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16
226. 공세의 시작(1)
한국!
뜻하지 않은 발언에 박강수와 송예은, 권대만은 당황했다.
메리웨더가 세 사람을 슬쩍 눈여겨보고는 발언을 이었다.
“한국은 SJ 투자은행의 모기업이 있는 곳이죠. 그곳에서 SJ 투자은행과 일전을 벌일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SJ 투자은행에 대한 복수였다.
송예은은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박강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권대만은 안면에 변화가 없었다.
“아시아지부 박 지부장께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박강수에게 쏠렸다.
박강수는 당당하게 그 시선을 받았다.
“좋은 생각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는 확실히 SJ 투자은행의 목줄을 끊어 세계 유일의 투자은행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박강수가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의 기세에 모두가 호응했다.
박강수는 내심 환호성을 올렸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유서준을 확실히 무너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서하나와 김현아도 망가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리웨더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복수는 빠를수록 좋겠죠? 올해가 가기 전에 해결하도록 합시다.”
그의 발언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
회의를 마치고 송예은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기분이 착잡했다.
그녀는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꿈을 떠올렸다. 유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때, 자신은 왜 그런 생각을 가졌던가.
그녀는 자신이 유서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미국 가면 선진 학문을 배울 수 있잖아요, 그곳에서 새로운 이론을 배워 국내로 돌아와 우리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요.’
그때는 개인의 삶보다 국가의 발전이 우선인 시대였다. 지금은 많이 바뀌긴 했다. 개인의 행복이 중요한 시대다.
그렇다고 해도 예전의 그 생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녀도 될 수 있으면 국가를 위하고 싶었다. 비록 공부를 위해 유학을 온 것은 아니지만 이곳 LTCM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금융기법을 전파하고 싶었다.
비록 미국 회사에서 근무하지만 그래도 국가를 생각하고 한국에 도움 되는 일을 하려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오늘 회의에서 한국을 공격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 회사에 자신이 속해 있는 것이다.
유서준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기에 SJ 투자은행을 무너트리는 계획은 찬성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것을 한국에서 하겠다고 한다.
LTCM의 공격을 받았던 남미와 러시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1997년 말에 발생한 한국의 외환위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좌절에 빠트렸는지도 알고 있다. 자신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었다. 달러 폭등으로 감히 유학 가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암울했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한국은 언젠가 그녀가 돌아가야 할 고국이다. 그곳이 무너지게 방치할 수는 없는데…….
송예은은 복잡한 생각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권대만이 지나가다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심란한가 보네?”
“넌 아냐?”
권대만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그런 고민 안 해. 난 이익이 나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는 주의니까. 고국을 위기에 빠트려 수익을 낼 수 있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불법도 아니고.”
“대단하다. 너.”
“지금은 글로벌 시대야. 국가보다 기업이 더욱 중요한 시대. 이념보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더 중요시되는 그런 시대야. 괜한 감상에 휘말릴 이유가 없지.”
권대만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를 쓱 훑어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송예은은 모니터를 바라보았으나 아무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녀의 의견으로 계획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고국을 외환위기로 몰아넣고 싶지는 않았다.
동시에 그녀는 고민했다. 만일 계속 SJ 투자은행에 근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에 도움을 주는 뭔가를 했을까. 그 답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한 가지를 알고 있다. LTCM에서 근무하면서 고국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찝찝한 것은 사실이었다.
**
[2027년 9월 9일]9월 9일 목요일이었던 이날은 선물 옵션 만기일이었다.
지난 9월물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외환위기 징후로 주식시장이 한차례 크게 출렁였으나 큰 추세를 형성하지 못한 조용한 월물이었다.
만기일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매수와 매도가 엇갈리며 다소 맥빠진 흐름 속에 전일보다 0.1%가량의 상승을 보였다.
주식시장 참여자는 무난한 만기일을 자축했다.
2027년 9월 9일의 종합주가지수는 3502.18. 선물의 기초가 되는 코스피 200지수는 450.02.
2027년의 주식시장은 전반적인 상승세 흐름 속에 꾸준한 계단식 상승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는 연말 시장을 낙관했고 별다른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무난한 연말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람들은 다음 주 추석을 맞아 들뜬 분위기를 보였다. 파생시장에서 메이저의 본격적인 움직임은 추석이 지나고 난 후에야 시작될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유서준은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었다.
미래에서 온 편지에 예정된 파국은 12월 만기일이다. 바로 12월 9일 목요일. 지금부터 정확히 3개월 뒤다.
이 3개월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막아야 할 의무가 그에게 있었다.
9월 만기가 끝나 주식시장이 마감된 다음, 일과를 끝내려고 정리하던 그의 눈에 차월물인 12월 선물의 미결제 약정(투자자가 가진 매수매도 포지션 수)이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차월물이 시작되는 즈음의 미결제 약정은 평균 20만 계약 정도였다. 애초 10만 계약 전후였던 미결제 약정이 이처럼 늘어난 것은 파생상품 투자승수가 1포인트당 5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하향 조정된 2017년 3월부터였다.
오늘은 다소 이상했다. 미결제 약정이 평소의 20만 계약 수준을 넘어 30만 계약을 초과하고 있었다.
연말 배당을 노리고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의 헤지 수요 때문에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미결제 약정이 느는 경향이 있지만 다소 심한 것으로 보였다.
미결제 약정이 늘어났다는 것은 신규 세력이 진입했다는 의미다.
다소 신경이 쓰였으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일주일 후 해외에서 날아든 대한민국 경제리포트에 금리상승으로 인한 가계 부채 위험 증가가 언급됐다. 가계 대출의 주범인 아파트 담보 대출의 위험성이 지적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십여 년 전부터 지속해서 가계 부채 감소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 뜬금없는 리포트로 받아들여졌다.
사실상 가계 부채 해소는 자산 가격 상승 이외에는 답이 없다. 문제는 자산 가격 상승이 소득 상승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은행 부채를 활용하여 다시 자산 가격을 상승시키는 악순환만이 발생했다. 자산인 아파트가 상승할수록 부채도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과 연관되어 있고 이것 역시 부동산 문제라고 본다면 한국의 부동산 부채 역시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 가격이 붕괴하는 순간 은행 부실이 드러나고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발생한다.
아파트 가격 하락은 1997년의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금융위기 때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조짐이 2027년에도 반복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리포트의 핵심이었다.
그 가장 중요한 근거로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한국의 금리상승이 제시됐다.
3년 전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신규 아파트 분양이 넘쳐났고 최근 활발하게 입주가 이루어져 일시적인 가격 하락 위험이 상존한다는 부분도 묘하게 거슬렸다.
어쨌든 9월에는 외국계 증권사의 잦은 위기 전망 리포트가 발표됐다.
유서준은 그것이 LTCM의 공격 전조임을 눈치챘다.
**
강남의 고급 룸 엠퍼러.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도욱과 박강수가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백나희가 없이 그들 두 사람뿐이었다.
“일단 기본 작업은 완료했습니다.”
박강수가 술을 따르며 말했다.
LTCM의 완벽한 계획이 수립된 다음 박강수가 정부의 협조를 얻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오도욱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그는 안면에 웃음을 띤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이번 일만 끝나면 SJ 증권이 무너질 거란 말이지?”
“하하, SJ만이 아닙니다. 금감원에 반기를 들고 있는 모두가 무너질 겁니다.”
“좋아, 좋아. 내 평생 체증이 쑥 내려가겠군.”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렸다.
“그래서 디데이가 언제지?”
“12월 만기일입니다. 12월 9일이지요.”
“흐음.”
긴 시간도 아니었다. 이제 불과 두 달 남짓한 시간이다.
오도욱의 시선이 박강수를 훑으며 의문점을 확인했다.
“그래서 내가 해줘야 하는 게 있다고?”
박강수가 서류를 꺼냈다. 그곳에는 금감원의 협조를 받아야 할 잡다한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10월과 11월 연속 두 달 금리를 인상하는 것입니다.”
“연속으로? 경제에 충격이 있지 않을까?”
“충격이 없다면 SJ가 무너지겠습니까?”
“한국은행에서 반발이 심할 텐데?”
“한국은행 총재랑 친하지 않습니까? 도욱 형님 말이면 거부하지 못할 건데요?”
금리는 한국은행 산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했다. 겉으로는 한국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형태를 띠지만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엄청난 만큼 기획재정부, 금감원과 긴밀한 협조하에 결정됐다.
“각 0.25% 씩?”
“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12월에도 연속으로 인상한다고 소문을 흘리는 것입니다.”
“12월에도 인상해야 하나?”
“물론 그건 아닙니다. 12월은 겁만 주는 거죠.”
오도욱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미국 금리가 인상되었으니 우리나라의 금리 인상 당위성이 존재했다. 거기에 가계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 최근 외국계 경제리포트에서 연일 떠들고 있는 것이 가계 부채다. 두 달 연속이란 것이 걸리긴 하지만 그 정도 설득시키는 것은 오도욱에게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금리만 해결해 주면 되나?”
“아뇨,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무려 미국 랭킹 일이 위를 다투는 투자은행을 박살내는 일인데요.”
박강수가 준비한 자료를 넘기며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식시장의 크고 작은 규제에 관한 잡다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가 상하한을 풀라고?”
“현재 30%에 묶인 제한을 풀었으면 합니다. 만기일 충격을 주려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명분은?”
“당연히 금융 선진화죠. 선진국 증시에서는 제한 없는 곳도 많지 않습니까? 외국계 증권사나 펀드에서 요구가 심하다고 하면 됩니다. 거기에 공매도도 제한을 풀어주시고요.”
이것저것 요구가 많았다. 아무리 오도욱이라 하지만 독단으로 처리하기는 쉽지 않은 것들이다.
주춤하는 오도욱에게 박강수가 한 가지를 더 얹었다.
“외환 규제도 풀었으면 합니다.”
“끙.”
오도욱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무 많아. 하나 같이 폭발력이 커서……. 이러다가 잘못하면 국가 경제를 말아먹을 수도 있어.”
“바로 그겁니다.”
박강수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오도욱에게 박강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순간의 혼란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필요악이죠. 몇 달간 경제에 충격이 가해지며 실업률이 증가하겠지만 곧바로 회복될 겁니다. 말 안 듣는 은행과 증권사 투신사도 이 기회에 싹 정리합시다. 이후부터는 우리의 천국이 펼쳐지는 거죠.”
박강수는 한국의 국가 경제를 혼란에 빠트릴 완벽한 시나리오를 계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