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59
167. 납치(3)
한참을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그쳤다.
잠시 긴장에 싸였던 차 내부가 다시 본래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큭큭, 누군지 모르지만 타이밍 한번 죽이는군.”
운전하는 사내가 빈정거렸다.
서하나를 꼼짝 못 하게 누르고 있는 김범두도 키득거렸다.
“흐흐, 누구긴 누구야, 아마 이년의 돈 많은 남편이었겠지. 지금 이년이 이 꼴인 줄도 모르고.”
서하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끌려가서 몹쓸 짓을 당할 수는 없었다.
다시 사내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천천히 주무르는 느낌이 들었다.
운전하던 사내가 다시 재촉했다.
“아, 범두형, 얼른 치마 한번 올려보라니까요. 가방끈 긴 년 빤스 한번 보자니까.”
서하나는 수치심 속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내가 시선을 룸미러에 고정시켰다.
“킥킥, 그래?”
김범두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서하나의 머리 뒤에서 들렸다.
곧이어 서하나는 사내의 손이 허벅지를 타고 자신의 치마를 걷어 올리는 느낌이 왔다.
그녀의 몸이 저항하며 꿈틀거렸다.
“크, 빤스 죽인다!”
김범두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순간 서하나는 사이드미러를 곁눈질했다.
옆 차선의 자동차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뒷좌석 잠금을 푸는 것과 동시에 문을 번개같이 열어젖혔다.
쾅!
옆에서 추월하던 차가 곧바로 그녀가 연 차 뒷문을 들이박았다.
끼기기긱-
자동차가 빙글 돌면서 차로를 이탈했다.
다행히 차는 다른 차와 추가적인 충돌 없이 가장자리의 경계석을 들이박고 멈추었다.
위험천만이었다.
차가 멈추자 그녀를 누르고 있던 김범두가 그녀를 밀치고 재빨리 밖으로 튀어나갔다. 운전하던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서하나는 문짝이 날아가 버린 부분을 통해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다.
“헉헉.”
그녀는 아스팔트 위에 편하게 드러누웠다. 한쪽 손에 찰과상을 심하게 입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난장판이 된 도로 위에 요란한 경적이 울려 퍼졌다.
**
유서준은 사고 장소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쪽 문짝이 날아가고 앞쪽 범퍼가 반파된 차는 황당한 모습이었다.
서하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간신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괜찮아?”
유서준이 황급히 그녀를 살폈다.
서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그만큼 무서웠었다.
유서준은 찰과상을 입은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위로했다.
“어떻게 된 거야?”
서하나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감정이 북받쳐 울컥거렸다.
한참 동안 가슴을 진정시킨 다음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납치됐었어.”
“응?”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유서준이 더 놀랐다.
서하나가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김만학 운전사 아들이 나를 납치했어. 가도건설 부도 원흉이 나라면서.”
“그럴 리가? 김만학이 공범이야?”
흥분한 유서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이 지금에야 다시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누군가가 획책했음이 분명했다.
물론 의심이 가는 자는 있었다. 박강수나 오도욱. 하지만 두 사람은 지난 911 테러 이후 비교적 조용했다. 최근에는 두 증권사 사이에 그리 부딪힐 일도 없었다.
유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서하나를 납치하려 했었다면 그냥 둘 수 없었다. 반드시 배후를 찾아내어 응징해야 할 것이다.
“일어날 수 있어?”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서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유서준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일으켰다.
“병원에 가보자.”
“안 가도 될 것 같아. 특별히 다치지는 않았으니까.”
“그럼 다친 손만이라도 응급실로 가서 치료해.”
유서준은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고 다독였다.
도로를 정리하던 경찰관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유서준은 상황을 대충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수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유서준과 서하나는 김만학의 집으로 갔다.
김만학은 연립주택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방문에 김만학은 깜짝 놀라 집안을 치운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는 아직 몸살이 다 낫지 않았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두 사람이 방안에 자리를 잡자 김만학이 주스를 내왔다.
서하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드님 계신가요?”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김만학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김만학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워낙 평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던 아들이다 보니 직감적으로 문제가 터졌음을 알아챈 것이다.
서하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당신 아들이 저를 납치했습니다.”
김만학이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서하나가 분노가 깔린 목소리로 질책했다.
“그것도 단순 납치가 아니라 친구와 같이 나를 성폭행하려 했어요.”
김만학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가 다급하게 꿇어앉아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만학은 어제 그의 아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똑똑한 그런 여자랑 한번 자 봤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던가. 이놈이 감히 증권사 사장님을 노리다니! 김만학은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하긴 생각해보니 부전자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도 철없을 때 많은 여자를 후렸었고 나중에는 서하나를 건드릴 생각도 했었으니까. 단지 지금은 늙고 경제력도 없어서 죽어지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자책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그는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서하나는 더 질책할 말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김만학은 관련이 없고 그의 아들이 독단적으로 행한 범죄인 것 같았다.
유서준은 무릎을 꿇은 김만학을 내려다보며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에 책상 위에 던져진 우편물이 들어왔다. 그는 우편물 속 내용물을 꺼냈다.
가도건설 부도 관련 서류였다. 바로 문제의 핵심이었다.
봉투의 우편 소인은 광화문 우체국. 등기도 아닌 일반 편지여서 더 이상의 단서는 없었다.
내용물도 서류를 단순 복사한 것이라 특별히 필체 같은 것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유서준은 서류를 서하나에게 보여주었다.
서류를 몇 장 넘기던 서하나가 안면을 찡그렸다. 그녀 역시 특별한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내부 서류의 내용 역시 그리 자세하지는 않았다. 특별하게 그녀가 가도건설 부도와 관련된 정황은 없었다.
서하나가 김만학을 향해 말했다.
“고개 들어요.”
김만학이 꿇어앉은 채 고개를 들었다.
“이 우편물 언제 온 거죠? 본 적 있나요?”
김만학이 우편물을 건네받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처음 봅니다. 워낙 집안을 치우거나 하지 않아서…….”
서하나가 다시 질문 했다.
“가도건설 부도에 관해 아들에게 말한 적이 있나요?”
김만학이 한참 기억을 더듬었다.
“부도 이야긴 했지만 그 상세한 내역을 아들에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아들도 그런 거 구체적으로 듣기 싫어해서요. 설사 말한다고 해도 사장님과 관련된 내용은 함구했을 겁니다.”
솔직히 부도를 전후해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김만학도 남에게 발설하기 껄끄러운 점이 많았다. 자신도 그렇지만 서하나의 명예와도 연관된 일이었으니까. 서하나를 충심으로 섬기는 상태에서 그때의 일은 입에 올리기도 싫었다.
유서준은 우편물을 보면서 박강수를 떠올렸다.
이건 분명히 박강수의 짓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박강수가 어떻게 서하나와 가도건설의 일을 알게 되었는지 도무지 짐작이 불가능했다. 가도건설과 명동 인베스트먼트의 연관성을 알아내기도 쉽지 않고 거기에 서하나를 엮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당사자인 김만학도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데 누가 알고 있단 말인가.
그나마 연관성이 있는 D 증권 지점장과 최훈재 사원은 지금 SJ 증권에 있다.
그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박강수가 미래에서 온 마지막 다이어리를 갖고 있고 거기에서 관련 사실을 짐작했다는 것을.
서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일이 발생 되어 이젠 어쩔 수 없군요. 내일부터는 출근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8년간 고생 많이 하셨고요. 퇴직금은 적당히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만학은 할 말이 없었다. 설사 쫓겨나지 않아도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으니까.
**
서하나 납치 사건은 언론에서 대대적인 화제가 됐다.
미모의 증권사 사장의 납치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가십거리에 오를수록 오히려 서하나는 부담스러워졌다.
그녀는 사건 관련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유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건 조사는 진행되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유야무야 되었다.
범인인 김범두와 그의 후배는 특별한 동기 없이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우겼다. 티비 화면에서 본 모습에 혹해 납치를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누가 입막음을 했는지 모르지만 김범두는 모든 것이 자신 혼자의 범행이라고 자백했다.
사건은 빠르게 세인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
2006년에는 국내사상 처음으로 반기문 씨가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를 누비고 이승엽이 일본 요미우리에서 홈런을 폭격하던 이해에 중국 경제계에서는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10월 27일 중국 공상은행이 홍콩과 상해에 공동으로 상장된 것이다. 사상 초유의 거대 은행이 양쪽 시장에 동시 상장한다는 측면에서 이 사건은 중국 상해 증시의 격을 한 차원 높이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세계 경제의 이목을 중국 상해 증시로 집중시켰다. 이 사건은 불붙은 상해 증시를 더욱 위로 밀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상해 주가지수는 2006년 말 2675.47으로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전년 대비 무려 +130%나 오른 것이었다. 밀레니엄 이후 시름시름 하락했던 중국 증시의 하락을 완벽하게 만회한 것이자 중국 일반 투자가의 발길을 증시로 몰려들게 한 상승이었다.
이 기간 상해 증시에 상장되어있던 KD 닷컴은 무려 20배나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동안 KD 닷컴은 모두 8개의 회사를 인수하여 새로운 인터넷 계열사로 편입했다. KD 닷컴은 8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 지주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서준이 지분율 30%로 투자했던 금액은 이 상승으로 말미암아 약 7배인 700억으로 올라섰다.
**
[2006년 12월 31일]연말을 맞아 강재민은 임소현과 함께 국내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권대만 역시 연말을 맞아 국내행을 결정했다. 오래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권대만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무려 10년 만의 일이었다.
유서준과 서하나는 강재민과 임소현이 그간 고생한 것을 참작하여 연말에 집으로 초대했다. 권대만도 두 사람을 따라 유서준의 집으로 왔다. 유서준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유서준의 집에서 만찬을 가진 다음 그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서하나는 그들을 위해 다과를 준비했다. 임소현이 옆에 와서 거들었다.
서하나는 임소현을 무척 대견하게 여겼다. 덜렁대는 강재민을 잘 보필하여 SJ 투자은행 홍콩을 잘 이끌어주었으니까.
“소현아, 고생 많이 했다.”
서하나의 격려에 임소현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그녀는 모든 성과를 오히려 서하나에게 돌렸다.
“뭘요, 다 사장님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이죠.”
“거기서 힘들지 않았어?”
“힘들다기보다 여기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혼났어요.”
타지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모양이었다. 결혼하자마자 곧바로 홍콩으로 떠났으니 정신이 없었을 만도 했다.
“그래도 KD 닷컴이 쭉쭉 올라가니까 정말 뿌듯한 것 있죠?”
강재민과 임소현이 투자한 5억이란 돈은 몇 달 만에 35억으로 불어나 있었다. 돈을 버는 재미가 있었음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