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79
82. 선물시장(1)
1995년의 주식시장은 큰 이벤트가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갔다. 특징주도 없었다.
이동통신 관련하여 주목을 받은 한국이동통신은 최고가 주식의 지위를 유지했다. 광림전자에서 이름을 바꾼 한솔텔레콤이 연초대비 약 4배 상승하여 화제를 몰고 왔지만 다른 해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었다. 이 두 주식은 97년부터 시작될 이동전화 PCS 통신사업과 관련하여 대중들의 시선을 모았다.
1995년의 주식시장은 모두의 바람을 저버리고 하락했다. 연초의 하락 후에 횡보를 보이며 잠시 상승으로 돌아서 1000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연말이 되며 다시 하락으로 돌아섰다.
12월 주식시장의 폐장지수는 882.94. 작년 대비 -16% 하락했다. 전체적으로 업종 구분 없이 고루 내렸다. 그나마 수출 호기를 맞은 전기전자주가 선방했다.
일 년 동안 조심스러운 매매를 유지해왔던 관계로 유서준의 계좌는 선방했다. 대부분이 채권 쪽에 투자되었고 일부만 가능성 있는 주식에 매매를 해왔다. 덕분에 수익률은 매우 낮았지만 다른 대부분 펀드가 손실을 본 것을 생각하면 그는 매우 훌륭했다.
그의 개인 자산 계좌는 1년간 약 +25%가량의 수익을 올려 60억을 넘겼다. 국가에서 발행하는 통화안정채권 금리가 대략 12%인 것을 고려하면 은행이자의 2배 정도의 수익이라 할 수 있었다. 회사 고유자산펀드는 80억에서 +20%의 수익을 올려 96억으로 100억을 목전에 뒀다. 5월부터 시작한 고객펀드는 60억이 +12%의 수익을 올려 72억이 되었다. 전해 대비 수익이 많이 줄었으나 주식시장 하락기에 거둔 순익이라 나름 만족스러웠다. 이 펀드는 1년 만기가 아직 4개월이나 남아있어 만기 때에는 약간 더 수익이 늘어날 것이다.
강남의 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유서준은 미국 금융 회보에서 발표한 LTCM의 월간 수익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확인할 수 있어 세상은 참 편리해졌다.
LTCM은 그 화려한 면면답게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94년 3월 출범 이후 첫 달 한 달을 제외하고 손실을 본 달이 없었다. LTCM은 첫해인 94년에 28%의 수익을 올렸다. 금리가 낮은 선진국임을 생각한다면 대단히 높은 수익률이었다. 95년에는 보다 나은 59%의 수익을 올렸다. 가히 환상적이었다.
LTCM은 2년간 무려 16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초기 25억 달러였던 LTCM의 자본금은 36억 달러로 성장했고 총자산 1020억 달러를 거래하는 공룡이 되어있었다.
LTCM에 자산을 맡긴 은행은 모두 55개였고 이들은 6억 5천만 달러의 주식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파생상품으로 운용했다. 총자산 대비 수익률은 2.45%였다.
놀라운 수익률에 군중은 광분했다. 천재 트레이더의 집단인 LTCM을 찬양했다. 누구나 LTCM에 돈을 맡기려고 난리였다. 하지만 거대은행이나 명망 높은 자본가의 자금만 받는 LTCM의 문턱은 대단히 높았다.
유서준은 총자산대비 수익률이 낮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것은 파생상품 거래의 특성 때문이었다. 아직 유서준이 경험해보지 못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 놀라운 수익률과 거대한 덩치에 유서준은 놀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주눅이 들었다. 저런 공룡이 먼 훗날 자신과 대결해야 할 적이란 말인가.
유서준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서하나가 커피를 가져왔다.
“GNP 1만 달러, 수출 1천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뉴스에서 요란하네.”
서하나가 소파의 맞은편에 앉으며 신문을 펴놓고 중얼거렸다.
유서준이 그 말을 듣고 대답했다.
“한편에서는 설비투자 악화로 내년에는 경기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어. 마침 미국 경기도 나빠질 거라는 예측이 뜨고.”
서하나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우리는 계속 방어적 운용을 지속해야 할까?”
“그래야겠지?”
서하나는 과거에 유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98년 중반 지수가 300이 될 때까지 주식매매는 지양한다던. 아직 800대이니 아래로의 하락은 너무나 많이 남았다. 시간으로도 약 2년여가 남아있기도 했다.
“하락장을 잘 피하니 심적인 부담이 없긴 한데 다소 재미는 없어.”
서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유서준은 미소로 응답했다. 이 무렵의 다이어리에는 주가의 하락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 내일이라도 오르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예측이 많았다. 전형적인 일반 투자가들의 천수답 매매방식이었다. 그런 식의 매매를 했으니 2000년이 될 때까지 손실만 확대시켰다. 최종적으로 평창의 밭마저 팔아치우고 부모님까지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지금 유서준이 보기엔 매우 한심한 매매방식이었지만 예전의 그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년엔 선물시장이 열리니까…….”
서하나가 기대감을 표했다.
유서준은 곧바로 그녀의 기대감을 잘랐다.
“선물시장은 안정화될 때까지 우리는 많이 거래하지 않을 거야. 그때까지는 소액으로 연습 위주로 매매해야지.”
주식과 비교하여 훨씬 파괴력이 큰 파생시장의 접근은 아무래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
96년 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의 첫 승 소식이 날아들었다. 선발투수의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2회 구원 등판을 한 박찬호는 이어 4이닝 동안을 무실점으로 막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가 훗날 그가 거둘 통산 124승의 시작이었다.
봄 날씨가 완연하던 5월 3일, 대한민국 주가지수 선물시장이 세계에서 27번째로 개장됐다. 주가지수 선물은 코스피 종목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200개를 골라 지수화한 코스피 200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사용했다. 기준은 1990년 1월 3일을 100으로 정했다. 지수 1포인트당 50만 원, 투자 증거금은 15%로 정해졌다. 투자승수는 대략 7배였다.
예를 들면 5월 3일의 종합주가지수는 965.67이었고 이때 코스피 200 지수는 107.98이었다. 이때 선물 1계약을 매수한다는 것은 대략 5400만 원의 주식을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차이점이라면 주식의 경우 5400만 원이 모두 필요하지만, 선물은 그 15%인 810만 원만 있으면 거래할 수 있었다.
선물이 주식거래보다 위험한 이유는 그 투자승수 때문이다. 주식의 경우 5400만 원을 투자하여 10%가 상승하면 540만 원을 벌게 된다. 반면 이때 선물은 810만 원을 투입하여 540만 원을 벌었기에 대략 70%가량의 수익이 난다.
즉 동일 환경에서 선물은 주식 대비 약 7배를 많이 벌 수 있다. 이는 잃을 때도 마찬가지다. 7배를 더 잃게 된다.
선물의 가장 큰 특징은 양방향성이다. 주식은 무조건 올라야 이익을 본다. 선물의 경우에는 매수하면 지수가 오를 때 이득을 본다. 이것은 주식과 동일하다. 반대로 선물을 매도하면 지수가 내릴 때 이득을 본다. 주식은 반드시 매수를 먼저 해야 하지만 선물은 매도를 먼저 할 수도 있다.
거래 측면에서는 선물이 주식보다 단순했다. 그날 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선물을 매수하면 되고 주가가 내릴 것 같으면 선물을 매도하면 된다. 즉 오르고 내림만 맞추면 되는 것이다. 주식처럼 종목을 일일이 고를 필요가 없다.
투자자 측면에서 코스피 선물이라는 새로운 상품이 하나 더 생긴 것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대단히 컸다. 현물인 주식과 선물을 엮어 합성한 형태의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유서준은 서하나와 함께 선물시장 개장에 따른 기본적인 사항을 점검했다.
옵션 시장이 도입될 97년 전까지는 그나마 단순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는 LTCM의 주 수익원인 스프레드 거래가 바로 이 파생상품을 응용한 것임을 확인했다. 국내에서도 그런 유형의 거래를 시작하려면 아직 시일이 소요되겠지만.
서하나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오늘 개장 첫날 선물 거래시장의 거래대금이 현물 시장의 17%였어. 거래소에선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는데.”
그녀는 선물시장 개장과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며 추가로 언급했다.
“예전 일본에서 처음 시장을 열었을 때 미국의 몇몇 증권사에 의해 일본 투자자가 농락당하다시피 했나 봐. 우리도 그것을 가장 걱정한다고 해. 그래서 초기엔 외국인의 거래 및 약정에 한도를 걸어두고 있나 봐.”
시장 개설 초창기에는 선진 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인의 매매를 당할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녀가 유서준을 향해 물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시작하지?”
“아직 조금 더 기다려보자. 지금은 무리인 것 같아. 1계약 정도 연습 삼아 매매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현물과 선물가격이 일치하는, 가장 가까운 만기일은 6월 둘째 목요일인 13일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해보고 시장에 진입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신중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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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4일]96년의 주식시장은 예상대로 하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선물시장 개장을 앞두고 4월에 급반등을 보였던 시장은 5월에 들자마자 곧바로 하락했다.
유서준은 이때부터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97년 말까지 사실상 브레이크 없는 하락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주식투자가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이 도래한 것이다.
유서준은 1년 만에 고객을 모아놓고 펀드 운용 결과 발표 및 신규 자금 모집을 단행했다.
2년 동안의 성과는 눈부셨다. 첫해 +52%의 수익을 올렸던 고객펀드는 둘째 해 +20%의 수익을 거두었다. 사실상 횡보를 보였던 주가지수에 비해 탁월한 실적을 올렸고 이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첫해의 고수익을 운으로 치부했던 투자자는 그다음 해에도 수익이 발생하자 앞다투어 주변에 소개했고 본인도 더 큰돈을 밀어 넣었다. 맡긴 돈을 찾아가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첫해 20억이었던 고객펀드는 둘째 해는 60억이 되었고 셋째 해에는 120억이나 모였다.
작년 스무 명가량의 고객을 모아 놓고 결산보고를 했던 발표회장은 오늘 무려 100명이 넘는 고객이 참여했다. 대부분이 소문을 듣고 온 신규 투자자였다.
유서준은 예정된 발표시각을 앞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유서준은 그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불과 2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앞으로의 기간에 주식시장은 하락만이 존재했다. 그에게 돈을 맡기는 사람은 큰 수익의 장밋빛 미래를 원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결과를 알고 있기에 그는 고객을 보며 큰 미안함을 느꼈다.
자금을 맡지 않을 생각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이 년 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펀드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먼 훗날 큰 규모로 성장해 있을 그의 투자금융사를 생각하면 펀드 운용은 계속되어야 했다. 당장 회사 유지를 위한 고정비용도 적지 않았으니까.
안색이 어두워진 그를 보고 서하나가 말을 걸었다.
“걱정되는 일 있어?”
발표자인 유서준은 당연히 검은 색상 양복을 갖추어 입은 정장 차림이었고 투자전략부장인 서하나 역시 품위 있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는 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빛을 발했다. 돈을 맡기러 온 고객이 그녀를 보고는 모두 한번은 탄성을 지를 정도였으니까.
유서준의 서하나의 옷차림을 점검해주며 대답했다.
“장이 좋지 않음에도 펀드 자금을 받아야 하니 기분이 편치 않아.”
“우리는 최선을 다하면 돼. 큰 수익이 아니라 적어도 은행이자보다 높은 수익이면 충분하다고 봐.”
서하나가 그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며 위로했다.
“수익을 많이 낼 것처럼 말하면 뭔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괜찮아. 만일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면 저들은 다른 펀드로 몰려갔겠지. 그러면 저들은 결국 손실로 끝날 거야. 우리는 저들의 손실을 막아주는 천사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시간이 되자 유서준은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펀드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했다. 작년의 투자실적을 밝혔을 때 모두가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말미에 유서준은 하고 싶었던 말을 덧붙였다.
“최근 주식시장이 그리 좋지 않음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장밋빛 미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어떤 신문에서는 연말 주가지수를 지금보다 무려 50%가량 높은 1200선을 언급하더군요. 주가가 항상 오르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유서준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장중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이 눈동자를 빛내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슬픈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희 SJ 투자자문에서는 앞으로의 주식시장 전망을 그리 좋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개인 투자가는 주가 하락의 무덤에서 헤어나지 못할 겁니다. 주식펀드를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도 다르지 않겠지요.”
고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실 돈을 맡기면서 부정적인 전망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