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80
83. 선물시장(2)
유서준은 장중을 한차례 둘러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오늘 이런 전망을 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내릴 것을 알면서도 오른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제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다른 곳보다는 더 큰 수익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잠시 조용하던 장내에 한 사람이 박수치기 시작하자 연달아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는 SJ 투자자문을 믿습니다.”
한 고객의 목소리가 장내를 갈랐다.
많은 사람이 호응했다.
유서준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뭉클하는 느낌을 얻었다. 자신을 믿고 피 같은 돈을 맡기는 저들에게 반드시 보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하나 역시 감동했다.
개인투자자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앞세우는 증권사가 아니라 개인의 더 큰 수익을 위해 일하는 증권사를 만들고 싶었던 그녀였다. 주가 하락기만 되면 지점장 나오라며 유리창과 전광판이 깨지는 그런 회사가 아니라 손해를 보더라도 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고 언젠가는 수익을 낼 거라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증권사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바라던 한 모습을 보았다. 그녀도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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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돌아간 후 서하나는 유서준에게 다가갔다.
“잘했어.”
그녀는 유서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서준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는 정말 그보다 나이 많은 누나인 게 확실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되겠지.”
유서준이 대답하고는 몸을 돌리려 할 때 서하나가 그에게 서류를 넘겼다.
“읽어봐, 다소 특이한 전망 보고서야.”
서하나가 건네준 것은 쌍용증권에서 발행한 리서치 보고서였다.
국내 모든 증권사에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주식시장 전망 보고서를 발간했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항상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다는 거다. 증권사 측에서도 주식시장이 어둡다고 전망하면 투자자가 줄어들어 영업에 영향을 받는다. 또 특정 종목에 대해 투자 유보를 말하면 해당 기업에서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즉 구조적으로 밝은 전망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증권사의 리서치 보고서는 신뢰도가 떨어졌다.
유서준 역시 가끔 읽어보기는 하지만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보고서를 펼쳤다.
잠시 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그가 본 다른 보고서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해당 보고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으며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관료는 상황을 더욱 악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연히 앞으로의 주가 전망은 매우 어둡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증권사에서 하락 보고서를 내놓은 것을 처음 본 그는 탄성을 터트렸다. 이처럼 과감하게 현실을 꼬집은 보고서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쓰고도 안 잘리는 것을 보면 용하지?”
서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증권사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보고서, 하지만 일반 투자가에게는 피와 살이 되는 보고서였다.
“이게 대체 누가 쓴 거야?”
보고서 표지에는 쌍용증권 리서치 담당 임원인 스티브 마빈이라 적혀 있었다. 유서준은 그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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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들어선 후 주식시장은 계속 하락을 보였다. 사실상 변변한 반등을 보이지 못하고 전광판은 파란색 일색이었다. 투자자의 한숨이 점차 깊어졌다.
일부 투자자는 주가의 하락이 새로 도입된 선물 상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선물에서 이득을 보려는 사람이 선물에서 매도에 베팅하면 선물 매도는 프로그램 매매를 불러들여 현물 주식을 매도했다. 하락이 하락을 부르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틀린 주장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반대로 오를 때에도 성립하기 때문에 완전히 옳은 주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물시장 개장은 주식시장의 쏠림이나 왜곡을 바로잡아주는 측면도 있었다. 어쨌든 선진 증시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겪어야 할 역풍 정도라는 시각이 많았다.
다이어리를 살펴보아도 사실상 96년 5월부터 12월 사이에는 주식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유서준은 알 수 있었다. 다이어리에 적힌 종목 대부분은 예전의 그가 매매하던 종목이고 이들 종목은 날짜가 지날수록 한결같이 아래로 내리꽂았다.
가끔 월간 최대 상승 종목이라고 적힌 종목을 보아도 대부분 소형주이거나 거래량이 적은 종목이라 지금의 그에게는 사실상 매매가 부적합했다.
이 기간 유서준은 대부분 자금을 국채를 비롯한 채권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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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1일, 코스닥시장이 개장됐다. 정부의 주식 장외시장 발전 계획에 따라 장외 주식거래를 전담하는 코스닥증권이 개장되었으나 거래형성이 미미하고 장외시장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질적인 부분은 아직 숙제로 남았다.
선물시장 개장 후 두 번의 만기일을 지나 선물지수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눈에 익게 된 9월 16일 월요일. 유서준은 드디어 선물 거래에 뛰어들었다.
선물 거래 개시증거금은 5천만 원. 유서준의 처지에서 큰돈이 아니었지만, 일반인이 선물 거래에 접근하기에는 개시증거금은 커다란 벽으로 작용했다.
유서준과 서하나는 모니터에 떠 있는 선물 거래 매매 호가를 주시했다,
16일 아침 개장 주가지수는 전날보다 근소하게 오른 782.13, 코스피 200 지수는 82.20으로 시작했다. 선물 시가는 그보다 낮은 82.10이었다.
일반적으로 선물가격은 기준 지수가격보다 약간 높은 것이 정상이다. 이것은 만기일까지의 금리 때문인데 주식을 보유하면 그 비용에 해당하는 이자만큼 손해를 보는 대신에 선물은 소액으로 주식매수와 효과를 볼 수 있어서 이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날처럼 선물가격이 기준지수보다 오히려 낮은 경우는 앞으로 주식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이것은 최근의 하락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16일 개장 후 주식시장은 소폭의 오름세로 돌아섰다.
선물가격 역시 소폭의 오름세를 보이며 등락을 반복했다. 현재 유서준의 눈에 보인 선물 현재가는 82.40, 매수호가는 82.40에 매도호가는 82.45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수세가 매도세를 누르며 서서히 상승하는 추세였다.
유서준은 다이어리에 기록된 당일 주식시황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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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16일 월요일. 주가지수는 전일 대비 소폭 오른 781.88을 기록했다. 오전에 전날 대비 상승을 보였던 주가는 오후 들어 하락하며 사실상 다시 본래의 지수로 돌아갔다. 내가 보유했던 종목은 역시나 하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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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로 미루어보아 이날 오전에는 일단 오른다는 의미였다. 유서준은 서하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드디어 우리도 선물매매에 뛰어들었어. 첫 매매는 이익을 봐야 할 텐데. 현재 매수세가 강한 것으로 봐서 오를 것 같지? 선물 매수에 걸어볼까?”
“지금은 매수가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지난 금요일 대폭 하락했고 최근 하락 추세가 여전하니까 종가까지 상승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조심해야지.”
서하나가 모니터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의견 일치를 보였다. 오전 상승 오후 하락.
유서준은 선물 매수 주문을 넣었다. 수량은 1개. 비록 수량이 1계약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인 금액은 4100만 원에 달했다. 물론 그가 실제로 투자하는 금액은 증거금만 필요하므로 그 15%인 600만 원 남짓이긴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주문한 선물 1계약이 체결됐다. 체결가는 82.40.
두 사람은 선물가격의 흐름을 주시했다. 선물의 한 호가는 0.05이고 현재 이것은 2만5천 원이었다. 사실상 선물가격은 현물 주식에 묶여 있어 그 움직임은 비슷했다.
전장이 마감될 즈음 종합주가지수는 +7 포인트가량이 올랐다. 선물가격은 어제 대비 +0.7 포인트 올랐다. 대략 장이 고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되자 그는 미련 없이 선물 매수를 매도로 교체했다. 그 가격은 82.90. 그가 선물 매수로 얻은 이익은 0.5포인트로 대략 25만 원이었다. 주식과 비교하면 같은 정도의 폭으로 움직였을 때 대략 7배가량의 수익이 났다. 만일 그가 반대로 매매했다면 7배의 손실이 났을 것이다. 이것이 선물과 같은 파생상품의 무서운 점이다.
오후 2시가 넘어서까지 장은 오늘의 고점에 머물렀다.
“오늘은 안 내리려나 본데?”
꿈쩍 않는 장을 바라보며 서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유서준은 조급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이미 다이어리를 통해 장 마감 때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으니까.
평범한 투자가라면 선물가격이 한 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벌고 잃는 금액 때문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장 마감을 대략 40분가량 남겨놓고 갑자기 장 분위기가 약세로 돌아섰다.
마감 선물가격은 81.85. 그가 매도한 지점에서 무려 1.05 포인트나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하방으로 전망하는 선물 매도를 하였기에 1.05포인트에 해당하는 52만5천 원의 이익을 보았다. 오늘 하루 번 돈은 600만 원 투입에 77만5천 원. 10%가 넘는 수익이었다. 1계약이 아니라 10계약을 움직였으면 수익도 10배가 났을 것이다.
만일 주식으로 매매했다면 고저가 1%도 채 되지 않는 횡보장이었음을 생각하면 사실상 수익 자체가 불가능한 날이었다.
“와우, 대단하네.”
선물의 위력을 체험해본 서하나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녀는 불어난 계좌를 확인하며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주식과 달리 선물은 거래 수수료가 매우 싸고 사실상 세금도 없었다. 모든 점이 만족스러웠다. 아직 거래량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만 제외한다면.
실제 매매를 해본 결과 초대형주와 비교하면 아직 호가 면에서 또 거래량 자체에서 부족한 면이 있었다. 오늘의 선물 거래량은 대략 4300계약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정도 계약만으로도 거래금액은 1천8백억에 달했다. 마감까지 선물 포지션을 청산하지 않고 보유한 상태인 미결제약정 수량은 4000계약 정도. 지금보다 5배가량은 거래량이 늘어나야 제대로 거래가 가능할 듯싶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던 거야. 그 누구도 완벽히 맞출 수는 없어. 주식과 달리 선물은 제로섬 게임이야. 한사람이 100만 원의 이익이 났다면 다른 사람은 반드시 100만 원을 잃어야 하는 게임이지.”
주식에서는 주가가 상승하면 모두가 이익을 내고 행복해진다. 반면 선물에서는 한 사람이 벌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봐야 한다. 주식과 달리 손익이 뚜렷하다.
현재 고객펀드는 수신 잔고가 약 120억. 이 금액을 모두 주식으로 사두고 그 하락에 대해 헤징을 하면 선물은 대략 300계약이면 충분했다. 현재 거래량의 1/10이 채 못 되는 수량. 하지만 이 수량을 원하는 가격에 사고팔기에는 아직 거래량이 충분하지 않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120억을 모두 투입하여 선물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실제로는 약 1000억을 굴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그럴 경우는 사실상 없을 것이다. 지난 베어링 은행 파산사태에서 보았듯이 파생상품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니까.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할까?”
유서준이 서하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서하나는 오늘 매매를 토대로 느낀 점을 대답했다.
“일단 10계약이나 20계약 정도로 제한을 두고 거래에 임해야 할 것 같아. 그보다 수량이 커지면 손실이 났을 때 만회가 쉽지 않겠어.”
그 부분은 유서준도 동의하는 바였다.
“오늘처럼 데이트레이딩으로 미결제약정을 갖지 않고 끝내는 게 유리한지 아니면 포지션을 보유해서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유리한지 판단이 안 되네.”
보유 포지션을 가져가면 연속성이 있어 주식의 큰 흐름을 타기에 유리하다. 다만 장이 마감한 이후 무슨 일이 발생하여 주식시장에 영향을 주게 되면 대처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점이 문제였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우 아침 시작 시에 갭으로 뛰어 시작할 확률도 높았다. 아직 야간 선물시장이 개설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였다.
서하나가 유서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웃음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녀가 결론을 내렸다.
“서준이 넌 시장의 큰 흐름을 기가 막히게 맞추었잖아? 그럼 결론은 난 거지. 우리는 큰 흐름을 따라가자고. 잔파도는 제쳐버리고. 즉 포지션을 길게 가져가며 승부하자.”
유서준이 생각해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임이 확실했다. 다이어리에 적힌 내용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가 웃으며 응수했다.
“포지션 갖고 있으면 걱정이 되어서 밤에 잠도 잘 안 올 텐데?”
“어차피 너 나 건드린다고 밤에 잠도 안 자면서.”
서하나가 홍조를 띠며 투덜거렸다.
유서준은 어이없어 웃음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