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30
30. 패러독스(1)
[1988년 1월 31일]1988년 1월의 주식시장은 폭등세를 보였다. 전해 12월 말 525.11이었던 종합주가지수는 한 달 동안 무려 +20.66%가 상승하여 633.58을 기록했다. 사실상 거의 매일 상승하다시피 한 주식시장에서 상한가가 속출했다.
새 대통령의 선출로 인한 기대감과 88올림픽 개최라는 두 쌍두마차가 끌어낸 결과였다.
유서준 역시 매매에서 큰 수익을 올렸다. 경남기업에 밀어 넣은 절반의 계좌는 차곡차곡 수익을 낳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 역시 다이어리에 기초한 매수, 매도를 반복했다. 그가 건드리는 종목은 대부분이 무역, 건설, 금융으로 불리는 트로이카 주식이었다.
다이어리에 나타난 본래의 유서준 매매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장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약 1년간에 걸친 매매 경험으로 인해 익숙해진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장이 조정을 보일 때 손실을 크게 입은 결과를 보며 그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이어리에는 수익이 크다고 만족한 글이 적혀 있었지만, 냉정히 판단하면 그 수익 대부분은 그의 능력이나 재능이라기보다 시장이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이렇게 별 볼 일 없었구나.”
유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생을 이끌어 간 노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어쨌거나 훗날 그는 금융회사를 차릴 만큼 성장하지 않았던가.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넘겼다.
88년 2월에 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전반적으로 2월의 주식시장은 조정 장세였다. 2월 한 달 동안 대략 -3.35% 하락 하였다. 사실 미미한 조정에 불과했지만, 당시 충격은 작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약 4개월 동안 폭등장세만 경험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
1988년 2월 1일 월요일.
아침부터 주식시장이 폭등세로 출발했다. 금융, 무역, 건설주는 모두 상한가를 기록하는 폭등세다. 무려 2백 개 종목이 상한가를 치는 중이다. 아무것도 살 수가 없다. 상승장에서 홀로 낙오되니 이보다 짜증 나는 일이 없다.
건설주 가운데 전날 하한가를 맞아 아직 상한가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삼성종합건설이란 놈이 보인다. 살까 말까 고민이다. 하한가를 맞았다는 것은 힘이 약하다는 이야기인데…….
*
다이어리의 내용에 유서준은 웃음을 지었다. 월요일인 내일 아침 주가가 폭등한다는 의미였다. 예전의 유서준은 주식을 사지 못했지만, 지금의 그는 다르다. 그는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지 않았으니까. 즉 내일 있을 주식시장 폭등을 고스란히 수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
*
1988년 2월 8일 월요일.
2월 1일에 주식을 사지 못해 발을 구르다 다음날인 2일에 매수했던 조흥은행 주식을 16900원에 팔았다. 1주일 만에 +7.6%인 1200원의 수익이 발생했다.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영 꿀꿀하다. 그때 살까말까 고민했던 삼성종합건설이란 놈은 무려 20400원이다. 그날 샀을 가격 대비 무려 3400원이나 올랐다. 샀었다면 +20%의 수익이 나는 건데 아깝다.
*
유서준은 1주일 후의 다이어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은행주는 앞으로 1주일 동안 약간의 추가 수익을 더한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1주일 동안 폭등하는 주식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내일 아침 장이 시작되면 곧바로 은행주를 상한가에 팔아치우고 삼성종합건설로 갈아탄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삼성종합건설이 전날 하한가 여파 때문에 곧장 상한가로 진입하지 않았으니까 충분히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전략은 그가 굴리는 자금 규모가 크다면 불가능한 전략이다. 현재 유서준의 자금은 기껏 몇백만 원 수준. 아직 매수, 매도 물량을 고민할 단계는 아니었다.
다음날인 2월 1일, 유서준의 전략은 적중했다.
그는 장 시작하면서 보유한 은행주를 상한가에 매도했다. 주식이 팔린 다음에도 여전히 삼성종합건설은 상한가에 진입하지 못했다. 다른 건설주가 상한가인 초강세 장의 여파로 이 종목 역시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유서준은 곧바로 자금 범위 안에서 매수주문을 넣었다.
문제없이 체결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서하나는 그와 상당히 죽이 잘 맞았다. 긴박한 매수나 매도주문을 요구할 때가 많았지만 그녀는 금세 그의 의도를 알고 주문을 수행했다. 이미 계좌로 보여준 그의 실력을 서하나가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
[1988년 2월 9일]삼성종합건설 주식으로 1주일 만에 20%라는 놀라운 수익을 올린 유서준은 동아리 방 벽에 붙은 주식투자대회 성적을 보고 있었다.
1월의 폭등세 덕분에 참가자 가운데 손실이 난 사람은 없었다.
1등은 +32%의 수익을 올린 박강수였다. 놀라운 수익률이긴 했지만 한 달간 종합주가지수가 20%나 오른 것을 생각하면 초과수익은 그리 크지 않았다.
작년 대회 1위였던 신선영은 +25%로 10위권이었고 유서준은 그보다 약간 나았지만 비슷했다. 김현아 역시 유사한 수익률로 10위권대였다.
모든 종목이 무차별로 오르다 보니 종목 선택의 운이 많이 작용했다. 상한가가 자주 있어 매매 자체도 제약이 많은 시기였다.
유서준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100만 원만 투입한 대회 참가계좌는 적절한 수익률로 관리할 생각이었다. 오름폭이 큰 시기에는 그냥 묻어서 따라가는 전략을 취하고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 일단 빠져 지켜볼 심산이었다. 이런 폭등 장세에서 수익률을 좌우하는 것은 조정기를 어떻게 견디느냐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무리하지 않았다.
이번 상반기에 주가가 조정을 받는 시기는 2월 하순과 4월, 6월이다. 유서준이 노리는 시기이기도 했다.
툭.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쳤다.
유서준은 몸을 돌렸다. 그의 앞에 박강수가 미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서 있었다.
“자식, 어떠냐?”
그의 표정으로 보아 벽에 붙어 있는 대회 순위를 의미하는 듯했다. 지금 현재 1위를 달리고 있으니 저런 표정이 나오는 것일 거다.
“뭘?”
유서준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박강수가 기가 막힌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유서준은 모르는 것처럼 순위표를 훑었다.
“아, 저것 말이구나. 최근 트로이카주가 무차별 폭등했었는데 너도 그거 손댔나 보네? 언제는 부실 저가주라고 욕하더니.”
“이……!”
박강수가 열이 받아 험한 욕을 하려다가 유서준의 덩치를 보고 움찔했다. 평범한 체구인 박강수에 비해 유서준은 거구였다. 거기에다 인상 역시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박강수가 슬며시 손을 내리면서 유서준을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종목 매매하는 거지. 너처럼 생각 없이 몰려다니진 않는다.”
유서준이 빙그레 미소로 응답했다.
“뭐, 그건 됐고 대회에서 잘 나가는 것도 알겠는데 지난 연말에 내기한 것 기억나지? 요즘 보니 네가 고른 대한항공보다 내가 고른 삼익건설이 몇 배는 잘 나가던데?”
유서준은 상대방의 심기를 교묘하게 건드리며 약을 올렸다.
박강수의 안면이 울긋불긋해졌다.
유서준이 슬쩍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다 현아 포기하게 되면 우짜나…….”
“으으……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박강수가 주먹을 힘껏 쥐었다가 내려놓았다. 박강수는 눈에 힘을 주어 사나운 눈빛으로 유서준을 쏘아보고는 동아리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유서준은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에서 온 편지에 따르면 박강수는 LTCM에서 우리나라를 외환위기에 빠트리는 주요 인물로 활약할 것이다. 저렇게 심성이 배배 꼬여 있으면 사고를 쳐도 꽤 크게 칠 녀석이다. 그의 태도와 성격으로 보아 박강수를 새로운 길로 이끄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2월 중순을 넘어가면서 시장은 조정을 보였다. 무려 4개월 동안이나 폭등세가 이어졌으니 당연한 조정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상 항상 주식을 보유하다시피 했던 유서준도 일시적으로 주식을 모두 매도하고 현금을 보유했다. 물론 일 년 동안 가져가기로 했던 경남기업은 계속 보유 중이었다. 이 종목은 그동안의 폭등세로 매매정지 된 상태였다. 이 무렵에는 주가가 이상 폭등을 일으키면 한동안 매매를 정지시키기도 했다. 어쨌든 유서준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는 연말까지 들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덕분에 세 사람의 내기는 일찌감치 결정이 나 버린 모양새였다. 그가 고른 삼익건설의 경우 한 달 만에 200%의 수익을 보였지만, 박강수가 고른 대한항공은 30% 남짓했다. 김아현의 삼성물산 또한 대한항공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앞으로 10달이 남았으니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뒤집히지는 않을 것이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뒤집힐 일도 없었고.
2월 말이 되자 6공화국이 출범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보통 사람의 시대’를 천명했다. 권위적이었던 군부독재 시대를 지냈던 국민에게 보통 사람의 시대란 슬로건은 대단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태생적 문제와 5공화국과의 관계 때문에 사람들은 뒤에서 ‘물태우’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노태우 정부가 들고나온 가장 중요한 정책은 북방정책이었다. 이 무렵 소련의 인기 정치인 고르바초프가 대서방 유화정책을 펴고 있었다. 발트 3국의 소비에트 연방 탈퇴요구로 촉발된 독립 열기가 향후 새로운 국제사회를 예고하는 중이었다.
국제정책의 변화에 맞추어 정부는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예고하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적 활로가 이쪽에 있음을 알렸다. 이러한 거시적 결단은 향후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 확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면서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서울에 입성한 후 일 년이 된 유서준의 환경은 많이 변했다. 기숙사에서 나와 자리 잡은 하숙집 생활도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돈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고향에 있을 때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도 그는 될 수 있으면 지출을 줄이려고 애썼다. 용돈도 풍족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에게서 얻은 돈을 함부로 쓰기 미안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그의 통장에는 주식으로 불어난 돈만 일천만 원을 돌파했다. 이 금액이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고도 남았다. 그렇다고 그의 씀씀이가 커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가끔 친구에게 한턱내거나 데이트 비용으로 약간의 돈이 더 들어가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로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먼 미래에 있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훗날의 일이다.
2학년이 되자 수강과목도 교양과목에서 대부분 전공과목으로 바뀌었다. 철학이라는 자신의 전공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유서준은 경제학 과목을 일부 수강했다.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지 않는 학생이 경제학 과목을 수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의 학과 친구는 경제학을 듣는 그를 매우 이상한 존재로 인식했다.
매일 아침 장이 시작되기 전에 서하나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매매를 주문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빈 공강 시간이나 수업을 마친 후에는 동아리 방에서 다른 학생과 주식 공부를 했다. 윤리교육학과 김동식이 그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유서준과 달리 학과 전공 공부에 충실한 김현아의 경우 동아리 출입시간이 많이 줄어들어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다소 줄어들었다. 바쁜 나날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기 위해 애쓰는 김현아가 유서준은 고마웠다.
두 사람은 동아리 모임을 마친 후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의 하숙집과 김현아의 자췻집의 방향이 같다는 핑계로 두 사람은 자주 어울려 다녔다. 김현아를 눈여겨보던 몇몇 학생이 가끔 의아한 눈길을 보냈지만 두 사람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둘이 만나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가끔은 함께 분식점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그 모든 시간이 즐거웠다.
유서준은 김현아의 자췻집에 놀러 가고 싶었지만, 그녀의 거부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참아야 했다.
김현아는 유서준의 집에 놀러 오는 것마저 거부했다. 유서준은 서운했지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이 시절에는 남녀 학생이 이성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