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65
174. 버블 붕괴(2)
2008년 1월의 주식시장은 처참했다.
전년도 말에 주춤하며 하락했던 모양이 제대로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월 한 달 동안 전년 대비 -14%나 하락하면서 그동안의 상승에 물들었던 투자가의 마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월말 종가는 1800선과 1700선이 모조리 깨진 1624.68. 2000선을 다시 회복하기만을 기대했던 투자자에게는 날벼락 같은 한 달이었다.
사실상 방어 모드로 들어간 SJ 증권은 그리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물론 예전처럼 펀드 내 모든 주식을 다 정리할 수는 없다. 펀드 내 최소 주식투자 비율인 20% 언저리에서 주식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채권 등으로 채웠다.
SJ 투신도 비슷했다. 주가 상승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가장 활발해진 곳은 파생운용팀이었다. 신선영의 지휘 아래 활발한 투자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신선영은 그동안 선물 옵션 매매에 대한 몇 가지 알고리즘을 개발하였고 이를 프로그램화 시켰다. 대부분의 파생상품 매매는 자동화되었다. 사실상 개인의 판단이 그리 필요치 않은 시스템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신선영이 추구하던 매매 시스템으로 향후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스템으로 변경할 생각이었다.
SJ 투자은행이 떠난 중국 상해시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상해 주가지수는 10월을 고점으로 확연하게 꺾였다. 12월에 잠시 보였던 반등은 해가 바뀌면서 맥없이 무너졌다.
11월의 큰 폭 하락에 이어 1월 역시 하락을 이어갔다. 1월 말까지 전년 대비 -17%라는 하락을 보이며 상해 주가지수는 4383.39까지 주저앉았다. 사수해야 했던 4800선을 맥없이 깨고 내려앉아 향후의 전망마저 어둡게 했다.
전년 7월 말 수준으로 내려앉은 주가를 보며 박강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모니터를 보는 그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아래로 내리꽂은 시퍼런 음봉을 보며 박강수는 KD 닷컴을 떠올렸다.
급하게 오른 만큼 급하게 내렸다. 문제는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상승으로 전환할 것인가였다.
비록 고점 대비 -30%가량의 지수 하락이었지만 작년의 상승이 워낙 강렬했던 관계로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KD 닷컴의 주가는 반 토막 났지만 작년의 경험으로 본다면 다시 두 배 오르는 것은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박강수는 역대 고점에 올랐던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검토했다. 상승 후 곧바로 하락한 경우도 있었지만 다시 재반등해서 쌍봉 모양을 만든 경우도 무수히 많았다.
아무리 과거를 살펴도 이번 경우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다. 단지 확률적으로 어떻게 될 것이란 추측만 가능했다. 그마저 본인의 바람에 따라 왜곡되었다.
“지금까지 분출했던 강력한 기세로 본다면 KD 닷컴이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거야. 아무리 못해도 다시 한번 시세를 분출해주겠지. 그때 팔면 돼.”
박강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강렬한 바람 때문인지 주식 챠트가 붉은색으로 물드는 것만 같았다.
문제는 주가 하락을 빌미로 잘못된 투자로 몰아 난리를 칠 이사진을 진정시켜야 했다.
“늙은 것이 문제란 말이지.”
박강수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일단 욕을 얻어먹더라도 자신의 투자에 대해 잘못을 인정할 생각은 없었다. 잠시의 하락 뒤에는 더 화려한 상승이 피어나는 법이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박강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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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2월의 국내시장은 1월의 하락이 과하다고 여겨 반등했다.
중국시장 역시 하락을 멈추었다. 2월에는 옆으로 횡보하는 장세를 보였다.
박강수가 주시하고 있는 KD 닷컴 역시 하락을 멈추고 조금이나마 반등했다. 그는 날아갈 듯 기뻤다.
일단 하락 추세만 돌려놓으면 다시 폭등을 시작할 테니까.
아직 출자한 투자금 7000억에 대해 별다른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언론도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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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밤사이 국보 1호인 남대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서울시청으로 진입하는 도로 한가운데 서 있던 남대문이 간밤에 술에 취한 부랑자의 실수로 불에 타서 잿더미로 바뀐 것이다.
남대문의 소실은 소중한 문화재를 잃어버린 것에 더하여 국민의 상실감을 크게 키웠다. 모든 국민이 마치 자신의 재산이 사라진 것처럼 슬퍼했다. 불에 타버린 남대문의 마지막 모습을 애도하는 시민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유서준은 중국시장이 돌아가는 판세를 읽고 있었다.
하락하는 추세가 주춤하며 옆으로 횡보했다. 동시에 KD 닷컴의 주가도 반등을 시작했다.
국내든 중국이든 하락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박강수 역시 자신이 꼭지를 잡았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재상승을 외치는 것은 사실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때문일 뿐이다.
유서준 그가 현재 추정하는 박강수의 손실은 대략 3000억이었다. 이것만 해도 해솔 증권을 휘청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것 끝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유서준은 홍콩에 있는 강재민에게 전화했다.
“재민이니?”
수화기로 강재민의 투덜거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아, 형. 재민이가 뭡니까? 좋은 말 있잖습니까? SJ 투자은행 홍콩 은행장이란 말도 있잖습니까?”
다소 키득거리는 목소리였다. 사실상 농담이란 것을 유서준은 금방 알아차렸다. 물론 유서준 역시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럼 넌 형이 뭐냐? 대표님이라 하지 않고.”
둘이서 티격태격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홍콩에서 선물 매도를 친 포지션이 꽤 잘 나가고 있어 강재민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쳤다.
이윽고 유서준이 해솔 증권에 대해 물었다.
“저쪽 분위기는 어때?”
“해솔 증권 홍콩지점에 십여 명이 근무 중인데요. 하나같이 죽는 표정이어요. 본사에서 어떻게든 손을 써서 KD 닷컴의 주가를 끌어올리라는 압력이 큰가 봐요.”
“아직 희망을 갖고 있나 보네.”
“이미 하락으로 돌아섰는데 가능할까요? 어렵겠죠?”
강재민의 음성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특히 내가 팔아치운 주식의 가격이 하락하면 그보다 더 즐거울 때는 없다. 만일 SJ가 보유하고 있었다면 해솔이 입은 3000억의 손실은 SJ가 부담해야 했을 테니까.
유서준이 쐐기를 박았다.
“이쯤 해서 치명타를 한번 날리고 싶은데 어떠냐?”
“어떻게요?”
“넌 그냥 은밀하게 홍콩 내부에 소문만 뿌려라. 한국 주식의 신 유서준 SJ 대표가 KD 닷컴에서 작년 10월에 손을 뗐다고. 이 정도면 곧바로 중국 본토로도 퍼지지 않을까?”
어차피 틀린 정보를 퍼트리는 것도 아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유서준에 대해 사람들이 자세히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한때 주식의 신으로 회자 된 적이 있었으니까. 소문이 흥미를 끌기는 할 것이다.
이 소문이 KD 닷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임은 삼척동자라도 안다.
“그거 재미있겠네요. 조만간 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재민이 흔쾌히 수락했다.
이제 유서준은 아무런 부담 없이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에게는 그야말로 꽃놀이패였다. 비록 상대에게는 피를 말리는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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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식시장의 횡보에도 불구하고 잠시 상승하던 KD 닷컴이 하락을 맞았다.
한국의 큰손이 털고 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반 투자가의 입질이 주춤해진 탓이었다.
권대만은 KD 닷컴을 상승으로 돌려놓고자 다른 유망한 아이티 기업을 인수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의 재료에 곧바로 주가가 반등하여 두 배씩 상승했다.
하지만 시장 전체의 상승과 하락이 애매한 상황에서 큰손이 털고 나갔다는 정보는 예상외로 타격이 컸다. KD 닷컴의 주식은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하락이 깊어졌다.
권대만이 응용한 인수 개발(A&D) 방식은 주가가 오를 때에는 무한의 투자금이 공급되므로 무한정으로 계열사를 확장할 수 있었다. 반면 주가가 내리면 사실상 적용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이제 약 2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 KD 닷컴은 곧바로 자금 고갈 상태로 접어들었다. 주식 하락기에는 유상증자를 활용한 인수합병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2월에 헤매던 주식시장은 3월이 되자 다시 폭락세로 돌아섰다.
3월 말의 상해 주가지수는 무려 -20%가 하락하여 3472.71을 기록했다. 5000선에 다시 올라서기는커녕 4000선도 깨고 내려온 것이다.
주가는 정확히 1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급하게 오른 만큼 급하게 빠졌다.
KD 닷컴의 주가도 하락하여 시가총액은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이때야 박강수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가 무리해서 투자한 7000억이 사실상 공중 분해되고 이제 남은 금액은 2000억 남짓이었다.
지금이라도 모든 손실을 감내하고 투자금을 회수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법이다.
박강수처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더욱 그러했다. 그는 유서준에게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중국시장은 다이어리 핑계를 대기도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KD 닷컴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 않았다. 사실 설사 회수하려고 했어도 마땅한 상대자가 없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은 3월부터 다시 완연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주가지수는 1500대 선까지 하락했다가 다시 올라서서 5월에는 1900선을 넘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지난 3년간의 상승 후 일시 조정을 거친 다음 다시 재상승하는 것처럼 보였다.
2008년 5월 초, 광우병 사태가 발발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사반대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광우병으로 숨진 외국의 사건이 소개되며 한국인의 유전자는 광우병에 더욱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마저 돌았다. 미국 쇠고기가 수입되면 향후 5년 내 전 국민의 절반이 광우병에 걸려 사망할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아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 광우병 사태는 이때부터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여 경제 측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을 가져왔다.
회복 낌새를 보이던 중국 주식시장은 곧바로 하락으로 돌아섰다.
4월의 반등과 5월의 하락으로 출렁거리던 상해 증시는 6월에는 3000선마저 깨지는 폭락을 보였다. 6월의 하락 폭 역시 전달 대비 -20%에 달했고 상해 주가지수는 2736.10을 기록했다. 사실상 2007년 초로 되돌아간 주식시장에는 공포만 감돌았다.
누구도 이 하락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지 못했다.
KD 닷컴은 다시 하락했다. 해솔 증권이 투자한 7000억 원은 이제 1000억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사실상 깡통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은 투자금을 세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했다. 해솔 증권의 지분을 받아줄 곳은 아무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KD 닷컴의 주식은 거래되고 있었으나 거래량을 따지면 사실상 무의미했다.
하락은 끝없이 계속됐다.
7월에 잠시 하락을 멈추었던 주식시장은 8월부터 다시 폭락했고 대미를 찍은 10월에는 한 달 동안 무려 -25%나 하락했다. 사실상 주가 하락이 멈춘 10월의 상해 주가지수는 1728.79로 최고점 대비 -72%나 하락한 것이었다. 이 지수는 2006년 9월 버블이 시작되기 전 시기와 같았다.
버블 붕괴로 인한 고통은 매우 컸다. 외국 투자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중국의 경제는 위축되고 부도 기업이 줄을 이었다.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KD 닷컴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수조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불과 수백억대로 쪼그라들었고 해솔 증권 지분은 300억 원이 전부였다.
인수 개발의 천재로 수조 원을 벌었던 권대만 역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불과 일 년 만에 파산했다. 인수 개발로 붐을 일으켰던 한국 코스닥 시장의 혜성, 리타워텍과 다르지 않은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