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81
190. 해솔 증권의 잔해(1)
[2008년 11월 16일]주말을 맞아 유서준은 서울 북동쪽 팔당호 주변을 달리고 있었다.
한강 수자원 보호구역인 이곳은 사실상 개발이 불허되는 지역이다. 기존에 이미 들어와 있는 가옥이나 시설만 개보수가 허가되어 인가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곳이다.
유서준은 부근의 한 부동산업자를 만나기 위해 왔다.
매일 집과 회사를 오가는 반복된 생활에 다소 염증을 느끼던 시점이었다. 그가 이런 기분을 느낀다면 아내인 서하나는 아마 더 심하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회사 일을 때려치울 수도 없다.
그러다 미친 생각이 주말에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별장을 하나 마련하고 싶었다.
유서준의 고향은 강원도 배추밭이다. 푸른 고랭지 배추밭만 바라보다 서울 콘크리트 숲에 묻혀 지내다 보니 자연의 품이 절로 그리웠다.
생각해낸 것이 자연 속의 별장이었다.
마침 좋은 물건이 나왔다나.
일요일, 유서준은 별장 계약을 위해 부동산업자를 만나기로 했다.
서하나와 함께 할 수도 있었지만 나중에 놀라게 해줄 욕심에 혼자서 팔당행을 택했다.
인자한 시골 아저씨 인상의 부동산업자를 만났다. 이런 곳에서 얼마나 벌이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급하게 연락드린 이유는 물건이 갑자기 나와서입니다. 아시겠지만 이 동네는 땅이 있다고 새롭게 별장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시지요? 그렇다 보니 동네가 조용하고 물건값이 꽤 비쌉니다.”
이미 각오한 바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깝고 산과 강이 어우러진 최적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그런 이유로 재벌의 별장이 꽤 많이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유서준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설명을 들었다.
“평수는 이천 평가량입니다, 이미 별장 건물이 서 있어서 개보수하거나 다시 지어도 아무런 행정 문제가 없는 물건입니다. 주위가 국공유지라 타인의 간섭도 받지 않고요. 가격은 대략 87억입니다. 작년까지는 100억을 줘도 팔지 않겠다던 물건이지요.”
일반 별장치고는 꽤 비싸다. 하지만 동네가 동네인 데다 그만큼 입지가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 금융위기인지 뭔지 덕분에 부동산 가격이 많이 내렸습니다. 보통 이 동네는 그런 바람 안 타는 갑부가 주인이라 이런 일이 없는데 이 별장 주인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가 봅니다. 갑자기 별장을 싸게 내놨더군요.”
최근 무너지는 기업이 상당히 많았다. 외환위기만큼은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금리 상승으로 한계에 이른 기업이나 가계가 늘었다. 급매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혹시 어디인지 아시나요?”
“글쎄요, 관리하는 문 씨 영감이 예전에 언뜻 말하기로는 금융, 증권사 계통이라 했던 것 같은데…….”
유서준은 정신이 번쩍 뜨였다.
최근에 망가진 금융사 가운데 대부업체가 아닌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기업이라면 해솔 증권이 유일했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심증은 분명했다. 뭐, 어차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강변을 따라 한참 둘러 도착한 곳은 그림 같은 별장이 서 있는 공간이었다.
팔당호에서 한쪽으로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별장. 정면의 호수를 제외하면 양옆이 구릉으로 시야가 막혀 있고 뒤쪽은 야산이라 오히려 사생활이 보호되고 아늑해 보였다.
경사를 따라 약간 높은 곳에 자리한 별장과 그 아래로 잔디밭이 늦가을임에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심어진 정원수와 낮은 석등이 눈에 띄었다. 꽤 공들여 단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외부에서 보는 별장은 꽤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 위치라면 돈이 얼마 들더라도 절대 팔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당연히 무조건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차를 세웠다.
부동산업자가 지금 막 들어온 비포장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이 여기가 막다른 길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오지 않지요. 오다가 중간에 봤던 철문 하나 있었죠? 거기서부터 외부인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사생활 보호 면에서는 최적입니다.”
유서준은 별장 입구에서 호숫가까지의 거리를 가늠했다. 꽤 잘 다듬어진 길이어서 비가 오더라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부동산업자가 별장 입구를 막고 있는 녹색 대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이곳 관리인인 문 씨 영감입니다.”
문을 열고 나타난, 예순을 넘은 한 노인을 향해 부동산업자가 소개했다.
“이곳 관리인이고 절반은 여기 별채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절반은 부근에 있는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시지요. 이곳을 구입하면 관리인을 바꾸어도 되고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유서준은 인사를 하고 관리인을 살폈다. 전형적인 시골 노인으로 후덕한 인상이었다.
별장 대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았던 대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입구 부근에는 작은 사택이 있어 관리인이 생활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유서준은 넓은 잔디밭을 따라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갔다. 발에 닿는 판판한 디딤돌이 꽤 느낌이 좋았다.
별장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층 건물이었다. 지은 지 오래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잘 관리되어 있었다.
“혹시 이 건물을 헐어내고 새롭게 지을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보통 주택 개보수로 관청에 신고하고 새로 짓죠. 건평을 크게 달리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허가가 나올 겁니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다소 까다롭지만 가능한 모양이었다.
부동산업자가 슬쩍 그에게 물었다.
“새로 지으시게요?”
“네, 지금은 다소 고풍스러운 면이군요. 전 이보다 현대식의 세련된 맛을 좋아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아무래도 젊은 분이시라.”
굳이 별장 내부를 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별장 매입 후 다시 지을 생각이니까.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돈은 그에게 그리 문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과거 해솔 증권의 것이었다면 빼앗는 재미도 있다.
앞으로 이곳에 오면 각박한 도심의 주식 숫자 놀음에서 벗어나 마음의 힐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빨리 공사를 시작하면 얼추 시간에 맞추어 이곳을 완전히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만간 탄생하게 될 환상적인 별장이 바로 그가 서하나에게 주는 감사의 선물이었다. 항상 그를 배려해주고 그를 위해 열심히 일해주며 딸 세라를 키우는 천사 같은 그녀에게.
**
[2008년 12월 31일]연말이 되었지만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10월에 저점인 892.16을 찍었던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11월에도 크게 출렁이더니 12월이 되어서야 다시 상승으로 돌아섰다.
12월 말 종합주가지수는 1124.47로 다행히 1000선 위에서 끝이 났다.
하지만 절대적 수치로는 매우 낮은 수준. 전년 대비 무려 -41%나 하락한 것으로 투자자를 두렵게 했다.
물론 유서준은 내년부터 상승을 시작한 종합주가지수가 2년 뒤인 2010년에 다시 2000 선을 탈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다이어리를 통해 아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세 번째인 마지막 다이어리가 보여주는 2016년 12월 말의 종합주가지수는 2026.46으로 2010년과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약 6년의 기간 동안 주식시장은 지루한 횡보 구간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폭등도 폭락도 없는 그런 기간이다.
그의 기억에 증시가 근대화 된 1980년 이후 이처럼 긴 기간 횡보를 이어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고 큰 격변이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흐름이 완만해지면 돈을 벌기 힘들어진다. 이 기간은 우량주를 중심으로 한 정석 투자가 빛을 발하는 때다. 유서준의 다이어리가 사실상 큰 도움이 되지 아니한 구간이었다.
아쉽게도 그는 2016년 이후의 흐름을 알지 못했다. 아니, 이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서하나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 네 번째 다이어리를 없애버렸으니까.
긴 기간의 횡보가 나온 다음에는 큰 폭의 상승을 하거나 큰 폭의 하락을 하게 된다.
예외적으로 긴 횡보 구간으로 보아 유서준은 2017년부터는 상승으로 돌아설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약간 더 횡보하고 이후부터 상승하거나. 어차피 시나리오는 같았다.
항상 연말이 되면 SJ의 일등공신이나 대학교 친구와 함께했었다.
올해는 같이 할 사람이 없었다.
중요한 인물인 신선영은 리먼 브러더스 정상화 때문에 뉴욕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강재민 역시 홍콩에서 일이 바빠 국내로 넘어오지 못했다.
박강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다만 김현아와 김동식 정도만이 같이할 수 있는 상대였지만 김동식이 집안일로 연말 모임을 고사했다.
유서준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와 서하나, 김현아 이렇게 셋이서 연말을 맞을까.
그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두 여인 사이에는 어떤 감정을 가질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만남은 서하나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고 김현아에게도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연말연시는 사람을 들뜨게 하고 이런 세 사람의 만남은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었으니까.
유서준은 고심하다가 올해 연말은 친구 없이 가족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유세라는 두 사람을 기쁘게 했다.
세라는 엄마를 닮아 무척 예쁘고 귀여웠다. 거기에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똑똑하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재능도 많았다.
12월 31일 저녁, 유서준네 가족은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사실상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기회는 특별했다.
특히 서하나는 자신이 손수 딸 세라에게 오랜만에 맛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하게 되어 무척 기뻤다.
유세라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항상 아빠 엄마와 함께 밥을 먹었으면 좋겠어요.”
서하나는 세라가 유독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딸 바로 앞에 가져다 놓았다.
유서준이 인상을 썼다.
“난?”
“당신은 굶어.”
어느새 세라 다음에 자신이 되어있었다. 유서준은 서하나를 째려보았다.
유세라가 조심스럽게 고기반찬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아빠도 드세요.”
“우와, 역시 우리 세라가 최고다.”
유서준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으이그 팔불출 났네.”
서하나가 웃으며 툴툴거렸다.
유서준이 신나게 젓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지난번에 구인혁네 집에 갔더니 딸애가 있더라. 나이가 세라랑 똑같았어.”
“그 아이도 예쁘겠네?”
“구인혁 아내가 예쁘니까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세라보다 못하지. 히히.”
누구나 자신의 자식이 가장 예쁜 법이다.
물론 서하나가 특출하다 보니 유세라의 외모도 보통이 아님은 확실하다.
“아깝단 말이야. 그 집 애가 아들이었으면 나중에 세라랑 혼인시키면 딱 좋은데.”
유서준이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주변 친구나 지인을 떠올려 보니 만만하게 아들 가진 집안이 드물었다.
“요즘 아들이 드문 시댄가?”
유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라 빨리 치우게?”
“아니, 세라는 아무 놈한테 절대 못 주지.”
유서준이 손을 내저었다.
서하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언젠가 딸을 내주려면 가슴이 아플 것이다.
유세라가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아빠 엄마와 계속 살 거예요.”
“흐흐, 이 귀여운 것.”
유서준이 딸을 품에 안았다.
그는 이런 행복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날 밤 침대 머리맡에서 유서준은 다이어리에 자산을 기록했다.
해외자산이 복잡해져서 통계를 내기가 어려웠지만 일단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국내 SJ 투자금융지주 주식 지분. 해외 SJ 투자은행 주식 지분. 그와 서하나의 개인 계좌에 담긴 주식과 은행 예금, 부동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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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1일, SJ 투자금융그룹 주식보유분 제외 개인 총자산 8조4000억 원.
해외 총자산 18억 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