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34
244. 파멸의 끝(3)
만기일 당일은 역사적인 주식 시세 변동 이야기로 모든 뉴스가 도배하는 바람에 정작 그 후유증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서 그날의 손익이 정리되기 시작하고 그 여파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국내 금융기관이 재편되었다.
대기업 산하 규모가 큰 최상위 대형 증권사는 이번 사태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았다.
대형 증권사 내규 때문에 오도욱이 멋대로 간섭하기 쉽지 않았다. 연기금 배정 자체가 적었고 증권사도 운용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이들 기관 역시 다량의 파생상품을 운용했지만 LTCM과 SJ의 양측 대립이 격화되며 일부분 발을 뺐다. 어떤 증권사는 오히려 SJ 증권을 돕기도 했다. 그런 증권사는 이득을 챙겼다. 물론 그 규모가 크지 않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중소형 증권사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큰 손실을 입었다. 일부는 한동안 회복이 어려울 만큼 타격이 컸다. 사실상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게 된 곳이 많았다.
이 가운데 LTCM 측에 서서 하방으로 베팅한 증권사가 문제였다. 그 대표적인 곳이 해솔 증권, 파워에셋 증권, BH 증권이었다.
선물 매도, 풋옵션 매수, 콜옵션 매도, 주식 공매도. 이 네 가지 상품은 만기일에 지옥을 불렀다. 세 증권사는 사실상 자본금이 완전잠식되고 증권사로 기능할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일반 투자가의 계좌 해지도 이어졌다.
해솔 증권은 곧바로 파산처리 됐다. 사실상 회생 불가능으로 판정 났기 때문이었다.
파워에셋 증권과 BH 증권은 부도 처리되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기존의 경영진은 모두 쫓겨났다. 과거 해솔 증권처럼 다시 회생하여 복원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평가였다. 오래지 않아 다른 대형 증권사에 흡수합병 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가장 큰 변화는 SJ 증권이었다. 만기일에 무려 3조의 이득을 챙긴 SJ 증권은 비상의 날개를 달았다. 기존에도 국내 투자은행 분야를 선도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타 증권사를 압도했다.
외환위기를 방어한 증권사란 유명세도 탔다. 흥분하기 좋아하는 일반 투자가의 이동으로 위탁계좌 수도 엄청나게 늘었다. 사실상 자산관리 랩 부문, 주식 위탁 부문, 투자은행 부문, 펀드 운용 및 판매 부문 등 분야별 가릴 것 없이 국내 정상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국내에도 세계적인 증권사가 탄생했다며 엄지를 세웠다.
주식 포털 사이트에도 관련 호평이 이어졌다.
*
– SJ 증권에 계좌 개설하지 않은 바보도 있냐?
– 이제 SJ 증권 자산 얼마임?
– 국내 증권사 다 합친 것보다 SJ 증권의 위탁 잔고가 더 많을걸?
– 서하나 다시 부자 됐구나!
– 주식 여신 건드리지 마라. 내 꺼다.
– 그래서 서하나 몸무게 얼마냐고! 이번에는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
*
SJ 증권의 부상보다 세계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SJ 투자은행이었다.
SJ 투자은행은 이날 하루 100억 달러가 넘는 이익을 챙겼다. 창사 이래 최대실적이었을 뿐 아니라 리먼 브러더스라는 과거의 허울을 완벽하게 벗어던진 쾌거였다.
이를 계기로 완벽하게 세계 투자은행 랭킹 1위의 지위에 올라섰다.
반면 LTCM은 파산의 길을 겪었다. 과거 90년대 후반에 이어 두 번째의 파산이었다. LTCM은 이날 하루 1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보았으며 사실상 회생 불능에 빠졌다.
FRB에서는 긴급회의를 열고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긴급 유동성 공급 및 파산 절차를 논의했다.
사실상 LTCM이 가진 파생상품의 규모는 1조 달러에 달했다. 이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 때의 6천억 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90년대 말 파산한 LTCM의 1조 2500억 달러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JP 모건을 비롯한 대부분의 투자은행이 이 파생상품을 받아 운용할 규모가 되지 않았다. 사실상 인수 가능한 곳은 SJ 투자은행뿐이었다.
자본시장에서 파생상품 자체가 부도나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앗아가는 대단히 중대한 문제였다. 이는 달러라는 지폐가 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
이를 피하고자 FRB에서는 연일 SJ 투자은행에 LTCM 파생상품 인수를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SJ 투자은행은 FRB의 요구를 마지못해 수락했다.
SJ 투자은행에서 운용하는 파생상품 규모가 2조 달러에 육박하는 순간이었다. SJ 투자은행은 파생상품 운용 규모 면에서 압도적인 랭킹 1위로 올라섰다. 역사상 그 누구도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한 거대 규모이자 큰 영향력이었다.
이제 SJ 투자은행을 배제하면 미국 파생상품 시장이 마비될 만큼 그 비중이 증대했다. 주식 관련 파생상품만이 아니다. 미국 국채나 모기지 파생상품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SJ 투자은행의 업무가 잠시 중단되면 미국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마저 사실상 스톱 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FRB에서는 이처럼 금융이 한 회사에 집중되어 영향력이 증대되는 현실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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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준과 서하나는 북악산을 낀 고급 한정식집에 들렀다.
이곳은 오래전 금융실명제 직후 유서준이 명동 머니의 이영호와 함께 왔다가 한세진이란 탤런트를 소개받았던 곳이다.
오늘 오랜만에 나들이를 한 이유는 서하나를 구해준 임중건 전 검사에게 답례하기 위함이었다. 도와준 후배 검사에게도 사례하려 했지만 후배 검사는 청탁금지법 위반이라 함께 식사가 어렵다고 고사했다. 일단 마음만 받겠다나.
예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은 고즈넉한 장소에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양면이 목재 벽으로 분리된 작은 방과 한쪽으로 난 창문, 그 반대편으로 난 창호지 미닫이문이 인상적이었다. 조명마저 은은한 노란색이라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차례로 나오는 정갈한 요리를 함께 먹으며 유서준이 다시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임 변호사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임중건 변호사가 손사래를 쳤다.
임중건 변호사는 서하나를 의식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서하나 역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임중건이 유서준에게 술을 한잔 따르며 말했다.
“그 정신 없던 와중에 저에게 전화를 걸 생각을 다 하셨으니 유 대표께서도 대단하십니다.”
“그 전화를 금방 납치 사건으로 이해한 임 변호사께서도 보통이 넘지요.”
서로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다.
“그래서 사건 처리는 어떻게 되었나요?”
서하나의 물음에 임중건의 표정이 다소 진지해졌다. 검사 출신 특유의 위압감이랄까.
“말씀하신 대로 조용하게 처리 중입니다. 세 사람 모두 구속되어 형을 살 겁니다. 오도욱 금감원장의 경우 이번 건 말고도 금감원 일 처리에서 각종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많이 포착되었습니다. 절차를 무시하고 특혜를 준 건수도 많았고요. 모두 이번 일이 터지는 바람에 밖으로 드러난 겁니다.”
오도욱의 권력 전횡에 한이 맺혔던 서하나로서는 무척 기쁜 소식이었다.
“이제 속이 후련하네요.”
“오도욱이 여러 곳으로 구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쉽게 빠져나가기 어려울 겁니다. 강간미수에 대한 현장 사진도 있고 이번 외환위기를 일으킨 정황도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으니까요.”
임중건이 사건 진행 과정을 이야기했다. 모두 후배 검사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이었다.
“네…….”
서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현장 사진?’
유서준이 술을 권하면서 박강수에 대해 물었다.
“박강수는 어떻게 됩니까?”
“마찬가집니다. 일단 서 사장님 납치를 지시한 정황이 있고요. 거기에다 사건 현장에서 직접 도움을 줬으니까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 누구냐……. 김범두라고 있죠?”
“아, 가도건설 사장 아들요?”
서하나가 반색했다. 그날 김범두도 옆방에서 기다리다 체포되었던 모양이었다.
임중건이 자신의 무릎을 쳤다.
“네, 맞아요. 그 사람. 그 사람 과거에도 서 사장님을 납치했었잖아요?”
“네, 그랬었죠.”
“그 사람이 예전의 납치 사건도 박강수의 지시였다고 털어놓았어요.”
예전의 납치 사건 때는 김범두가 독자 범행이라고 우겨 박강수는 전혀 관련성이 없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털어놓은 모양이었다.
임중건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래서 아마 가중처벌 될 겁니다. 거기에다 이번 외환위기를 획책하면서 공직자를 뇌물로 매수한 정황도 있고요, 외국환관리법 위반에……. 어휴, 걸려면 걸리는 게 너무 많습니다.”
이로써 박강수는 영원히 전면에서 사라진 것인가.
유서준은 박강수와 얽힌 오랜 세월의 경쟁을 떠올렸다. 사실 경쟁이랄 것도 없었다. 가만히 있는 그를 박강수 혼자 시기하고 미워하며 배척했던 것뿐이니까.
박강수가 서하나와 김현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도 박강수에게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박강수가 가만히 있었다면 아마 사이좋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백나희는 어떻게 되었나요?”
서하나가 물었다.
임중건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셋 중 그나마 가장 죄가 작습니다. 납치 가담 죄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백 부사장이 두 사람을 고발했어요.”
“네? 고발요?”
새로운 소식이라 두 사람은 황당한 표정으로 설명을 기다렸다.
“하나는 오도욱입니다. 오도욱이 금감원의 힘을 이용해 자신을 압박했다고요. 그래서 성접대를 했다고 말입니다.”
그동안 엠퍼러에서 오도욱에게 수모당했던 일을 고발한 모양이었다.
서하나 역시 들은 바도 있고 직접 경험해볼 뻔했던지라 이해는 되었다. 언제는 같은 편처럼 굴더니 역시 사람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고발 내용이 거참……. 정말 지저분하게 놀았더군요.”
임중건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유서준과 서하나 역시 따라서 웃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서 사장님을 고발했어요.”
“네? 저를?”
서하나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임중건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큭큭, 그게 그날 두 분이 싸우셨잖아요. 그날 상해를 입었다고, 전치 3주라나.”
“아하하, 그날 제가 그년을 좀 패긴 했었죠.”
서하나 역시 통쾌하게 웃었다.
한참 웃음을 터트린 후 임중건이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이런저런 건수 때문에 한두 번 검찰에 나오셔서 조사는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쁘시면 담당 변호사 보내셔도 되고요.”
유서준이 임중건에게 술을 건넸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돌았다.
서하나가 웃음을 머금으며 임중건에게 제안했다.
“임 변호사님, 요즘 변호사 영업도 힘드시죠? 저희 개인 변호사로 들어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 SJ 증권에도 법무팀이 있잖아요? 제가 들어가기가…….”
“회사 법무팀 말고요. 제 개인 변호사 말예요. 대우 잘 해드릴게요.”
임중건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고민했다. 하긴 요즘 변호사 사무실 유지하기도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할 일은 많고 돈은 되지도 않고 고민 중이긴 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서하나 개인 변호사라니.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임중건이 유서준을 슬쩍 봤다.
유서준이 웃으며 화답했다.
“저도 환영합니다. 충분한 보수를 드리겠습니다.”
“아…… 이거…….”
임중건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이 시간부터 개인 변호사로 고용된 거로 알게요.”
서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임중건이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잠시 화장실에…….”
유서준이 사라지자 서하나가 임중건에게 당겨 앉으며 물었다.
“임 변호사님, 한가지 물어볼게요.”
“뭡니까?”
임중건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서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조금 전에 말씀하실 때 강간미수에 대한 현장 사진도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뭐죠?”
임중건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잠시 그녀의 눈치를 보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 그게…… 그날 유 대표랑 현장을 덮쳤을 때 만일을 대비해 제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었거든요. 그겁니다. 아직 필요하지 않아 증거로 제출하지는 않고 그냥 보관 중입니다. 말 그대로 만일을 대비해서요.”
“혹시 그거 좀 볼 수 있을까요?”
서하나가 큰 눈을 반짝거리며 임중건을 쳐다봤다.
임중건이 그녀의 눈을 마주쳤다가 피했다가 반복하더니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이거…… 참……. 죄송합니다.”
“네?”
임중건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