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66
175. 다이어리의 행방(1)
[2008년 7월 15일]KD 닷컴의 하락이 한창이던 7월 중순, 박강수는 홍콩으로 날아갔다.
중국시장 거품 붕괴로 KD 닷컴의 주가는 사실상 일곱 토막이 나버렸다.
매일 모니터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주가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홍콩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일단 홍콩 현지에서 중국시장의 방향을 검토해봐야 했다. 둘째는 이와 관련된 KD 닷컴의 주가 추락 원인을 파악해야 했다. 셋째는 권대만과 비상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었다.
해솔 증권 홍콩지점에서 박강수는 권대만과 마주 앉았다.
다른 해솔 증권 지부 사원은 두 사람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박강수를 두려워했다. 주가 하락으로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에게 몇 차례 소리를 지르던 박강수는 성질을 죽이고 권대만과 마주 앉았다.
권대만 역시 상황을 인지하고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고 있었다.
더운 한여름에 사무실 내에는 에어컨이 팡팡 돌아가고 있었음에도 모두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하……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권대만은 박강수를 볼 면목이 없었다. 투자가 아무리 본인의 책임이라지만 박강수가 매수하자마자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한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거 죄송으로 끝날 문제입니까?”
박강수의 언성이 높아졌다. 물론 그도 알고 있었다. 언성을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결국에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만 한다.
“중국시장이 그 시점에 가라앉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주식은 신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권대만이 다시 변명했다.
박강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신은 무슨 신 말입니까? 유서준은 귀신처럼 빠져나가지 않았습니까?”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물론 권대만은 유서준이 중국주식의 흐름을 귀신처럼 맞추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이미 주식의 신으로 이름 높았던 유서준이긴 했지만 이건 우연으로 치부했다.
박강수는 유서준에게 어떻게 그렇게 운이 따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국내가 아니라 중국이었기에 다이어리와도 무관했다.
박강수는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으으, 어쨌든 완전히 망한 거죠?”
“KD 닷컴의 하락은 주식의 신이 팔았다는 소문이 치명타였습니다.”
권대만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박강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또 뭡니까?”
“KD 닷컴 하락 초기에 갑자기 큰손이 털고 나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원래 주식시장에서는 뜬 소문이 많으니까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그 소문이 구체화 되더군요. 한국에서 주식의 신이라 불렸던 사나이가 KD 닷컴을 초창기에 사서 얼마 전에 팔고 빠져나간 것으로 말입니다.”
“주식의 신요?”
박강수는 예전에 유서준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매매 내역을 공개했을 때 주식의 신이란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중국 놈들이 주식의 신을 어떻게 알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권대만이 투덜거렸다.
“그 바람에 갑자기 주가가 급격하게 빠졌습니다. 저도 약간 정리해보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순식간에 기회를 잃었죠. 어느 놈이 그런 소문을 퍼트렸는지…….”
말을 하던 권대만이 박강수와 눈을 맞췄다.
“설마?”
박강수의 눈에 분노가 타올랐다. 그가 이를 으드득 갈며 중얼거렸다.
“SJ 측에서 퍼트린 소문입니다.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지요.”
권대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SJ랑 저는 사이가 좋습니다만? 그동안 좋은 파트너였거든요.”
“당신은 이용당한 겁니다.”
박강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권대만이 신음을 터트리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엄밀하게는 이용당했다는 표현이 맞지 않음을 권대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1조 원의 부를 축적했다가 한순간에 거지가 되어버렸으니 권대만도 심적으로 견디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은 처음에 투자한 돈이 사실상 없다. 지금 자신의 앞에는 그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은 자가 앉아있으니 불평을 드러내기도 미안했다.
한동안 끓어오르는 감정을 삭인 권대만은 박강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사죄를 받아도 잃어버린 돈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박강수는 한숨만 내쉬었다.
권대만이 넌지시 물었다.
“남은 돈이라도 챙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팔고 빠져나오는 것이…….”
박강수가 고함을 질렀다.
“당신 같으면 칠천억 넣어서 천억 들고 나갈 생각이 나겠어?”
박강수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지금이라도 털고 남은 금액이라도 챙기는 것이 옳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그런 행동은 사실상 어려웠다.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을까 하고 홍콩으로 날아왔건만 더 답답해졌다.
박강수는 그동안 자신이 벌였던 일을 되새겼다.
모두 칠천억이었던가. 어마어마했다. 표시 안 나게 메꾸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절반은 은행 차입과 채권 발행 등을 통해 그나마 정상적으로 투자한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편법을 이용해 동원한 자금이었다. 게다가 홍콩으로 돈을 이전시키면서 제대로 정부의 승인도 받지 않았다.
이제야 이성을 차려 다시 되새겨보니 문제점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으으……”
박강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만 내쉬었다.
그런 박강수를 보며 권대만도 안절부절못했다.
두 사람이 고민에 싸여있을 때 한 직원이 급하게 뛰어왔다.
“부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박강수가 게슴츠레한 얼굴로 직원을 노려보았다. 얼굴을 보니 더 짜증 나게 생겼다.
“무슨 일이야?”
“한국 인터넷 신문에 속보가 떴습니다.”
직원이 노트북을 들고 그에게 내밀었다.
박강수의 눈동자가 노트북 화면 위를 움직였다.
*
최근 중국 주식시장의 급락으로 국내 유명 증권사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증권사는 미국기업을 통해 중국의 인터넷 회사에 투자하였으나 주가 하락으로 원금의 대부분을 잃었다. 손실액은 무려 수천억 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손실로 해당 증권사는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며 해당 증권사와 거래하고 있는 투자자는 부도 위험을 피하려고 위탁계좌를 해지하고 있다.
이에 증권 당국은 주식 투자자금은 투자자 보호 대상이므로 부도와 무관하게 안전하다고 밝히며 진화 중이다. 다만 MMF에 맡겨둔 돈은 보호 대상이 아니므로 부도 시 찾을 수 없다고…….
*
쾅!
박강수가 책상을 내리쳤다.
“대체 어디서 새나간 거야?”
언론에서 저렇게 떠들어 버리면 조용히 채워 넣기도 불가능해졌다. 이젠 자칫하면 해솔 증권의 사활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었다. 그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박강수가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난리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직원이 전화를 받고는 헐레벌떡 뛰어왔다.
“회…… 회장님이십니다.”
박강수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그는 긴 호흡을 몇 번 내쉬고는 전화를 받았다.
“저 강수입니다.”
“그래, 강수야. 홍콩 잘 갔다. 지금 여기에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일단 잠잠해질 때까지 거기에서 머물러라. 알겠지?”
박강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압수수색…….”
그의 손에서 전화기가 떨어졌다.
동시에 그의 머리에 한가지 물건이 떠올랐다.
“다…… 다이어리가…….”
자신의 사무실 책꽂이에 둔 다이어리가 문제였다. 검찰에서 보더라도 내용을 알아채진 못하겠지만 그게 분실되면 그로서도 치명타였다.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
이때 유서준은 SJ 증권 사장실에서 서하나와 경영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다시 맞이한 주가 하락기에 전반적인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자리였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전반적으로 증권사의 몸집이 불어났다는 것이다.
펀드 수탁고도 만만찮게 많아졌다. 과거 D 증권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보수적인 대응으로 이 하락기를 벗어나는 전략을 점검한 다음 자연스럽게 이후의 전략으로 넘어갔다.
“이번 하락기를 지나면 일단 지점수를 늘리고 인원도 충원해야겠어.”
유서준이 전략보고서를 검토하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지금 현재의 유서준은 국내보다 국외인 홍콩의 SJ 투자은행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KD 닷컴에서 회수한 투자금으로 구축한 홍콩 선물 매도 포지션은 많은 수익을 내고 있었다. 해외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국내에서와 다른 짜릿한 맛이 있었다. 국가의 부를 불리는 것이니까. 이제 전체 해외자산은 1조를 넘어섰다.
서하나가 그룹의 전반적인 체제를 살펴보다가 제안했다.
“몸집을 불리자. 지금 이대로는 무리야.”
처음 D 증권을 인수했을 때 증권사 자본금은 불과 400억 원이었다. 그야말로 소형증권사. 몇 년 전 M 증권을 인수하고 한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키우기는 했다. 이제 그 틀을 완전히 탈피할 시점이 왔다.
서하나가 유서준에게 물었다.
“국제적인 투자은행을 만들겠다며? 적어도 해외에서는.”
“그렇지.”
“국내에서도 조만간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 실시를 당국에서 허가할 거야. 그때를 대비해야 해.”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는 국제 헤지펀드 운용 서비스를 의미했다. 진정한 투자은행으로 올라서는 발판이었다.
서하나가 말을 이었다.
“그럼 모회사 규모가 튼튼해야 해. 이참에 대형 증권사로 탈바꿈하자. 사내 유보금이 많지?”
그동안 발생했던 수익 가운데 배당을 해주고도 남은 이익금이 상당했다.
“그 유보금을 이용해서 무상증자를 실시하고 일부 유상증자를 덧붙여. 일단 자본금을 3천억 원대로 올리자. 자기 자본 규모도 1조로 늘리고. 그래야 운용자산 규모 10조 원을 돌파할 수 있어.”
국내에서 자기 자본 규모가 1조 원을 넘고 운용자산 규모 역시 10조를 초과하는 증권사는 많지 않다.
유무상증자를 실시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금융당국의 허가와 대주주의 자본력이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허가가 유보될 수도 있다.
유서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올 하반기에는 시장 사정이 나빠져. 유상증자가 허가되지 않을 거야. 그럼 내년으로 넘겨야 해.”
두 사람이 이런저런 고민을 엮으며 전략을 수립할 때였다.
비서실장인 최훈재가 들어왔다.
“해솔 증권에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명목은 외국환관리법 위반과 대주주의 사내 자본 유용 의혹입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유서준은 매우 놀랐다. 홍콩 투자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모양이었다.
“해솔 증권이 쓰러지면 좋은 것 아닙니까?”
최훈재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도 SJ 증권과 해솔 증권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유서준과 서하나의 반응이 떨떠름한 것이 이상하여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경쟁사가 사라지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서하나가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최훈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유서준은 여러 상황을 종합하며 고민했다.
그의 머리에는 다른 문제보다 마지막 한 권의 다이어리가 어른거렸다.
예전에 박강수의 사무실에서 보았던 다이어리의 흔적. 확인을 해보진 못했지만 표지로 보아선 확실했다. 압수수색이 시작되었으면 그 다이어리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박강수가 미리 빼돌렸을까? 다이어리를 자택에 두었을 수도 있고. 지금도 사무실에 방치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지 않아?”
유서준이 심각한 음성으로 물었다.
서하나 역시 다이어리가 가지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2017년부터는 그 다이어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정작 서하나 본인은 다이어리에 매달릴 생각이 없지만, 박강수나 미지의 인물이 그 다이어리를 참조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 다이어리를 소유한 자는 괴물이 될 것이니까.
서하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부의 정점에 서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