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8
28. 눈 속의 데이트(3)
유서준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뭔가 중요한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방식이다. 위험을 많이 짊어질수록 수익도 커진다. 주식시장 범위에서 생각하면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는 시장의 평균 수익률과 거의 같이 움직이지만, 시가총액이 작은 소형주 종류는 시장 수익률과 다르게 움직여 그보다 많은 수익을 내거나 반대로 큰 손실을 가져다준다.
어쨌든 금융시장에서 공짜 점심은 없기에 이익을 얻으려면 항상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무위험 차익거래라니? 전혀 위험이 없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사실상 시장에서 무위험으로 간주 되는 것은 국채 정도다. 일반인 입장으로 본다면 은행이자로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엄밀하게는 무위험은 아니다. 국가나 은행도 부도가 날 수 있으니까.
에드워드 소프는 20세기 중반 MIT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근무했다. 그는 블랙잭 게임에서 확률적으로 승률을 풀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으로 블랙잭 게임에서 도박 하우스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그는 금융시장으로 관심을 돌려 헤지펀드를 설립하여 막대한 부를 일구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무위험 차익거래를 통한 수익으로 워런트, 전환사채, 주가지수 차익거래가 수익의 원천이었다. 그는 워런트의 잠재적 가치를 처음 수학으로 계산해냈다.
소프가 운용하는 헤지펀드는 87년까지 28년 동안 평균 20%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기간에서 한 해를 제외하고는 항상 수익을 내었고 수익률의 표준편차가 대단히 작았다. 한마디로 매우 안정적으로 펀드를 운용했다는 의미였다.
강연을 듣는 동안 유서준은 멍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주식을 사고팔고 해서 이익을 얻는 것만 알았던 그에게 이 내용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새로운 내용에 어떤 학생이 질문했다.
“그런 방법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가요?”
신선영이 손을 저었다.
“아직 불가능해요.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자본시장 현대화 계획에 따르면 몇 년 이내에 외국인에게 증시가 개방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 2000년이 오기 전에 선물 옵션 같은 파생상품 시장이 활성화될 겁니다. 주식 워런트도 그때쯤 도입될 거고요. 일본에서는 지난 9월 3일을 기해 선물시장이 개장되었어요. 미래에는 국내에서도 이런 고난도 기법이 적용 가능할 겁니다. 그때 외국인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열심히 공부해야죠.”
신선영의 마지막 말이 유서준의 뇌리에 콱 박혔다.
외국인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다이어리 상에 어디에선가 언급되었던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외국인의 놀이터란 글귀가 기억났다. 사실 외환위기란 것도 결국 금융사 간의 힘겨루기다. 그 대결에서 국내 금융사가 패배함으로써 부도가 발생하고 이것이 사회적 위기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이미 알고 있는 선영 선배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사실 국내에서 벌써 이런 기법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그녀는 나중에도 이 방면으로 끊임없이 연구하며 새로운 기법을 배우고 개발할 것이다. 그런 그녀가 훗날 외국 투기자본인 LTCM에 들어가 국내 자본시장을 공격하는 주범이 되는 것일까. 미래에서 온 편지에 따르면 거의 확실했다.
유서준은 반드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선영이 이러한 연구를 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LTCM의 하수인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아니, 그녀를 자신이 설립할 SJ 투자금융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그것만 성공한다면 기존 미래와는 반대로 LTCM 공격의 첨병으로 그녀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날 있었던 신선영의 강연은 그 내용의 무게감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한 유서준의 계획을 확고하게 결정짓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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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을 먹은 후 노고단 단체 등반 활동이 있었다.
쌓인 눈 때문에 일부 반대도 있었지만, 지리산에 와서 산을 구경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아쉽다는 주장이 많아 등반을 강행했다. 노고단이 목표이지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었기에 모두에게 단단히 주의사항이 전달되었다. 별 것 아닌 주의사항이었지만 그것을 숙지하는 일이 유사시에는 목숨을 구하는 법이다.
계곡 길을 따라 모두가 줄지어 올라갔다. 조별 행동은 아니었기에 친한 사람끼리 어울려 움직였다.
유서준은 일학년 몇 명과 함께 이동했다. 항상 같이 다니는 김현아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박강수, 조용해서 존재감은 별로 없지만 꾸준하게 동아리 행사에 참여하는 김동식 등이 함께했다.
유서준은 박강수와 같이 산을 타는 것이 싫었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단체생활이니까.
눈 덮인 산길은 다소 미끄러웠다. 다행히 등산화를 준비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일부 학생은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아이젠을 신발에 착용했다. 미끄러운 길만 주의하면 등반 자체는 그리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소 추웠지만, 날씨는 맑았다. 하얀 지상 풍경 위로 수채화처럼 파란 하늘이 얹혀 있는 모습이 매우 상쾌했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비교적 잘 다듬어져 있어 눈길임에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노고단 바로 아래까지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부근에서 가팔라져 다소 험해질 것이라 했다.
구성원 분포로 보아 대부분 고개 아래까지는 함께 갔다가 마지막 고비에서는 체력이 남거나 눈 덮인 산을 잘 타는 사람만 올라가게 될 것이다.
유서준은 고향이 강원도다. 그것도 태백산맥 아래다. 그에게 남쪽의 지리산 정도의 눈 덮인 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향의 바위산에 비해 비교적 펑퍼짐한 지리산은 그에게 매우 쉬운 길이었다. 경사면에서도 눈의 양에 있어서도 비교 불가였다.
오랜만에 타는 산이라 유서준은 절로 콧노래가 났다.
김현아는 유서준 바로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하지만 정작 유서준과 대화하기보다는 그녀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함께 오르는 박강수나 김동식과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서준은 그리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박강수는 산을 오르면서 자신이 주워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명동에 가면 아침마다 각 증권사, 투신사, 큰손의 모임이 있어. 그곳에서 시중에 떠도는 정보를 취합해. 들어봤지? 증권사 찌라시라고.”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주변인을 향해 박강수가 말을 계속했다.
“거기에서는 오늘의 작전주를 공모하지. 그다음에 무슨 소문을 퍼트릴지 얼마나 가격을 올릴지 작전을 짜. 작전주가 탄생하는 과정이야. 참가자는 그곳에서 결정된 작전을 절대 어기지 못해. 배신자로 낙인찍히면 다음부터는 안 끼워주거든.”
명동에서 큰 손이 모여 작전을 주도한다는 이야기는 이 바닥에서 오래 머물렀다면 들어봤을 내용이었다.
정말인지 거짓인지 모르지만, 증시 주변의 이런 모습은 아직 후진국 증시를 탈피하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박강수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에서는 주식 관련 소문만 나오는 건 아냐. 별별 소문이 다 떠돌지. 때로는 어떤 여배우가 누구랑 사귄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권력자가 누구를 은밀히 불러 같이 놀았다는 소문도 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김동식을 향해 박강수가 한마디를 더 뱉었다.
“지난 대선 때 그 모임에선 이미 누가 될지 알고 있었다고 하더군.”
박강수가 오만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완전히 거짓이라 볼 수도 없기에 유서준은 그의 말을 흥미롭게 들었다.
박강수가 김현아를 향해 슬그머니 말을 건넸다.
“최근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배우 K양이 모 권력자의 사생아를 낳았다고 하더라고.”
“넌 그런 소문을 믿냐?”
김현아가 핀잔을 주었다.
박강수가 기분이 나빠져 한마디 쏘아붙였다.
“어쭈? 권력을 무시하네? 이 나라에서 주식 하려면 그런 소문을 도외시하면 안 돼. 수익 중 상당 부분을 그놈들이 가져가거든. 순수하게 기업 가치만으로 투자하면 망하기 십상이지.”
이런 식의 대화는 박강수의 특징이었다. 그는 금융 관련 일을 하는 가족, 친척에게 이런 잡다한 내용을 들어왔고 그 내용을 자랑하듯 전했다.
주변 사람은 대개 그가 전하는 소문에 놀라워하며 재미있어했다. 물론 그런 소문 중 특히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업이나 주식 소문보다는 연예가 뒷소문이었다.
“생각해봐. 지난번에 연예인 둘이 사귄다는 소문 있었잖아? 그거 증권가 뒷골목에서 소문이 나고 몇 달 뒤에 사실이라 밝혀졌어. 최근에는 연예인 L양의 스폰서가 재벌 2세란 소문도 있어.”
“L양이라면 티비에 나오는 얼굴 예쁜 그 탤런트?”
김동식이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박강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그 탤런트. L양이 예뻐 봐야 우리 현아만 하겠냐만.”
슬쩍 김현아를 끼워 넣고는 박강수가 눈치를 봤다. 김현아가 그를 쏘아보고는 곧바로 앞장서 걸음을 빨리했다.
멀찌감치 앞서가는 그녀를 보며 박강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현아가 부끄러워할 줄도 아네.”
박강수의 뒤에서 걸어가던 유서준은 손을 내밀어 그를 밀었다.
쿠당탕.
눈길에 미끄러지며 박강수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야?”
박강수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유서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 내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밀었네.”
박강수가 인상을 썼다.
유서준이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주었다.
박강수가 씩씩대며 말했다.
“앞으로 조심해.”
“알았어.”
저 앞에서 김현아가 뒤를 돌아보며 웃음을 지었다.
유서준은 박강수의 뒤에 숨어 몰래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산 중턱쯤 올라갔을까.
처음보다 다소 좁아진 눈길이 위로 뻗어 있고 그 옆에 노년에 접어든 두 사람이 길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
언뜻 보기에 대략 육십을 갓 넘어 보이는 부부처럼 보였다. 아직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다소 이르게 보이는 남자는 곤란한 표정으로 올라가는 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색 모자 아래 반쯤 벗겨진 대머리와 희끗희끗한 머리가 그의 연륜을 짐작게 했다.
나이든 중년 아줌마처럼 보이는 여자는 어딘가 아픈 모양인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단지 올라가다 쉬는 것으로 볼 상황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붉은색의 화려한 등산복에 신발마저 눈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눈길에 산행하려다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슬쩍 그들을 곁눈질하며 올라가는 유서준 일행에게 노년에 접어든 남자가 손짓했다.
“학생들 좀 도와주게나.”
“네? 무슨 일이세요?”
김현아가 가장 먼저 그들에게 다가갔다.
붉은색 모자를 쓴 남자가 그녀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 다리를 삐었어. 지금 움직이기가 좀 불편해.”
예상대로 여자가 다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을 힐끔거리며 살펴보는 학생들을 향해 남자가 꽤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했다.
“지금 움직이기가 대단히 어려워. 아래쪽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일행이 있긴 하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내려가지 못할 것 같아. 구조대를 좀 불러줄 수 없겠나?”
유서준이 보니 눈가에 퍼질러 앉은 그들의 사정이 딱해 보였다.
김현아가 여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물었다.
“많이 아프세요?”
“가만히 있으면 덜한데 움직이면 많이 아파.”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곧바로 옆에 앉은 남편을 보며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영감이 노망이 들었는지 눈길에 등산하자고 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됐어. 내가 안 오는 건데 괜히 따라와서.”
“오겠다고 떼쓴 건 당신이잖아?”
두 사람이 서로 툭탁거렸다.
산길이라 마땅히 조치할 방법이 없었다. 이동전화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 누군가가 산 아래로 내려가 구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산 아래 먼 곳까지 갔다 오기도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거리도 만만찮은 데다 눈길이라 뛰어갈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