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58
166. 납치(2)
덜컥.
뒷좌석의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뒷좌석 조수석 뒤쪽 문이었다.
곧이어 그녀가 탄 운전석 문이 열리며 사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여전히 운전석 뒷자리에 탄 사내가 그녀의 목에 과도를 겨누고 있었다.
서하나는 눈동자만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를 살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부분 염색까지 한 차림새에서 날라리티가 물씬 풍겼다. 나이는 대략 이십 대 후반 정도 되었을까. 동네 양아치임이 분명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내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어렸다.
“흐흐, 근사한데?”
사내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사내의 눈초리에서 힐끗 느껴지는 욕정을 감지한 서하나는 소름이 돋았다.
사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흐흐, 난 가방끈 긴 년이 좋더라.”
그녀가 꼼짝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자 사내가 턱으로 뒷자리를 가리켰다.
“얼른 뒤로 넘어가라. 떠나야 하니까.”
그녀가 간신히 몸을 뒤척이자 뒷좌석에서 과도를 겨눈 사내가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풀며 경고했다.
“허튼짓하면 얼굴 긋는다.”
서하나의 몸이 다시 얼어붙었다. 그들의 경고가 너무 무서웠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키며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그녀를 향해 과도를 들고 위협하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사내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는 사내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보았지? 회사 직원인가? 아니면? 생각은 나지 않았다.
목에 여전히 과도가 겨누어진 상황에서 그녀는 더 깊은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두 좌석 사이 가운데 통로를 통해 뒤로 넘어갔다.
차 안이라 비좁은 데다 치마마저 H자형의 몸에 붙은 치마라 거동이 불편했지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녀가 중간 정도 넘어가자 곧바로 앞문에 대기하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뒷좌석에 앉은 사내가 과도를 들지 않은 손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동시에 앞자리에 올라타던 사내가 눈앞에서 움직이는 그녀의 다리 뒷모습을 보고는 음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곧장 손을 뻗어 그녀의 뒤쪽 허벅지를 만졌다.
“헉.”
서하나가 깜짝 비명을 지르며 손을 내치려고 뒤로 돌아보려는 순간 뒷자리 사내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곧바로 뒷좌석 사내의 몸 위로 무너졌다.
“조용 안 해?”
사내의 앉은 다리 위로 넘어져 엎드린 그녀의 안면에 곧바로 과도가 겨누어졌다.
자칫하면 뺨에 상처가 생길 위기라 서하나의 동작이 멎었다.
그녀의 몸이 경직되는 가운데 사내가 그녀의 등을 눌렀다.
그녀는 사내의 힘에 억눌려 쓰러지면서 몸을 꿈틀거렸다.
뒷좌석의 중간쯤에 앉은 사내의 무릎 위에서 서하나는 길게 엎어져 쓰러진 모양새였다. 그녀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하자 사내가 한쪽 팔로는 그녀의 등을 누르고 다른 쪽 팔로는 그녀의 다리 부분을 누르면서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사내의 험악한 말이 쏟아졌다.
“가만히 있어. 얼굴에 상처 나기 전에.”
서하나는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머리 부분은 운전석 뒷좌석 한쪽 구석 끝부분에 처박히고 다리 부분은 반대편 문 쪽에 구부려진 채 엎드려 있었다. 사내의 품에서 찌든 담배 냄새가 났다.
“정문 통과할 때 허튼짓 하지 마라.”
사내의 경고가 이어졌다.
서하나는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고심했지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굴에 겨누어진 과도 때문에 몸만 덜덜 떨렸다.
시동이 걸리고 앞자리에 탄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떠날까?”
“얼른 가.”
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가 그녀의 몸을 누르는 통에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차가 방송국 정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문의 경비는 전혀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저녁 8시가 넘은 건물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거리의 네온사인과 오가는 차량의 불빛이 안으로 희미하게 들어왔다.
몇 번의 가다 서기를 반복하더니 자동차는 점차 안정된 주행 상태로 들어갔다. 올림픽대로로 접어든 모양이었다.
사내에게 눌린 등과 다리가 아파 왔다. 불편함에 몸을 꿈틀거리자 그녀를 내리누르며 안다시피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누군지 알아?”
다소 고음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서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알지 못하니 대답할 거리도 없었지만.
사내가 큭큭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 가도건설 사장 아들이야. 가도건설 알지?”
사내의 말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제야 의문점이 풀렸다. 이들은 이 차의 열쇠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우발적인 강도도 아니었다. 그녀를 노리고 차 뒤에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김만학의 집안을 떠올렸다. 그의 아들이 누구였지? 물론 그녀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몇 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유학 갔다가 마약을 배웠고 국내에 들어온 다음에도 마약을 끊지 못했다고 했던가. 지금은 교도소에서 출소하여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낯이 익었던 이유가 있었다.
“네년이 가도건설을 말아먹었다고 하더라고.”
서하나는 덜컥 겁이 났다. 어찌 되었건 그녀가 가도건설 부도와 연관된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는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솔직히 가도건설과 그녀는 악연이었다.
지금 이자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과거의 모든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 혹시 김만학의 사주가 아닐까? 오늘 김만학이 운전을 못 한다고 한 것이 이런 범행을 저지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온갖 의문이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사내의 입에서 한탄 조의 말이 새어 나왔다.
“네년만 아니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 않았어.”
서하나는 간신히 변명했다.
“가도건설 부도는 내 책임이 아녀요.”
사내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자신의 할 말만 계속했다. 애초에 상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자였다.
“남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했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
사내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그녀가 두려움에 휩싸여 몸을 떨고 있을 때 앞자리에서 운전 중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두형, 오늘 저년 제대도 참교육 내리는 것 맞죠?”
“당연하지. 너 가방끈 긴 년이 좋다며? 난 똑똑한 년이 좋더라. 이년이 우리 입맛에 딱이야.”
“흐흐, 제가 티비에 나온 년 건드려보는 건 생전 처음입니다.”
“오늘 이년 맛이 갈 때까지 포식해보자.”
서하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할 틈을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과도가 목 뒤를 겨누고 있으니 움직이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이러지 말아요. 돈은 많아요.”
서하나가 사정했다.
김범두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네년 돈 많은 거 안다니깐. 어차피 돈은 주게 되어 있어. 오늘 네년이 홀딱 벗고 돌림빵 당하는 장면을 사진 찍어 보내면 네년 남편이 돈 안 주고 배길까? 안 줘도 상관없어. 그럼 내일 아침에 증권사 사장년 벗은 모습이 바로 인터넷에 뜨는 거지.”
“쪽 팔려서 사장질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운전하던 사내가 거들었다.
서하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들은 그녀가 상상치도 못할 범죄를 태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들의 뜻대로 흘러간다면 돈을 주든 안 주든 사실상 그녀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누르고 있는 김범두가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직 멀었냐?”
“이제 얼마 지났다고요. 차가 좀 막히는데요? 심심하면 지금 그 자세로 재미 좀 보시던가.”
운전하는 사내가 룸미러를 조정하여 뒷좌석이 보이게 했다. 동시에 차 내부를 밝히기 위해 실내등을 켰다.
불이 켜지고 뒷좌석에서 허리가 굽어져 엎어진 채 버둥거리는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허리 아래로 걸려 있는 자줏빛 스커트가 묘한 유혹을 불러일으켰다.
“으흐흐, 그럴까?”
김범두가 음침한 미소를 띠며 자신의 위에 엎어져 있는 서하나를 눈으로 훑었다.
그가 누르는 통에 꼼짝 못 하고 단지 버둥거리기만 하는 여체가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티비에서 보았던 그녀의 화려한 외모를 떠올렸다. 유명 탤런트에 비견해도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외모. 흡사 모델로 착각할 듯한 쭉 뻗은 몸매. 어린 소녀처럼 풋풋하고 새하얀 피부. 누가 그녀를 서른이 넘은 아줌마라고 생각할까.
사내는 갑자기 불끈 욕정이 솟구쳤다.
서하나는 자신을 안고 있는 사내의 반응에 당황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등을 내리누르고 있는 팔은 여전히 그녀의 상체 움직임을 억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다리 쪽을 누르던 팔이 위치를 바꾸며 변화가 일었다.
그녀는 자신의 무릎 어림에 사내의 손길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몸을 꿈틀거리자 김범두의 경고가 곧바로 떨어졌다.
“움직이면 그어 버린다. 말짱한 얼굴로 돌아가려면 가만히 있어.”
서하나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런데 지금 과도는 어느 손에 있지? 엎드린 채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앞에 차 뒷문 손잡이가 보였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앞 좌석 사이로 사이드미러가 보였다. 사이드미러에는 옆 차선에서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이 수놓고 있었다.
사내의 손길이 그녀의 무릎 뒤쪽 어림에서 머무는가 싶더니 슬금슬금 위로 올라왔다. 매끄러운 스타킹을 통해 다리를 더듬는 사내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손이 천천히 뒤쪽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운전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 범두형, 그년 치마 한번 올려봐요. 나도 구경 좀 합시다.”
“큭큭, 치마?”
서하나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때였다.
띠리리링-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전화였다.
운전석 조수석에 둔 그녀의 가방 안에 든 휴대폰에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두 사내의 동작이 중단됐다.
**
유서준은 휴대폰을 들고 한참을 기다렸다.
서하나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이 시간이라면 그녀가 생방송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차 운전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집에 막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한참 전화벨이 울렸지만 응답은 없었다.
유서준은 통화 종료를 눌렀다.
며칠간 어린이날, 어버이날이라 하여 서하나가 고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침 오늘은 생방송도 있어 그녀가 더 피곤한 날이란 사실을 인지한 그는 적당한 곳에서 외식하자고 제의할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그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과 적당히 맞추려고.
미리 전화를 했어야 했지만 생방송 중이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서류를 검토하며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다 지금에야 전화기를 든 것이다.
“운전 중이라 못 받는 건가?”
오늘 김만학이 출근하지 않아 그녀가 손수 운전한다고 알려왔던 기억났다.
유서준은 그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항상 많은 일을 떠맡고 있는 그녀가 무척 고마웠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SJ 투자금융 그룹을 성장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SJ 증권을 설립한 후 그보다 그녀가 훨씬 더 바빴다. 증권사 내부에서는 확실하게 실권을 장악하여 임원을 통솔했고 외부에서는 방송 활동에 매진했다. 그녀의 활약 덕분에 SJ 증권의 인지도는 대기업 증권사에 필적했다. 바삐 일하는 그녀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거둘 수 없는 이유였다.
오늘 저녁 그녀와 함께 멋진 곳에서 식사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비싼 선물도 안겨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어렵고.
연락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그냥 퇴근해야 될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책상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집 앞에서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차가운 맥주라도 마시며 스트레스를 달래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