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50
158. 조직 개편(1)
[2006년 1월 2일]2005년까지 주식시장은 무난한 상승을 지속했다.
전 세계적으로 밀레니엄 거품이 꺼지면서 폭락했던 주식시장이 다시 제 갈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미국 FRB 의장이 그린스펀에서 헬리콥터 벤이라 불리는 벤 버냉키로 바뀌었지만, 양적 완화 정책은 계속되었고 금리는 계속 낮아졌다.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밀려 들어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풍부한 현금 유동성이 주가를 밀어 올리는 장세가 이어졌다.
2006년을 맞아 SJ 금융그룹에는 큰 변화가 일었다.
SJ 증권 사장을 맡았던 송희관과 SJ 투신을 맡았던 손달호가 일선에서 물러났다. 유서준은 한껏 말렸지만 두 사람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치열한 돈이 오가는 현실에 피로감을 느끼고 잠시라도 편안한 삶을 원했다.
송희관은 SJ 금융그룹 고문으로 물러나고 손달호는 SJ 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빈자리를 서하나와 신선영이 채웠다. 이전부터 사실상 실권을 휘둘렀던 서하나는 명실상부한 SJ 증권 사장이 됐고 신선영 역시 SJ 투신 사장으로 취임하여 투자에 대한 모든 것을 총괄하게 됐다.
2006년을 맞아 유서준은 서하나와 신선영과 함께 한 해를 설계하는 자리를 가졌다.
회의용 탁자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유서준이 먼저 의견을 꺼냈다.
“2006년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한 해가 될 겁니다.”
다부진 유서준의 말에 서하나가 의문을 표시했다.
“나랑 선영이가 승진하긴 했지만 사실상 실무에서 변한 것은 없잖아? 거창하게 새로운 도약이라고 하니 뭔가 이상해.”
“물론 최근 몇 년간 증권사는 크게 성장했고 투신 역시 펀드 수신고에서 괄목할 성장을 보여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고 봐요.”
“응? 어떤 점에서?”
신선영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유서준이 뭔가 지향하는 바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의 상기된 표정이 그런 추측을 확신하게 했다.
유서준이 두 사람을 향해 놀라운 제안을 했다.
“올해부터 우리는 세계로 나갈 것입니다. 해외 지사 설립이 올해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아…….”
신선영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한때 미국 LTCM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자금을 운용했던 그녀는 다시 세계 무대로 나가고 싶은 꿈이 있었다. 지금 그녀의 꿈이 유서준의 입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서하나 역시 놀라고 있었다. 언젠가는 해외로 나갈 것이란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다. 외환위기 방어가 목표라던 유서준의 말로 미루어보아 국제 투자은행 형태의 사업 진출이 있을 것이란 추측을 하고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선언이었다.
유서준의 선언이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부터 5년 이내 미국 월가로 진출할 겁니다.”
“너무 빠른 것 아냐?”
신선영이 의문을 표했다.
사실 진출하는 거야 지사 하나만 세우면 된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지사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다.
지금까지 수많은 국내 금융회사가 외국에 지점을 냈지만 단순한 환전이나 현지 연락 업무 정도에 그쳤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금융기술이 선진 금융기관보다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국내 금융기관 능력으로는 본국의 지원 없이 해외 지사가 자체적으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서준은 자신의 계획을 나열했다.
“일단 올해에는 홍콩에 진출할 겁니다.”
“왜 하필 홍콩이지?”
“중국이 뜨니까요. 아시아 금융 허브는 사실상 홍콩과 싱가포르인데 향후 중국과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가까운 홍콩이 유리하죠.”
“음, 중국 진출 생각이 있나 보네.”
서하나가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유서준이 신선영을 슬쩍 보며 한 마디를 보탰다.
“미국도 진출할 겁니다. 홍콩 지사가 자리를 잡게 되면요.”
미국 진출이란 말에 신선영은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곧바로 냉철하게 현실로 돌아왔다.
“미국의 경우 지사를 설립해서 자리를 잡으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거야.”
유서준은 그녀가 염려하는 바를 이해했다.
그는 자신의 계략을 슬쩍 내비쳤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진출은 다른 방법을 쓰려고요.”
신선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는 곧바로 답안을 말했다.
“기술이전이 힘들면 제일 좋은 방법은 이전해줄 기업을 사버리는 거죠. 특히 투자은행의 경우 기술이전을 해줄 곳도 없고 최고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도 그 효과가 크지 않고…… 제일 좋은 방법은 적당한 외국 기업을 사들여 기술을 흡수하는 겁니다.”
사실 국내 금융기관도 선진 금융기법을 배우고자 노력을 많이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일은행의 해외 매각이다. 또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도 비슷한 이유였다.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긴 했지만 해외 기업에 매각함으로써 사들인 해외 기업이 선진 기법으로 국내에서 은행을 제대로 운영해주기를 바란 측면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선진금융기법을 습득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었다.
결과는 정부 의도와 달랐다. 선진 기술이전은 사실상 없었다.
유서준은 일련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월가 투자은행의 인수가 가장 좋은 방법이란 판단을 내렸다.
신선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 투자은행의 가격이 얼만 줄 알아? 사기엔 너무 비싸.”
“알아요. 기회를 봐야죠.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유서준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신선영은 유서준이 가진 돈이라면 가능하다는 생각이었으나 비효율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서하나가 요약했다.
“그럼 홍콩 진출, 그다음 미국 진출. 이렇게 되는 거야?”
유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를 강하게 표명했다.
“홍콩은 조만간 빨리 시작할 거야.”
“그럼 홍콩으로 누구를 보낼 건데?”
역시나 사람이 문제였다. 첫 진출인 만큼 능력도 있으면서 그와 의견이 잘 통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유서준이 슬쩍 문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서하나가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
“재민 씨 보내려고?”
“응.”
이제 서하나는 유서준의 눈치만 보고도 그의 의도를 짐작하는 수준이 되었다.
신선영이 동의했다.
“재민이라면 선물 옵션에서 꽤 능력을 발휘했잖아? 아무래도 홍콩 지사는 은행 예금 업무보다 파생상품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좋을 것 같아. 난 찬성.”
서하나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재민 씨 보내려면 슬퍼할 사람 있는데 어쩌나…….”
유서준이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는지 캑캑 기침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자 서하나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재민 씨 요즘 연애하고 있는 것 알아?”
꽤 많은 시간을 강재민과 함께했음에도 그가 연애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이만 따진다면 연애도 늦은 시기인 것은 맞다.
“누구랑?”
“소현이랑 둘이 꽤 가까워. 내가 알기로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사이인 걸로 알아.”
강재민과 임소현은 명동 시절부터 함께 해왔던 그의 심복이다. 거의 십 년을 곁에 두고 있었음에도 둘이 사귀는 것을 몰랐다니. 유서준은 자신의 무관심을 자책했다.
여의도에 있으면서 가끔 이곳을 들리는 서하나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그는 확실히 타인에게 무덤덤한 면이 있었다.
“재민 씨를 홍콩으로 보내고 싶으면 먼저 소현이에게 의사를 물어봐. 소현이가 싫어하는데 보내지는 말고.”
서하나가 조언을 해주었다.
“홍콩에다 신방을 차려줘.”
신선영이 거들었다.
유서준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빨리 두 사람을 결혼시켜 홍콩으로 신혼여행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곧이어 그의 눈이 신선영을 향했다. 아무래도 신선영의 보금자리도 미국 월가로 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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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준은 지윤상 금감원 부원장을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다.
한때 오도욱의 바로 위 상관이었던 지윤상 부원장은 자본시장감독국장을 거쳐 부원장에 올랐다. 그는 예전 증권감독원 시절부터 금융시장 감독 분야에 뼈를 묻은 공무원으로 금감원 내부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금융시장 선진화를 이루려는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정치권의 입맛과는 거리가 먼 인사였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금융을 제어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을 더 직접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관치 금융을 좋아한다. 비난을 받더라도 모든 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윤상 역시 그런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기에 그는 자신이 부원장까지 오른 것도 대단한 성공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지윤상 부원장이 술을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홍콩으로 진출하겠다고?”
“네,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에만 머물 수는 없으니까요.”
유서준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 만남은 SJ 증권의 홍콩 지사 설립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펀드 판매를 위한 단순한 지사 설립이라면 별문제가 없다.
SJ 증권의 경우 타 증권사와 달리 홍콩에 대한 투자이자 나아가 중국에 대한 투자 의미가 강했다. 외환 관리를 비롯하여 여러모로 규제에 걸리는 것이 많았다. 이에 대한 금감원의 협조를 요청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현재 SJ 증권은 국내에서 단독으로 헤지펀드를 지원하는 프라임브로커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국내 증권사가 투자은행으로 발전 불가능한 이유다. 이를 국외에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의미였다.
지윤상 부원장이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 내가 예전부터 우리 유대표를 눈여겨보았어요. 역시 대단한 분입니다. 나는 이런 도전적인 정신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는 연신 유서준을 칭찬했다.
유서준은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의지를 강조했다.
“조만간 홍콩 금융가를 점령하고 중국으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금융 첨병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핫핫, 좋아요, 좋아. 말만 들어도 즐겁습니다.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대한민국 금융! 제가 예전부터 꿈꾸던 일입니다.”
지윤상 부원장은 즐거워 보였다. 그의 말은 진심인 듯했다.
유서준은 오도욱 같은 사람만 금감원에서 만나다가 오랜만에 자신과 뜻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유서준은 술을 따랐다.
지윤상 부원장은 잔을 받아 마신 후 유원준에게도 한잔을 건넸다.
유서준도 기분 좋게 한잔 받았다.
지윤상 부원장이 말을 늘어놓았다.
“지난 외환위기 때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으로 팔려나갔습니까? 지금 상장 회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우량한 회사 대부분의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습니다. 삼성전자, 국민은행, 이런 기업은 본사만 우리나라에 있을 뿐 외국 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거래소 전체 시가총액 가운데 외국인 지분이 30%를 넘어서고 있었다. 괜찮은 기업치고 외국인이 눈독 들이지 않은 기업은 없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배당으로 주주에게 재배분되고 그 상당한 부분을 외국인이 가져가는 구조다.
외환위기 때 국내 자본이 한차례 휘청거리면서 외국인의 국내 기업사냥은 더욱 심해졌다.
이것을 단지 국외 자본의 침략이라는 나쁜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 반대인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거다.
외국 자본의 국내 기업 인수에 비해 국내 자본의 외국 기업 인수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지윤상 부원장은 항상 이런 점을 아쉬워했다.
유서준도 동감했다.
술이 오른 지윤상 부원장이 예를 들며 국내 금융의 허약함을 한탄했다.
“예전에 T 펀드가 SK 텔레콤을 공격하여 크게 한탕하고 튄 적 있죠? SK 지배구조를 흔들었던 소버린 자산운용의 예도 있잖습니까? 이런 일이 모두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취약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물론 순환출자로 경영권이 허약한 재벌 그룹도 문제이긴 합니다만.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세계적인 사모펀드나 헤지펀드가 나올 수 없을까요?”
유서준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꿈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 시장의 방어도 중요하지만 국외 시장의 공격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게 모두 몸을 사리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만 안주하려는 나약한 생각이 그렇게 만드는 거죠. 최근 증권사에서 해외펀드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긴 하지만 전문인력이 없어요. 솔직히 나가서 돈이나 잃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지윤상 부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곧바로 정부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세계적인 금융기업을 만들려는 정부의 시도는 몇 차례 있었어요. 문제는 그 방향이죠. 정부에서는 자본금을 키운 대형은행만 탄생시키면 그게 세계적인 은행이라 착각하고 있어요. 실력은 없는데 몸집만 크면 뭘 하는지.”
유서준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왜 그가 정부로부터 은연중에 배척당하는 인물인지 알아냈다. 정부의 정책과 다소 다른 진취적 생각을 가진 자이기에 정부로서도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부원장에 올랐다는 것은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유서준은 확고하게 장담했다.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십 년 후에는 세계적인 금융그룹으로 우뚝 서보겠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띤 유서준을 보며 지윤상 부원장은 자신의 바람이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