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38
38. 1000 고점을 찍고(1)
주식시장은 거침없이 달아올랐다.
마침내 1989년 3월 31일, 종합주가지수는 역사적인 1000선을 돌파했다. 종가는 1003.31. 마감 종가가 역사상 최고가였다.
언론에서는 80년부터 시작하여 10년 만에 10배가 올랐다고 야단이었다. 당시 은행이율은 10% 남짓. 만일 은행에 예금을 해두었다면 최고금리라 해도 두 배가 약간 넘을 수준이었으니 상대적으로 주가 오름폭은 컸다.
다음날인 4월 1일은 여기에서 더 올라 종가로 1007.77을 기록했다. 이날이 역사에 남을 사실상 최고점이었다.
유서준은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종목을 팔아치웠다. 지금부터 91년 말까지 약 3년간 그는 주식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주가 상승에 고무된 대부분 사람은 더 큰 자금을 투입하기에 급급했다. 영원히 상승할 것만 같은 주식시장,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며 시장 분위기를 달구었다. 3년에 걸친 상승은 하락에 대한 경계심을 사라지게 했다.
그의 다이어리에 총자산이 기록되었다. 3개월간 작정하고 전력을 쏟아부은 매매로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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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 31일, 총자산 2억 12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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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4월 2일]4월 2일 오전에 주가지수는 장중 고점인 1015.75를 찍었다. 곧바로 지나친 상승에 따른 경계심리가 발동하여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기나긴 하락의 시작이었음은 아무도 몰랐다. 아니, 유서준만이 알고 있었다. 다이어리의 도움으로.
4월 2일의 동아리 방은 북적였다. 신학기 초라 신입생 모집이 성황을 이루었고 주식투자대회의 3월 말 결과표가 벽에 떡하니 붙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연말과 비교하면 4월 1일 주가지수는 +11.1%나 상승했다. 당연히 동아리 회원의 계좌도 수익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미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라는 3저 호황에 기반한 주가 상승에 무역, 건설, 금융을 지칭하는 트로이카주가 주도주임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이에 편승한 투자는 그 수확이 컸다. 초기에 주저하던 투자자도 너도나도 트로이카를 외쳤다. 모두가 주식 전문가가 되었다.
벽에 붙은 대회 결과표는 화려했다.
참여한 32명 중에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플러스 이익을 거두었다. 랭킹 1위는 유서준. 단연 압도적이었다.
작정한 그는 무서웠다. 유서준의 수익률은 무려 +518%. 1월에 56%의 이익을 얻었던 그는 조정을 보였던 2월에도 40%의 이익을 냈다. 3월은 가히 폭등세. 주가 상승을 딛고 무려 한 달 동안 183%의 수익이었다. 이를 연초부터 다시 복리로 계산하면 순익만 5배가 넘었다. 가히 동아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익률이었다.
2위는 박강수. 그는 현재 +32%의 수익을, 3위인 김현아는 +29%로 3위를 기록했다.
박강수의 수익도 3개월 만에 이루어진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서준과의 압도적인 차이에 아연실색한 상태였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매매하면 3개월 만에 무려 5배를 벌어들일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김현아는 유서준의 수익률에 감탄사만 연발했다. 그런 김현아를 보고 있으니 박강수의 마음은 더욱 찢어졌다.
지난 연말에 내기했던 것이 생각나고 이런 무지막지한 수익률이라면 자신이 내야 할 기부금이 슬슬 걱정되었다.
동아리에 가입한 신입생은 유서준의 수익률을 보면서 저 선배에게 코치를 받아 따라 하기만 해도 대박이라는 환상에 젖었다.
유서준에게 몰려드는 신입생을 정리하며 김현아가 요청했다.
“서준아, 신입생들에게 좋은 말 하나 해줘야지.”
김현아는 3학년이 된 이후 동아리 총무를 맡았다. 그녀는 신입생을 비롯한 회원을 잘 챙겼다.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유서준은 모두의 앞으로 나갔다.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특히 신입생은 그에게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서준은 관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주식 잔치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언론에서는 연말에 주가지수 1500을 돌파할 거라던데요?”
신입생 한 명이 이의를 제기했다.
유서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로는 특히 지금과 같은 수요층만으로는 현재의 주가지수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주가지수 1500 돌파는 먼 훗날의 일입니다.”
신입생들이 웅성거렸다.
김현아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질문을 던졌다.
“정말이야? 상승장세가 끝난 거야?”
“지금까지 상승을 이끄는 황소 장세였다면 앞으로는 하락을 맴도는 곰 장세가 될 겁니다.”
황소와 곰은 상승과 하락을 의미하는 월가의 용어다.
대다수와 다른 견해를 언급하는 유서준의 말을 무시하기엔 유서준의 수익률이 너무 높았다.
“그러면 형도 당분간 주식매매 쉬실 건가요?”
바로 아래 학년 학생 하나가 다급하게 물었다.
“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어제 종가로 모든 주식을 처분했습니다. 당연히 주식투자대회 계좌도 오늘부터는 현금밖에 없습니다. 당분간 현금 100%를 유지할 겁니다. 주식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일시적으로 모두 현금화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활황 시기에 현금 보유라니.
박강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유서준과 정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모두가 말하듯이 이제 본격적인 상승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그 과실을 얻을 때입니다. 주식시장에 격언이 있지요. 재료보다 수급이 우선이라고. 주식 수요를 보세요. 지금 시골에서 논밭을 팔고 시장에 뛰어드는 초보자가 널렸습니다. 이것은 매수 수요가 탄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기업 실적은 어떻습니까? 88올림픽을 통한 인지도 증가에 주변 환경은 3저 호황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무역도 흑자입니다.”
유서준은 박강수의 일장연설을 들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주식이 영원히 오를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이거늘. 모두가 너무 상승에 취해 눈앞의 위험은 안 보이는구나.’
모두가 박강수의 말에 수긍하는 모양새였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유서준은 마무리 말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느 견해를 따를지는 여러분 자유입니다. 시장에는 항상 매도세와 매수세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의 보다 나은 수익을 기원합니다.”
박수 소리는 작았다. 아마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불과 3개월 후면 여기 있는 모두는 하락장이라는 실체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유서준은 자신의 말을 몇 사람이라도 알아들었기를 바랐다.
그의 놀라운 주식 감각을 믿고 있는 김현아만이 그가 말한 의미의 심각함을 되새기고 있었다.
김현아를 바라보는 유서준의 눈빛이 깊어졌다.
입대하면 그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차마 그녀에게 기다려달라고 하기에도 염치가 없었다. 그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이성 간의 사귐은 그리 깊지 않았다. 아직 키스도 못 해본 사이에 어떻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그녀를 놓치기 아까웠지만,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녀의 인생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떠나는 날에나 말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즐거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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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유서준은 증권사에 들렀다.
증권사는 계좌를 개설하러 온 초보자로 북적였다. 국민주 청약 이후 주식투자인구가 급증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거기에다 상승장이었으니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사람이 많았다. 어쨌든 증권사 내부는 활기가 넘쳤다.
서하나는 초보자를 상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서준은 조용히 자신의 순번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전광판에 반짝이는 시세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소리를 친다고 주가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건만 오른다 내린다는 소리가 난무했다.
한발 떨어져서 군상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주식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과 저들의 막연한 바람이 조만간 꺾일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저 봐라, 오른다. 증권주 사라!”
누군가가 소리쳤다.
유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이후 계속 내릴 건데…….”
물론 그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그의 차례가 되었을 때 서하나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서준아, 여기는 웬일이야?”
“시간이 나서 데이트하려고 들렀어요.”
“농담이 늘었네. 아, 그럼 이익 난 것으로 나 밥 사주는 거지?”
서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지난 선거 유세 이후로 그는 서하나를 누나처럼 대했다. 그녀 역시 그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때때로 같이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유서준은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청 바쁘시네요. 고객도 많고.”
“주가지수가 1000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나간 이후로 항상 이래. 시골 장터처럼 북적대지.”
그녀는 유서준의 계좌를 확인하고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잘 나가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네. 연초대비 이게 몇 배야? 우와…….”
서하나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서준은 별일 아닌 것처럼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지난달에 약간 무리했어요.”
물론 사실은 다이어리에 상세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식이 오르니까 예전의 그가 주식매매에 재미가 붙어서 많은 정보를 다이어리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서하나가 그의 두 계좌를 비교하며 물었다.
“소액 계좌가 더 수익률이 좋구나.”
“네. 큰 계좌는 금액이 커지니까 단번에 매수, 매도가 안 되더라고요. 어떤 놈은 전부가 체결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유서준이 투덜댔다.
물론 아직 계좌의 절대 금액은 작은 편이다. 그러나 거래량이 작은 주식의 경우 그가 사겠다는 호가에 물량이 충분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이제는 슬슬 주가만이 아니라 거래량도 고민할 시점이 왔다.
“그래서 어쩐 일이야?”
“MMF 계좌를 개설하려고요.”
MMF는 증권사에서 기업어음이나 국공채 등에 투자하여 이익을 보는 단기상품이었다. 이율이 높은 은행 보통예금이라 생각하면 된다. 입출금 역시 자유로웠다.
서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주식 그만하려고? 장도 좋은데?”
“당분간 매매를 중지하고 돈은 그냥 묻어둘 겁니다.”
“이유는?”
“장을 안 좋게 보거든요.”
“흐음…….”
서하나가 신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최근에 장을 나쁘게 보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대부분 극단적인 낙관론자였고 비관론자더라도 짧은 기간 조정 정도로 예상했으니까.
서하나가 계좌 개설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며 물었다.
“확실해? 완전히 철수할 만큼 비관적이야?”
“네, 그렇게 보고 있어요. 적어도 앞으로 3년간은 주가가 오를 일이 없죠.”
명쾌한 유서준의 말에 서하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 말이라면 안 믿지만, 서준이가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안 믿을 수도 없네. 걱정이다. 요즘 새로 뛰어드는 사람이 많은데.”
통장 개설을 마친 그녀가 물었다.
“그럼 위탁계좌 두 곳의 돈을 다 옮길 거야? 그저께 팔아서 마침 오늘 현금화 되었네.”
“그렇게 해주세요.”
서하나가 계좌의 금액을 이체했다. 그녀가 탄성을 터트렸다.
“와, 이게 얼마야, 모두 2억을 약간 상회하는데? 너 정말 부자다.”
연말에 있던 총자산은 대략 4천5백만 원이었다. 그것이 불과 3개월 만에 거의 5배 가까이 불었다. 그중에서 마지막 달인 지난 3월에 이득 난 것이 절반을 넘었다.
서하나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계좌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이거 전부 주식 매매로 이득 난 거지? 이 년 동안?”
“네. 원금은 다 해봐야 오백만 원도 안 될걸요?”
“대박! 너 주식의 신이었구나.”
서하나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칭찬했다.
유서준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MMF의 돈은 누나가 관리해주세요. 그대로 두어도 상관없지만 괜찮은 채권이나 상품이 등장하면 사주시면 돼요. 하지만 가능한 한 안전하게요. 국공채면 충분해요.”
“언제까지?”
“제가 2달쯤 후에 군대에 갈 생각이랍니다. 대략 91년 연말까진 저 대신 자금을 운용해주시면 좋겠어요.”
“아…… 군대.”
서하나는 유서준의 의도를 그제야 파악했다. 군대에 가게 되니 주식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더라도 아직 2개월이 남아있는데? 굳이 더 고민하고 싶지는 않았다. 충분히 벌었으니까 잠시 쉬고 싶은 것이겠지.
“휴가 나오면 자주 들러라. 밥 사줄게.”
“누나 고마워요.”
그때까지 서하나는 유서준의 전망을 믿지 않았다. 주식시장은 오르고 내리는 것이니 잠시 조정을 보이다가 다시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