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67
68. 저 PBR 혁명(2)
말기 암으로 이년 여의 기간 투병 생활을 했던 서하나의 아버지는 결국 마지막을 맞았다. 그녀의 노력과 정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날은 유서준이 다녀갔던 때로부터 이틀 뒤인 10월 24일 일요일 새벽이었다.
주말을 맞아 병원을 지켰던 서하나는 다행히 아버지의 임종을 직접 맞이하여 마지막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유서준은 장례식장을 찾았다.
어차피 권세도 돈도 없는 집안이라 간략하게 차린 장례식장은 고인을 떠나보내는 화환 몇 개가 전부였다.
유서준은 먼저 서하나를 찾았다.
검은 상복을 입고 하객을 맞이하는 그녀가 보였다.
서하나의 옆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키가 훤칠한 한 남자가 보였다. 그녀와 닮은 곱상한 남자였다. 그녀의 오빠라고 했다.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그동안 거의 병원을 찾지 못했다나.
가끔 병원을 찾았던 유서준을 알아본 어머니는 그를 반갑게 맞았다.
유서준을 향을 피우고 절을 했다. 사진 속의 그녀 아버지가 그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녀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아버지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아버님, 하나 누나를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되새기며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상주인 그녀의 오빠와 맞절을 한 다음 하객이 모인 자리로 갔다.
조촐한 장례였음에도 생각보다 하객은 많았다.
하객은 주로 세 부류였다.
서하나의 대학 또는 고등학교 동창생, 동아리인 주식투자연구회 사람, 그녀의 직장이었던 증권사 동료였다.
직장동료가 모인 테이블은 유서준이 몇 번 본 사람도 있었다. 가끔 창구에서 보았던 아가씨와 몇몇 상담 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퇴사한 직원이라 다소 썰렁하긴 했다. 지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왔다 간 건지 그것은 알 수 없었고.
그녀의 대학 동창생은 꽤 많이 왔다. 그녀가 학교에 다닐 때 상당히 인기가 있었음을 증명했다. 모인 사람의 면면도 훌륭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란 타이틀답게 모두 사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들리는 말로 추정해보면 대기업 기획실이나 금융회사 직원이 많았다. 가끔 증권감독원 같은 정부 기관에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는 듯했다. 몇몇은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국내 대학교에 교편을 잡은 사람도 있었다. 경제학 전공자답게 그들이 모인 테이블에선 국가 경제를 전망하는 갖가지 의견이 펼쳐졌다. 주가 전망은 덤이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잡담을 바로 옆 테이블에서 듣고 있던 유서준은 서하나의 주변에 꽤 대단한 사람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대학교를 소문 없이 졸업하고 사실상 친구조차 거의 없는 그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유서준이 앉은 테이블은 주식동아리 사람이 모인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서하나와 같은 학번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인원은 현재 있는 사람만 십여 명. 대부분 그에게도 선배가 되는 사람이었지만 그마저 사실상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가 입학했을 때 그녀 기수가 졸업했기에 공통분모가 없음은 당연했다. 유서준은 선배 모두에게 인사하고 그 자리에 낄 수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후배였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만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동아리 선배의 대화가 점차 서하나의 학창 시절 이야기로 흘러갔다.
“하나가 예전에 정말 예뻤지.”
“역대 동아리 회원 중 최고이지 않나? 지금도 그만한 인물 없지?”
“그래,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여신이었어.”
이런저런 말이 새어 나왔다. 모두 과거를 추억하며 즐거워했다.
“들려오는 소문에 하나가 같은 학과 남학생에게 고백도 엄청 받았다고 하지 않았어?”
“재벌 아들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
“그래서 모두 하나가 제일 먼저 결혼할 줄 알았잖아.”
“그런데 지금까지 미혼이라니 놀라워.”
새삼 놀라운 정보는 아니었다. 그녀 정도의 외모라면 학교 다닐 때 꽤 화제를 몰고 다녔을 테니까.
유서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괜스레 자기 일처럼 뿌듯했다.
다시 여러 말이 흘러나왔다.
“한창 인기 좋았던 때에는 하나가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모두 멀리했지. 그러다가 아버지 병환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남자 만날 생각도 못 했다고 하더라.”
“얼마 전 직장을 그만뒀다는 말이 있던데?”
“그건 모르겠는데?”
그저 그런 대화가 이어졌다.
유서준은 앞에 놓인 소주병을 땄다. 착잡한 기분이 들어 소주를 잔에 따르고 한 잔을 들이켰다.
누군가가 그를 툭 쳤다.
그가 아는 인물 김동식과 강재민이었다. 김동식은 윤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발령받았다고 했다. 강재민은 학생운동에 관심 많았던 사회학과 학생으로 그보다 1년 후배였다.
생각지 못한 두 사람의 출현에 유서준은 반색했다.
“어? 서준이 너 여기 웬일이야?”
김동식이 그의 앞에 자리를 잡으며 먼저 물었다.
유서준은 적당히 대답했다.
“난 하나 누나 증권사 고객이었잖아? 너넨?”
“난 동아리 행사 있을 때 연락책을 맡아서 하나 누나를 알지. 누나가 학교에 올 때마다 만났을걸? 재민이는 내가 혼자 오기 심심해서 데려왔다.”
유서준은 두 사람에게 소주를 건넸다.
김동식이 멀리서 일하고 있는 서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나 누나 요즘 힘든가 보네. 예전보다 미모가 많이 죽었는데?”
“그런가…….”
유서준은 별로 느끼지 못하던 사실이었다. 자주 보다 보니 그런 것에 무관심해진 탓이었다.
김동식이 후배인 강재민에게 말했다.
“저기 검은 상복 입은 여자 있지? 서하나 선배야. 우리 동아리 역사상 최고 미인이라고 알려진 누나지.”
강재민의 눈이 한참 서하나에게 머물렀다.
김동식이 다시 유서준을 향해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요즘 주식은 잘돼?”
“그냥 그럭저럭.”
유서준은 적당히 대답했다.
“넌 실력이 있으니 많이 벌었겠네. 난 지난 하락 때 엄청나게 깨져서 영 힘을 못 써.”
김동식이 투덜거렸다. 그는 옆에 앉은 강재민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
“재민이는 연초에 문민정부 들어섰다고 풀베팅했다가 거의 죽음 직전이고.”
강재민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유서준은 미소를 지었다. 개인이 주식에서 돈을 버는 경우란 흔치 않다. 그의 앞에 앉은 두 사람 역시 전형적인 그런 유형이었다.
그는 한 마디 해주었다.
“동식이 넌 주식 투자랑 성격이 안 맞아. 그냥 펀드에 맡겨. 그리고 재민이 넌 다양한 정보를 엮을 줄 아는 능력은 있는데 정치의 편향성이 문제야. 경제 위주로 보지 않고 너가 보고자 하는 방향으로만 봐. 그것만 고치면 수익 잘 날 거야.”
두 사람이 머리를 긁적였다.
김동식이 유서준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김현아 소식 있어?”
“아니, 없어.”
“흠, 걔는 어째 너한테도 소식을 끊고 있나?”
“왜?”
“들려오는 소문이 있긴 한데…….”
유서준은 흥미를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뭔 소문?”
“현아가 유학 간 대학교가…….”
기억을 떠올리는 김동식에게 유서준이 말했다.
“현아는 예일로 갔을걸?”
“아, 맞다 예일대학교.”
김동식이 무릎을 쳤다. 그가 유서준에게 얼굴을 맞대며 조용히 속삭였다.
“거 누구냐, 박강수 있잖아? 그 자식도 얼마 전에 예일로 갔어. 현아 따라갔다는 소문이 파다해. 경제학과 같은 학번 친구에게 물어보면 둘이 사귀는 것으로 알더라고.”
김현아의 이야기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유서준의 안면이 굳었다.
두 사람이 같은 학과에서 꽤 같이 다녔으니 그렇게 소문이 날만도 했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그와 만나고 있었으니까. 그쪽 학과 사람에게 유서준은 숨겨진 인물이었기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정작 우리 동아리에서 보면 현아는 박강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
김동식이 슬쩍 유서준의 눈치를 봤다. 모두 같은 학년이었기에 김동식은 유서준, 김현아, 박강수, 세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약간은 알고 있었다.
유서준은 오래전 주식 내기를 통해 박강수가 김현아로부터 손을 떼도록 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제는 오래되어 그런 사실은 아무 쓸모가 없어졌으려나.
생각해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주식 투자를 하는 자신보다 증권사 사장 아들이라는 후광에 유학까지 떠난 박강수가 김현아의 배우자로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대학 다닐 때는 사랑이 어떻고 하겠지만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면 역시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보통 사람이 일등 배우자감이라고 생각하는 조건이 더 우선이 되는 것이 아닐까.
김현아에 대한 생각이 서하나에게로 옮겨졌다.
서하나 역시 김현아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울타리에 머무는 사람이다. 그녀의 세상에도 박강수처럼 부잣집 아들도 있을 것이고 자수성가를 하거나 입신양명을 한 남자가 없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따지면 그녀 역시 그런 쪽으로 배우자를 찾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유서준은 우울한 생각이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을 본 김동식은 유서준이 김현아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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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나는 손님을 맞으며 여러 가지를 챙기느라 분주했다.
한 무리의 손님을 들여보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순간 그녀는 계단을 내려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훤칠한 키에 검은 양복을 입은 청년이었다. 피부가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누구나 눈길을 떼지 못할 미남자였다.
미청년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했다.
그를 본 서하나의 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굳었다.
미청년이 그녀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말했다.
“하나, 오랜만이네.”
“네, 오랜만이죠. 도욱 선배.”
서하나도 그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미청년은 그녀와 같은 경제학과 출신으로 2년 선배였다.
미청년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말했다.
“아버지 때문에 고생 많았겠다.”
“뭘요. 와주셔서 감사해요.”
서하나가 감사의 뜻을 표했다.
미청년이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 증권사 다닌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만뒀어요. 선배는 어떻게 지내요?”
“난 유학을 마치고 얼마 전에 다시 국내로 들어왔지. 곧바로 증권감독원에 특채로 입사했어.”
“아, 그렇구나.”
서하나가 기억하기에도 이 선배는 학창 시절에 꽤 유명했던 사람이었다. 눈에 팍 뜨이는 외모에 국내 최고학부를 다니고 있는 데다 잘 나가는 집안이란 그의 배경은 눈길을 끌 만했다. 특히 여자에게 매너가 좋아 학과 여학생의 우상이었다. 나이가 든 지금도 그때의 꽤 멋진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서하나는 과거에 있었던 그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 몇 년 만에 만나는 거지? 결혼은 했어?”
서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미청년의 안면이 갑자기 밝아졌다.
“난 네가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예전에 내가 고백했다가 차였을 때 다른 남자가 있어서 찬다고 했잖아?”
“선배는 그걸 믿었어요?”
서하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청년이 환한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니?”
서하나는 대답을 하려다 유서준이 앉아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을 때 유서준이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유서준은 막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가던 중이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야겠기에.
서하나가 멋지게 생긴 미청년과 만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머뭇거리는 사이 서하나가 그를 손짓으로 불렀다.
미청년이 슬쩍 유서준에게 눈길을 돌렸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난 일단 고인께 먼저 인사부터 드리고…….”
미청년이 그녀에게 눈으로 인사한 다음 안으로 들어가 명부에 서명했다.
그 명부에는 오도욱이라고 적혔다.
유서준이 받은 미래에서 온 편지에 적힌 다섯 인물 중에 맨 앞에 적혀 있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