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07)
107. 한국에서의 일상
“급식실 어디에요?”
여학생은 대답하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손가락으로 한 건물을 가리켰다.
“고마워요.”
시우는 여학생이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수많은 학생들이 시우의 걸음에 맞춰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시우의 기적이었다.
‘유지호, 이 녀석은 마중도 안 나오고 말이야.’
일 년 만에 만나는 친구 지호를 떠올리며 시우는 가벼운 걸음으로 급식실 건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는 아이들처럼 우르르 시우의 뒤를 따랐다.
한산한 급식실.
유유히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한 남학생이 보였다.
시우는 픽 웃는 얼굴로 지호를 한번 보고는 식판을 들고 음식을 퍼 담았다.
“…….”
여러 반찬들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시우는 이 학교는 자율 배식인가 보다 착각을 하고, 누가 지호랑 친구 아니랄까 봐 탕수육과 탕수육과 탕수육을 반찬 칸에 가득 담고 만족스럽게 돌아섰다.
뒤늦게 멀리서 지켜보던 급식 아주머니가 복귀를 했고, 다른 학생들도 시우의 근처에 앉기 위해 식판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우는 지호 앞자리로 가 식판을 내려놓고 앉았다.
일 년 만의 재회였으나, 남자들 사이에 특별한 인사말 따윈 필요치 않았다.
“왔냐?”
“어.”
자리에 앉은 시우가 제법 미소년 태가 나는 지호의 얼굴을 보다 말했다.
“네 반찬 나눠 먹으려고 했는데 너도 탕수육만 펐냐.”
“고기 먹고 키 클 거야. 너 미국 가기 전만 해도 너랑 나랑 키 차이 얼마 안 났는데, 미국 가서 뭘 먹었길래 갑자기 키가 9cm나 자란 거야.”
“할리와트 세트장에 키가 자라는 마법의 원이 있어. 거기 들어가면 한 달에 1cm씩 자라. 나랑 니콜라스는 그곳을 성장판의 방이라고 부르지.”
“……뭐래. 어디서 이상한 미국 개그를 배워 왔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161cm였던 시우가 미국에서 170cm로 폭풍 성장을 하고 돌아온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지호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고기를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지호의 키는 현재 164cm로 시우보다 조금 작았다.
“그나저나 지연 누나는 집에 언제 와?”
“다음 주에. 지금 이탈리아 무슨 섬에 들어가 있대.”
시우와 지호는 수많은 학생들의 관심 속에 탕수육 만찬을 즐기고, 내일 메뉴는 제육볶음이라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교실로 올라갔다.
학생들은 이번에도 시우를 쫓아 교실까지 올라왔다가 선생님들의 제지로 인해 그제야 이성을 되찾고 뿔뿔이 흩어졌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난 뒤-
같은 반 학생들이 시우의 자리로 몰려들었다.
“시우야! 오늘 뭐 해? 우리 축구할 건데 같이 안 할래?”
한 남학생이 물었다.
시우는 가방에 필기구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축구? 그래. 알았어.”
등교 첫날이고 하니 친구들과 잠시 놀다 가기로 했다.
시우가 남학생들과 같이 일어나자 여학생들이 와서 물었다.
“시우야, 축구하러 가는 거야?”
“응. 왜?”
여학생 한 명이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는 물었다.
“아니, 별 건 아니고…… 축구 오래 할 거야? 축구 끝나면…… 우리랑 다 같이 학교 앞에 분식집 갔다가 노래방 안 갈래? 저기…… 시,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러니까 시간 괜찮으면…….”
우물쭈물 계속 말을 잇는 여학생에게 시우가 말했다.
“미안. 축구 잠깐 하고 집에 갈 거야. 오늘 동생들이랑 놀아 주기로 했거든.”
몇몇 여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꺅~ 시우 되게 자상하다. 동생도 잘 챙겨 주고. 우리 오빠는 매일 게임만 하면서 나 컵라면 셔틀 시키는데.”
“야, 우리 오빠는 대학생인데 내 지갑에서 내 용돈 훔쳐 가. 장난 아냐. 시우야, 동생 몇 살이야? 너 닮았으면 진짜 예쁘겠다.”
시우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저절로 웃음이 그려졌다.
누군가 자신에게 미국에 있는 동안 제일 힘들었던 점이 뭐냐고 물으면, 당연히 동생들이 보고 싶었던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시우가 입을 열었다.
“남동생은 올해 초등학교 3학년 됐고, 여동생은 이제 3살 됐어.”
“이름이 뭔데?”
“윤시윤, 윤시아.”
“와, 둘 다 엄청 귀여울 거 같아. 혹시 사진 있어?”
여학생들이 시우를 에워싸기 시작할 무렵, 하교 준비를 하고 교실 문쪽에 모여 선 남학생들이 시우를 불렀다.
“시우야! 가자!”
“알았어! 사진은 다음에 보여 줄게. 안녕.”
시우가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 여학생들은 또 그 다정한 인사에 녹아내렸는지 다들 상기된 얼굴로 일제히 인사를 보냈다.
“아, 안녕! 내일 봐!”
“시우야! 만나서 반가웠어!”
“축구 다치지 말고 해~! 우리가 응원할게.”
시우는 지호와 어깨동무를 하고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시우가 축구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많은 여학생들이 집에 가다 말고 운동장으로 돌아와 시우를 응원할 준비를 마쳤다.
“윤시우! 파이팅!”
“시우야! 잘해! 우리아이 예체능 때 실력을 보여 줘! 꺄악!”
“야! 시우 몸에 상처 하나라도 내면 죽는다아~!”
시우와 축구를 하려던 남학생이 여학생들의 살벌한 외침을 듣고 지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서워서 축구 못할 거 같은데. 수비하다가 혹시 시우 다치게 하면 우리 전 세계적으로 비난받는 거 아냐?”
지호는 걱정 말라는 듯이 남학생을 어깨를 쳤다.
“걱정 마. 시우 몸 건드리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응? 뭔 소리야?”
지호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남학생들은 축구가 시작되자 금세 깨달았다.
뻐엉!
한 남학생이 찬 슛이 골대 위로 날아갔다.
골키퍼는 멀리 나무 뒤로 사라진 축구공을 주우러 달려가며, 동네 축구에선 찬 놈이 공을 주워 오는 국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물론 만들어도 안 지키겠지만.
공을 찾아온 골키퍼가 앞에 보이는 지호에게 짧게 패스를 했다.
지호는 공을 잡고 잠시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다, 운동장 중앙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시우에게 공을 찼다.
뻥!
낮고 빠른 패스가 시우의 발밑으로 향했다.
공을 잡은 시우는 지호를 봤다.
지호는 진지한 얼굴로 상대팀 골대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라! 윤시우! 너의 진짜 실력을 보여 줘!”
든든한 친구가 돌아온 덕분인지 왠지 신이 나 보이는 지호였다.
‘진짜 실력대로 하면 중학생이 월드컵 나가서 득점왕 먹는다. 지호야.’
시우는 공을 잡고 상대 수비수들 쪽으로 돌아섰다.
시우가 공을 잡자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상대팀 남학생들이 외쳤다.
“막아! 진짜 실력이 뭔데? 얼굴로 축구하는 거 아니잖아!”
전의에 불타는 수비수들을 본 시우는, 슬슬 드리블을 시작했다.
과거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 일부러 뺏겨 주고, 골도 먹혀 주고 하면서 놀았지만 그것은 유치원에서 돌보미 직원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중학생은…… 굳이 돌봐 줄 필요 없으니까.
시우의 드리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응원해주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팬 서비스도 할 겸, 화려하게- 보다 화려하게-
상체 페인팅으로 가볍게 수비수 한 명을 따돌린 시우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 수비가 달라붙을 때까지 기다린 후, 마르세유 턴으로 또 한 명을 벗겨 내고 상대 골문 쪽으로 스피드를 올렸다.
“막아!! 야!! 인간적으로 윤시우한테는 먹히지 말자!!”
“그래!! 얼굴도 지고 머리도 지는데, 운동만큼은 져선 안 돼!!”
초등학교 6학년 때 바둑 프로 기사가 된 시우는 이미 똑똑하기로도 팬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었다.
남학생들은 필사적으로 시우를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시우는 양발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가볍게 상대 수비수들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골대 바로 앞까지 파고 들어갔다.
골키퍼가 앞으로 달려 나올까, 수비를 믿고 기다릴까 고민하는 것을 느낀 시우는 상대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낸 다음 아무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벼락같이 슛을 날렸다.
투욱!
우아하게 골키퍼의 머리 위를 넘어간 축구공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 안쪽 구석에 정확히 떨어져 내렸다.
촤악!
“꺄아악-!!”
“완전 멋있어!! 뭐야!! 방금 시우가 찬 공 되게 멋있게 들어갔어!!”
“윤시우!! 잘생겼다!! 축구도 제일 잘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멍하게 서있던 수비수들과 골키퍼들은 여학생들의 괴성에 정신이 돌아왔다.
상대팀 수비수가 옆에 있던 수비수에게 말했다.
“얼굴로 축구하는 거 아니라며…….”
“……내가 잘못 알았어. 쟤는 얼굴로 축구하네. 완전 개멋있다. 나도 팬 해야겠다.”
* * *
“나도 네가 해준 불고기 오랜만에 먹고 싶은데!”
“학원이나 가라.”
“이따 학원 끝나고 밤에 들를게. 내 것도 좀 남겨 놓으면 안 돼?”
“알았어. 넉넉하게 재워놓을 테니까 아주머니 드려.”
“예~ 월드 스타가 만든 불고기 먹는다! 우리 누나도 네 불고기 진짜 좋아하는데.”
지호를 학교 근처 영어 학원으로 올려 보낸 시우는 한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이어폰에서는 지연이 작년 겨울 발표한 잔잔한 어쿠스틱 발라드 곡이 흘러나왔다.
“지연 누나, 진짜 노래 많이 늘었네.”
소속 기획사의 걸그룹 프로젝트가 데뷔 직전 엎어지고, 가족들 앞에서 가수 안 하겠다고…… 속 썩여서 죄송하다고…… 펑펑 울던 지연 누나가 우여곡절 끝에 솔로로 데뷔해 이렇게 대박이 날 줄은 아마 지구상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모는 원래 깡패였지만, 가창력은 정말 노력의 산물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시우는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에서 아기 새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떠올린 시우는 마스크를 쓴 얼굴 위로 눈웃음을 짓고 현관문을 열었다.
삐삐삐삐-!
– 멍멍멍~!
도어록 누르는 소리를 듣고 복실이가 제일 먼저 안에서 달려 나왔다.
“복실, 형아 왔다!”
– 멍멍~ 끼잉!
시우를 반기던 복실이의 눈이 장바구니를 발견하고 반짝 빛이 났다.
“이건 네 거 아냐. 이따 간식 줄게.”
– 헥헥헥!
복실이와 함께 거실로 들어가니, 현주가 시우를 불렀다.
“시우야, 왔어? 학교 어땠어?”
“똑같죠, 뭐. 불고기 재료 사 왔어요. 오늘 저녁은 제가 할게요~”
“그래. 시윤이랑 시아 좋아하겠다. 엄마가 도와줄 거 있어?”
현주가 시우에게 물을 때, 안방에서 조그만 아기가 쿵쾅쿵쾅 뛰어나왔다.
시우와 시윤이의 어릴 적 모습을 닮은 귀여운 얼굴에 머리를 산발한 노란 옷을 입은 여자아이였다.
“윤슈~!! 뿌오오오오~!!”
시아가 달려왔다.
시우는 오빠 미소를 짓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시아를 향해 팔을 벌렸다.
“쿠아아아!!”
뭔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뛰어온 시아는 팔을 벌리고 있는 시우를 지나쳐,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눈빛으로 곧장 장바구니로 몸을 날렸다.
장바구니 안으로 파고들어가 물건들을 구경하던 시아가 두 손으로 불고기용 한우를 번쩍 들어 올리곤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꼬기이~!!”
“시아, 배고파?”
“응! 꼬기~ 꼬기~”
시아가 고기 포장을 뜯으려는 듯이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시우는 한 마리의 아기 공룡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며, 얼른 고기를 시아의 손에서 구출해 냈다.
“누르면 안 돼요~ 오빠가 얼른 해 줄게. 이따 시윤이 오빠 학원 끝나고 오면 같이 먹자. 알았지?”
“응!”
시우가 옷을 갈아입고 장바구니에서 재료들을 꺼내 요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현주가 시우를 불렀다.
“시우야, 휴대폰에 전화 온다!”
“저 비닐장갑 끼고 고기 담고 있는데, 좀 갖다 주세요~”
현주가 시우에게 휴대폰을 가져다주었다.
“태우 삼촌이네? 오늘 오전에 회사 다녀왔지?”
“네.”
시우는 비닐장갑을 벗고 전화를 받았다.
잠시 태우와 통화를 한 시우는 궁금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엄마에게 살짝 웃어 주며 입을 열었다.
“할리와트 측에서 다른 작품 찍어도 된다고 촬영 동의 떨어졌대요.”
“어? 그럼 한국에서 오랜만에 작품 하는 거야?”
“네. 아마 그렇게 될 거 같아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