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32
242. 파멸의 끝(1)
3시 27분.
마감 3분 전.
예상 주가지수는 2630.54. 전일 대비 +11.4%를 넘나들고 있었다.
이대로 끝난다면 파산은 확실하게 벗어난다. 최근 3개월로 평가하면 3조가량의 손실로 마감할 것이다.
유서준은 자신의 마지막 자산을 모두 주식 매수에 쏟아부었다. 엔터와 함께 마지막 주문이 들어갔다.
이제는 기다리면 된다.
연기금 매도가 쏟아져 지수가 망가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오늘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산을 쏟아부었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다.
오늘만이 아니었다. LTCM의 공격을 눈치챘던 3개월 전부터 모든 방법을 모색했다.
아니 3개월이 아니었다. 그의 생애 전부였다.
사실 대학입학 그날부터 그의 생애 전부가 오늘 이 하루의 승부를 위해 준비됐다. 엄청난 돈을 벌었으나 돈을 쓸 생각을 못 했고 조금의 여유도 없이 바쁘게 준비했다. 오직 이날을 위해서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 했던가.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성공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했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유서준은 눈을 감았다.
3분 후면 모든 것이 결판난다.
띠리리리-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렸다.
유서준은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유 대표님?”
“네, 접니다만.”
“서하나 사장 소재를 찾았습니다. 사 사장님 휴대폰은 올림픽대로 위에서 끊어져 위치 확인이 불가능하고 백나희 부사장의 위치도 애매모호, 박강수의 위치만 확인됩니다. 주변 탐색 결과 현재 7층짜리 빌딩 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요. 위치는 강남구 논현동…….”
유서준은 정신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제대로 외투를 갖춰 입지 못하고 자동차 키만 챙긴 채 문밖으로 뛰었다.
불과 3분.
그의 모든 자산이 걸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3분 동안 모니터를 보며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자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서하나였으니까.
**
3시 28분.
3시 29분.
3시 30분.
주식시장이 마감됐다.
혼란스러웠던 만기일 공방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엠퍼러에 모인 네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적힌 숫자. 오늘의 종합주가지수 최종가가 적혀 있었다.
12월 9일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3109.77. 전일 대비 +31.7%, +749 포인트 상승.
코스피 200지수 400.21.
9월 만기일 대비 -11.2% 하락했지만 11월 만기일 대비 +11.8% 상승했다. 오도욱이 주식시장의 상하한 제한을 풀어버린 덕에 전일 대비 +31.7%라는 어마어마한 상승이 가능했다. 주식시장 개장 후 신기록이었다.
“이…… 이게 뭐야?”
오도욱이 황당한 표정으로 박강수를 노려봤다.
박강수는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송예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울림이 있고 나서 송예은이 전화를 받았다.
“송예은! 어떻게 된 거야?”
박강수가 화난 목소리로 휴대폰에 대고 소리쳤다.
송예은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겠어요. 네트워크가 잠시 끊어져서 주문이 제대로 안 먹혔나 봐요.”
“그게 대체 뭔 소리야?”
박강수가 휴대폰을 들고 방방 뛰었다.
아무리 화를 낸 들 어쩌겠는가. 이미 시간이 지나 버린 것을.
“으아!”
박강수의 손에서 휴대폰이 날아갔다.
휴대폰이 벽에 강하게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성난 물소처럼 박강수가 씩씩거렸다.
전일 대비 +31.7% 상승. 손익이 금방 계산되지 않았다.
하방을 노리고 진입한 포지션은 모두 네 가지. 선물 매도, 풋옵션 매수, 콜옵션 매도, 주식 공매도.
최근에 매도 쳤던 선물은 모조리 손실이었을 것이다. 지수와 비례하여 손실이 발생하니까. 최근 매수했던 풋옵션은 모조리 휴지로 변했을 것이다. 사실상 자산 가치 0.
최근 매도 쳤던 콜옵션이 문제였다. 옵션매도는 손실이 무한대로 발생한다. 어제 대비 코스피 200지수만 거의 10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옵션 1개당 손실 금액이 얼마인가. 계산 불능이었다.
거기에 며칠 동안 공매도친 주식의 손해는? 하나같이 엄청난 손실을 기록했다. 그것도 역사에 남을 손실을.
“으으으…….”
박강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LTCM의 손실은 지금까지 벌었던 것을 그대로 날리고 추가로 사실상 10조를 넘어갈 게 뻔했다. 해솔 증권 역시 3조 이상의 손실이 날 것이다. 두 곳 모두 사실상 파산이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손실이 난 만큼의 이익이 SJ 측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SJ 투자은행의 이익은 10조를 넘어설 것이고 SJ 증권 역시 최소한 3조 이상의 이익을 남기지 않았을까.
불과 30분 만에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고 만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오도욱이 박강수와 백나희를 번갈아 봤다.
직접 투자하거나 금융사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 오도욱은 두 사람처럼 빨리 손익이 파악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오도욱이 손해 본 것은 사실상 없었다.
“그…… 그게…….”
백나희가 금방 계산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녀는 전체적인 투자 포지션을 직접 관리하지 않다 보니 손익계산에 둔감했다. 하지만 BH 증권에 뭔가 큰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서하나가 싸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해솔 증권! BH 증권! 너희 둘 다 파산이야. 계산해볼 필요도 없어.”
박강수와 백나희의 눈이 서하나를 향했다.
애써 생각지 않으려던 파산이라는 단어가 서하나에 의해 떠올랐다.
“파산?”
박강수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최근 3개월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낱말이었다. 모든 계획은 완벽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그의 손가락 사이에 낀 머리카락이 마구 엉클어졌다.
중국 버블 때 해솔 증권이 부도난 이후 유서준에 대한 복수만을 꿈꾸어왔다. 다이어리에 적혀 있던 내용을 애써 떠올렸고 그 복수의 중심에 LTCM을 밀어 넣었다. 그의 생각대로 LTCM은 완벽했다. 유서준의 훌륭한 대항마로 성장했다.
LTCM을 이용해 유서준을 무너뜨릴 계획은 완벽했다. 금감원과 LTCM의 연합공격이라면 천하의 유서준이라도 절대 버틸 수 없었다.
금감원의 도움을 얻기 위해 오도욱에게 서하나라는 미끼를 던져주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서하나에 눈이 먼 오도욱은 흔쾌히 LTCM의 승리를 담보할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그런데 결과가 왜 이 모양일까? 정말 네트워크 선의 문제인가? 선 하나 때문에 무려 수십조의 손익이 뒤집혔다고? 아니면 송예은의 문제? 그것도 아니면 유서준의 능력?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박강수는 눈앞에서 자신을 불쌍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서하나를 발견했다.
‘그래, 저년 때문이야.’
박강수가 주먹을 꾹 쥐었다.
“저년 잡아!”
박강수가 서하나에게 몸을 날렸다. 얼이 빠져 있던 백나희 역시 반대편으로 서하나에게 뛰어갔다. 백나희도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다.
서하나는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공격에 몸을 피할 수 없었다. 어차피 좁은 룸에서 도망칠 재간이 없었다.
곧바로 박강수의 손에 그녀의 허리가 잡혔다.
“놔!”
서하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저항은 미약했다.
곧바로 박강수가 그녀의 허리를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서하나의 몸이 유리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놔!”
서하나의 비명이 룸 내부에 메아리쳤다. 그녀가 발버둥 치면서 테이블 위에 있던 술잔과 아이스 버킷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유리 조각이 튀며 난장판이 됐다.
서하나는 몸부림치며 상대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두 사람은 무자비했다.
“으윽.”
그녀는 어깨가 삐끗하며 고통의 신음을 토했다.
박강수가 그녀를 반듯하게 눕히고 어깨를 눌렀다.
“하아, 하아.”
서하나는 테이블에 드러누운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꼼짝할 수 없었다.
“다리 잡아.”
박강수가 백나희에게 소리쳤다.
백나희가 누워 있는 서하나의 발목을 잡고 눌렀다.
서하나가 몸을 비틀었다. 그녀의 반항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곧바로 힘이 빠지고 상대의 힘에 굴복해 잠잠해졌다.
박강수가 서하나의 팔을 위로 올려 만세 자세를 취하게 한 다음 그녀의 팔을 꼼짝 못 하게 압박했다.
백나희는 서하나의 발목을 잡고 눌렀다.
“강수! 네가 이럴 수 있어?”
서하나가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박강수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흐, 너도 파산당해 봐. 눈에 보이는 게 있나.”
“이건 범죄야.”
“어차피 파산으로 인생 종 쳤어. 이까짓게 대수야? 힘 있고 돈 있으면 이 정도는 빠져나가.”
박강수가 씩씩거리며 그녀를 노려봤다.
서하나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제정신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한방에 수조 원을 날리면 사람이 저렇게 될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그는 예전에도 그녀를 노리고 가도건설 사장 아들을 끌어들이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 지금 이런 행동은 오늘 잃은 돈 때문이 아니라 그의 천성인 모양이었다.
“오늘 우리가 손해 본 돈을 어떻게 몸으로 때워야 하는지 가르쳐 주겠어.”
박강수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래야겠지.”
오도욱이 끼어들었다.
이 자리에서 그나마 냉철한 이성을 잃지 않은 오도욱이었다. 결과가 이상하게 나오긴 했지만 오도욱에게 바뀐 것은 없었다. 어차피 서하나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서하나의 눈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오도욱이 들어왔다.
“도욱 오빠! 이건 범죄예요.”
“큭큭!”
오도욱이 기분 나쁜 웃음을 터트렸다.
오도욱이 서하나 바로 위로 얼굴을 들이밀고 중얼거렸다.
“그래, 이건 범죄 맞아. 근데 어떡하지? 이미 벌어졌어. 검찰이 누구 말을 믿을까? 나? 아니면 너? 그전에 강수와 가도건설 사장 아들이 네년을 흔적도 없이 해치울 거 같은데? 강수는 이제 막가는 인생이야.”
오도욱이 박강수에게 눈을 돌리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흥분한 박강수의 눈동자에 열기가 일렁였다.
오도욱의 눈이 다시 서하나를 향했다.
“뭐……. 어차피 나 정도 배경이면 이런 일 덮는 건 식은 죽 먹기야.”
서하나는 오도욱의 본심에 질렸다. 힘 있고 돈 있으면 범죄를 저질러도 상관 없단 소린가.
“제대로 잡아.”
오도욱의 한마디에 박강수가 잡은 그녀의 팔과 백나희가 잡은 발목에 힘이 가해졌다.
오도욱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서하나는 고개를 돌리려다 곧바로 강한 힘에 정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천장의 샹들리에 불빛이 눈부시게 눈으로 쏟아졌다.
“흐흐, 서하나. 대학 때부터 널 사모했었는데 말이지. 네년은 너무 도도하더라고.”
오도욱의 손이 슬금슬금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로 향했다.
툭.
꼼짝할 수 없었다.
“네년에게 차인 후 반드시 돌려주고 싶었어. 그 수모를 말이지. 감히 이 오도욱을 차다니.”
“이러지 마요.”
서하나가 꿈틀거리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얼마나 비싼지 네년만은 벗겨보고 싶었어.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오도욱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부라렸다.
단추가 풀린 블라우스 앞섶이 옆으로 벌어졌다. 하얀 브래지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하나가 분노를 터트렸다.
“오도욱! 치사한 놈.”
“안타깝게도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 아니네. 예전에 알려준 적이 있었을 텐데.”
오도욱은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흥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서하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래, 한때 네년의 몸이 백만 불짜리란 평가가 있긴 했지.”
오도욱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서하나! 오늘부로 널 내 여자 목록에 올려주마!”
지금 그에게 눈앞의 서하나는 평생 노리던 먹잇감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