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8
8. 계좌를 만들다(2)
유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는 학교 투자동아리에 가입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서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이시군요. 전 학교 다닐 때부터 투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투자동아리가 초기 단계라 학과 내 소모임을 주로 활용했었어요. 혹시 전공을 물어봐도 될까요?”
“철학과인데요.”
그의 대답에 서하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생각에서 벗어난 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다소 실망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경제 관련 전공이 아니었군요.”
“역시 이상하죠?”
“아뇨, 다소 뜻밖이었어요. 경제 전공도 아닌 학생이 주식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흔한 경우가 아니거든요.”
“저도 그쪽으로 가고 싶었어요.”
유서준은 씩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서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함을 돌렸다.
“사실 주식이란 게 꼭 전공자가 잘 하는 것도 아녀요. 그보단 사회 현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과 타고난 감각 이런 것이 의외로 빛을 발할 때도 있어요. 유서준씨도 잘 하리라 생각해요.”
그는 서하나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녀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나름 고객의 기분을 살려주며 상담을 진행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녀의 미모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겠지만.
“잦은 매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올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매매 주기가 다르지만 다소 길게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유서준은 그녀의 권유에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증권사의 수익 중 많은 부분을 매매수수료가 차지한다. 달리 말하면 고객이 주식을 자주 매매할수록 증권사가 살찌는 구조다. 전담 직원의 실적 역시 가장 큰 부분을 바로 이 수수료 수입으로 평가한다. 때문에 대다수 직원은 자신이 맡은 고객이 자주 사고팔기를 원한다.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유서준에게 서하나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자주 매매하시면 저야 좋지만, 고객이 손해를 보면 안 되니까요. 특히 잦은 매매는 익숙해지기 전까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고객분 입장에서 수수료 및 거래세가 나가는 것이 큰 부담이거든요.”
유서준은 그녀의 권유에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고객을 위해 조언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겠죠?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 이런저런 매매를 다 해보고 싶어요. 상담을 자주 해주시나요?”
유서준은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고객님께서 원하실 때는 해드려야죠. 주식 매매의 경우 의외로 고통 하에 있는 고객분도 많거든요. 저희가 정답을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객분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서하나의 대답은 명확했다.
“앞으로 매매하실 때 저에게 전화 주시면 됩니다. 종목 상담도 마찬가지고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의례적인 고객과 직원 사이의 대화일 수 있었지만, 유서준은 고맙다고 인사했다.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추가로 대화가 오간 다음 유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하나가 마무리를 지으며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유서준은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미인의 전화번호를 딴 기분이었다. 이건 횡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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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주식시장이 체계화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부터였다. 우리나라의 종합주가지수인 코스피지수는 1980년 1월 4일의 주가지수를 100으로 기준 삼아 산정되었다. 지수 산정방식은 나라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코스피지수는 주식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계산된 것이다.
1985년 10월부터 주식시장은 활황기를 맞이했다. 1984년 말 142.46으로 마감했던 종합주가지수는 85년 9월까지 횡보 국면을 지속했다. 10월 말 140.89를 기록한 종합주가지수는 이후 서서히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하여 연말에 163.37로 마감했다. 연간 단위로는 약 15%의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그 대부분은 마지막 두 달 동안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시동 걸린 주가의 상승은 86년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1986년은 그야말로 주가폭등의 시기였다. 대내적으로는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야당과 기존 헌법을 고수하려는 여당의 줄다리기에 대학생의 시위가 이어져 불안했지만, 대외적으로는 86아시안게임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량을 널리 알린 시기였다.
거의 일 년 내내 오르다시피 한 주가는 1986년 말 주가지수 272.61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무려 67%라는 경이적인 상승률이었다. 주가가 오르면 새롭게 시장에 뛰어드는 초보자가 많아진다. 이때도 마찬가지여서 시골에서 논밭을 팔아 주식시장에 진입하는 사람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폭등한 주식시장은 1987년 3월 말까지 주가지수 405.13, 전년 대비 49%의 상승을 기록하는 초호황 장세를 지속했다. 사실 87년 초 3개월의 기간은 역사에 남을 만큼 폭등세가 두드러진 시기였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돈을 짊어지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시골에서 소를 팔고 그것도 모자라 논밭까지 팔아 주식시장에 뛰어든다는 우스개가 유행했다. 증권사는 발붙일 틈도 없이 복잡했다. 한탕을 노리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바로 증권사였다.
유서준 역시 증권사에서 보는 바로는 그런 사람이었다. 철없이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여겨졌다. 어린 나이에 학생이라는 신분, 주식에 대한 무지와 마구잡이식 투자.
사실 다이어리가 없었다면 그 역시 그런 부류로 전락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다이어리에 기록된 예전 대학생 초기 시절의 유서준이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기숙사에도 적막이 내려앉았다.
유서준은 책상 앞에 앉아 다이어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옆 칸 룸메이트 구인혁은 이미 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려왔다.
유서준은 작은 책상 전등 하나만 켠 상태로 고민에 빠졌다.
그는 다이어리에서 자신이 본 내용을 되새겼다. 점차 복잡했던 모든 일이 서서히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미래의 구인혁은 왜 다이어리를 현재의 나에게 보냈을까? 구인혁의 계획이란 과연 무엇일까?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를 바란 것일까?”
여전히 모든 것은 의문투성이였다.
확실한 것은 이제 다이어리의 내용을 의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이어리에 적힌 내용은 해당 날짜의 일기가 확실했다. 그날이 되면 그 내용이 현실로 나타났다.
며칠간 유서준은 다이어리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 읽었다.
아쉬운 것은 2017년부터 2027년 사이의 내용이 담긴 네 번째 다이어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기록만 있다면 미래에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지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넷째 다이어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과거로 보내지지 않은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있는 정보로 모든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덕분에 그는 2016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식시장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개략적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올해 말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이 네 사람이 출마한다. 현재 야당 총재인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은 단일화에 실패하고 차기 대통령은 노태우가 뽑힌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성공리에 치러진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다음 차기 대통령은 김영삼이었고 그다음은 김대중이었다.”
그의 눈을 유달리 끄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1997년 말,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 터지는 외환위기였다.
그는 미래에서 온 편지에서 두 번째 외환위기라는 내용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2027년의 일은 1997년의 첫 번째 외환위기 이후 정확히 30년 후다. 이 두 외환위기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첫 외환위기 때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을 읽어본 그는 2027년에 벌어질 대략적인 참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우리나라는 국제투기자본에 의해 국가 비상사태에 빠져 최악의 부도와 실업 사태를 겪을 것이고 비관한 사람의 자살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아마 그 무리에 바로 유서준 그가 끼어있었을 것이다.
다이어리에 동봉된 편지를 볼 때 그는 모든 일생을 주식투자와 함께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LTCM이라는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국가가 거덜 나면서 자신도 완전히 망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에 자살이라니. 그런 비극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유서준은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자신의 미래를 바꾸고 싶었다. 그 도구는 바로 미래에서 온 마법의 다이어리가 될 것이다.
그는 다이어리에서 알아낸 내용을 종합해서 추정해보았다. 아직 무슨 뜻인지 그 구체적인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큰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가 추정한 다이어리가 보내진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대한민국을 두 번째 외환위기에서 구하라. 외환위기로부터 고통을 받게 되는 수많은 사람을 구하라.
왜 하필이면 그였을까? 잠시의 생각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계획을 세운 구인혁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였고 그 역시 미래의 그때 자살을 한 당사자였다. 그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면 국가의 외환위기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드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을 테니까.
유서준이 할 일은 분명했다. 미래에 일어날 자신의 자살을 막아야 했다. 이것은 그의 파산을 막으면 가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위기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앞으로 40년간 그가 해야 할 모든 행동은 이 목적을 위한 해답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요구된 임무를 보다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그는 다이어리의 맨 앞에 그 내용을 썼다. 앞으로 먼 훗날까지 계속 읽어보며 상기해야 할 내용이었다.
*
– 국제투기자본인 LTCM을 이길 수 있는 자본을 모아라.
– 오도욱, 신선영, 박강수, 송예은, 권대만 다섯 사람이 국제투기자본의 앞잡이가 되는 것을 막아라.
– 마지막으로 LTCM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외환위기에 빠진 이 사회를 구하라.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살로 마감하는 나의 생애를 바꾸게 될 것이다.
*
여기까지가 그가 작성한 모든 것이었다. 이 생각이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완벽하게 확인한 다음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한다면 앞으로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일단 시작은 분명했다. 작은 자본이라도 모아 다이어리의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했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더라도 그것에서 과실을 얻어내려면 초기 자본이 필수였으니까. 이를 위해 과외를 시작했고 계좌를 개설했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그가 주식매매를 시작한 것은 5월 초였다. 일기에는 그가 매매했던 종목과 장의 움직임에 대해 간략하게 메모 되어있었다.
그는 이 기록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이것은 사실상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식 관련 미래의 기록을 이용하는 최고의 방법은 당연히 주식매매에 있을 것이다.
5월부터는 이 기록을 참고하여 매매할 것이기에 그의 성공은 사실상 예약 되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3월 말인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5월이 되기 전까지 일단 연습 매매를 해볼 생각이었다. 그동안 벌면 좋고, 잃어봐야 얼마나 잃을까. 어차피 금액도 소액이었다.
“으흐흐, 이제 돈 벌 일만 남았네.”
유서준은 가슴이 뿌듯했다. 자신을 위해, 나아가 국가를 위해 그가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주식 역사에 길이 남을 부를 획득한 발자국이 이날을 기점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 산 다이어리에 자산 총액을 기록했다.
*
1987년 3월 25일, 자산 2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