 그날 도움을 받는 대가로 박강수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후 자살했다.
*
다이어리에 따르면 오늘 밤 김현아는 이곳으로 방문할 것이다.
그는 잔인한 웃음을 터트렸다.
“도움을 받는 대가라…….”
그가 줄 수 있는 도움은 뻔했다. 마진콜을 미루어주는 것이거나 아니면 포지션을 오늘 종가에서 해소시켜 주는 것. 이 가운데 포지션 해소는 내일 유서준의 예상대로 주가가 오른다면 오히려 독이 된다.
그 둘 가운데 어느 것을 들어주더라도 그에게 손해될 것은 없었다.
그는 그녀를 위하는 척하며 부탁을 들어주면 된다.
“흐흐, 말할 수 없는 수모? 대체 뭘 했다는 거지?”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굴렸다.
“무엇을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상태라 이거지…….”
박강수는 오늘 저녁 직원을 일찍 퇴근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김현아와의 뜨거운 밤을 위해.
12일 종합주가지수는 전일보다 -12.02% 하락한 475.60으로 끝났다. 500선을 한방에 깨트려버린 무시무시한 하락이었다. 이날 코스피는 전 세계 주요국가 증시 가운데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