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88
198. 미래의 비밀(1)
송예은의 사표는 유서준에게도 충격이었다.
유서준은 송예은에게 몇 차례 이메일을 넣어 보았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미국 현지로 날아가 주변 정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리먼 브러더스 돌아가는 상황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를 잡는 것은 신종 플루. 한국도 미국도 신종 플루 여파로 모임이 취소되고 이동이 드물어졌다.
신종 플루가 그나마 수그러들기 시작한 것은 해가 바뀌어 겨울이 점차 물러가던 2010년 3월이었다.
유서준은 서하나와 함께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리먼 브러더스 경영진과 인사를 통해 사내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서하나의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분위기를 내 볼 생각도 있었다.
**
[2010년 3월 25일]리먼 브러더스는 겉보기에 꽤 활기차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부도 직전의 침울한 분위기만 접했던 유서준에게 활기찬 분위기는 매우 낯설게 돌아왔다.
햄버거 하나를 입에 물고 트레이딩에 몰두하는 모습은 그들만의 문화를 엿보게 했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는 국내 문화와 달리 일의 양으로 평가받고 주어진 일이 있으면 일단 해치우고 보는 문화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유서준과 서하나는 신선영의 안내를 받았다.
그녀와는 무려 1년 반만의 만남이었다.
“어려운 점 없어요?”
위층으로 이동하며 유서준이 물었다.
“처음에는 나 혼자 내버려 두고 가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 그래도 금방 적응되더라. 지금은 할만해. 분위기도 꽤 좋아졌고.”
신선영의 답변에 유서준이 엄지를 내밀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해준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 여기 뭐랄까, 외부인을 배척하거나 그런 분위기는 없어요?”
사실상 유서준이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이 리먼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자칫 저들의 시기심이나 우려를 낳을 수도 있었다.
그의 질문에 신선영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으흐흐, 왜 없었겠어. 그들이 보기에 서준이도 이방인이고 나 또한 마찬가지니까. 그런 문제는 초반에 다 처리해서 지금은 없어.”
“네?”
“오늘 회장 만나보면 알 거야.”
리먼 브러더스 회장을 맡은 에드워드 고든은 예순을 갓 넘은 신사였다.
리먼을 인수했을 때 막 회장에 선정된 고든과는 악수만 하고 헤어졌었다. 회장 임명 당시 고든은 사내에서 평이 좋은 인물이었고 다른 대체자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 유서준의 예상보다 고든은 리먼을 잘 이끌어주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고든 회장은 유서준을 깍듯하게 대했다.
예상보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환대에 유서준은 당황했다.
그에게 신선영이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그동안의 경영 보고를 받았다.
주된 내용은 부도 때 심하게 망가지고 엉클어졌던 각종 채권과 파생상품을 제자리에 되돌리면서 어쩔 수 없이 입게 된 손실처리 내용이었다.
유서준 역시 처음부터 예상했던 내용이기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예상보다 빨리 정상화 되어 지금부터는 예전처럼 정상적인 상품 중개와 거래가 가능해졌다는 점이었다.
유서준은 이를 높이 치하했다.
고든 역시 좋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동안의 경영평가가 끝나자 고든이 의견을 물었다.
“리먼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과거 부도의 영향이 있어서 안정을 기조로 해서 운영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부도의 위험에서 갓 벗어난 일반 기업이 보통 나아가는 방향이었다.
유서준은 신선영의 의견을 물었다.
신선영도 안정적인 경영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다이어리의 내용을 떠올렸다. 국내 증시에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2000을 기준으로 옆으로 횡보하는 시기였다. 주가 변동성이 계속 줄어드는 기간. 주식투자자에게는 위험도 기회도 없는, 한마디로 재미없는 구간이었다.
물론 그는 세계 증시, 그것도 미국 다우나 나스닥의 흐름은 모른다. 하지만 국내 증시의 흐름으로 대략적인 상황은 추정 가능했다. 이 기간 미국 역시 금융위기 같은 큰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유서준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과거 리먼의 영화가 금방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안정적인 운영으로 몸을 움츠려서는 다시 일어서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고든은 자신이 말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고든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렇게 하면 외부의 시선이 좋지 않을 겁니다. 부도난 지 몇 년 지났다고 또 공격적으로 상품을 운용하냐고 말이지요. 사실 과거 리먼의 부도는 위험을 도외시한 지나친 수익 위주 운용 때문이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다시 말씀드리지요. 향후 10년간은 911 테러나 금융위기 같은 심각한 위기상황은 오지 않습니다. 물론 리스크는 대비해야겠지요. 하지만 100년에 한 번 있을 것 같은 그런 최악의 경우는 제쳐놓고 운용하셔도 괜찮습니다.”
신선영은 유서준의 자신 있는 발언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예전에도 유서준은 외환위기 같은 상황을 적절하게 피해갔다. 신기하게도 그는 위기를 미리 내다보았다. 그런 그의 감각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신선영은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대비 없이 운용하면 적어도 두 배의 수익률이 가능해질 겁니다.”
유서준이 장담했다.
고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런 극악의 리스크에 대비하지 않다가 리먼은 부도를 맞았다. 일반적인 경영자라면 이번에는 그런 위기를 대비하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모자랄 판이 아니던가.
“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최종 책임은 제가 집니다. 그런 부분까지 일일이 다 대비하면 언제 다시 올라서겠습니까?”
고든의 입장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누구의 명인가. 리먼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최종책임자가 허락했으니 회장인 고든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고든 회장님, 아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설마 제가 리먼을 말아먹기야 하겠습니까?”
“그…… 그렇지만…….”
고든이 떨떠름한 얼굴로 얼버무렸다.
유서준은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눈치챘다.
“과거 경영자였던 풀드 회장 이하 모두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FRB에서는 리먼 부도의 책임을 물어 회장인 풀드와 사장인 그레고리, 부사장인 캘런을 고발했다. 하지만 그들이 잘못 경영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재판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곧 면죄부를 받으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렇게 재판이 흐른 가장 큰 이유는 유서준이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할 문건을 일부 소각하고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리먼 인수 협조에 대한 대가로 제시했던 내용이었다.
유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퇴직금도 제대로 받아갔죠? 아마 재판도 증거 부족으로 무죄 나올 겁니다. 고든 회장님도 굳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든은 유서준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었다.
이어서 세부적인 부분의 대화가 이어졌다.
**
잠시 후 유서준은 임원진이 모인 강당으로 안내되었다.
리먼 브러더스의 소유자로서 임직원에게 처음으로 그 모습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서하나는 관중석에 앉았다.
유서준은 고든 회장과 신선영을 대동하고 장내에 입장했다.
이것은 그의 두 가지 노림수였다. 하나는 고든 회장을 오른팔로 둠으로써 자신이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임을 은연중에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하나는 신선영을 옆에 둠으로써 그녀가 직급과 무관하게 실세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유서준이 단상 중앙에 서자 고든 회장이 소개했다.
유서준은 임직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긴말은 하지 않았다. 짧은 소개와 인사에 이어 한가지만은 확실히 당부했다.
“리먼은 오래지 않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은 부담 없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확실하게 그 보상을 받아가십시오. 뛰어난 실적을 보인 분에게는 제가 확실하게 보상해드립니다. 과거의 실패에 따른 불안과 두려움을 잊고 이제부터는 공격적인 운용을 부탁드립니다. 더 열심히 공격적으로 하고 싶다면 앞에 계신 두 분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유서준은 장내를 둘러봤다. 투자은행에는 젊은 사람이 많다. 이들의 피를 끓게 할 유인책이 필요했다.
“저는 과감하게 열심히 노력했다가 실패한 사람을 문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성공이 결국 회사를 먹여 살리니까요. 그런 분께 오히려 보상해드립니다. 뛰어난 실적으로 제가 드리는 인센티브를 충분히 챙겨가시기 바랍니다.”
와아!
장내 인원의 함성이 터졌다. 돈을 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인센티브를 챙겨주겠다면 모두가 좋아해서 더 열심히 하기 마련이다.
향후 10년간 특별한 위기가 없다면 공격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게 답이다. 다른 은행에서 리스크를 대비하며 미적거릴 때 확실하게 치고 나가야 부도로 망가진 리먼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
유서준은 리먼 직원 사이에서 아시아에서 투자로 성공한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 그의 개인 자산은 무려 100억 달러에 달해 웬만한 풍파에서도 리먼을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유서준이 밀어주겠다고 했으니 모두가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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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식사 후 유서준과 서하나는 신선영과 함께 조용한 호프집을 찾았다. 멕시코 요리 안주에 멕시코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숙박할 곳은 찾았어? 없으면 우리 집으로 가고.”
신선영이 말했다.
서하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예약했어.”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낮에 있었던 일을 총평했다.
“고든 회장이 의외로 고분고분하더라. 의외였어.”
서하나가 신선영에게 비결을 물었다.
신선영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고든 회장은 전대 경영진이 물러나면서 갑자기 내부 승진한 사람이잖아? 거기에다 그때 리먼은 완전 만신창이였으니 어차피 자기 색깔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어. 하지만 그도 리먼 인수 시 이면 계약을 얼핏 알고는 있었던 것 같아. 인사권을 리먼 측에서 갖기로 한 것 말이야.”
인사권은 동양인에 대한 피인수 거부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유서준이 FRB에 내건 조건이었다.
“고든 회장도 그 사실을 알고 인사권을 막 휘두르려 했을 때 내가 말했어. 직원에 관한 인사권은 고든 회장이 갖고 있지만 회장, 사장, 부사장에 대한 인사권은 소유자인 서준이가 갖고 있다고. 여차하면 회장 자르고 말 잘 듣는 다른 사람으로 내부승진 시킬 거라고.”
신선영이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초창기에 회장, 사장, 부사장이 참여하는 최고 경영자 회의에서 투자전략본부장인 내가 그렇게 한마디 했거든. 어차피 나에 대한 특수성은 그들도 이미 잘 알던 상황이라 그다음부터 중요한 안건은 꼭 나의 의견을 묻더라. 하하.”
사실 회장 이하 경영진이 신선영이나 유서준의 의견을 무시했다면 꽤 골치 아팠을 것이다.
누가 소유주인지 우위에 있는지 확실하게 각인시킨 신선영의 도발은 정확히 적중했다.
“앞으로 10년 뒤면 다시 원래 위치인 미국 4위 투자은행으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유서준이 은근한 기대감을 풍기며 물었다.
“정말 잘 풀리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부도 전의 리먼 브러더스는 시가총액이 약 400억 달러에 보유 상품 규모는 6000억 달러에 달했다. 현재 유서준이 소유하고 있는 지분은 대략 30%. 리먼이 정상을 회복하면 그가 소유한 리먼의 가치만 15조에 달한다. 한국과 해외의 자본 규모가 역전될 수준.
“이름은 언제 바꿀 거야?”
신선영이 갖고 있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유서준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정확히 10년 후에 바꿀 거야. 2018년 여름. 그때면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경영할 거니까.”
2027년의 위기를 대비한 그의 포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