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95
99. LTCM의 붕괴(1)
박필석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지점장을 하던 그가 비서실로 갈 군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냉정히 거절할 용기도 없었다.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까이서 모실 수 있다면 저희 가문의 영광입니다.”
박필석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서하나가 미소를 머금으며 한층 더 무거운 짐을 얹었다.
“비서실장은 지점의 최훈재씨로 할 겁니다. 그런데 아직 최훈재씨가 부사장 스케줄을 처리할 짠밥이 안 되겠죠? 그래서 당신 도움이 필요해요. 최훈재씨 밑에서 열심히 도와주세요.”
박필석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최훈재는 서하나 밑에서 함께 일하던 사원이었다. 지금은 입사 후 5년이나 지났다지만 그래도 부사장의 비서실장을 맡을 수 있는 연차는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보좌를 해줘야 했고 그 인물이 바로 그였다.
박필석 입장에선 자신이 데리고 있던 사원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내킬 리가 없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서하나가 빙그레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싫어요? 그럼 할 수 없고요. 충성심이라더니 아니었나 보군요.”
“아… 아닙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깜짝 놀란 박필석이 다시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서하나가 다소 냉랭한 표정으로 짓고 있었다.
“좋아요. 당신이 배신하지 않으면 제가 거두어들이죠.”
“가… 감사합니다.”
“좋아요, 그럼 다음 주부터 이쪽으로 출근하세요. 일단 아침에 커피 타오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죠.”
다시 고개를 숙이는 그를 향해 서하나가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 그 가도건설 사장 이름이?”
“아, 김만학 사장입니다.”
곧바로 박필석이 대답했다.
서하나가 그의 표정을 유심히 훑으며 눈을 빛냈다.
“그 사람 요즘 뭐 하고 있죠?”
박필석이 찔끔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김만학 사장이 금융실명제 때 부도가 난 이후 한동안 재기에 몸부림쳤습니다. 숨겨둔 재산도 꽤 있어서 결국 다시 작은 건설사를 차렸지요. 하지만 작년 말에 터진 외환위기로 다시 부도가 났어요. 지금은 완전히 말아 먹고…… 재기 불능 상태입니다.”
서하나의 입가에 경멸 어린 미소가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보며 박필석은 그제야 가도건설의 부도와 서하나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순하게만 보였던 여자가 생각보다 매서운 구석이 있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요즘 뭐 하고 있죠?”
“그 집이 참 안 풀리더군요. 김만학 사장 아들이 유학 중에 마약을 배웠답니다. 그 버릇 국내 들어와서도 못 끊고 마약을 하다가 결국 잡혀들어갔습니다. 현재 복역 중입니다. 김만학 사장 본인은 두 번째 부도 후 노가다를 전전하다가 그마저 노임도 못 받고 현재 비참하게 근근이 살아가는 중입니다.”
완전 폭삭 망한 모양이었다.
서하나는 내심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잠시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동시에 과거에 그녀가 받았던 치욕적인 굴욕도 떠올랐다.
그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가도건설 사장더러 언제 한번 이곳에 오라고 전해주세요.”
박필석 그가 의견을 내밀 자리는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명령을 수행하는 것뿐이었다.
**
97년 말 대한민국에 IMF의 구제금융이 투입되면서 당장 급한 불이 꺼졌다. 아시아에서 외환위기를 겪거나 진행 중인 나라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 모두 5개 국가나 되었다.
세계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했다. 아시아 주요국의 경제 위기는 국제 원자재 가격을 폭락시켰고 이는 러시아와 중남미의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 98년 8월 17일 IMF의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여의도의 한 빌딩 안.
턱수염을 짧게 기른 40대 중년인, 북유럽 특유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백인 남자가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는 T 펀드 아시아 담당지사장으로 세계 각국의 환율과 주식시세판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얼마 전 발발한 러시아 모라토리엄은 그에게 새로운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가슴이 싸해지는 대박 조짐. 그는 본능적으로 지금이 다시 찾아온 기회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앞선 두 차례의 선물시장 전투는 1승 1패로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아시아를 호령하던 T 펀드로서는 치욕스러운 결과였다. 만회할 기회만을 노리던 그였다. 그리고 그 기회가 지금이라는 본능이 온몸을 울렸다. 야수와도 같은 그의 감각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러시아가 사실상 부도났고, 중남미가 요동치고 있다. 아시아는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지만, 아직 불안정한 상태. 여기에 일본 엔화의 환율 역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 이건 한 번 더 위기가 닥친다는 뜻이 아닐까.”
T 펀드 산하 애널리스트가 올리는 보고서에도 현재의 국면이 심상치 않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아시아를 비롯하여 미국까지 온 동네가 금융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것은 지난 패배를 만회하라는 신의 계시야.”
T 펀드 지사장의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졌다.
“미국 시장 역시 요동치고 있으니 우리를 방해할 자는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공적자금을 여기저기 퍼부어 여력이 바닥난 상태고…… 기회다 기회!”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상된 자존심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였다.
“좋아, 12월 초까지 위기가 계속된다고 보고 선물 매도 포지션을 쌓기로 하지.”
그는 지난 5월부터 6월 초까지 선물 매도로 벌었던 1600억의 수익이 생각났다. 다시 그 영광을 차지하고 싶었다. 어차피 한국의 개인투자가는 T 펀드의 힘에 비한다면 오합지졸이었다. 기관 역시 인수합병으로 정신없는 상황. 유일한 대항마라면 미국 투자은행이지만 지금은 그들 역시 아시아 쪽을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흘렀다. T 펀드가 토끼굴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수하인 금발 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두 16000계약의 매도 포지션 구축을 명했다. 9월 만기일인 9월 10일 이후 약 1달에 걸쳐 소리소문없이 포지션을 구축하도록 했다.
그는 한 가지 더 비빌 곳을 만들어 놓았다. 때마침 터져 나오는 일본 경기 악화설. 당연히 달러 대비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것이라 예상되었다. 실제로 엔화 절하에 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아시아 위기가 재점화되면 당연히 일본도 무사하지 못해.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
한국 시장에서의 선물 매도 포지션, 일본 시장에서의 엔화 약세 포지션.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맞아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대박이 될 것이다. 그는 적어도 둘 중 한 곳에서는 대박을 낼 자신이 있었다.
9월 10일 338.95였던 종합주가지수는 T 펀드의 선물 매도 공세에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9월 21일에는 지수 300선을 깼고 9월 23일에는 최저점인 287.46을 기록했다.
**
[1998년 9월 23일]주가지수가 300선을 깨고 잠수를 시작했던 그때 SJ 투자자문에서 간판을 교체한 SJ 투자금융지주는 강남의 테헤란로로 사무실을 옮겼다. 명동 인베스트먼트와 한 건물에서 세 들어 살던 명동 시대가 저물고 어엿한 금융그룹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강남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SJ 투자금융지주는 SJ 증권, SJ 투신, SJ 생명을 거느린 지주회사로 거듭났다. 지주사 직원은 다소 늘어 이십여 명으로 불어났다. 명동에서 함께했던 후배 강재민을 비롯하여 모든 직원이 테헤란로로 옮겨왔다. 그들은 사실상 이름 없던 회사의 직원이었던 예전 시절을 벗어나 어엿한 유명 금융그룹의 소속이 되었음을 기뻐했다. 직원의 얼굴에 자부심이 새겨졌다.
32층에 자리 잡은 대표 사무실은 활기찬 강남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넓게 트인 사무실 서쪽 유리창으로 점차 어두워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유서준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는 SJ 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100억을 처리할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다이어리를 통해 오늘 저점을 찍고 지금부터 연말까지 주식시장이 달아오른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다이어리에 적힌 연말 종합주가지수는 562.46. 지수가 300을 오르내리는 지금과 비교하면 연말은 거의 두 배나 상승한 위치였다.
당연히 지금은 주식을 100% 안고 가야 할 시점이었고 선물 역시 무서워할 것 없이 매수 포지션을 쌓아야 할 시점이었다.
물론 대외 여건은 매우 나빴다.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인한 아시아 시장 위기설이 다시 흘러나오고 있었다. 실제로 주가지수도 다시 300을 드나들며 더 빠질 것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이때 과연 누가 과감하게 주식 매수를, 선물 매수를 당길 수 있을까. 유서준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은 자본금으로 선물 매수를 들어가서 차익으로 최소 100억은 남긴다. 이것이 그의 기본 전략이었다. 이런 계획을 세웠기에 그는 은행 차입 100억을 고민하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지금 같은 고금리 시기에 100억의 차입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동아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마침 누군가가 선물시장에서 지수를 하방으로 강력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증권가의 소문으로는 지난번에 물먹은 T 펀드가 심기일전해서 재 공세를 펴는 중이란 소문이 돌았다. 이번에는 미국 시장도 불안하여 미국 은행의 역공도 없을 것이란 소문이 추가됐다.
국내 기관도 이에 동조하여 시장을 아래로 보고 하방으로 포지션을 잡기 시작했다는 메신저가 돌았다. 안으로 밖으로 호의적인 기사 내용은 전혀 없었다.
유서준은 불안하지 않았다. 그는 다이어리를 믿었다. 새벽 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다. 모두가 인지하지 못할 때 더 큰 대박이 나는 법이다.
지금 현재 그는 혼자였다.
최근 들어 주식이나 선물 거래를 할 때면 항상 서하나가 옆에서 훌륭한 조언자가 되어 주었었다. 그가 세운 계획을 다시 살펴보고 미비점을 보완하여 매끄럽게 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녀가 했던 일이었다.
그녀와 주식시장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는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엄밀하게 보면 서하나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제에 대해 깊게 공부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주식시장에만 특화된 그에 비해 그녀는 다양한 지식을 섭렵했고 또 연결하여 응용할 줄 알았다.
그렇게 해서 발현되는 그녀의 주식 감각은 그도 인정하는 바였다.
서하나가 SJ 증권 부사장이자 전략투자본부장 임무에 매달리게 되면서 최근에는 사실상 두 사람이 떨어진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녀는 여의도에 있는 SJ 증권 본사에 있고 그는 테헤란로의 SJ 투자금융지주 사무실에 있었다.
몇 년 동안 항상 함께하다가 정작 떨어지게 되니 아쉬움이 컸다. 물론 밤에 집에서 다시 만나기는 하지만 피곤해서 대화를 나눌 틈도 없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SJ 투자자문에서 받은 고객 펀드는 SJ 투신으로 이관시켰다. 그런 관계로 유서준이 직접 손을 대는 펀드는 자신의 것과 자본금 계정 둘 뿐이었다. 이 중에서 자본금 계정의 주식매매는 강재민에게 맡겨두었다. 최근에 오를 것으로 보고 강력하게 주식을 매수할 것을 지시한 바 있었다. 그동안 강재민은 서하나에게 많은 것을 배워 종목을 선택하는 기법이 일취월장했다.
“오늘을 저점으로 보고 앞으로 보름간 선물을 매수한다.”
유서준이 창밖을 바라보며 결심을 굳혔다.
지금의 계획대로라면 선물을 매수하는 그는 T 펀드와 다시 반대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국민의 노력을 국민 스스로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을까.”
바로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지금부터 다시 2000계약의 선물 매수 포지션을 쌓기로 했다. 지난 7월의 대박을 연상케 하는 포지션 규모였다. 일반적인 매매라면 그의 자산규모 대비 다소 무리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크기. 하지만 은행 차입금 100억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할 리스크였다.
선물 2000계약을 들어가는데 필요한 금액은 모두 54억 원. 하루의 지수 출렁임에 의해 평균적으로 10억 원이 움직였다. 하루 10억 원의 출렁임은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손익이 아니었다. 오가는 돈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섰다. 자칫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거래였지만 실행을 개시했다.
오늘 종가의 주가지수는 291.93. 다이어리에 따르면 앞으로 상승만 남아있었다. 그가 망설이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