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02
212. 메리웨더(1)
신선영이 봐두었다는 저택은 뉴욕의 근교에 자리하고 있었다.
인근 마을 전체가 부촌이라 거리도 깨끗하고 치안도 좋아 보였다. 대학생이나 갓 입사한 직장인이 거주하기엔 다소 과해 보였으나 신선영 말로는 잘 사는 집안 자녀는 이런 집을 구하기도 한다고 했다.
유서준 역시 하나뿐인 딸이 외지에서 고생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기에 대만족이었다.
유서준은 구인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인혁은 저녁때 딸과 함께 오겠다고 했다.
딸 둘이 함께 거주하는 것을 구인혁도 찬성하여 일단 계약을 했다.
집은 현재 비어 있는 상태라 언제든지 이사 오면 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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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다음 신선영의 집에 모였다.
뉴욕 생활이 십 년을 넘어선 신선영은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신선영의 남편인 메가소프트 대표 천재욱은 뉴욕에 온 다음에도 게임 개발을 계속했지만 별다른 히트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금도 한 달에 절반은 회사에서 게임을 개발하며 밤을 새운다나.
신선영은 그런 남편에게 이제 게임 개발을 포기하라고 우겼다. 천재욱이 한 번만 더 도전해보겠다고 한 게 벌써 몇 년째였다. 게임 사업이란 것이 계속 실패해서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가도 하나 제대로 성공하면 큰돈을 거머쥐는 분야다 보니 포기할 줄을 몰랐다.
그나마 신선영의 월급이 상당히 많아 돈 걱정을 하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전화를 끊은 신선영의 한숨이 깊어갔다. 오늘도 남편이 회사에서 늦게 온다고 했다.
“그 말은 오늘도 안 들어온다는 이야기지. 남편이 게임이랑 결혼한 것 같아.”
모두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신선영이 김현아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래서 누구나 화려한 싱글을 염원하는 거야. 현아는 좋겠다.”
김현아는 미소만 지어 보이고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혼이란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고 했던가. 예쁜 딸을 낳아 잘 키운 서하나가 때로 부럽긴 했다.
한 번쯤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뜨거운 구애를 받아보고 싶었다. 이제는 이미 늦어버린 바람인 것 같지만.
그녀는 유서준을 곁눈질로 슬쩍 보았다. 유서준에 대한 욕심은 포기하기로 마음을 굳힌 지 오래이건만 가끔 그를 볼 때마다 속이 쓰린 것을 보면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나 보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쳐버리고는 다시 신선영에게 주목했다.
“확실히 서준이의 주식 감이 좋아. 대단해. 남들은 리먼 브러더스가 빨리 회복된 것이 사장이 잘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신선영이 유서준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는 서준이가 한 게 엄청 많아. 예전에는 큰 흐름을 짚어줬고 지금은 알파트레이더를 이용해 약간 포트폴리오 수정을 가하고 있는데…….”
알파트레이더 B의 기능을 의미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유서준이 자신의 주식 감을 로직화시켜 인공지능을 통해 거래 전반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마이클로부터 보고 받은 바로도 그러했다. 그녀는 그 주식 감이란 것이 LTCM의 매매를 분석한 것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
“덕분에 SJ 투자은행은 랭킹 3위로 올라섰어. 이만하면 과거 리먼 브러더스 때의 지위를 완전회복한 거야.”
신선영은 잠시 감격에 잠겼다가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계속 말했다.
“더 놀라운 건 LTCM의 급부상이야. 벌써 5위까지 올라왔는데…….”
유서준은 대략적인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흥미로운 눈길로 그녀의 말을 주시했다.
“그쪽은 트레이딩이 정말 과감해. 완전 위험을 도외시하는 분위기. 그런데도 절대 위험에 안 빠져. 신기하지. 덕분에 수익률이 정말 높아. 과거 LTCM을 보는 느낌이야.”
신선영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물론 유서준은 그 비결을 짐작하고 있었다. LTCM은 과거의 자신처럼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으니까. 아니, 그보다 훨씬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위험을 고려할 이유가 없고 투자가 과감해진다.
“예은이는 여전히 거기 있어?”
“응. 제대로 대접받고 있나 보더라. 권대만도 마찬가지. 박강수도 직책은 아시아 지부장인데 사실상 이곳에서 투자전략을 담당하고 있어. 의외로 강수 실력이 대단한가 봐.”
박강수 말이 나오자 김현아가 안면을 찌푸렸다. 아마 김현아는 영원히 박강수를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유서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셋의 이름이 나오자 유서준은 미래에서 온 편지가 떠올랐다. 이제 그 운명이 날이 3년 앞으로 다가왔다.
“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 최근 LTCM의 포지션과 우리 포지션이 묘하게 비슷해. 그걸 보면서 역시 천재끼리는, LTCM과 서준이의 감이 통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문제가 자주 발생해.”
유서준은 내심 뜨끔하여 신선영의 다음 말에 주목했다.
“거대 투자은행 두 군데서 비슷한 포지션을 취하다 보니 과하게 가격이 왜곡될 때가 있어. 예를 들자면 오늘 저렇게 내릴 이유가 없는데 많이 내리거든. 양쪽에서 같이 매도치니까. 물론 며칠 뒤에 금리 인상이 일어나 내리는 게 맞긴 하는데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져.”
유서준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신선영이 그렇게 느낀다면 분명히 LTCM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LTCM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유서준이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어서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LTCM의 거래를 복제해서 그렇다고 생각할까. 적어도 유서준의 감이 뛰어나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 기간 LTCM을 조금이나마 따라잡아 보겠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성공한 듯했다.
유서준이 고민하고 있을 때 구인혁 가족이 나타났다.
성장한 구은서는 구인혁과 이지은을 절반씩 섞어놓은 분위기였다.
엄마를 닮아 귀여운 느낌을 간직하면서도 아빠를 닮아 시원시원한 느낌도 늘어났달까.
유세라가 구은서를 보고는 냅다 뛰어가서 부둥켜안고 난리를 피웠다.
사실상 최근 들어서는 거의 본 적이 없을 텐데 저렇게 가깝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너네 언제부터 그렇게 가까웠어?”
구인혁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절친이에요.”
유세라가 곧장 대답하고는 구은서와 둘이서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구인혁도 고개만 설레설레 젓고는 유서준에게 손짓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들은 구인혁의 차를 타고 부근 해변으로 향했다.
여름밤이라 해변가에서 산책하거나 놀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유서준과 구인혁은 한가로운 해변 풍경을 구경하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대학 시절 때처럼 반가웠다.
“타임머신은 어떻게 되어가?”
“사실상 만들기 시작하면 금방 완성 가능할 수준?”
구인혁은 타임머신에 대한 모든 것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약간의 자본만 뒷받침되면 곧바로 현실화 가능했다.
“원래 대로였어도 지금쯤에는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었겠지?”
“그렇다고 봐.”
유서준의 생각대로였다.
그는 예전에 구인혁이 추리했던 원래의 미래 상황을 떠올렸다. 아마 지금쯤 구인혁은 LTCM의 요구를 받고 정보를 과거인 2020년 말이나 2021년 1월로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이용해서 LTCM은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LTCM이 가진 모든 정보와 기술은 미래에서 보낸 그 시점까지다. 지금부터 2027년 사이. 유서준으로선 알 수 없는 시점이다. 예전의 구인혁은 2025년까지의 정보를 보냈었다. 물론 구인혁 본인도 모르고 있지만.
사실 LTCM이 위력을 떨치는 시기도 1년 반이 남았을 뿐이다.
“만들 거야?”
“솔직히 정말 되는지 해보고 싶긴 한데…….”
구인혁은 자신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그 위험성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타임머신을 만들었을 때 누군가가 그것을 이용하면 다시 미래가 바뀌게 된다. 지금 김현아가 살아있는 것처럼.
만일 박강수가 이를 눈치채고 되돌리고자 한다면 그 또한 가능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유서준이 대학 시절 기숙사에 두었던 다이어리를 제삼자를 이용해 훔치도록 한다면. 과거의 박강수에게 이를 지시할 수만 있다면 바뀐 모든 현실은 원래대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김현아의 목숨도 사라지고 유세라 역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SJ 증권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위험이 존재하기에 타임머신 제작을 지금까지 계속 미루고 있었다.
“여기 미국에서는 절대 안 돼. 알지?”
유서준의 강한 어조에 구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해보고 싶다면 2027년이 지난 다음에 해. 그땐 내가 확실하게 밀어줄게.”
“하하, 알았어.”
구인혁은 자신의 호기심을 잠시 덮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엔 언제 돌아갈 거야? 은서가 취업했으니 이제 가도 되지 않아?”
“응, 나도 이젠 여기에 미련 없어. 은서 엄마를 설득 중이야. 몇 달 후면 갈 수 있지 않을까?”
유서준은 그 말이 구인혁 혼자만의 막연한 바람이 아니길 바랐다. LTCM이 코앞에 있는 이곳은 백번 양보해도 위험해 보였다.
“LTCM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그들은 나란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거야.”
구인혁이 어깨를 툭 치며 안심시켰다.
과연 그럴지에 대해서 유서준은 의문이 많았다.
원래 흘러갔을 미래로 본다면 LTCM은 자신의 부활을 위해 구인혁을 이용해 정보를 과거로 보냈다. 그랬을 그들이 구인혁의 존재를 모를까.
“지금 LTCM은 미래의 정보를 갖고 있잖아?”
“그렇겠지.”
“그럼 그 정보를 보낸 사람인 너의 정체도 알지 않을까?”
“글쎄다.”
물론 LTCM이 구인혁의 존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모른다. 사실 두 사람 그 누구도 지금의 LTCM 창업자인 톰 메리웨더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유서준이 확신하는 부분은 박강수라면 그 모든 내용을 알고 있으리란 점이었다. 적어도 박강수는 다이어리의 마지막 편을 소유한 적이 있었으니 미래에서 정보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지금 LTCM이 가지고 있을 그 정보에 박강수도 관여하고 있을지 모른다.
일단은 구인혁을 LTCM의 눈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모래사장의 모래가 신발 속으로 들어왔다.
구인혁이 신발을 벗어 털고 있는 동안 유서준은 바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수평선 부근에 불빛이 화려했다. 아마 롱아일랜드의 불빛일 것이다.
그들이 다시 걸음을 옮길 때였다.
“유서준!”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유서준은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지금 이곳에 그가 와 있다는 것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함께 있었던 신선영이나 김현아도 두 사람이 해변을 거닐고 있는 것을 모를 텐데?
상대방에게 눈길을 돌린 유서준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박강수!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박강수였다.
순간적으로 유서준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박강수가 지금 자신이 여기 있음을 어떻게 알고 온 것일까? 그냥 우연히 마주친 것일까? LTCM 본사가 부근에 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지만.
유서준은 금방 안색을 안정시키며 박강수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으로 시선을 옮겼다.
키가 큰 백인에 삼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정장을 차려입었다. 해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겉보기에도 교육을 잘 받은, 귀티 나는 말끔한 사내였다.
사내가 유서준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Hello! I’m Tom.”
“Tom?”
유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대를 주시하자 백인 사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Tom Meriwether.”
유서준은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톰 메리웨더. 1990년대 LTCM을 창립했던 존 메리웨더의 아들이자 현재의 LTCM을 이끌고 있는 최고책임자. SJ 투자은행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바로 그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