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87
197. 주식 사기(2)
대박여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노련했다. 곧 표정을 수습하고 다시 환하게 웃었다.
“저 그동안 정말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나눠드리려고 주식 방송하는 겁니다. 물론 방송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그동안 벌어놓은 게 많으니까요. 강남 가보시면 대치동에 대형 평수 아파트 있죠? 도곡동에 높은 주상복합 아파트 있죠? 또, 잠실 가면…… 거기 곳곳에 제 아파트가 한 채씩 동네별로 박혀 있습니다.”
대박여우는 여유 있게 받아넘겼다.
서하나가 모자챙으로 안면을 더욱 가리며 물었다.
“그걸 묻는 게 아니고요. 그래서 재산세 얼마 내시냐고요.”
대박여우가 대답 못 하고 얼버무렸다. 태어나서 재산세라고는 한 번도 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답변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대박여우는 다른 답변을 했다.
“저는 현재 강남 도곡동에 있는 70평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주식으로 한 달에 수억씩 버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대박여우는 말을 하면서 눈짓을 했다.
떡대 있는 한 남자가 나타나 서하나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서하나는 무시하고 한마디 더 뱉어냈다.
“혹시 재산세 세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대박여우의 눈꼬리가 양옆으로 올라갔다.
“당신 누구야?”
떡대가 서하나에게 다가가는 길을 유서준이 차단했다. 상대가 유서준을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다.
유서준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서준의 덩치도 상대에 못지않았다. 유서준이 막아서자 상대가 흠칫하는 표정을 짓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대박여우의 표정을 살폈다.
대박여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신 누구길래 남의 영업장에서 행패야?”
서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벗었다.
그녀가 머리를 가볍게 움직이자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몇몇이 그녀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우와, 서하나다! 경제방송 앵커!”
대박여우의 안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서하나는 유명인사다. 주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평범한 일반인일지라도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박여우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아니, 유명하신 분께서 이 자리에 웬일이신가요?”
서하나가 웃음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전 다른 관심은 없고요, 당신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만 알고 싶어요.”
대박여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청중 몇이 그녀에게 와서 인사를 하고 사인을 요청했다.
서하나는 그들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손짓을 하고는 대박여우를 주시했다.
대박여우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사정하는 투로 말했다.
“그렇다고 방해하는 것은 알만하신 분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전 방해하는 것 아닙니다. 단지 사실 여부만 확인할 생각이어요. 당신 말이 진짜인지.”
서하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애당초 쉽게 물러날 생각이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박여우의 안면에 짜증스러운 표정이 떠오르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체 당신이 뭐야? 경찰이야? 아니면 검찰이라도 되는 거야?”
장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저들의 반응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서하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거나 작전을 벌이는 자는 그녀의 기준에서 가장 나쁜 무리였다.
관계자 서넛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유서준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때 입구에서 임중건 검사가 나타났다.
임중건 검사가 대박여우 앞으로 가더니 신분증을 내보이며 말했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대박여우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대박여우가 가까스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임중건이 피식 웃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주식 작전행위, 카페회원 기만 사기, 불법 금융 수신 등등 혐의는 많습니다.”
“그…… 그게…….”
임중건이 서하나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인사한 다음 대박여우에게 다시 말했다.
“방금도 거짓말 하셨잖아요? 현재 사는 곳을 조사해보니 구로역 부근 월세방에서 살고 계시더군요.”
“아…… 아니야.”
대박여우가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검사의 출현으로 장내에서 난리가 났다. 밖으로 도망치는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대박여우와 검사의 만남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경찰 서넛이 들어와 대박여우를 체포했다.
홍보 모임은 완전히 망가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칫하면 속을 뻔했다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서하나를 칭송하며 사인을 받아갔다. 졸지에 홍보 모임은 서하나를 위한 모임이 되어버렸다.
유서준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와, 검사 끗발 좋다.”
“내가 인기 좋은 건 안보이고?”
서하나가 마구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임중건 검사가 와서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유 대표이시죠? 예전에 지검 청사와 자택에서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유서준은 내미는 손을 잡고 악수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당연한 일을 했습니다.”
서하나 역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아이고, 서 사장님 부탁이라면 꼭 해드려야지요.”
임중건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유서준은 잠시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봤다.
모두가 작전주가 나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는 작전주를 찾는다. 주가 움직임이 화려해서 돈이 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작전주를 이용해 크게 한탕한 사람도 있다.
초보 시절에는 우량주 투자를 외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작전주를 찾는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나 작전주에 뛰어들기는 쉽지만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전문적인 작전꾼도 실패하는 작전이 상당수다.
작전은 주식시장에서 필요악과 같은 존재다. 그렇다고 작전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2009년 가을, 전 세계적으로 신종 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실상 이동이 힘들어졌던 그때 송예은에게 권대만이 찾아왔다.
권대만은 같은 학과 출신으로 한때 그녀를 쫓아다녔을 만큼 둘은 잘 아는 사이였다.
송예은은 리먼 브러더스가 보이는 맞은편 커피숍에서 권대만을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
권대만이 커피를 두 개 사서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송예은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흐아암, 그냥 회사 다녀. 재미는 없어.”
그녀의 말투에 단조로운 일상이 묻어났다.
송예은은 유서준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한 후 심각한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활기 넘치던 그녀의 모습이 삶에 찌든 모습으로 바뀌었다.
유서준이 그녀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도 하룻밤 상대마저 해주지 않다니.
유서준에 대한 욕심을 더는 부릴 수 없는 상황이라 유서준이 생각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녀의 경력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국내로 돌아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곳에서 유서준을 만나거나 서하나를 접하는 것은 오히려 고문이 될 것 같았다. 더해서 김현아를 만나면 더욱 괴로울 테니까.
“넌 뭐 하고 있어? 중국에서 심하게 깨지고 하는 일이 뭐야?”
송예은이 권대만의 눈치를 봤다.
권대만이 몸을 움츠리며 우울하게 말했다.
“한때 정말 많이 벌었다니까.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폭삭 망할 줄 누가 알았겠어. 중국 애들이 도박 좋아한다더니 딱 그 짝이야. 하늘 쪼갤 듯 오르다가 내릴 때는 땅이 깨져라 폭삭하더라고.”
비록 송예은은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적이 없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드러나는 허탈감이 대단함은 알아봤다.
권대만이 투덜거리며 머리만 긁었다.
송예은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래서 얼마 남았는데?”
“남은 건 없어. 오히려 빚만 졌지. 파산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살기가 막막하다.”
송예은은 대충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갔다. 한국에서는 사업하다가 실패하면 사실상 재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능력이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녀가 보는 권대만은 나름대로 능력 있는 사람이다. 이익이 있는 곳의 돈 냄새를 맡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런데 왜 망했을까.
송예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어? 서준 샘은 잘 빠져나왔잖아?”
“아, 유서준 SJ 대표?”
송예은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권대만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 우연인지 아닌지. 유서준 대표야 한때 주식의 신이라는 소문이 돌았잖아? 이번에 중국에 투자할 때도 처음부터 2년 내 회수할 거라고 못을 박고 시작했거든, 겉으로 보면 그냥 시기가 다 되어서 중국에서 철수한 건데 공교롭게도 그게 중국이 무너지기 직전이었어.”
“역시 서준 샘이네.”
“우연이겠지. 주식은 신도 모르는 거야.”
퉁명스럽게 내뱉으면서도 권대만은 박강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모두 유서준에게 속은 거라고. 유서준이 주식을 넘기고 주가가 떨어지라고 소문을 냈다고. 그래서 주가 폭락으로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이성적으로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만났던 유서준은 합리적이고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자신의 파산을 뒤집어씌울 그 무엇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심리적으로 편해지니까.
“과연 그럴까.”
송예은은 새삼 유서준의 대단함을 느꼈다.
그녀가 예전에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유서준에게 말했던 것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유서준은 그녀에게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비쳤다. 그에 반해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권대만은 어떤가.
한때는 권대만의 능력도 꽤 괜찮아 보였다. 이번 중국 사업에서 그는 능력을 발휘할 듯하다가 결국 망가졌다. 제대로 평가하기는 아직 일렀다. 일반인보다 탁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확실히 배웠어. 내가 경험도 없이 너무 설쳤다는 거. 다음엔 다를 거야.”
권대만이 주먹을 불끈 쥐고 전의를 불태웠다.
송예은은 용기를 잃지 않은 그의 모습이 괜찮아 보였다.
“넌 리먼에 계속 있을 거지?”
권대만이 조용히 생각에 잠긴 송예은에게 물었다.
송예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떠날 거야.”
“떠나다니? 대우도 좋다며.”
“서준 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권대만은 뜻밖의 말에 다시 물으려 했다. 송예은의 눈길이 허공을 응시하며 회상에 잠긴 듯하여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송예은이 유서준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송예은이 자신의 구애를 거절했던 이유가 유서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유서준이 자신의 인생에 걸리적거린 일이 많았다. 박강수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 파산한 이유도 유서준 때문이었고 지금 송예은의 모습을 보아하니 자신이 결혼 못 한 이유도 유서준 때문이었다.
송예은 때문이라도 권대만은 유서준을 이겨보고 싶었다.
“정해둔 곳 있어?”
권대만이 내심 환영하며 물었다.
송예은이 권대만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LTCM. 같이 갈래?”
“LTCM?”
물론 권대만도 LTCM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하지만 LTCM은 이미 사라진 기업이다. 그는 송예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송예은이 보다 상세히 설명했다.
“LTCM은 천재의 집합소야. 난 천재가 좋아. 그들은 능력자니까. 과거 LTCM의 멤버들이 창업자의 아들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고 하더라고.”
파산의 경험을 가진 천재가 다시 제대로 시작하면 정말 무서운 기업이 될지도 모른다.
권대만은 자신 역시 파산을 경험한 천재 범주에 들어간다고 자부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LTCM과 정서적 교류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LTCM? 구미가 끌리는데? 그런데 너는 왜 거기로 가려고 하는데? 리먼의 대우가 별로야?”
“대우는 넘치지. 조금 전에 말했잖아, 서준 샘에게서 벗어나 서준 샘을 이겨보고 싶다고.”
권대만은 송예은의 눈빛에서 자신과 같은 전의가 불타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모든 징조가 나쁘지 않았다. 송예은이 유서준에게서 멀어질수록, 또 미워할수록 자신에게 올 확률이 높아지니까.
“좋아. 나도 LTCM이 마음에 들었어. 어차피 지금은 불러주는 곳도 없으니 거기라도 가서 비벼봐야지. 나도 같이 가도 돼?”
권대만이 기대에 넘치는 모습으로 허락을 요구했다.
송예은은 대답 없이 허공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그녀는 리먼 브러더스에 사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