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51
52. 저 PER 혁명(2)
서하나는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피했다.
유서준도 괜히 어색해져서 입을 다문 채 그녀의 옆을 걸었다.
그는 그녀가 심적으로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까지 그를 이성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었다는 의미고 오늘 첫 키스를 나눔으로써 갑자기 그런 존재로 부각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경우에는 그녀의 반응이 염려스러워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것이었고.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 거리를 어슴푸레 밝히는 가로등. 가로등 불빛에 화사하게 빛나는 벚꽃.
길을 걷던 서하나의 발걸음이 천천히 늦춰졌다. 유서준도 따라서 발걸음을 늦췄다.
이윽고 서하나가 걸음을 멈추고는 유서준을 바라봤다. 그녀의 안면이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
잠시 말없이 유서준을 쳐다보던 그녀가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서준 오빠!”
난데없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서준과 서하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세 명의 여학생이 다가오고 있었다. 겉보기에 발랄한 대학생 옷차림에 행동도 들뜬 모습이었다.
유서준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빠! 제대했으면 연락해야 할 거 아냐!”
귀엽게 생긴 여자가 그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유서준은 손을 내저었다.
“그… 그게…….”
귀엽게 생긴 여자의 아미가 상큼 올라갔다. 그녀는 바로 송예은이었다.
예전에 그가 과외를 했던 바로 그 여학생이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녀는 벌써 3학년이 되었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갔던 일학년 초기에 몇 번 만났지만, 곧바로 유서준이 입대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와의 연락이 끊어졌었다.
송예은이 곧바로 그의 팔짱을 팍 끼더니 함께 온 친구에게 소개했다.
“우리 오빠, 예전에 내 과외 선생님이었어. 잘 생겼지?”
그녀의 소개에 친구들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산적 같은 그의 얼굴에 잘 생겼다고 소개하니 폭소를 터트린 것이다.
송예은은 친구의 반응을 무시하고는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아아, 오빠! 연락 좀 하세요. 아참,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그제야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에 서하나가 띄었다.
송예은이 유서준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같이 온 사람? 누구예요? 애인?”
“아, 아냐. 선배 누나.”
유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황급하게 변명했다.
서하나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서하나는 물러선 채 송예은을 곁눈질로 훑어보았다. 파릇파릇한 대학생이었다. 얼굴도 귀엽게 생겼고 저만하면 몸매도 나쁘지 않다. 성격도 매우 명랑해 보였다. 매우 짧은 미니스커트를 걸치고 긴 다리를 내놓은 과감성에 서하나는 내심 부러워졌다. 그녀라면 차마 쑥스러워 못 입을 수준.
송예은이 대뜸 서하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두 분 데이트 방해한 건 아니죠? 전 데이트 방해한 줄 알고 조마조마했어요.”
“으응, 안녕.”
서하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인사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송예은이 다시 유서준에게 뭐라고 말하며 까르르 웃었다.
서하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저럴 때가 있었던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대학 시절이었다.
한참 재잘대던 송예은이 손을 흔들며 친구와 길을 재촉했다.
“오빠, 꼭 연락해.”
“알았다.”
유서준도 손을 흔들었다.
송예은을 보내고 유서준은 서하나를 돌아보았다.
서하나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애가 좀 유별나죠? 대학 가더니 더 방방 뛰는 것 같아요. 예전에 고등학생일 때에는 얌전했는데.”
유서준이 투덜거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서하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활발한 게 보기 좋은데 뭘. 귀엽게 생겼네?”
“그렇죠? 으흐흐.”
그녀의 내심을 눈치채지 못한 유서준은 나지막한 웃음을 터트렸다.
서하나가 앞서 걸으며 말했다.
“자, 우린 이만 가자.”
서하나는 길을 걸으며 방금 본 송예은을 떠올렸다. 어쩐지 유서준과 잘 어울려 보였다. 나이도 두 사람이 적당하게 맞을 것 같고. 서하나는 자신의 나이가 유서준보다 많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했다. 자신은 졸업하고 한참 지난 직장인이었지만 유서준은 아직 대학생이다. 복학생이란 점에 차이는 있지만. 대학생은 대학생과 어울려야 하나 보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외모에서 한 번도 남이 부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예은의 젊음이 부러웠다. 저런 젊음과 귀여움에 명랑함까지 갖추었으니. 모두 그녀와는 거리가 먼 어휘였다.
**
학교에 복학한 유서준은 다시 동아리를 찾았다. 동아리에는 눈에 익은 사람이 몇 없었다. 김현아는 유학을 가서 당연히 없었고 박강수 또한 사라졌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도 유학을 갔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그의 동기 중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보다 먼저 군대에 갔다가 돌아온 몇이 전부였다. 바로 아래 후배도 군대로 사라졌거나 졸업반이라 바쁘게 살았다. 여학생 무리는 이미 졸업한 지 오래.
“후, 예전처럼 재미가 없네.”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가 동아리로 돌아왔다는 소문은 금방 퍼졌다.
동아리 주식투자대회에서 무려 500%의 수익을 낸 신화가 회원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 신화의 주인공이 돌아왔으니 모두가 그의 행적을 주목했다. 그는 후배에게 단연 스타였다.
복학한 김에 동아리 임원을 맡으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유서준은 거절했다. 명동 인베스트먼트의 아르바이트 일만 하더라도 만만치 않아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다고 핑계를 댔다.
그렇다고 동아리를 완전히 등질 수는 없었다. 그곳은 현아와의 추억이 담겨 있고 하나 누나도 거쳐 간 곳이다.
유서준은 동아리 세미나를 한차례 맡아줄 것을 승낙했다. 그가 후배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었다.
며칠 후 유서준의 강연이 동아리에서 열렸다.
많은 후배가 찾아왔다. 생각보다 그의 인기는 놀라웠다.
비록 유서준의 수익 대부분이 다이어리를 통해 얻은 것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했다. 한때는 도서관에 처박혀 주식 관련 책은 모조리 다 읽어봤던 그였으니까.
그는 기술적 분석을 활용한 매매방법에 대해 장시간에 걸쳐 설명했다. 비록 신선영 선배만큼은 아니더라도 듣는 사람에게 꽤 보탬이 될 내용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알고 있는 내용이 실제 수익에 얼마나 연결될지 모르지만, 알고 수익 내는 것과 얼떨결에 수익을 내는 것은 그 지속성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
질문이 쏟아졌다.
“선배님이 수익률 신화를 기록했을 때는 어떤 방법을 썼습니까?”
후배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유서준은 가벼운 기침을 한 다음 대답했다.
“그 대회의 결과에서 모두가 수익률만 확인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모두 놓치고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수익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단 말일까? 누구나 그 대회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신화적인 수익률 때문이 아니던가.
유서준은 그들의 의문을 읽어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시 그 대회의 결과를 보면 저를 비롯하여 오직 두 사람만이 플러스 수익률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고요.”
학생 하나가 다시 물었다.
“그것은 장이 꺾여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래도 수익을 낸 두 사람이 대단한 거죠.”
“맞아, 그때 현아 선배도 플러스 수익이었어.”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유서준은 미소를 머금었다. 현아란 말이 학생들에게서 나오니 반가웠다.
“자, 그럼 다시 살펴보죠. 당시 플러스를 기록했던 두 사람은 장이 꺾인 4월부터는 사실상 매매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전히 쉬었고 현아는 매우 보수적인 매매만 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어요? 중요한 것은 일단 큰 그림이 우선이란 겁니다. 세세한 매매기법은 그다음이고요.”
“아…….”
후배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들 대부분은 6개월 후 최종 수익률만 살폈지 그 한 달 한 달을 꼼꼼히 새겨보진 않았다.
유서준은 웃음을 머금으며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은 수익 내는 것만 봐요. 물론 수익이 중요해요. 하지만 손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앞의 두 사람과 다른 사람의 차는 하락장에서 얼마나 피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겁니다. 만일 주가가 꺾였을 때 저도 매매를 계속했다면 절대 그런 수익률은 힘들었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아리의 주식투자대회에서 플러스 수익을 기록한 자는 별로 없었다. 연초 대비 장이 약보합세였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이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다른 학생이 질문했다.
“제가 듣기로는 선배님께선 89년의 고점을 거의 정확하게 맞추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하락장인데요, 언제까지 내릴까요?”
“빨리 상승해야 저도 본전 찾아요.”
“파란색 그만 보고 싶어요. 빨간색이 그리워요.”
학생들의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유서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답변했다.
“하락은 거의 마무리 시점입니다. 올해 여름을 전후하여 시장은 다시 상승으로 돌아설 겁니다. 물론 많이 오르기는 힘들고요. 전고점을 약간 넘어서는 정도일 겁니다.”
“와우! 다시 천을 밟나 보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른 학생이 질문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새내기 여학생이었다.
“종목도 찍어주실 수 있어요?”
“와아.”
탄성이 흘러나오며 모두가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유서준은 생각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죠. 그동안 하락하다 상승으로 돌아섰다. 그럼 뭐부터 오를까요?”
“낙폭과대주요.”
한 학생이 곧바로 대답했다.
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미 여러분도 잘 알고 있네요. 그다음, 올해 무슨 테마가 불죠?”
“저 PER 혁명요.”
“네, 맞아요. 저 PER 주는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겁니다.”
유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저 PER 주는 이미 많이 올랐는데요?”
유서준은 그 학생에게 눈길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기업의 실적이 뒷받침되기 때문이죠. 순익이 증가하면 계속 오릅니다. 저 PER 주의 매력이죠. 아직 여력이 남은 저 PER 주 많아요. 여러분은 이미 대박 친 종목만 보는데 이제 뛰어오를 준비를 하거나 슬금슬금 오르는 종목을 눈여겨보세요.”
이 시점에서 유서준은 말을 끊었다. 그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했다.
“저 PER가 지나가면 저 PBR이 옵니다. 향후 2년간은 이들 종목 세상입니다. 아시겠죠?”
유서준은 강연을 마쳤다.
저들 중에 그의 말에 따라 대박을 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쪽박을 차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그의 말의 의미를 잘 되새긴다면 적어도 이 시장에서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다.
유서준의 강연은 후배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저 PER, 저 PBR을 수첩에 적으며 다시 되새겼지만 어떤 사람은 신문에 나오던 이야기 그대로라며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다. 훗날 그들 사이에 대박과 쪽박이 갈릴 때 그들은 운이 없었다고 여기겠지만 실상은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미묘한 차이에 의해서 결과가 결정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