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04)
104. 엔딩 크레딧
루시는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복도 바닥을 보며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말았다.
바닥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손이 앞으로 나가는 속도보다 바닥이 자신의 얼굴로 올라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공포를 자각하지도 못한 채 크게 다칠 위험에 처한 루시였다.
“……!”
루시는 그저 눈을 꽉 감았다.
그때, 마법처럼 루시는 자신의 몸이 넘어지는 속도가 살짝 늦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뒤에서 누군가 루시의 팔을 붙잡았다.
바닥과 충돌하기 직전, 고꾸라지던 루시의 몸이 멈췄다.
“……?”
엄청나게 아플 거라는 생각에 눈을 꽉 감고 있던 루시가 조심스럽게 감은 눈을 뜨려 할 때, 팔을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루시의 몸이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파악-
루시의 몸이 차디찬 바닥 대신,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누군가의 몸과 부딪쳤다.
루시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자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시우의 얼굴이 보였다.
시우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괜찮아?”
두근두근.
뒤늦게 방금 전의 위험했던 상황이 실감이 나면서 루시는 공포심 때문인지 심장이 세게 뛰었다.
루시는 시우의 팔 안에서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다행이다.”
시우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손을 들어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심해. 넘어지면 큰일 나.”
“으응. 알았어. 미…… 안.”
루시를 무사히 구한 시우가 몸을 돌린 순간, 스태프들의 흥분한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졌다.
“와! 시우가 루시를 구했어!”
“시우, 어린애가 몸이 엄청 빨라. 아까 달리기할 때도 잘한다 싶었는데, 반사 신경이…….”
“시우 아니었으면 루시 얼굴도 큰일 나고, 우리 영화도 큰일 났을 거야! 이거 대형 사고 날 뻔한 거라고!”
“루시야! 괜찮아? 엄청 놀랐겠는데, 어머님이 빨리 가서 달래 주셔야…….”
마이크 감독과 루시 엄마가 루시에게 달려갔다.
무섭고 당황한 탓에, 얼굴이 빨갛게 변해 있는 루시를 열심히 진정시킨 마이크 감독은 뒤이어 시우에게 가서 시우의 몸을 끌어안고 외쳤다.
“잘해써어어-!! 아주아주 잘했어!! 네가 루시와 우리 영화를 구했어!!”
팍팍팍팍!
손으로 시우의 등을 계속 두드리는 마이크 감독 때문에 시우의 몸이 흔들렸다.
‘앞에서 넘어지길래 그냥 잡았을 뿐인데…….’
시우는 과도하게 느껴지는 영웅 대접에 잠시 머쓱해하다가 분위기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냥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 V를 만들어 보였다.
“와아아아아!”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흠, 다 이러고 노는 거지 뭐.’
또다시 V.
“와아아아아!”
V를 그릴 때마다 커지는 함성에 시우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기 시작할 무렵, 루시 엄마가 와서 시우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시우, 너무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루시가 크게 다쳤을 거야.”
“아…… 네에.”
“정말 정말 고맙구나.”
엄마 손을 잡고 다가온 루시는 엄마의 다리 뒤에 숨어 왠지 약간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 고마워.”
“응, 뛸 때 조심해. 연기도 중요하지만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루시는 시우의 말에 예쁘게 활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이 재개되었다.
시우의 말을 되새기며 열심히 달린 루시는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고 장면을 잘 마쳤다.
“오케이! 컷!”
웨스트우드 교장을 피해 복도를 달리다 막다른 곳에서 교실로 들어가는 씬을 찍은 아이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교실에서 정신이 돌아온 아기 드래곤 카푸와 이별하는 씬을 촬영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었던 만큼, 카푸 엄마 노릇을 했던 에반의 감정 연기가 중요한 씬이었다.
시우는 약간의 상처들과 헝클어진 머리를 세팅하고 다른 아이들과 같이 카메라 앞으로 갔다.
“아들, 힘…….”
오늘은 시윤이를 언니 희주에게 맡기고 직접 촬영장에 온 현주였다.
현주는 시우에게 힘내라고 외치려다 조용히 목소리를 낮췄다.
시우의 눈빛과 표정이 무척 진지해 어쩐지 함부로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았다.
‘우리 시우가…… 진짜 배우가 다 됐네.’
오래전, 미스터 문라이트 촬영장에서 이수진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느꼈던 긴장감이 아들 시우에게서도 느껴졌다.
현주는 시우가 더 이상 엄마 품 안에 있는 작은 아이가 아니라, 수많은 스태프들과 감독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이 거대한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주연 배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옆에 있던 루시 엄마가 말을 걸었다.
“XOXO 때도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됐지만, 시우는 볼수록 너무 멋지네요. 정말 아이를 잘 키우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현주는 루시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연기할 준비를 마친 시우를 바라봤다.
시우는 루시, 헨리와 동선을 맞춰 보고 있는 중이었다.
곧이어 감독이 현장의 사람들에게 목청을 높였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아까 루시 일도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아무도 다치는 일 없이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합시다! 다들 집중하세요!”
촬영장이 조용해졌다.
아이들과, 웨스트우드 교장 역의 배우와 눈을 맞춘 마이크 감독이 사인을 보냈다.
“레디, 액션!”
아이들은 교실 창가 쪽에 붙어 긴장한 얼굴로 교실 문을 쏘아봤다.
문이 벌컥 열리고, 교장 역의 배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빌 역의 소년 니콜라스가 붙들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산발한 머리를 손으로 대충 다듬다가 하이톤으로 대사를 쳤다.
“워워, 얘들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말거라. 꼭 내가 나쁜 사람 같잖니. 조용히 기숙사 방에서 카푸에게 죽어 줬으면 얼마나 좋아. 하필 식당에 있는 드래곤 조각상 앞에서 카푸 얘기를 속닥거릴 게 뭐람.”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듯이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식당에 있는 눈이 움직이는 조각상은, 쉽게 말해 바하리야 교수가 만들어 설치한 마법으로 돌아가는 CCTV 같은 존재였다.
사막여우 바하리야 교수가 작은 쥐 데이비스 교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장 습격해 버린 탓에 데이비스 교수는 카푸에게 조엘 살해 명령을 내릴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후, 교내에서 교수끼리 전투를 벌인다는 소식을 들은 호랑이 맥카이 교수가 신이 나서 싸움 구경을 하러 왔다가 두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는 교장실로 들이닥쳤다.
그 다음부터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오래 세월 반목해온 교장파와 반 교장파가 ‘마녀의 아들’ 조엘의 생사를 두고, 서로 간의 묵은 감정이 폭발했다.
애초에 바하리야와 데이비스가 이미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이었으니, 전투의 확산은 금방 이뤄졌다.
중립에 선 교수들은 재빠르게 방공호 역할을 하는 할리와트 호수 밑 황금 거북이의 집으로 교내 아이들을 피신시켰다.
무슨 이유가 있든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선 안 된다는 바하리야 교수를 중심으로 반 교장파는 조엘, 에반, 빌, 앨리스의 구출을 목적으로 교내 진입을 시도했고-
교장파는 아이들이 키우던 아기 드래곤 카푸를 이용해 숨어 있는 아이들을 추적하며, 반 교장파 교수들의 교내 진입을 막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교장파가 일찌감치 승리를 거둬야 할 싸움이었는데, 교장파의 최강 호랑이 맥카이 교수가 “애들을 죽이다니! 그건 아니지! 크허헝!”하고 날뛰기 시작하는 바람에 오히려 교장파가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교장 역의 배우는 그 인자해 보이는 얼굴을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로 사납게 일그러뜨리고는 대사를 뱉었다.
“그 쓸모없는 망할 호랑이. 바하리야를 견제하라고 데려다 놨더니 내 등에 칼을 꽂으려 해? 두고 보자.”
그녀가 니콜라스의 몸을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자신들에게 달려와 넘어지는 니콜라스를 시우와 루시가 받았다.
“빌! 괜찮아?”
“괜, 괜찮긴 한데…… 우리 다 곧 죽을 거 같아.”
시우는 루시, 니콜라스, 헨리를 자신의 등 뒤에 두고 용감하게 교장 역의 배우와 맞섰다.
시우가 친구들을 지키려는 듯이 두 팔을 좌우로 펼치고 서자, 루시와 니콜라스도 조엘 역의 소년 헨리를 보호하겠다는 듯이 시우의 뒤에서 똑같이 두 팔을 펼쳤다.
“어린아이들의 눈물겨운 우정이로군. 실은 이 교수님도 과거에는 조엘의 엄마와 꽤 친한 사이였단다. 한때는 함께 여행도 다니던…… 그 여자가 내 가족들을 전부 죽이기 전까지는 그랬지. 에반,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니?”
시우는 힘차게 대답했다.
“엄청 나쁜 사람으로 보여요! 조, 조엘 엄마가 그런 거지 조엘이 그런 거 아니잖아요!”
니콜라스와 루시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아주 오래전, 난 내 친구를 믿고…….”
“할머니, 옛날 얘기 관심 없어요! 핑계 대지 말고! 카푸한테 건 마법이나 풀어 줘요!”
악에 받친 시우의 눈이 무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교장 역의 배우는 잠시 움찔 놀라 집중력을 잃을 뻔했다.
‘이 아이…… 정말 연기가 신들린 거 같네. 이 나이 먹고 조그만 아이한테 눌려 대사를 놓칠 뻔하다니.’
“호호호! 이 드래곤 말이냐? 이건 그냥 마법이 깃든 그림일 뿐이란다. 이젠 필요도 없으니 언제든지 돌려주마.”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교실 천장에서 아기 드래곤 카푸와 비슷한 크기의 녹색 인형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카푸-!”
아이들이 일제히 외쳤다.
마이크 그레이 감독은 주먹을 부서져라 꽉 움켜쥐고 시우와 인형을 지켜봤다.
‘아이들이 집중을 잘 못하는 게 이런 CG 연기지. 그래서 오디션 때도 CG 촬영 상황을 가정한 거고.’
쫄쫄이 옷을 입은 배우나 인형, 정확히는 녹색 솜뭉치를 보며 연기에 집중을 하기란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 평범한 대사라면 해낼 수 있을 테지만, 감정 연기는 감정 잡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시우. 넌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이 감독님은 널 믿는다. 인형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살아있는 아기 드래곤 카푸라고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렴.’
이 장면은 카푸와 이별하는 매우 중요한 씬이었다.
친구들에게 카푸 엄마라고 놀림까지 받아 가며 카푸를 챙겨 온 에반의 감정을 잘 살려 내느냐, 그냥 어정쩡하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영화 엔딩의 퀄리티가 하늘과 땅으로 갈린다.
‘시우, 제발.’
스태프들도 5개월간의 노력이 완벽한 결과물로 나타나길 바랐기에, 다들 간절한 눈으로 시우를 보고 있었다.
시우는 녹색 솜뭉치를 향해 터벅터벅 다가갔다.
그리고 털썩 카푸의 앞에 앉았다.
고도의 자기 암시를 마친 시우의 눈에는 이미 널브러져 있는 솜뭉치가 아닌, 쓰러져 있는 카푸가 보이고 있었다.
완전히 몰입한 시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푸…… 마법 풀렸어? 내가 누군지 알겠어?”
카푸가 힘겹게 머리를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시우의 상상 속에서 대본에 적혀 있는 카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시우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짓고 큭큭 웃었다.
시우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아빠라니까.”
카푸도 시우를 따라 웃었다.
스태프들은 숨을 죽이고 사람을 빨아들이는 시우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에반, 미안해. 내가 너희를 공격하고 말았어.]시우는 도리도리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넌 이용당한 거야. 나쁘지 않아. 나쁜 건…….”
입술을 꽉 깨문 시우가 교장 역의 배우를 올려다봤다.
“어른들이야.”
교장을 노려보는 시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원한에 가까운 섬뜩한 눈물-
짧은 시간, 시우는 표정을 바꾸고 다시 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로 카푸를 봤다.
카푸를 품에 안은 시우가 카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야. 기다려. 카푸. 널 살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흑…… 방법을 찾아 줄게. 그러니까 가지 말고…… 우리랑 더 놀자…….”
시우의 연기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바닥을 보며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던 교장 역의 배우가 시우의 대사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입을 열었다.
“걱정 말거라. 에반. 죽어서 다 같이 놀면 되니까.”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렸다.
파앗!
손을 휘두르자 스태프들이 폭발음을 만들어 냈다.
쿠웅-!
시우가 외쳤다.
“카푸!!”
몸을 날린 카푸가 아이들을 구하고 허공에서 하얀 빛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우는 멍하니 허공을 보다, 살기가 일렁이는 표정으로 냅다 교장 역의 배우에게 달려들었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시우가 달려드는 것을 본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에반!”
빌 역의 니콜라스가 시우를 쫓아 달렸다.
앨리스 역의 루시는 놀란 얼굴로 시우와 빌에게 보호 마법을 시전했다.
그때, 마녀의 아들 조엘 역의 헨리가 교장을 향해 입술을 덜덜 떨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 * *
웨스트우드 교장이 사라졌다.
교장파 교수들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교실에 도착한 바하리야 교수와 맥카이 교수는, 웨스트우드 교장의 흔적을 도저히 찾을 수 없자 의아한 얼굴로 아이들을 봤다.
앨리스가 떠듬떠듬 말했다.
“몰, 몰라요. 혼자 마법을 쓰더니 갑자기 사라졌어요.”
“……앨리스?”
“진짜예요. 정말…… 정말이에요!”
앨리스의 단호한 말에 바하리야 교수는 다른 아이들을 찾아 눈을 돌렸다.
에반과 빌이 조엘을 보호하듯 그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바하리야 교수와 맥카이 교수가 네 명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마지막으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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