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
1. 당신의 100번째 생이 시작됩니다
[당신의 100번째 생이 시작됩니다.]* * *
“우리 시우~! 여기! 여기! 이쪽으로 와 보자! 여기 간식 있네! 간식!”
거실 매트 위에 쌀로 만든 튀밥을 뿌려 놓고 현주는 아들을 유인했다.
슥슥- 슥슥슥-
이제 6개월이 된 시우는 통통한 팔다리를 열심히 휘저으며 튀밥을 향해 배밀이를 했다.
바둥바둥.
슥슥-
“옳지! 잘한다! 이쪽! 여기도 있네? 우리 시우가 좋아하는 간식~!”
슥슥슥-
애벌레처럼 꼬물꼬물 움직인 시우는 마침내 튀밥 세 개가 떨어져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고사리 같은 손을 움직여 튀밥 하나를 겨우 주워 든 시우는 크게 벌린 입안으로 손과 튀밥을 함께 집어넣었다.
“오구오구! 맛있어? 옆에도 있네? 이것도 먹자!”
현주가 손끝으로 다른 튀밥이 있는 자리를 톡톡톡 칠 때였다.
안방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시우야, 엄마 전화 가져올게. 이거 먹고 있어.”
현주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거실 한쪽에 얌전히 누워 있던 갈색 푸들 한 마리가 벌떡 일어났다.
현주는 안방으로 뛰어가면서 푸들에게 외쳤다.
“안 돼! 아기 먹는 거 먹으면 안 돼! 복실이 착하지?”
– 멍!
그렇게 착하지는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복실은 휴대폰을 가지러 현주가 들어간 사이, 슬그머니 매트 위로 발을 올렸다.
눈앞에 깔린 튀밥들을 보며 침만 꼴깍 삼킨 게 벌써 십여 분이었다.
복실이 매트 위로 올라온 그 순간.
팡!
시우의 작디작은 손이 매트를 강하게 내리쳤다.
복실은 깜짝 놀라 한쪽 발을 든 채로 얼음이 됐다.
3살 복실이와 6개월 시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리고…….
두 손으로 매트를 짚은 시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 오른 다리를 구부리더니 발바닥으로 매트를 딛고 완전히 일어섰다.
6개월 된 아기가 두 발로 서는 광경을 말 못하는 견생 3년차 복실이만 눈이 동그래진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일어난 시우는 입을 앙 다물고 손가락으로 거실 한쪽을 가리켰다.
복실이가 원래 누워 있던 자리였다.
– 끼잉…….
동물적 육감으로 크나큰 위협을 감지한 복실은 얼른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여보세요! 응, 언니!”
엄마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는 번개처럼 슬라이딩하듯 앞으로 몸을 날렸다.
철푸덕-!
“시우? 지금 배밀이 연습하면서 튀밥 놀이 하고 있어. 응. 잘 먹어. 좋아해. 시우야~! 이모!”
“이~! 아부부부! 맘마!”
이모에게 인사를 한 시우는 다시 배밀이를 하며 튀밥 수집에 나섰다.
현주는 시우를 쫓아다니면서 언니와 통화를 했다.
[벌써 맘마도 하네. 시우 말 진짜 빨리하겠다.]“아냐. 아직 맘마밖에 못해. 엄마랑 아빠도 못하는걸.”
[말문 트이면 금방이야. 우리 시우가 아직 아긴데도 정말 너무 영특하고 얼굴도 너무 예쁘고. 내가 밖에 나와서 아기들 많이 봐도 우리 시우만큼 예쁜 아기가 없어요.]현주는 언니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 왜 그래. 아기들이 다 예쁘지. 안 예쁜 아기도 있나.”
[네가 뭘 모르는구나? 우리 시우 같은 아기는 절대로 흔하지가 않아.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쁠지도 몰라.]이쯤 되니 약간 이상한 느낌이 왔다.
“언니, 오늘따라 더 심하네? 왜 그래?”
휴대폰 너머로 현주의 언니, 희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언니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드라마 있잖아.]희주의 직업은 드라마 보조 작가였다.
[엔딩에 여주인공 이수진이 안고 나올 아기가 필요하거든? 이게 갑자기 대본이 바뀐 거라 개월 수 맞는 아기 구하기가 힘들어서…….]“…….”
[어이쿠야! 근데 마침 우리 시우가 딱 맞는 개월 수네?! 바로 그때, 이 언니의 머릿속에 빰빰빰빠~ 빰빰빰빠~ 베토벤의 운명이 들리는 거야.]“하아…….”
[속으로 외쳤지. 그래! 우리 시우를 드라마에 내보내자!]“누구 마음대로? 내 아기거든?”
[빰빰빰빠~ 빰빰빰빠~ 생각이라도 좀 해 봐. 진짜 급해서 그래. 오늘 저녁 8시까지 연락 줘. 알았지? 사랑한다, 우리 현주!]뚝.
“어릴 때부터 항상 자기 멋대로라니까? 어휴.”
* * *
분유를 먹고 트림을 한 시우는 복실이를 보며 꺄르르르 한참을 웃어 대다 매트 위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현주는 시우를 안아 올려 아기 침대 안에 눕혔다.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며 곤히 자고 있는 시우의 하얀 얼굴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언니 말대로 정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쁠지도?
현주는 설마 하고 혼자 미소를 지었다.
지금 푹 자고 밤에 안 자려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마음 편히 저녁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주방으로 간 현주는 시계를 힐끗 확인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치이익-
보글보글-
고기 굽는 소리와 찌개 끓는 소리가 집안 전체에 퍼질 때쯤, 현관문을 열고 남편 도진이 들어왔다.
“오빠, 왔어? 오늘도 고생했어.”
도진은 180이 훌쩍 넘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용모를 가진 남자였다.
한때는 배우가 되겠다고 연극판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경찰 공무원이었다.
“응. 너도 시우 보느라 고생했어. 별일 없었어?”
“똑같지 뭐. 앗! 아니다.”
“왜?”
“으으음!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와. 밥 먹으면서 얘기해 줄게.”
“알았어.”
도진은 자고 있는 시우를 들여다본 뒤 조용히 안방으로 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식탁에 음식을 올리고 있는 현주가 보였다.
“도와줄까?”
“아니. 다 했어. 앉아.”
“줘. 무겁겠다.”
“괜찮은데…… 고마워.”
도진은 된장찌개가 담긴 냄비와 몇몇 반찬 그릇을 대신 옮겨 주었다.
그사이 현주가 수저를 놓으면서 식사 준비가 끝났다.
마주 앉은 도진과 현주는 시우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식탁 위의 음식들이 절반쯤 사라졌을 때, 도진이 물었다.
“그래서 아까 해 주겠다던 얘기는 뭐야?”
현주는 찌개 안의 두부를 건져 먹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별건 아니고. 낮에 언니한테 전화가 왔거든.”
“희주 누나?”
원래는 처형이라 불러야 옳았지만, 군대도 가기 전인 이십 대 초반부터 극단에서 봐 온 누나라 그냥 부르던 대로 누나라 부르고 있는 도진이었다.
아내 현주도 희주가 소개해 준 인연이었다.
“응. 그런데 언니가 이번 드라마 엔딩에 태어난 지 반년 정도 된 아기가 필요하다고. 우리 시우 좀 데려다 찍으면 안 되겠냐고 해서.”
“
[미스터 문라이트>? 거기 엔딩에 시우를?”희주가 보조 작가로 참여하고 있는 작품, 미스터 문라이트.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이후, 한국 전쟁과 제3공화국까지의 시기를 다룬 대하드라마로 이야기가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은 시청률 40%를 넘나들고 있는 초대작이었다.
“응. 생각해 보고 8시까지 전화 주랬어. 오빠 싫으면 말고.”
현재 시각은 7시 20분이었다.
아직 여유가 있었다.
“싫은 건 아닌데……. 시우가 스트레스 받거나, 혹시……. 혹시 나중에 커서 연기하겠다고 나서면 어쩌나 해서.”
현주는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6개월 때 드라마에 한 장면 나온 거 때문에?”
도진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아니, 연기라는 게. 아예 모르면 모를까, 살짝이라도 발을 들이면 그때부턴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고 그렇거든.”
시우가 나중에 커서 뭐 할까 고민하다 어릴 때 자신이 드라마에 나왔었단 사실을 알고 “나 연기할래!” 라고 외칠까 봐 도진은 우려가 됐다.
다른 누구도 아닌 도진 자신이 그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친구 따라 용돈이나 벌려고 찾아간 영화 촬영장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해 본 이후, 10여 년을 홀린 듯이 연극판을 전전했다.
마음은 나도 저렇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데, 현실은 아주 냉정하게 넌 저렇게 해낼 수 없다고 알려 준다.
그 괴리감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현주는 도진의 마음을 이해했다.
도진의 손 위로 현주의 손이 올라왔다.
“알았어. 언니한테 안 한다고 할게. 나한테는 오빠가 제일 중요하니까 오빠 마음이 불편한 거 싫어.”
현주의 따뜻한 목소리에 도진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내가 걷지도 못하는 6개월 아기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도진은 6개월 아기 시우의 미래를 자신의 인생에 대입시키며 지레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야. 내가 괜히 예민하게 혼자 앞서갔어. 네 말대로 시우한테는 기억도 안 날 드라마 한 장면인데. 희주 누나한테 전화해서 바람도 쐴 겸 다녀와.”
“그래도 돼?”
“너 싫은 거 아니면.”
“나는…… 재밌을 거 같아. 연예인도 보고. 이수진 실물 얼마나 예쁜지 가서 구경해야지.”
“하하, 그게 목적이구나?”
현주는 혀를 빼꼼 내밀고 배시시 웃었다.
부모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잠에서 깬 시우는 아기 침대 안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다 손발이 끼이지 말라고 사방에 설치해 둔 범퍼가드 밑으로 앙증맞은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그리고 범퍼가드를 슬그머니 들어 올려 틈새로 밖을 살폈다.
엄마와 아빠는 주방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거실 구석에서 소변으로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 왔다 갔다 하며 바닥 냄새를 맡고 있던 복실이가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
– …….
시우가 아기 침대 사이로 뻗은 손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타타타 발소리를 내며 복실이가 아기 침대로 다가왔다.
시우는 손으로 복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복실이는 가만히 머리를 대주고 있었다.
시우가 복실이를 향해 들릴 듯 말 듯 조그맣게 옹알이를 했다.
“배변패드에다 쉬 싸라. 엄마가 너 중성화 수술 고민하고 있다.”
옹알이가 아니었다.
– 끼잉.
의기소침해진 복실이가 아기 침대를 떠나 뒤로 달려갔다.
복실은 소파 옆에 깔려있는 배변 패드 앞에서 시우를 돌아봤다.
– 헥헥.
칭찬을 바라듯 꼬리를 흔드는 복실에게 시우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엄마와 아빠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는 잽싸게 범퍼가드를 원상복구시켜 놓고 침대에 드러누워 자연스럽게 손을 빨았다.
“아푸푸! 푸우우!”
복실이를 만진 손이었다.
푸푸거리며 입안에 느껴지는 복실이 털을 뱉어낸 시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반대쪽 손을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우리 시우 일어났어? 손 빨고 있었어?”
현주는 시우의 기저귀를 확인하고 안아서 도진에게 데리고 갔다.
“아빠 왔네? 아빠한테 가 볼까?”
시우를 안아 든 도진은 현주에게 물었다.
“우리 아가는 언제쯤 걸어 다닐까?”
현주가 언니와 통화를 하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아직 서지도 못하는데 걷기를 바라세요? 아빠가 욕심이 많네. 시우는 큰일 났네. 나 전화하고 올게.”
“응. 희주 누나한테 안부 전해 줘.”
방으로 들어간 현주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현주야. 도진이랑 얘기해 봤어? 혹시 반대하면 도진이 바꿔. 내가 설득할 수 있어.]“오빠가 바람도 쐴 겸 다녀오래. 시우가 스트레스 받을까 봐 걱정이긴 한데…….”
[와, 진짜 고맙다! 잘 생각했어! 그리고 걱정 마. 시우가 어디 가서 낯가리는 거 본 적 있어? 잘 울지도 않고, 칭얼대지도 않고, 또 예쁘긴 얼마나 예쁘냐? 천사가 따로 없지! 그냥…… 안 울고 이수진한테 잠깐 안겨 있기만 하면 돼.]“알았어. 언제 촬영하는데?”
[어, 내일모레.]“내일모레?!”
[내가 급하다고 했잖아. 작가님이랑 감독님한테 말해 놓을게. 무르는 거 없다! 나 죽어 그럼.]“으응.”
생후 6개월.
전 세계 수많은 스타들의 정점에 설 윤시우의 데뷔가 결정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