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09)
109. 승현의 고민
–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는데…… 왠지 2%가 아쉬워요 ㅠㅠ
– 어릴 때랑 똑같이 바르게 커 줘서 너무 고마워. 근데 연기도 어릴 때랑 똑같은 거 같네. ㅎㅎㅎㅎ
– 솔직히 연기 스타일이 약간 질려요. 작품 소식 들려도 기대가 안 돼요. ㅠㅠㅠ 분명 다른 작품 다른 캐릭터인데 그냥 매번 류승현 보는 느낌…….
– 뭐가 문제일까아. ㅜㅜㅜㅜㅜ
– 어른 되고 애가 돈맛을 봤는지 늘 안전한 연기만 함. 연기력은 있지만 스펙트럼이 좁음. 그러니 발전이 없지. ㅋㅋㅋㅋ
– 승현아, 형이 진지하게 조언하는데 그렇게 연기하면 오래 못 간다. 롱런하고 싶으면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줘야지. 혹시 연기는 부업이고 CF가 본업이니?
시우는 방에서 노트북으로 바둑을 두다,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웹 서핑을 했다.
마침 최근 방영되고 있는 류승현 주연의 드라마 [좋은 남자 만나기> 관련 기사가 보이길래 클릭을 했다.
“으음…….”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한 시우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바른 청소년에서 바른 청년으로, 현실에서 잘 성장한 승현이었으나 연기 또한 바른 청소년에서 바른 청년으로- 캐릭터가 너무 굳어 버린 감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이런저런 많은 고민들과 사정들이 존재했지만, 거기까지는 팬들이 알 수도 없는 일이었고 또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슬슬 팬들 사이에서 아쉬움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싶던 찰나, 들어간 이번 드라마가 제목에서부터 아예 그 부분을 대놓고 극대화하고 말았다.
“내가 이거 느낌이 안 좋았어. 제목부터 올드하고. 승현이 형 이미지에 묻어가려는 낌새가 보였는데.”
시우는 걱정되는 마음에 승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미국에 있을 때도 자주 했지만, 한국 들어와서는 아직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응, 시우야.]“형. 바빠?”
[하아…….]역시 예상대로 마음이 복잡한지 시우 목소리를 듣자마자 승현은 한숨부터 푹 쉬었다.
[모니터링 끝내고 잠깐 앉아 있는 중이야. 우리 시우 한국 왔으니까 한번 만나야 되는데, 형이 드라마 때문에 바쁘다고 밥도 한 끼 못 사 줬네.]“뭐 사 줄 건데?”
시우는 승현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일부러 장난스럽게 물었다.
[너 먹고 싶은 거는 형이 다 사주지~ 형, 다음 주에 시간 비거든? 그때 같이 밥 먹을까?]“응, 안 그래도 그러려고 전화한 거야.”
시우와 승현은 다음 주 평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 * *
둠칫둠칫- 두둠칫-
춤을 추며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시우는 생각했다.
저 형은 왜 철이 들지 않는가.
예능 나가면 점잖게 다큐 찍고, 현실에서는 혼자 예능 찍는 남자.
송준영이 촐싹촐싹 다가오고 있었다.
“으아악! 시우야! 오 마이 브라더! 보고 싶어써! 형이 집에서 할리와트 보다가 우리 시우 생각나서 울었잖아.”
“……아, 네.”
“시우가 갈수록 멋있어져서 형은 정말 감동이다. 카아~ 옛날에 형 무릎 위에서 막 애교 부리고 그냥…… 아오~ 형아 손잡고 막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그랬는데…… 아, 중학생 된 기념으로 뭐라도 사 줘야지. 미국에 있어서 선물도 제대로 못해 줬네.”
시우의 집 앞으로 픽업을 온 준영은 두 손으로 시우의 볼을 잡고 이마에 뽀뽀라도 할 기세였다.
시우는 얼른 머리를 숙여 빠져나왔다.
이 형은 위험하다.
자신이 아직도 바다아이 찍던 유치원생인 줄 아는 형이었다.
“형, 그만하세요.”
“왜 존댓말 쓰고 그래. 야, 너 그러면 형이 진짜 서운하다.”
“형 곧 40대잖아요. 반말하면 저 버릇없어 보여요.”
“아직 30대거든?! 서른아홉이거든?!”
“……네.”
“으휴~ 알았어. 가자. 우리 셋이 다 모이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이야.”
준영은 시우를 차에 태우고, 양평 쪽에 있는 한적한 낚시터로 향했다.
가는 동안 준영은 끊임없이 시우에게 말을 걸었다.
이 형이 나이 들더니 많이 외로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시우는 가는 동안 열심히 준영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다.
이제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준영은 여전히 동안에 꽃미모를 흩날리고 있었지만, 하나둘 가족을 꾸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약간 외로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형, 요즘도 작품 없을 때는 집에서 게임만 해요?”
“게임? 응. 게임은 내 소중한 친구지.”
“밖에도 좀 나가고 해요. 왜 갈수록 집에만 있어요.”
“됐어. 나가면 힘들어. 아, 근데 얼마 전에 벚꽃 축제 갔다 왔다. 진짜 좋더라.”
“오~ 누구랑 갔는데요?”
“혼자 갔지.”
“…….”
“너 한국 조금만 일찍 왔으면 너랑 가는 건데. 아깝다. 미국에는 벚꽃 없지? 있어?”
대화를 나누며 가다 보니 낚시터에 도착을 했다.
성실한 청년 승현은 약속 시간에 늦는 법 없이 먼저 도착해서 시우와 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 오랜만이야~”
“시우야!”
승현은 천천히 걸어와 시우를 꼭 안아 주었다.
중학생이 됐지만, 여전히 준영과 승현의 눈에는 시우가 예쁘고 귀여운 작은 아기인 모양이었다.
“형 안 보고 싶었어?”
승현이 물었다.
시우는 누가 누구를 귀여워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응. 별로. 전혀 안 보고 싶었어.”
“헉.”
“농담이야. 보고 싶었어.”
시우는 마치 자신이 형인 것처럼 승현의 팔을 탁탁 치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승현은 그제야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차에서 낚싯대를 꺼낸 준영이 말했다.
“시우는 너보다 내가 더 보고 싶었을 거야. 이 형이 어릴 때부터 얼마나 잘해 줬는데, 내가 자전거에 킥보드에 선물을 막…… 얘들아, 형 늙어서 이제 무겁다. 와서 같이 좀 들어 줄래?”
오랜만에 뭉친 삼덕구는 낚싯대와 밑밥 통을 각자 나눠 들고 인적이 드문 그들만의 핫 플레이스로 들어갔다.
“시우도 느낌이 별로라고 하고, 회사에서도 좀 애매하다고 했는데 팬분들이 [좋은 남자 만나기>는 딱 류승현 작품이라고, 주인공 역에 류승현 꼭 보고 싶다고 많이들 말씀해 주셔서…… 한번 해 보자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하니까 별로 안 좋아하시네.”
낚싯대를 걸어 놓고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배우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승현은 많이 힘들고 꽤 지쳐 보였다.
시우가 말했다.
“드라마 퀄리티가 원작 웹툰보다 훨씬 떨어져서 그래. 뭔가 애매해. 그냥 류승현은 좋은 남자야. 류승현 멋있지? 류승현 잘생겼지? 이러다 한 편이 끝나는 느낌이랄까.”
준영은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크흑! 우리 시우가 언제 이렇게 커서 형들이랑 작품 얘기도 같이 하고…… 형은 정말 감동이다.”
시우와 승현이 쳐다보자 준영은 장난을 멈추고, 선배 연기자로서 짐짓 어른스럽게 입을 열었다.
“승현아! 형도 알아! 다~ 겪어 봤어! 이건 외모가 뛰어난 배우가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이야!”
“아니…… 저…… 형 그런 거 말고 도움 되는 말 좀…….”
준영이 손을 들어 승현의 말을 막았다.
“안다니까. 뭘 해도 외모 얘기밖에 안 나오지? 그리고 처음에는 무조건 잘생겼다, 멋있다, 칭찬하다가 이제 어느 순간이 되면…… 똑같은 연기한다고 뭐라고 하고, 다른 연기 시도하면 안 어울린다고 뭐라고 하고…….”
준영은 컵라면을 후루룩 한 입 더 먹고 말을 이었다.
“배우의 연기는 배우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어? 그리고 뭐야. 노력해서 쌓아 가야 하는 거야.”
“…….”
“지금까지의 인기나 연기, 다 내다 버릴 각오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어야 돼.”
“만약…… 그럴 용기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승현이 물었다.
준영은 오랜만에 형다운 모습으로 말했다.
“넌 그럴 용기가 있을 거야.”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
“원래 바뀌고 싶은 마음이 없는 애들은 괴로워하지도 않거든. 한 발자국만 더 가 보자. 승현아. 연기 계속해서 나중에 우리 삼덕구 같이 또 작품 한번 해야지!”
연기를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는 승현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듯, 날카롭게 파고드는 준영의 격려에 승현은 얼굴을 푹 숙이고 컵라면만 내려다보았다.
시우는 입질이 온 낚싯대를 들고 일어나, 소싯적 낚신답게 능숙하게 릴링을 해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올린 다음 그 물고기를 자신의 통이 아닌 승현의 통 안에 넣어 주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시우가 승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형 하고 싶은 대로 해. 형은 너무 착해서 남들 눈치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아무것도 못해.”
준영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웃으며 말을 꺼냈다.
“시우야, 승현이 웃게 애교 한번 부려 줘!”
“……형, 나 중학교 2학년이에요.”
“어우, 중2면 완전 아가다. 애교~ 애교~ 형들을 위한 사랑스러운 애교~”
“낚싯대로 때린다. 내가 솔직히…… 형들한테만 말하는데. 중2라고 다 같은 중2가 아니에요. 나는…… 형들이랑 같이 늙어 가는 중2라고. 되게 오래 살았어요.”
“…….”
“…….”
“푸하하하하! 야아, 중2병이란 말이 진짜 있구나. 의학 용어로 지정해야 되는 거 아냐? 중2면 자기가 다 큰 줄 안다더니.”
시우와 준영의 대화를 듣던 승현도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를 띠었다.
셋이 함께 있다 보니 복잡한 생각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웃고 있는 승현을 본 시우가 조금 안도한 표정으로 승현에게 물었다.
“형은 뭐, 평소 맡던 역할 말고 다른 거 특별히 맡고 싶은 역할 있어?”
승현은 입질이 없는 낚싯대를 쥐고 괜히 휘휘 움직여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 *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시우는 막대 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창가에 기대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날씨 좋네. 매미들이 우는 걸 보니 여름은 여름이구나. 집에 갈 때 수박이라도 한 통 사 가야겠다.”
수박 주스를 만들어 주면 동생들이 좋아할 것이다.
시우는 “형아~ 형아~”하고 쫓아다니는 시윤이와…… 배고플 때 빼고는 늘 천사 같은 귀여운 시아를 떠올렸다.
배고플 때는…… 뭐…… 누구나 그런 거니까…….
영화 첫 리딩을 앞두고 시우는 복도로 나와 잠시 딸기 사탕 하나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안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자꾸 인사를 하러 와서 잠시 자리를 피한 것이다.
와그작-
작아진 사탕을 깨물어서 처리하고, 리딩실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시우의 뒤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안녕하십까! 선배님!”
……안녕하십까?
시우가 돌아보자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있는 누군가의 정수리가 보였다.
시우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빼고 예의 바르게 머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시우의 목소리를 듣고 상대가 몸을 세웠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누나였다.
시우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 어쩔 줄을 몰라 하다 약간 패닉이 온 듯 손으로 어지럽게 의미 없는 제스처를 취하며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저, 팬…… 팬…… 아…… 만나서…… 뵙게 되어서…….”
시우는 미국에서 눈을 피하지 말라고 교육받고 온 아이답게 눈을 그대로 맞춘 채,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시우에겐 이미 익숙했다.
“반가워요. 최유나…… 누나?”
그녀는 어른스럽게 먼저 인사를 건네주는 시우의 따뜻한 목소리와…… 눈앞에서 실물 영접한 시우의 미모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앗, 네! 저는 최유나라고 합니다!”
유나는 또 꾸벅 90도 인사를 했다.
시우가 말했다.
“저는 윤시우예요. 오디션 때 되게 잘하셨다고…… 감독님께 들었어요.”
“아, 아니에요.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까…….”
유나는 시우가 자신을 알아봐 주자 너무 고맙고 기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다른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아, 우리 덕구. 잘 지냈어?”
50대 초반의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한 팔로 시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는 조연 배우지만, 클래스가 다른 연기력으로 이제는 레전드 반열에 오른 중년 배우 황동식-
바로 덕구 아부지였다.
“아부지~”
“허허, 그래. 아부지다. 우리 덕구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큰 건 왕의 길 때 다 컸죠. 그래서 승현이 형으로 변신하고, 준영이 형으로 변신하고 그랬잖아요.”
“아이쿠~ 맞다! 그랬지? 이 아부지가 오락가락하는구먼. 하하!”
“하하!”
짝-
동식과 시우는 기분 좋게 웃으며 왕의 길 때처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동식과 시우, 유나는 대본 리딩실로 함께 들어갔다.
긴 테이블 양쪽으로 배우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중앙 상석에는 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감독이 앉아 차례차례 일어나 소개하는 배우들의 얼굴을 면밀히 살피는 중이었다.
짝짝짝-!
배우들이 소개를 마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안 역을 맡은 최유나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
마지막은 시우와 승현의 차례였다.
승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류승현이라고 합니다. 그…….”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어색함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승현은, 시우를 흘끗 봤다.
시우는 승현의 허리를 응원하듯 툭 쳤다.
승현의 입이 열렸다.
“사이코패스…… 정우 역을 맡은…… 류승현입니다~! 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