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34
34. 올림픽의 해(3)
올림픽 이후 주가는 폭등세를 나타냈다.
9월 말 677.54로 마무리했던 종합주가지수는 올림픽이 끝난 다음 주부터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연말까지 주가가 하락한 때는 불과 2주에 불과했을 만큼 무차별 폭등양상을 지속했다.
12월 말 마지막 납회일이 되었을 때 종합주가지수는 907.20이었다. 올림픽 후 +33.9% 상승이었고 연간으로는 무려 +72.8%의 상승했다.
1년을 마무리하는 12월 26일, 주식 동아리 회원들은 감회가 남달랐다. 대부분 큰 수익을 올렸기에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 동아리 방에는 웃음이 만발했다.
모두가 주가가 비상할 내년을 꿈꾸었다. 올해보다 주가가 더 높아질 내년에 더 큰 수익을 낼 것을 바랐다.
뉴스에서는 내년 연말 주가지수를 1500포인트로 추정했다. 모두가 내년에는 투자금액을 더욱 늘리겠다고 난리였다.
유서준은 그들을 보며 내심 고소를 머금었다.
주가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적어도 최근 3년 동안 주가는 폭등장세를 이어왔기에 모두 오르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주식을 하면 무조건 돈을 버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웠다. 비교적 주식에 익숙하다는 동이라 회원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사실 다이어리에 나타난 예전의 유서준도 비슷했다. 잃고 벌고의 반복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장이 상승한 만큼 그도 이익을 보았다. 문제는 89년부터 발생했다. 89년 봄 주가지수 1000을 찍은 이후 상당 기간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시기에 그는 그동안 벌었던 모든 수익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적게 벌고 많이 잃는 전형적인 패턴.
아마 여기 있는 회원 중 상당수가 그런 길을 걷게 될 것이다. 90년대 들어가서 주식매매의 처절함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일 년의 주식시장을 마감하는 납회일 저녁에 동아리에서는 축제를 벌였다.
88년 하반기 주식투자대회의 결산 및 시상식도 거행되었다.
올림픽 이후 폭등세를 잘 잡아탄 투자자는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1위는 신선영이었다. 그녀의 하반기 수익률은 +92%였다.
신선영은 현재 4학년 졸업반이었다. 예전에 계획했던 대로 그녀는 2월에 졸업한 후 8월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다. 즉 동아리에 나와 활동하는 것은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유서준 역시 누구보다 그녀를 아쉬워했다. 상승기 때 그녀의 기법이 잘 맞아 들어가는 것은 확인했다. 그럼 하락기에서는 어떻게 방어를 할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가 졸업하는 관계로 그에 관한 확인은 불가능했다. 그녀의 매매기법을 추종하는 그로서는 배우다가 중도에 끝난 기분이었다.
설사 그녀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더라도 그녀와의 인연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2027년 그 운명의 날까지 그녀와의 인연은 이어질 것이다.
동아리 주식투자대회 하반기 수익률 2위는 유서준이었다. 그는 +84%의 수익을 올렸다. 물론 이것은 대회에 참가한 소액계좌의 경우다. 그의 실제 계좌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냈다. 년 초에 닥치고 매수했던 경남기업이 효자였다.
김현아는 그를 이어 3위로 부상했다. 그녀의 수익률은 +63%. 지난 상반기 때보다 수익률도 좋아졌고 등수도 올랐다. 그녀는 높은 수익률에 만족했다.
한때 그들과 순위를 다투었던 박강수는 추락했다. 올림픽 이후 조정 장세를 예상했던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그의 수익률은 하반기 주가지수 상승률과 비슷한 +39%로 11위를 기록했다. 오히려 박강수가 항상 무시했던 김동식의 순위가 더 좋았다. 김동수는 10위에 랭크되었다. 김동수는 이 사실을 회원에게 떠벌리다가 박강수에게 등을 두들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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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송예은이 고3 졸업반이 되어 학력고사를 쳤다. 선지원 후시험제로 변경된 학력고사 제도에 따라 송예은은 이전부터 노렸던 연세대 경영학과에 지원했다. 88년 학력고사 일인 12월 16일은 서울 새벽 날씨가 영하 10도로 혹한이 이어졌다. 역시 대입 한파란 말이 나왔다.
시험 당일, 유서준은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시험장인 연세대로 갔다.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뉴스에 따르면 학력고사 시험 난이도는 전년과 비슷했다는 평이었다. 특별한 변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송예은은 연말이 되기도 전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유서준이 가르쳤던 수학 과목은 만점을 받았고 다른 과목도 꽤 잘 쳤다. 선지원만 아니었다면 서울대도 노려볼만한 점수였다.
12월 29일 밤, 유서준은 송예은의 입학축하연에 초대되었다. 장소는 강남의 유명 일식집이었다. 송예은의 연세대 합격을 축하하고 그녀를 잘 가르쳐 준 유서준에게도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였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송예은의 아버지를 만났다.
송예은의 아버지 송희관. 겉보기에 마흔이 약간 넘어 보이는 비교적 동안의 중년 남자였다. 유서준은 처음에 선배 한석현에게 소개받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국민투자신탁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으나 지금은 눈이 번쩍 뜨이는 직업이었다.
정갈하게 다져진 생선회를 먹으면서 유서준은 감사의 인사를 들었다.
“우리 예은이를 잘 봐줘서 고맙게 생각하네. 덕분에 합격한 것 같아.”
“아닙니다. 예은이가 열심히 한 거지요. 예은이는 똑똑한 데다 성실해서 뭘 해도 잘할 겁니다.”
그의 칭찬에 송예은이 환하게 웃었다. 2년 전 처음 봤을 때는 어린 학생처럼 보였는데 지금 다시 보니 숙녀티가 물씬 났다. 겉보기에 볼살이 조금 빠진 것 같은데도 귀여운 모습은 여전했다.
그녀는 대학교에 합격한 기쁨에 연신 배시시 웃고만 있었다.
아버지 송희관이 그에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약소하지만 그동안 수고해준 보답이니 받게.”
애초에 잘 가르치면 보너스를 준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유서준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그는 인사를 꾸벅하고 두 손으로 정중하게 받았다. 봉투 안을 살펴보니 백만 원짜리 수표가 세 장이나 들어있었다. 정확히 일 년 치 과외비를 추가로 준 셈이다.
“이렇게 많이 안 주셔도 괜찮은 데요…….”
유서준의 인사치레에 송희관이 손을 내저었다.
“요즘 대학교 등록금도 비싸잖아? 그동안 과외비로 학비와 용돈을 모두 쓰려니 힘들지 않았나?”
송예은이 냉큼 끼어들었다.
“그거 아세요? 서준 오빠는 그동안 과외비를 주식에 넣었데요.”
주식이란 말이 나오자 송희관의 눈빛이 달라졌다. 프로 펀드매니저다운 반응이었다.
“주식매매하고 있니?”
“네. 과외비만 넣어서 소액입니다.”
송희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요즘 장이 좋으니까 좀 벌었겠구나.”
유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매매했던 종목 이야기를 했다.
곧바로 두 사람은 주식 이야기로 넘어갔다. 공통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자리를 편하게 만들어준다. 유서준은 송희관의 말을 통해 펀드매니저란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요?”
유서준은 그에게 내년 주식시장 전망을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송희관이 대답했다.
“언론에서는 내년에도 상승으로 보고 일 년 후 주가를 최소한 1500선까지 내다보고 있지만 사실 그건 립서비스일 뿐이야. 오른다고 해야 사람이 몰리고 그래야 증권이든 투신이든 밥을 벌어 먹고사니까.”
송희관이 뭔가 심상찮은 어조로 시황 전망을 시작했다.
“올해 우리나라가 오른 것은 올림픽 영향도 있지만, 일본 증시의 영향도 커. 일본 증시도 현재 수직상승 중이거든. 그동안의 경향으로 보아 일본의 주가가 꺾이면 우리도 꺾이리라고 예상하는데…….”
역시나 프로 전문가의 견해는 달랐다. 주가 움직임을 해외의 영향까지 포함하여 예상했다. 이런저런 이유와 함께 그 결론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내년 초에는 올해 상승 여파로 상승세를 이어가겠지만 일 년 전체로 본다면 꽤 힘든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정확한 지적이었다. 유서준은 그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했다.
송희관의 견해가 이어졌다.
“현재 일본은 거품이 극심해. 특히 부동산은 주식보다 더하지. 일본 국토를 팔면 미국 대륙을 5번이나 살 수 있다는데 이게 말이 안 되잖아? 이런 비정상적인 가격은 오래 유지할 수 없어. 조만간 붕괴하여 거품이 빠지게 될 거야. 그때 우리나라 주가도 내릴 확률이 높아.”
사실상 일본의 경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유서준에게는 신선한 내용이었다.
대화가 길어지자 옆에 있던 송예은이 투덜댔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밥이나 드세요.”
두 사람은 웃으며 대화를 멈추고 밥을 먹었다.
유서준에게 송희관이 남긴 첫인상은 꽤 좋았다. 지금까지 그가 보았던 증권사 사람과 송희관은 확실히 다른 면이 많았다. 업무가 아닌 사적인 만남이었기에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식사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송예은이 부모를 졸랐다.
“아빠, 엄마, 나 오늘 좀 늦게 들어가도 되죠? 서준 오빠랑 데이트하고 들어갈게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요청에 유서준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송예은의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얘는 선생님과 갑자기 뭔 데이트?”
“나도 이제 대학생이거든!”
송예은이 혀를 날름 내밀었다.
송예은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언제 철이 들는지. 그럼 오늘 폐를 좀 끼치겠어요.”
송예은 어머니께서 유서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서준은 그녀의 부모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일찍 보내드리겠습니다.”
웃음을 터트리는 부모를 뒤로하고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송예은이 팔짱을 꼈다. 키가 크고 한 덩치 하는 유서준에 비해 송예은은 작은 키에 아담한 몸매를 가진 귀엽게 생긴 여학생이다. 키 차이가 크게 나서 고목에 매미가 붙은 것 같았다.
송예은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유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입학선물 사줄까?”
“네!”
곧바로 송예은이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방방 뛰었다.
두 사람은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갔다.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백화점 매장은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연말연시라 행사를 하는 브랜드도 많았다. 사람들도 북적였다.
“일단 입학식 때 입을 정장을 하나 고르자.”
“넹, 헤헤.”
두 사람을 연인으로 본 매장 직원이 이런저런 신상품을 소개했다.
송예은은 연한 보라색의 투피스 정장을 골랐다. 꽉 끼는 상의가 몸매를 잘 드러내고 치마 길이가 무릎 부근에 걸리는 무난한 옷이었다. 정장을 입은 송예은의 모습에서 어린 여학생의 티가 사라졌다. 생기발랄한 여대생이라고 할까.
유서준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 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송예은이 갑자기 유서준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영문을 모르는 그에게 그녀가 말했다.
“아, 사고 싶은 게 생각났어요. 꼭 사주셔야 해요?”
그녀가 유서준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유혹했다.
그는 그녀의 행동이 귀여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뭔데?”
“그런 게 있죠. 히히.”
송예은이 그의 팔짱을 끌었다.
신세대가 입을 법한 다소 파격적인 옷이 걸려 있는 매장이었다. 송예은이 매장 직원과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평소 옷, 특히 여자들 옷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유서준은 그냥 멀뚱거리며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송예은이 옷을 받아들고 입어보기 위해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아…….”
옷을 입고 나온 송예은을 바라보며 유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송예은이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물었다.
“어…… 어때요?”
“그…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