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29
239. 공방전(2)
서하나는 눈앞의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치마를 올리고 있는 백나희와 그것을 재밌다며 구경하는 오도욱과 박강수.
오도욱이 서하나의 반응을 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다시 오도욱의 명령이 떨어졌다.
“기어.”
백나희가 수치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바로 결심을 굳힌 백나희가 테이블 위에 엎드려 기기 시작했다.
아래로 쳐진 원피스 목 언저리 사이로 붉은 브래지어가 보였다. 아래쪽은 더 가관이었다. 안 그래도 짧은 치맛단이 위로 말려 올라가 사실상 엉덩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하나에게 백나희의 그런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오도욱이 손짓하자 그제야 백나희가 테이블 위에서 내려왔다.
백나희는 수치심을 억누르는 바람에 얼굴이 빨개져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의 적개심 어린 눈이 한동안 서하나에게 머물렀다.
오도욱이 소파에서 몸을 세우며 시선을 서하나에게 돌렸다.
“잘 봤어? SJ를 살리고 싶으면 하나도 올라가면 돼. 단 속옷은 벗고 올라가. 알았어?”
서하나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방금 백나희가 했던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면 되는 모양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백나희는 그나마 옷이라도 입고 굴욕을 당했지만 그녀는 옷을 벗어야 할 형편이었다.
“흐흐, 맨정신으로는 힘들겠지? 술이라도 좀 줄까?”
오도욱이 손짓하자 박강수가 술을 시켰다.
잠시 후 위스키에 아이스 버킷을 든 웨이터가 나타났다.
백나희가 잔에 술과 얼음을 넣어 한 잔씩 권했다.
오도욱이 주절주절 말을 꺼냈다.
“역대 경제학과 최고의 미인이 누구였나 하면 말이지, 우리 때는 서하나가 단연 탑이었어. 사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서하나 같은 미녀는 없었어. 그런데 요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제학과 역대 최고 미녀 위치가 바뀌었더라고. 누군지 알아?”
오도욱의 눈빛이 서하나에게 머물렀다.
서하나 역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본인이 미인이라는 말은 자주 들어왔었지만 최근에 바뀌었다니? 뭐, 어차피 졸업한 지 오래라 신경 쓸 일도 아니지만.
“하하, 후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 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는데 듣고 보니 그럴듯하더라고. 누군지 알겠어?”
오도욱이 서하나에게 술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유세라. 경제학과 역대 최고 미녀가 유세라라 하더군. 역시 미녀 유전자를 타고 났나 봐.”
서하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칫하면 오도욱이 딸인 세라에게까지 마수를 뻗을 것 같아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쭉 마신 오도욱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쨌든 우리 때는 서하나가 최고의 여신이었지. 난 그 여신을 정말 갖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그래, 그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오도욱이 빈 잔을 손으로 꾹 쥐었다. 그의 손이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때론 부드럽게 달래보고, 때론 협박도 해보고, 별짓을 다 해 봤는데 안 넘어오더군.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 단 한 번만이라도 손에 넣고 싶었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원통해서 죽을 수가 없겠더라고.”
서하나는 오도욱의 집념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예전 대학 시절에 받았던 프러포즈를 거절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오도욱이 지긋한 눈초리로 서하나를 훑었다.
서하나는 분노한 눈으로 그 느끼한 눈빛을 되돌려보냈다.
“드디어 오늘 그 순간이 왔어. 서하나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 순간이. 내 평생 고대하던 여신의 실체를 구경하고 가질 순간이 말이야.”
오도욱이 쿡쿡거리며 웃음을 짓더니 자신의 잔에 스스로 술을 따랐다.
박강수 역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하나를 바라봤다.
눈앞의 여인이 자신이 사랑했던 김현아가 아니란 점이 아쉬웠지만 꿩 대신 닭이었다. 아니, 닭이 아닌 꿩인가.
그 역시 서하나의 미모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대학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여신 선배. 김현아만 아니었어도 한때 연정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서하나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더라도 남자로서의 기본적인 호기심은 있었다. 거기에다 학과 역대 최고의 여인을, 아니 경쟁자인 유서준의 아내를 이렇게 벗겨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분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모든 것을 떠나 서하나는 경쟁사인 SJ 증권 사장이다. BH 증권 백나희 부사장보다야 훨씬 피를 끓게 만드는 존재다.
오도욱의 말이 박강수의 상념을 깨트렸다.
“서하나! 남은 시간은 얼마 없어. 시간이 지나면 SJ 증권을 구하고 싶어도 불가능해져. 지금이라 하여 온전히 무사하진 않겠지만 파산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오도욱이 눈빛이 차가워졌다.
“지금 현재 예상되는 SJ 그룹의 손실은 아마 10조에 육박할 거야. 앞으로 추가로 10조는 더 망가지겠지. 서하나 네년의 몸값이 적어도 10조는 된다는 의미인데, 많이 쳐준 거잖아? 어때? 이제 결정하지?”
서하나는 모니터로 힐끔 눈길을 돌렸다.
-6%에서 횡보하던 주가지수가 다시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
유서준은 주가의 움직임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미래에서 온 다이어리를 이용해서도 결국 미래를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다이어리의 내용만으로는 LTCM이 받은 미래의 정보에 비해 너무 미약한 수준이었던가.
돌이켜보면 예전의 미래에 있었을 SJ 투자금융이 더 규모가 커진 SJ 금융그룹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LTCM의 노림수를 결국 벗어나지 못했고 국가를 외환위기의 수렁에서 건지지도 못했다.
나름 준비한다고 평생을 고생했었는데 사실상 부족했나 보다. 바위에 달걀 던지기였다고 할까.
현재의 주가지수는 -7%. LTCM의 목표치까지는 -8%가 남은 상황.
LTCM과 그 연합군의 자금은 대부분 시장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선물 매도, 풋옵션 매수, 콜옵션 매도, 나아가 주식 공매도까지. 모두 하방으로 베팅되었을 것이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자금은 여전히 공시를 이용해 위협만 하고 있는 연기금 자금과 LTCM의 마무리 자금. 거기에 만일을 대비해 준비해둔 자금.
이것이 대략 얼마나 될까? 연기금 20조에…….
머리가 아파왔다.
유서준은 그 반대인 자신의 자금을 계산했다.
몽땅 털어 넣을 자신의 자산이 10조 남짓. SJ 증권과 SJ 투자은행 자금이 5조가량 남았으려나? 명동 머니의 이영호 사장이 그날 한 이야기로 보아선 몇조는 부담해줄 것 같았다. 거기에 우군이라 할 대형 증권사 몇 군데가 있지만 그쪽은 사생결단할 마음은 없을 테니.
아직은 많이 부족했다.
유서준은 전경련 모임을 떠올렸다.
“그들 중 몇이 움직여준다면…….”
유서준이 믿고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
김동식. 유서준의 친구이자 윤리 선생님인 그는 요즘 교감이라는 직위에 있었다.
교감이 좋은 이유는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 평교사 때와 달리 한결 시간 조절이 쉬워져 대만족이었다.
시간이 많아지면 그가 할 일은 딱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주식 투자다.
대학 때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하여 때로는 벌어보고 때로는 파산도 했다. 손해가 클 때는 집에서 쫓겨나 여인숙을 전전하며 생활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째 간신히 기사회생하여 이혼만은 면할 수 있었다.
천운이었다. 정말 파산했으면 진짜로 이혼했을 것이고 그 이혼은 그를 학교 선생님이란 직업에서 내쫓았을 테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공무원이 받는 꾸준한 월급이 그나마 그를 기사회생 시켰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벌었다 잃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식에서도 선물옵션에서도.
그나마 최근 10년간 특별한 위기가 없는 상승이 이어져 주식시장에서 약간의 돈을 벌었다. 자식 결혼을 시키고도 많이 남았으니 그의 인생으로 본다면 특별한 기간이긴 했다.
올가을부터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잠시 매매를 중단했었다.
인도네시아의 외환위기는 아주 오래전 90년대 말의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했기에 주식 투자를 멈추었던 것이 자금을 온전히 보존하게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오랜 경험이 직감적으로 위기를 느끼게 한 것이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일단 장을 지켜봤다.
주식시장은 계속 내리막을 걸었다. SJ 금융그룹과 LTCM이 한판을 벌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는 유서준을 응원하며 장을 지켜봤다. 그의 바람과 달리 SJ 측이 계속 밀렸다.
그는 외국 투기자본의 위력을 실감했다.
최근 며칠간 하방이라는 신호가 강력하게 들어왔다. 선물을 매도치고 풋옵션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친구인 SJ 측이 상방향으로 베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 앞에는 친구도 없다지만 유서준은 그와 특별한 사이였다. 돈이라는 동일 주제로 맺어진 사이이지만 돈과 무관하게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다. 부자인 유서준이 특별하게 그에게 현금을 전한 적은 없지만 그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돈을 줘봐야 투기로 다 날려버렸을 거니까.
“오늘 많이 밀리네.”
김동식은 주변을 곁눈질하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교무실에 남은 선생님은 서너 명. 대부분 수업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에이, 오늘도 풋을 사면 떼돈을 벌 텐데. 그놈의 정이란 게 뭔지.”
그는 오늘 몇 번이고 주문을 내려다가 멈추었다.
정확한 내역은 모르지만 오늘 SJ 그룹은 많이 다칠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다 국가 경제가 생각났다.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이 우선이라는 가치관이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세태에 국가가 외환위기에 빠지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럴 때 풋을 매수해서 한몫 챙기면 그게 남는 장사 아닌가.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손을 막는 다른 양심도 있었다. 그는 윤리 선생님이었다. 다른 과목이었다면 쉽게 국가를 배신했을 것이다.
“아, 내가 왜 하필이면 윤리 선생이 되어 가지고…….”
김동식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지나가던 젊은 여선생이 말을 걸어왔다.
“교감 선생님, 혹시 오늘 어디 불편하셔요?”
모니터를 보고 인상을 쓰는 그가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김동식은 재빨리 감정을 수습하며 인상을 확 폈다.
“아, 아닙니다. 겨울방학 행사 고민하다 보니.”
그는 여선생에게 미소를 띄우고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가가 빠져 시퍼렇게 변한 시세가 눈에 들어왔다.
“에휴.”
한숨을 내쉬며 몇 차례 고민하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이럴 때 나몰라라 할 수는 없지. 주가를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는 유서준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가 내린 방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량주를 매수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콜옵션을 사는 방법. 조 단위의 자금이 부딪치는 주식시장에서 그의 돈 몇 푼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는 재빨리 주문을 냈다.
**
오후 2시가 넘어갔다.
몇 차례 반등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주가지수는 요지부동. -7%에서 작은 움직임만 거듭했다.
일단 연기금의 매도 물량 공시 충격은 이런 정도로 흡수가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이다. 마감 때까지 이에 대항할 매수 세력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재차 하락할 것이다.
유서준은 외환시장을 체크했다. 놀랍게도 주식시장 하락대비 원화 가치의 하락은 적었다. 신선영이 말한 인공지능 알파트레이더의 투입이 효과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그가 평생을 투자했던 SJ 금융그룹의 운명이 얼마 후면 결정 날 것이다.
“반격을 시작해야 하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으니 마지막 수를 써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 시간을 언제로 잡느냐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다.
물량에 자신이 있으면 마지막 동시호가 10분이 유리했다. 주변 일반 투자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적어도 1시간 전인 지금 시작해야 한다. 만일 지금 상방향으로 작전을 개시하다가 도리어 밀리면? 그야말로 재앙이 시작된다. 유서준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