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38
248. 반격의 칼날(2)
타임머신 축적 에너지 100%. 이 정도의 에너지면 적어도 질량 1kg의 물체를 40년 전까지는 손쉽게 보낼 수 있을 양이다.
“이 정도면 충분해.”
그는 한 달 동안 모은 에너지에 만족했다. 이것은 특별히 한국전력에 사정하여 고용량의 전기에너지를 끌어온 덕이다. 최근 원자력발전소의 추가 준공으로 여유 에너지양이 충분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한전은 에너지 제공을 거부했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준비는 완료됐다.
이제 실험을 시작하면 된다.
구인혁은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한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삐삐-
잠겨진 입구 문에서 신호가 왔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이 시간에 누가?”
지금은 아침 10시. 아침 일찍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그가 컨테이너 박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내가 유일했다.
구인혁은 본능적으로 심상찮은 위험을 느꼈다.
그는 입구로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
외부의 밝은 태양 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방문한 손님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언뜻 보기에 건장한 남자 체구. 시원한 반 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평범하게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무슨 일인가요?”
구인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상대를 째려봤다. 그의 태도는 언뜻 보기에도 돌아가라는 표정이 역력한 그런 모습이었다.
방문자는 넉살 좋게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하하, 반갑습니다.”
잡상인?
구인혁이 별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에 서둘러 쫓아내려는 찰나 방문자의 입에서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내용이 쏟아졌다.
“구인혁 박사님 되시지요?”
구인혁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상대는 그가 누군지 알고 의도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일단 최대한 표정을 수습하고 되물었다.
“누구십니까?”
“중요한 일로 찾아왔습니다.”
방문자가 완전히 내부로 들어왔다.
그제야 구인혁은 상대의 모습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첫인상은 꽤 샤프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가는 은테 안경을 쓴 남자의 얼굴은 이지적으로 보였고 말끔했다. 나름 따르는 여자도 꽤 되지 않을까.
청년은 한 손에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중요한 일이라뇨?”
구인혁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썼다.
청년이 다시 웃음을 머금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박성한이라 합니다.”
어차피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구인혁은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청년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구인혁 뒤에 자리한 거무튀튀한 기계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게 타임머신인가요?”
구인혁의 안면이 지진이 난 것처럼 일그러졌다.
“당신 누구야?”
그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성한이란 청년은 나이답지 않게 여유만만했다.
슬금슬금 안으로 걸어들어오더니 타임머신을 올려다보며 감탄사를 발했다.
“멋지게 생겼는데요?”
구인혁은 상대방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타임머신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자가 누가 있을까? 절친이자 당사자인 유서준은 의심할 필요가 없고 그렇다고 유서준의 아내인 서하나를 의심할 수도 없다.
솔직히 타임머신에 대해서는 자신의 아내인 이지은도 모른다. 지금 이곳에 만든 타임머신도 이지은은 그냥 평범한 물리학 실험기구로 알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봤지만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고민을 꿰뚫어 본 청년 박성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머리가 빨리 안 돌아가시네요. 천재라 들었는데.”
다소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인혁은 그의 말투에서 곧바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예전에도 저렇게 안하무인격으로 타인을 무시하며 빈정대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아내인 이지은과 처음 만났던 날, 낙성대에 있는 그 호프집 앞에서였다.
“너…… 넌 박강수?”
박성한이 기분 나쁜 웃음을 머금으며 시인했다.
“크크, 이제 눈치채셨군요. 바로 그 사람 아들 됩니다.”
구인혁은 박강수의 가족 구성을 떠올렸으나 생각나는 바가 없었다. 어쨌든 눈앞에 나타난 아들이란 녀석을 다시 살펴보니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하는 짓 역시 비슷해 보였다.
그제야 구인혁은 박성한이 타임머신을 알고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유서준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박강수는 과거로 보냈던 네 권의 다이어리 가운데 가장 마지막 네 번째 권을 소유했었다. 그 네 번째 권은 중국 버블 직후 서하나가 검찰에서 빼내 소각했다고 했던가.
그렇다 보니 당연히 박강수는 타임머신에 대해 알 것이다. 그 타임머신 제작자가 구인혁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LTCM에까지 입사했던 것을 보면 사실상 모든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 알고 왔군.”
구인혁이 마음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일단 타임머신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은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자, 앉지.”
구인혁이 타임머신 옆 제어판 앞에 있는 자리를 권했다.
박성한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는 가져온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구인혁 역시 바로 옆에 자리 잡으며 물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나?”
“크크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왔지요. 유서준이 미래에서 온 다이어리를 이용해 부를 거머쥐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왔습니다.”
구인혁은 안면을 찌푸렸다.
“자네는 버릇이 없군. 유서준이라니.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크크, 그자는 우리 집안의 원수입니다. 유서준만 아니었어도 해솔 증권이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겠죠. 욕하지 않은 것만 해도 잘 봐준 겁니다.”
박성한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유서준에 대한 원한이 만만찮게 많은 모양이었다.
박성한이 제어판의 기기를 이리저리 살피며 말을 이었다.
“크크, 예전에는 과거로 다이어리 네 권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그중 한 권은 저희 아버지에게 날아갔고요. 또, LTCM에도 미래의 정보가 담긴 메모리칩을 보냈지요.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정보 말입니다.”
구인혁은 이제야 예전의 자신이 LTCM에서 어떤 일을 해주었는지 명확히 감을 잡았다. 유서준의 경우처럼 다이어리 같은 단편적인 정보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무려 5년간에 걸친 모든 정보를 보냈나 보다. 메모리칩에는 적어도 수십 기가바이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었을 거니까 거의 무한대의 정보를 보내지 않았을까. 정보뿐만 아니라 미래의 기술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구인혁은 유서준에게서 들었던 LTCM의 비상에 대해 떠올렸다. LTCM은 2021년부터 갑작스럽게 미국 금융계를 휘어잡고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타임머신의 힘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온 이유는?”
구인혁이 상대를 노려보았다.
박성한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흐흐, 타임머신 좀 빌리려고요. 제가 가진 물건 하나를 과거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구인혁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이제 명확해졌다. 박성환이 갑자기 여기에 왜 나타났는지. 그로서는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왜 보내려 하지?”
“크크,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요. 아, 지금 현재인가?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를 빼내고 망해버린 해솔 증권을 살리기 위해서죠.”
박성환도 차갑게 눈빛을 바꾸며 덧붙였다.
“물론 유서준도 망가트리고.”
그의 태도로 보아 아버지인 박강수에게 모든 일을 다 듣고 온 듯했다. 물론 그것은 박강수의 시점에서 유서준을 악의 축으로 간주하고 풀이한 것이겠지만.
“난 보낼 수 없네.”
구인혁이 양손을 들었다. 상대의 뜻에 따라 행동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명확하게 표시했다.
박성환이 한차례 대소를 터트렸다.
“크크큭, 과연 그럴까?”
박성환이 기분 나쁜 괴소를 지으며 타임머신 주변을 쭉 돌았다.
그의 눈이 재빠르게 기계의 각종 부품과 장치를 훑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박성환이 노트북을 열었다.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구인혁의 눈이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일었다.
박성환이 손을 움직여 화면을 조작하자 금방 화면이 밝아졌다. 화면에 일반 가정집 거실처럼 보이는 장면이 나타났다. CCTV 화면이었다.
화면에는 모두 네 사람이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 둘, 여자 둘. 흥겨운 일이 있는 듯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실내 인테리어로 보아 꽤 부유한 집안 같았다.
구인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왜?”
“잘 봐, 아는 사람일 거야.”
그는 박성환의 놀리는 듯한 표정이 기분 나빴다.
구인혁은 인상을 쓰며 화면을 다시 주시했다. 화면 속 인물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그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헉! 으…… 은서?”
“잘 아네. 다른 한 여인은 세라야. 유세라.”
“저게 무슨 화면이지?”
“지금 실시간 화면이야. 장소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둘이서 휴가 여행을 갔더라고.”
뭔가 이상했다. 타임머신을 알고 있는 박강수 아들. 그 아들이 은서와 세라를 알고 있다니? 거기에다 둘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금방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눈앞의 박성한이란 청년은 뭔가 치밀한 계획을 갖고 온 것이 분명했다. 과거로 뭔가를 보내 미래를 바꿀 확실한 작전을 세우고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저들은 누구지?”
구인혁이 화면 속의 두 남자를 가리켰다. 겉보기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으로 보아 은서와 잘 아는 사이임이 분명했다.
“잘 보면 짐작이 올 거야. 백인 남자 있지? 예전에 은서랑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던데?”
구인혁은 눈에 힘을 주었다. 화면이 흐릿하여 남자의 얼굴이 명확하지 않았다. 같은 초등학교라면 어릴 적 부모끼리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구인혁이 특별히 가정에 충실하여 딸의 친구를 모두 파악하지는 못했다.
잠시 기다리던 박성한이 혀를 끌끌 차며 답을 말해주었다.
“아론. 아론이라 하더라고.”
그제야 기억이 났다. 꽤 가까웠던 친구였다. 부잣집 아들로 그의 가족 전체가 초대되어 식사를 함께했던 적도 있었다.
갑자기 그때의 남자가 왜 저 화면에 나타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런 정도로는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의 마음을 눈치챈 박성한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크크, 문제는 그 옆의 남자야. 잘 봐. 엄청 잘 생겼지? 역시 남자도 얼굴이 멋져야 해. 두 년 모두 홀딱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
구인혁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화면을 다시 주시했다. 술을 마시며 은근하게 스킨십을 하는 남녀를 보니 전혀 경계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딸의 그런 행각에 다소 기분이 상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화면 속의 남자가 엄청 잘 생기긴 했는데 누군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박성한이 다시 해답을 줬다.
“저 남자의 이름은 오준영. 알려나 모르겠네.”
구인혁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오준영? 박강수의 아들 박성한? 그럼 오준영은…….
“설마? 오도욱?”
“크크, 잘 아시네. 지금 당신의 딸 은서와 유서준의 딸 세라가 오도욱의 유전자를 받은 오준영의 외모에 홀딱 빠져 있단 말이지.”
구인혁은 오도욱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오도욱이 얼마나 서하나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고 그 외모 역시 얼마나 특별한지를.
상황은 분명해졌다. 박강수와 오도욱의 아들인 박성환과 오준영이 은서와 세라를 이용해 모종의 계획을 세운 것이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박성한이 악마 같은 웃음을 드러냈다.
“크크, 내가 연락하면 저 둘은 약물을 탄 음료를 마시게 될 거야. 그 이후는 말 안 해도 알겠지. 흠, 흥미 있으면 노트북으로 계속 지켜봐도 좋고. 딸래미가 당하는 장면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